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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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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6월 26일 (일) 01:12:45 [조회수 :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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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여전히 병원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인데, 3박 4일 동안 능동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병원의 현실을 살필 기회가 주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어느 날, PCR 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은 상태로 모두 잠든 새벽 2시에 그림자처럼 입장하였다. 안양 S병원 507호였다. 평소 문병만 하다가 잠깐 침대 주인 노릇을 한 것이다. 물론 반가운 초청은 아니었다.

  한밤중의 병실은 고요하지 않았다. 수술 직후 섬망(譫妄) 증세를 보인 옆 침대 노인 때문에 병실은 그야말로 작은 전쟁터였다. 간병 하던 할머니는 아침이 오자마자 새 간병인에게 역할을 맡기고 손사래를 치며 떠났다. 처음에는 이곳이 요양병원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하루이틀 지내면서 지극히 정상적인 병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짧은 기간 동안 병원 사정을 웬만큼 파악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없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복장을 한 간호사들의 역할도 분간 못한 채 서둘러 퇴원했기 때문이다.

  꼬리가 잘리지 않은 코로나19 때문에 병원은 아직까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구나 마스크를 썼고, 가족마저 환자와 거리두기를 했으며, 병실의 침대 사이도 커튼으로 꽁꽁 가렸다. 다행히 흑막과 같은 커튼은 거부감을 덜어주었다. 굳이 어색한 인사를 나눌 여유도, 불필요하게 말을 섞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든 말든, 남의 대화를 엿듣는 처지가 되었다. 은밀한 ‘X파일’ 수집자의 모습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병실 분위기는 대개 간병인들의 대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소속사의 일원인 그들은 안양과 군포지역 종합병원 3곳을 돌며 일한다고 하였다. 한 병원에서 동시에 수십 명이 같이 일하니 하늘색 티셔츠는 어디에서나 한 팀처럼 보인다. 마치 병원의 일상과 환자의 동정을 두루 엮는 소위 빅 브라더처럼 느껴졌다. 정보 네트워크만이 아니다. 간병인은 저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지키는 파수꾼들이었다.
  
  간병인의 다른 이름은 요양보호사인데, 아직 병원에서는 간병인 혹은 여사님으로 통용되었다. 병원 측은 끼리끼리 모이는 것을 제한하지만, 대다수 중국동포인 그녀들은 커튼과 커튼 사이에서도 마치 대면하듯 말을 주고 받는다. 듣자니 가장 많은 소재가 가족 이야기다. 가족의 범위에 손자손녀는 물론 조카, 외삼촌, 큰집은 기본이다. 서로 언니언니 부르니 조선족 동포는 모두 친척처럼 들릴 정도였다. 연변은 물론 길림 등 동북 3성의 거리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2020.1) 한국계중국인의 국내 거주자는 70만 8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간병인은 웬만한 뉴스와 정보를 다 꿰고 있었다. 간병의 속성상 핸드폰은 필수품이었다. 병원에서 24시간 머무는 까닭에 아침이면 영상으로 중국의 손주와 마주하고, 며느리에게 아들 소식과 가게의 형편을 물었다. 인근 현장에서 일한다는 남편과도 전화 속 무뚝뚝한 목소리로 부부의 정을 나누었다. 당연히 환자의 가족과도 수시로 통화한다. 그들은 대체로 비슷비슷한 수입과 그에 어울리는 자부심으로 충일하였다. 한국인의 박한 삶에 비판적이지만, 비난보다 얄미운 식구처럼 긍정하고 인정하는 모습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간병인은 환자의 삶에 가장 가까운 반려자 역할을 하였다. 어떤 간병인은 지난 해에만 7명을 떠나보냈다고 하였다. 커튼 안으로 스며드는 진한 여운의 연변사투리는 환자의 위축된 병상을 지배하기도 하고, 문풍지처럼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민망한 두 손의 수고는 더 이상 부끄러움조차 없다. 다양한 임상경험은 건강상담 역할에서 의사보다 친밀하다. 게다가 대화는 돈 모으는 재미를 중심으로 대선 투표성향, 역대 대통령 평가, 교회 목사 인상기, 연변사회의 공동화 현상 등 이슈가 거침없다.

  어느 간병인은 맞은편 80대 노인에게 “할아버지도 유공자냐?”고 묻더니 자기 아버지가 항미원조(抗美援朝)에 나간 정황을 설명하면서 작은 병실 안으로 역사의 무대를 옮겨왔다. 그날은 마침 6월 25일이었다. 침대와 침대의 간격처럼 이렇게 손쉽게 화해가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들이 환자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또한 잠언 투성이였다. “음식 욕심 없어야 오래 살아요”, “노는 것도 나이가 있어요”, “이 세상에 공짜는 없대요”, “지금껏 건강히 살았잖아요. 만족하세요.”

  은막 구실을 한 커튼 덕분에 잠시 빌려 쓴 침대를 슬그머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더 이상 커튼과 커튼 사이를 통해 타인의 삶을 엿듣는 호기심은 없다. 돌아보니 기실 타인의 삶은 없었다. 그들의 모습은 나남 없이 다를 것이 없었다. 동독시절을 그린 영화 ‘타인의 삶’에서 하루 24시간 남의 삶을 엿듣는 것이 직업인 주인공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엿들은 진실은 그의 삶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에서 인간의 삶을 공유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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