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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딱 일어나기햇볕같은이야기
최용우  |  9191a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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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6월 12일 (일) 08:24:17
최종편집 : 2022년 06월 12일 (일) 08:27:16 [조회수 :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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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 해바라기(사진:최용우)

7248.발딱 일어나기

저의 핸드폰에 있는 건강도우미 어플은 나이와 몸무게를 입력하면 오늘 운동의 양을 정해줍니다. 저는 8000보 약 6km를 걸어야 된다고 해서 금강변 둑을 따라 도는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축하합니다. 성공했습니다.’라는 빵빠레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날마다 빵빠레를 받았더니 지난달에는 총 196km를 걸었네요. 비오는 날이나 겨울을 빼면 1년에 약 2천km를 걷습니다. 오늘은 걸으면서 내가 넘어지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걷게 되기까지 수 천번 넘어지면서 일어서려고 노력했었거든요.(ㅎㅎ 제가 1살 아기 때...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분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넘어졌을 때 그대로 주저앉아버리면 실패이고 다시 일어서면 성공 아닐까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베드로와 가룟 유다 두 사람이 넘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 일어나서 예수님의 애제자가 되었고, 가룟 유다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려서 스승을 팔아먹은 천하에 개 잡놈이 되었습니다. 
유도를 배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낙법입니다. 잘 넘어지는 방법을 가장 먼저 배웁니다. 그것은 넘어질 때 충격을 최소화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잘 넘어지는 사람이 잘 일어납니다.
4.넘어지는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살다보면 넘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럴 때 좌절하지 말고 발딱 일어납시다. 발딱 일어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면 맹꽁이를 보고 배우세요. 맹꽁이는 발딱 뒤집어졌다가 발딱 일어나기 선수거든요.

   
▲ 까막이풀(사진:최용우)

7249.신국 관점

무언가를 판단할 때 가지게 되는 입장을 관점(觀點)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관점에 따라 그것을 보는 눈이 다 다릅니다. ‘같은 위치에서 다른 것을 본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in terms of’라고 합니다. 
맨 처음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미국 선교사들이 근본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거의 대부분 ‘근본주의’적 관점으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 굉장히 다양한데 ‘근본주의’적 관점 외에는 ‘이상한 이단’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도 ‘근본주의’의 특징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는 중세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데 ‘신국론(神國論)’이라는 엄청난 책을 썼습니다. 신국론을 ‘하나님의 도성’이라고도 하며 한 마디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관점은 그 후로 기독교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었고 근본주의도 이 관점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관점이 동양의 유불교문화권으로 넘어오면서 유불교의 ‘천국(天國)’개념과 짬뽕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는 자연스럽게 ‘천국’으로 해석이 됩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천당, 천국’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와 동일시되어 어떤 장소적인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성경에 ‘천국’을 저 어디쯤에 있는 어떤 장소라고 말한 부분은 없습니다. 그렇게 보이는 부분도 사실은 ‘장소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머무르면 나는 이미 천국에 사는 사람입니다.

   
▲ 돈나물꽃(사진:최용우)

7250.성민 관점

무언가를 판단할 때 가지게 되는 입장을 관점(觀點)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복음주의적 교단과 교회들은 하나님을 ‘성민(聖民)’의 관점으로 봅니다. 유대인들은 세계의 모든 국가 중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사명을 완수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해 오직 유대 민족만이 선택되었다고 믿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신14:2) 지금도 유대인들을 지탱시켜주는 흔들리지 않는 관점은 ‘선민의식’이며, 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께 선택받았고 다른 민족은 지옥의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유대교의 ‘선민의식’처럼 ‘나사렛파 유대교’의 먼 후손인 복음주의 기독교는 ‘성민의식’의 관점을 가집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성민)이며 ‘구원을 받았다’라는 관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하는 말이나 ‘구원의 확신’이란 제목의 설교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처럼 ‘구원’이라는 것이 초라하게 취급받는 시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선민의식’이나 ‘성민의식’은 자기도 모르게 타인을 ‘배타적’으로 대하게 합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은 이미 창세 이전에 구원받기로 선택된 특별한 자들이라는(칼빈이 이렇게 말한 적 없음) 출처 불명의 신념을 믿음처럼 고수합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없으신 하나님께 ‘창세 이전’이 있을 리 없는데도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성민주의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저를 ‘배타’할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저도 칼빈주의자입니다. 

   
▲ 금강(사진:최용우)

7251.성전 관점

무언가를 판단할 때 가지게 되는 입장을 관점(觀點)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자유주의적 교단과 교회들과 가톨릭과 동방교회도 하나님을 ‘성전(聖殿)’의 관점으로 봅니다. 가톨릭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만 그렇다고 ‘구원’만 특별하게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조물주이신 하나님은 너무나도 크신 분이라 ‘하나님 밖’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안’에 우주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손오공은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어도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밖이라는 것이 없는데 어디로 벗어난단 말입니까? 그렇게 ‘우주는 하나님의 집이다’라는 관점을 ‘성전관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는 인간들이 선하면 얼마나 선하고 악하면 얼마나 악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의 하나님이시기에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미미하고 먼지같은 것들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싸우지 말고 서로 평화를 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전관점은 ‘다일’(다양함 속에 일치)의 평화와 화평을 강조하는 ‘에큐메니칼’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관점’을 쉽게 설명해 보았습니다. 더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성민관점’은 ‘개인구원’을 강조하고, ‘성전관점’은 ‘사회구원’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개교회주의와 개인주의가 강하고, 가톨릭은 전 세계교회가 하나로 일치되어 세계 평화를 이루자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 살구(사진:최용우)

7252.행복하게 살려면

인간의 지식은 자연 만물에 대한 ‘자연적 지식’과, 인간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지를 아는 ‘도덕적 지식’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지식은 전혀 다른 영역의 지식이지만 두 가지를 다 배워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법(法)이라는 한문을 풀어보면 ‘물(水) 가다(去)’ 즉,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가는) 것입니다. 물은 어떤 경우에도 높은 곳에서 낮은 방향으로 흐르며 이것은 어디에서든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간혹 일시적으로 역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이러한 변함없는 자연 현상을 보면서 인간의 삶을 자연에 맞추어 순리대로 풀어보자는 ‘자연적 지식’의 기준을 법(法)이라고 합니다.
3.오늘날 과학과 미디어의 발전으로 ‘자연적 지식’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연적 지식을 삶에 적용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도덕적 지식’은 초라할 정도로 빈약해졌습니다. 학교 교육도 ‘자연적 지식’에만 맞추어져 있고 공식 하나 더 외운 사람을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자연적 지식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도덕적 지식’을 공부하자는 ‘인문학’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원래부터 ‘도덕적 지식’의 종교입니다. 공부만 많이 한 목회자들이 자꾸 ‘자연적 지식’으로 설교를 하니 기독교가 제힘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연적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그 지식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행복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옛날 유행어로 마무리 하자면 “먼저 인간이 되거라아~!”입니다. ⓒ최용우 https://cyw.pe.kr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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