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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 살리기
김정호  |  fumc@fum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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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6월 11일 (토) 03:16:11 [조회수 : 2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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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성에서 온 기독교방송 대표 말씀이 코로나 이후 36% 한인교회가 문을 닫았고, 그 교인들이 대부분 큰 교회로 이동하는 현상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어려운 때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을 하는데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분 말씀이 작은 교회들이 그동안 최전방에서 전도에 가장 열심이었기 때문에 작은 교회 살리는 일이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전 날에 교인 한 분이 코로나 이후 어려운 교회들을 돕고 싶다며 큰 액수의 헌금을 약속하셨기에 하나님 마음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하늘의 별이 빛나는 것처럼 어려운 때 나눔은 크게 고마운 것입니다.

작은 교회의 현실은 우리 교단이 심각합니다. 뉴욕연회 비커튼 감독께서 며칠전 목사들을 소집해서 목사 부족현상과 교회 지속성 (sustainability) 문제 해결방안으로 협력교구제(cooperative parish)를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은 다섯 교회를 목사 2명이 함께 목회하는 것입니다. 목회와 예배, 나아가서 재정과 재산까지도 공유하는 방안도 제기됩니다. 교인들의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가장 어려울 것이고 잘못하다가는 교회 건물 팔고 합치면서 결국은 교회 문닫는 현상이 가속화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의적인 협력 시스템을 창출해 낼 수 있다면 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교회 현실이 어렵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더욱 어려워 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교회의 존재목적을 지켜내도록 요구하십니다. 학생들이 오지않으니 세개의 감리교 신학교를 하나로 만드는 문제에 대해 유성준 목사님이 얼마 전에 쓰신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 가운데 직면해 있다. 외적위기는… 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교회신뢰도의 추락, 안티기독교 세력의 확산, 소득 3만불 시대 종교에 대한 무관심, 세속주의, 물질만능주의… 내적위기는 영적위기, 기복신앙, 이원론적 신앙생활… 차세대교육의 부재, 이단들의 도전, 교단정치의 폐해, 교회 리더들의 정체성 위기 등을 들 수 있다.”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 우리 이민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모든 문제 해결방안을 “오직 성령이 임하면…”이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했습니다. 초대교회는 고난이 있을 때마다 선교의 지경이 확장되고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지난주일 비커튼감독께서 후러싱제일교회가 우크라이나 지원 5만불 헌금한 것 고맙다고 하면서 저에게 “잘 견뎌?”하기에 “난 어려움에 매몰될 자유와 여유가 없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후러싱제일교회 잘 지켜낼 것입니다. 당신은 감독회장으로 이 교단 잘 지켜내기를 기도해요. 화이팅!”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가 제게 “요즘은 목사님 교단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 안하시는 것 같아요.”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나이 값 하려고. 나이 먹은 우리는 그저 기도하고 격려하고 살리는 일 해야지. 내가 젊어서 선배어른들 비판하고 그랬지만 돌이켜 보니 그 어른들이 심은 나무에서 열매를 먹었더라.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나무 열심히 심고 후배들이 디디고 건너갈 디딤돌 역할 하련다.”

80년대 내 딴에는 정의평화, 민주통일운동 열심히 한다 하면서 교회가 크지 않아 무시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이 행복했습니다. 제 아내는 큰 교회 목사라고 제가 한창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면 항상 “당신 목사같지 않다. 그만두고 다시 개척교회 해.” 그랬습니다. 작은 교회가 꼭 작은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작아도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면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큰 교회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 잘하는 교회가 큰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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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2-06-11 22:46:59
시골의 작은 교회 (퍼온글: 변호사 엄상익)
나는 실버타운의 한 공간을 빌려 글을 쓰고 있다. 밥도 그곳의 공동식당에서 먹을 때가 많다. 바로 옆의 식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팔십대 노인이 있다. 검은 눈썹에 하얀 얼굴을 보면 젊은 시절 꽤 미남이었을 것 같다. 잠수부 출신인 그는 평생 바닷속 사십 미터 아래가 직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얼마 전부터 주일이면 시골 마을의 작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한번은 교회에 갔다 오더니 이런 말을 했다.
  
  “나보고 집사를 하라고 하더라구. 그거 장로에 비하면 한참 아래 쫄떼기 계급 아니요? 직장에 있을 때나 팔십 넘어 교회에서나 나는 항상 졸병이라니까.”
  
  사람 좋아 보이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도 몇 번 그 교회에 가 보았다. 시골집을 얻어 개조한 소박한 교회였다. 오십대 말쯤의 목사가 몇 명의 신도들을 앞에 놓고 설교를 하고 있었다. 조금 특이한 건 그의 표정이 어떤 원인 모를 기쁨에 차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예배가 끝나니까 시골 목사의 부인이 만든 작은 선물들을 주었다. 방앗간에서 막 뽑아온 따끈한 가래떡을 한 팩 받았다. 그 다음에는 목사 부인이 정성스럽게 만든 잡채를 그 다음에는 카레를 받아왔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오후 내 옆자리에서 밥을 먹는 노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물었다.
  
  “내가 그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낸 헌금이 전부 합쳐서 이만 원이거든요. 그런데 그 교회 목사가 오늘 나한테 삼만 원짜리 상품권을 주는 거야. 낸 돈보다 더 많이 돌려주는 교회도 있나? 그래도 장사가 되나?”
  
  작은 행위였지만 그 사실은 나의 기존 관념을 깨고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 역시 교회는 돈을 바치는 곳이라는 인식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뜯긴다는 인식도 있었다. 주위에서 보면 건물을 팔고 슬며시 교회를 옮기는 사람도 있었다. 수십억 건물이면 수억을 십일조로 바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목사들은 그럴 때면 성경 속에서 땅을 팔고 그 돈을 교회에 바치지 않고 일부를 챙기다 죽은 아나니아와 삽피라의 사건을 얘기하면서 겁을 주었다.
  
  그런 미담과는 달리 도시 부자교회 목사가 한 얼굴이 찡그려지는 얘기도 있었다. 며칠 전 한 종교전문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만만치 않은 내공의 기자였다. 명문고등학교와 명문 대학을 나왔다. 목사 자격도 갖추었다. 그가 이런 말을 내게 전했다.
  
  “제가 지금 교계 사람들 대부분이 납작 엎드리는 우상이 되어가고 있는 목사에 대해 글을 쓰고 있어요. 그의 기도를 받으려고 신도들이 줄을 섰는데 신도들이 그때마다 인사로 봉투를 내놓는데 작은 액수가 천만 원이라는 소문이에요. 공식적으로 그 목사가 있는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도 천문학적 숫자구요. 그런데 특이한 걸 발견했어요.”
  
  “그게 뭔데요?”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 목사는 자기가 돈을 먹지는 않아요. 그 대신 들어오는 돈을 교계에 모두 뿌리는 거에요. 전에 보면 큰 선거가 있을 때 투표권자에게 돈을 주어 매수하는 경우는 있었어요. 그런데 그 목사는 때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교계 인사들에게 돈을 뿌려요. 그 목사의 돈을 안 먹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교계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어요. 괜찮은 집회다 싶으면 그가 먼저 후원금으로 돈을 듬뿍 보냅니다. 그러면 그를 임금같이 초청해서 설교할 시간을 안 주는 집회가 어디 있겠어요?”
  
  종교계도 정치권 같이 그렇게 돈이 지배하는구나 알았다. 그 기자가 말을 계속했다.
  
  “그 목사가 한번은 나를 불러 기사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봉투 하나를 주머니에 넣어줘서 인사치레거니 하고 받아 나왔어요. 돌아와 봉투를 열어 보니까 나 같은 놈은 상상도 못할 거액인 거에요. 그걸 보니까 그의 돈을 먹은 사람은 모두 노예가 된 걸 알겠더라구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이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다시 연락이 왔어요. 돈은 가지되 봉투는 돌려달라고 말이죠. 그래서 봉투를 보니까 기도 받은 신도가 주고 간 돈 같더라구요. 이름이 적혀 있었어요.”
  
  도대체 믿음이란 뭘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소리만 요란하고 알맹이가 없는 기독교계가 부끄럽다. 부자의 봉투를 좋아하는 목사도 부끄럽다. 예수를 따라가지 않고 돈을 따라가는 그들의 신앙이 의심스럽다. 오늘 아침 우연히 펼친 성경에서 이런 말이 튀어 오른다.
  
  ‘고위층 종교인들의 죄악을 잊지 마소서’
  받은 것보다 더 주려고 하는 신도 몇 명의 시골 교회의 목사가 진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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