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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교회 이종명 목사 이야기"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생태 공동체"
이주현  |  매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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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5월 28일 (토) 01:29:47
최종편집 : 2022년 06월 03일 (금) 04:49:33 [조회수 :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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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생태 공동체
-송악교회 이종명 목사 이야기-

이주현(매원교회)


요즘,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른바 한류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를 베끼기에도 버거워했던 극동 아시아의 작은 나라, 그것도 분단국에서 전 세계 음악과 영화 등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리라고 그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 한국의 노래와 영화에 환호하는 세계인들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기분 좋은 일이다. 정부에서도 이를 반긴다. 국가적인 위상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위상이 올라가니 한국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진다. 같은 값이면 한국산을 선호하는 풍토가 형성되니 경제계에서도 반길 일이다. 
한 국가의 문화적인 역량은 국가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문화적인 파급력이 크면 클수록 국가의 위상은 올라가고 그 위상은 한 국가에 대한 신뢰와 고스란히 연결된다. 이러한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확립한 학자가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교수다. 그는 1990년에 출간한 저서《주도국일 수밖에 없는 미국: 미국 국력의 변화하는 본질》(Bound to Lead:The Changing Nature of American Power)에서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소프트 파워를 정보 과학이나 문화, 예술 따위를 앞세워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거나 저지할 수 있는 힘으로 이해하면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성공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 송악교회
   
▲ 이종명 목사 가족- 이봄(27), 정현순(사모, 58) 이한(30)

 

문득, 복음을 전하는 것을 지상과제와 존재 근거로 삼고 있는 교회에도 이러한 소프트 파워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소프트 파워의 본질은 패권적 요소가 없는 역량이다. 어떤 경우에서든 패권적 요소가 보이면 소프트 파워는 상실된다. 희생과 사랑이 녹아있는 십자가 복음을 존재의 근거와 방식으로 삼고 있는 교회는 생태적으로 패권적일 수 없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에 세워진 모든 교회는 사회적 공신력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오늘날 교회가 우선적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무한경쟁을 본질로 삼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교회의 소프트 파워는 무엇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교회가 성찰해야 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악로 810에 위치한 송악교회(온양동지방), 송악교회는 바로 그러한 숙제를 지역과 함께 풀어나가는 교회이다. 신자유주의 파고 속에서 신음하는 자들을 보듬어 안고 그 문제들을 마주하며 변화시켜나가는 교회이다. 그래서 작지만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엄청난 소프트 파워를 발휘하는 교회, 그래서 결코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없는 송악교회를 찾아 그 교회를 담임하는 이종명 목사(61)를 만났다.  

 

송악교회와 마을 목회


송악면 소재지에 자리한 송악교회는 한국 전쟁 중인 1951년 11월 5일, 송악초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70주년을 맞이하는 현재 송악교회의 모습은 실로 놀랍다. 초등학교 교실 한 칸에서 시작한 교회가 송악면 일대를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변화된 송악교회의 모습을 단 몇 시간의 인터뷰로 소개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7시간에 걸친 인터뷰로도 모자라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의 원고와 기사를 훑어봐야 했다. 그 기사 가운데, 2019년 10월 1일, 오마이뉴스 기사(노준희 기자)가 눈에 띄어 일부를 소개한다.

“전국에 소문난 아산시 송악마을, 그 변화에 그가 있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자연과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좀체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부하지 않는 그들이 조용히 이끌어온 변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중략>
나 하나의 삶도 조화롭게 가꾸기 벅찬 자본 중심 사회의 그늘 아래서 과연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의 변화를 추구했을까. 왜 그랬을까. 통찰의 지혜로 자신을 다스려온 그들 삶의 궤적을 통해, 우리 삶의 때를 닦을 혜안을 구해보고자 한다.”

 

   
▲ 송악 놀장 풍경(2019년 10월 1일, 오마이뉴스)
   
▲ 송악 놀장 풍경(2019년 10월 1일, 오마이뉴스)


송악지역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 “송악 놀장” 모습을 취재하는 기자의 눈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어 보인다. 모두가 떠나 노인들만 남아있는 오늘날 농촌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기자에게,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그렇게 신비로운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송악골을 이렇게 활기찬 지역으로 바꾸는 데는 누가 봐도 그 한 가운데 송악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송악면 지역의 명소 11곳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있는 송악마을지도”(사회적협동조합 송악동네사람들 제작)에 송악교회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70여 년이라는 역사만으로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변화된 송악면 지역에는 곳곳에 송악교회의 흔적들이 묻어있다. 늘 중심에 서 있었지만, 결코 주인이 되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만족한 송악교회와 이종명 목사의 흔적들이다. 그 흔적들이 너무 많다. 일일이 나열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다. 그 많은 사업들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 유지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송악면 일대에 남긴 송악교회의 흔적들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교회가 아닌 마을 중심의 공동체 정신이 스며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생태와 환경친화적인 사업들이라는 점이다. 그 사업과 활동들을 지면에 다 실을 수 없어 대략적인 개요만 싣도록 한다. 

   
 

먼저, 이 목사는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지역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사업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려 ‘친환경생태농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교회 안에 뜻을 함께하는 성도들이 모여 ‘농민선교위원회’를 조직했다. 수차례의 강좌와 현장답사, 교육과정을 거치고, 훈련과 논의과정을 통해 교회와 지역의 미래농업을 고민하면서 1998년 교회 안에 ‘농민선교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목사가 송악교회 부임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이어 2000년 2월, 뜻을 같이하는 지역 농민들과 함께 ‘송악동네친환경농사연구회’를 창립하였고 인근 지역에서 활동 중인 한 살림 생협과 연계하여 ‘한살림 송악면지회’를 창립하게 된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현재 송악면 지역에서 약 150여 농가가 논농사 약 20만평, 밭농사(잡곡, 야채, 시설 채소 등)약 20만 평으로 재배작물도 쌀, 콩, 잡곡, 여러 가지 야채와 버섯, 벌꿀 농사등으로 친환경 농사를 확대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친환경 농업 단지로 자리를 잡았다. 
송악교회는 이렇게 친환경 농업 운동이 지닌 가치와 과제를 함께 풀어내기 위해서 도시소비자와 지역농민 생산자와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지역주민들과 도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추수 감사 축제를 연다. 그리고 연중 프로그램으로 생태체험 교육프로그램(논 생태 탐사, 송악저수지 철새 탐사, 반딧불이 탐사 등)을 운영하며, 농사 체험 교육프로그램(친환경 모내기, 논매기, 메뚜기 잡기와 추수 체험 등) 등을 통해 도시민들의 친환경 작물의 소중함과 생태 감수성을 심어주고 있다. 그 외 지역에 다양한 농업 생산, 가공, 유통 공동체를 조직하면서 친환경 ‘겨레벌꿀영농조합’(2005)을 세웠고, 유기농 콩나물을 생산하는 ‘송악골영농조합법인’(2006)을 세우기도 했다.

   
▲ 송악교회 사회복지관- 송악골 어린이집
   
▲ 송악교회 사회복지관- 송악골 어린이집

 

송악교회의 친환경 생태 공동체 사업은 교육영역까지 미쳤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어린이 교육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하여 1991년에 ‘사랑선교원’으로 세운 교회부설 유아교육 기관을 ‘송악골 어린이집’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생태 유아교육의 모델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시도는 지역사회 안에 제도권 학교(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교육 내용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갔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는 정서적 공감대를 만드는 문화 활동이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하여 1998년에 송악교회의 문화부에서 풍물패를 조직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지역 내 자연부락단위로 풍물패가 만들어졌고, 학교의 교육운동과 연결되면서 지역 내에 여러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역 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결합 되면서 다양한 장르의 문화모임(주민연극동아리, 영화감상 모임, 아빠들의 마을밴드, 그림 모임, 난타팀, 인문학 독서 모임 등)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 외 지역 복지사업 ‘지역아동센터 송악반딧불이교실’ 설립(2005), 지역 내 노인 복지 사업인  ‘사랑의 오병이어’ 설립(1997), 에너지 협동조합 ‘송악에너지공방’(2012) 등, 일일이 나열하기가 정말 버거울 정도다. 하여, 송악교회의 사업과 활동에 대하여 더 알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포털 검색을 해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 다라미 자운영 마을 농촌체험 프로그램
   
▲ 다라미 자운영 마을 농촌체험 프로그램
   
▲ 다라미 자운영 마을 농촌체험 프로그램

 

흙에 개어진 복음- 모든 생명을 하늘같이


그러면 도대체 이 많은 사업과 활동을 시작하고 운영하게 된 계기와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송악교회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와 같이 모양새 나는 큰 타이틀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모든 생명을 하늘같이”라는 소박하지만 진지한 표어가 눈에 띈다. 이 표어 속에는 송악교회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생명”이라는 표현 속에는 먼저 목회의 영역이 단순히 교회 울타리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교회 경계를 생명이라는 범 우주적인 영역으로 확장,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보듬는 일이 송악교회의 목회 영역인 
셈이다. 나아가 지역 모두가 송악 교회의 목회 영역이다. 교회의 모든 사업과 활동이 지역사회와 마을을 염두에 두고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 목사는 그런 목회에 대한 소신과 철학은 처음부터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이 목사의 목회 철학과 신념은 목원대학교 전신인 감리교 대전신학교 교장이셨던 고 이호운 목사(1911~1969)의 영향이 컸다.
이 목사는 목원대학교 신학과에 입학(81학번)을 하면서 신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윈 터라 생활이 늘 곤궁했던 이 목사는 예산서 중학교를 마친 후, 삽교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예산 읍내 명문 고등학교에 갈 수 있을 만큼 성적은 출중했으나, 신생학교로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고 있었던 삽교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한 것이다. 삽교고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삽교 교회는 이 목사에게 일종의 안식처였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 학생부 활동을 통해 봉림산에서 기도하면서 성령 체험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국문학자, 시인의 꿈을 접고 목회자의 길을 염두에 두고 목원대학교에 1년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학군단(ROTC) 4년 장학생이 되었다. 

   
▲ 고 이호운 목사(1911~1969)

이 목사에게 대학 생활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입학할 때 꿈은 부흥강사였기에 당대 최고 부흥사가 되기 위해 영어 공부에 정진하기도 하였으나 당시 시대 분위기와 신학교 특유의 아카데믹한 분위기의 냉냉함을 견디지 못해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선배가 건네준 책 “목원의 꿈”(이호운 학장의 유고집)을 접하면서 일대 전환을 하게 된다. 

책에 쓰인 글의 요지는 '흙에 개어진 복음'이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 보좌로 인간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서 갈릴리 민중과 함께 구원하셨는데, 수가성 여인, 문둥병, 죄인, 가난한 자들, 세리와 창녀들 가운데서 녹아져 예수님의 말씀이 개어졌다. 맹인 눈뜨게 하실 때 진흙을 개어 그 사람 눈을 뜨게 한 것처럼 흙에 복음이 개어져야 구원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 “목원의 꿈”을 이룬 이종명 목사

 

이렇게 “흙에 개어진 복음”, 이 한 마디에 이 목사의 삶의 전환점이 이뤄진다. 유레카(Eureka) 모멘텀-Aha Experience-이 일어난 셈이다. 그때부터 이 목사의 꿈은 농촌 목회로 바뀐다. 광주 항쟁 직후, 전두환 군부독재가 활개 치던 시대, 농촌 목회를 꿈꾸는 신학생을 편안하게 놔둘리 없었다. 당시에 학생들 사이에서 나돌던 일종의 금서(해방 신학 등)들을 접하면서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삶의 모습을 만들어가던 터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접한 운동권 동료들, 그리고 당한 고난은 어쩌면 예고된 삶의 여정이었다. 1983년 ROTC 훈련을 마무리할 즈음에 학군단 단장의 전갈을 받고 교문 밖에서 기다리던 보안사 군인들에 끌려가 구타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 그 기억은 아직도 이 목사에게는 악몽이다.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원했던 ROTC도 퇴출되었고 방위 복무(부선망독자)를 마친 후, 본격적인 운동권 활동가로 나서게 된다. 그러면서 대전과 천안 등지에서 EYC활동과 기독교농민회 청년조직 담당, 남부연회 청년관 등 활동을 하면서 조직 전문가로 경력을 쌓게 된다. 그러다가 농민회가 전국농민회로 단일화되는 과정에서 농촌 목회 현장으로 나오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신학 공부를 하든 기관에서 조직활동가를 하든 교회라는 현장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는 이 목사의 조금은 고지식한 신앙을 통해 그 길로 인도하심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교회 현장에서 전도사로 성가 지휘자로 활동을 이어가며 지금의 아내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부흥강사를 꿈꾸며 영어 공부에 정진하던 신학생의 변화가 참 별나게 다가온다. 이 또한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법일 터이다. 

 

구계리 둔벙 추억- 회유성 어류인 뱀장어와 꽃게


그래도 그렇지, 모든 사람이 故이호운 목사님의 유고집으로 인생이 그렇게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목사가 “흙에 개인 복음”에 그토록 감동을 받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 글귀가 떨어져 튼실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만큼 이 목사의 삶 속에 옥토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의문을 풀어줄 요량인지, 만나자마자 나를 데려간 곳이 이 목사의 고향이다. 송악에서 차로 30여 분 달려 도착한 곳, 공주시 유구면 구계리였다. 구계리는 동국여지승람 10승지(十勝之地) 중 한 곳이다. 10승지란 전쟁이나 천재(天災)가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 군데의 땅으로 경치나 지형이 뛰어나고 굶주림과 전쟁을 면할 수 있는 피난처를 의미하는 곳이다. 그만큼 깊은 산골이라는 뜻이다. 6.25 한국 전쟁 시 군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목사는 그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예산 신양)를 다니기 전까지 그곳에서 살았으며 부친께서 건강문제로 구계리를 떠나 예산 신양면 소재지로 이사를 나갔지만 불과 2년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후로 방학 때만 되면 구계리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기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오롯이 녹아있는 곳이다.  
이 목사는 그곳에서 뱀장어와 참게에 대한 추억을 회상했다. 회유성 어류인 뱀장어는 5-10년 가량 담수에서 성장한 후, 금강을 통해 서해와 남태평양 심해에서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한다. 높은 수압에서 알이 부화한 후 투명한 실뱀장어가 되어 다시 돌아와 성어가 될 때까지 담수에서 자란다. 금강에서 구계리 계곡까지 올라온 뱀장어와 참게를 잡아서 불어 구워먹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 이종명 목사
   
▲ 이종명 목사 고향 구계리 개천과 고향집

 

그러나 그런 생생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언제부터인가 끊겼다. 금강 하구둑 때문에 길이 막힌 것이다. 이 목사에게는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자리했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구계리에서는 그 흔하디 흔한 뱀장어와 참게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상처로 남은 것이다. 인간의 탐욕으로 뱀장어와 참게의 길이 막혀 멸종되는 모습은 이 목사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앗아간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남다른 생태 감수성으로 되살아나 오늘날 생태 목회와 공동체를 향한 열정으로 나타난 셈이다.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여있던 생태 감수성이 복음을 만나 꽃을 피운 모습, 그게 바로 오늘날 송악골 일대를 모범적인 생태 마을로, 친환경 단지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 목사에게 마지막 꿈이 있다. 남다른 생태감수성과 신실함으로 가꾼 교회와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이제 은퇴 이후의 삶을 염두에 두고 있다. 누구나 다 꿈꾸는 그런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가 아니다. 장애를 가진 자녀들을 둔 부모들과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로 구성된 사단법인을 “온마을 사람들”을 출범시켰다. 70이 넘어서도 농촌을 지키며 농사를 짓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겨있다. 이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이한)의 영향이 컸다. 자신보다 오래 살아야 할 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의 애뜻함이랄까, 그 문제조차 지역 공동체와 함께 친환경 농업으로 풀어나가려는 그 뜻이 참 아름답다. 그러한 선배의 부름을 받고 수년 전 송악교회로 부흥회를 왔던 어느 목사님의 글을 허락도 없이 게재한다. 

      

송악감리교회 이종명 목사님,
처음 만난 후배 목사, 낯설어도 일단 껴안고 보는 목사님
이름 모를 산중에서 만난 노루귀의 수술을 세다가
하나님이 나도 하나, 둘, 셋 헤아리시겠구나 깨닫고
한참 울었다는 목사님

아픈 아들 때문에 인생의 밑이 빠지도록 흔들렸지만
모든 생명 하늘같이 여기는 것이 신앙이라고
세상 향해 현수막 내건 목사님

동네 아이들에게 꽃 친구, 나무 친구, 들판에 메뚜기 친구
계곡의 가재 친구 맺어주며 어른 친구 되어주는 목사님
이런 목사님이 좋아 부산에서 대구에서 아산까지 이사와
친구 맺는 교인들

부모 없는 어린이들, 술 먹고 길을 잃으니
개인 과외 하는 교인에게 월급 40만 원 쥐어주며
이 아이들 좀 살려달라 부탁하는 목사님
목사님 말씀, 하나님 말씀이라 들으며 기꺼이 손해 보는 교인들

제주 강정 마을, 평택 쌍용자동차, 서울 광화문 광장
고난받는 이들의 농성장에서 밤늦도록 분노하다가
송악마을에 내려오면 이제 너무 늙어 교회도 나오지 못하시는 어르신들
찾아가 마음 살펴드리는 목사님이 부흥회 하라고 부르셔서 갔다가
몸 둘 바를 모르고 나흘 동안 벌벌 떨다 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제 심령이 부흥했습니다.
이종명 목사님 생각하면 자꾸 가슴이 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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