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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의 그늘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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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5월 21일 (토) 23:56:26 [조회수 : 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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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목요일 저녁,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고난함께’ 거리기도회에 참석하였다. 평소 중국인 관광객으로 물밀 듯한 곳인데,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제한이 풀렸음에도 여전히 한산한 편이었다. 명동의 그늘이 아직 걷히지 않은 셈이다. 아마 명동의 봄다운 봄은 다시 찾아올 중국인들과 함께 시작될 모양이다. 짙은 그늘은 어디에나 존재하였다. 거리기도회는 민주화 이전 명동성당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하소연이 필요한 그곳에서 거리기도회는 열리는 중이다. 

  이번에는 가톨릭센터 건너면 허름한 2층 건물 앞이다. 그곳을 명동 2지구 재개발구역이라고 부르는데, 얼마 전까지 2층 건물에 성물방이 함께 있었다. 지금은 성물방이 성당 구내로 이전했지만, 건물주는 떠났어도 미처 떠나지 못하는 아홉 가게의 세입자들이 영업도 못한 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재개발법에 보장된 공식적인 보상을 받지 못할 딱한 형편에 놓였다. 보상비와 이주비는 커녕 아예 문을 닫고 철거하니 권리금도 있을 턱이 없다. 게다가 건물주인의 고발로 몇 년째 명도소송 등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거리기도회에 아홉 가게 주인들이 참여하였다. 모두가 그리스도인은 아닐 텐데, 누구보다 앞장서서 기도회에 동참한 것을 보면 그만큼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기도회 내내 지나가는 명동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누군가의 속사정에 잠시 마음을 기울인다면 그 역시 고마운 이웃임에 틀림없다. 외국인 관광객은 낯선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는다. 코리아 드림 속 이색 풍경처럼 보일 것이다.

  성물방 2층에 세 들어 장사하던 가게 이름이 참 다양하다. 이미 강제집행으로 철거된 블루문스튜디오를 비롯해 곧 처분을 기다리는 이감헤어, 주방만게츠, 맛뜨리아, 베로니카화원, 주먹고기, 구니김밥, 펭귄식품, 선물 노래방 등이다. 화려한 명동 골목에서 상권이랄 것도 없는 그야말로 영세한 상인들이다. 그들에게는 십수 년씩 유지해 온 가게가 삶의 전부였다. 한때 집주인인 수녀원 성물방의 다정한 이웃들이기도 하였다.

  거리기도회에서 설교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익숙한 교회 안에서, 평소 들을 귀가 있는 교우들 앞에서 하는 설교와는 정말 다르다. 차로와 붙은 인도이니만큼 집회 장소는 어수선하기 마련이다. 대개 무심히 지나치지만 그런 행인들조차 의식이 된다. 게다가 성찬식까지 진행하면 시선이 더 산만해진다. 엄숙한 분위기에서만 집례하던 익숙함은 낯선 분위기 때문에 긴장감이 배가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거리기도회는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그만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 덕분이다. 무엇보다 대부분 거리기도회는 정치적 이슈에 따른 집회와 달리,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파하고 신음하는 이웃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은 어디든 존재하고 있었다. 명동성당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동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그늘은 더욱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행정당국과 사법기관에 호소하고 있지만, 별로 믿음을 두지 않는다. 힘 있는 사람일수록 당국과 법을 더욱 잘 요리할 줄 안다. 언론이나 사회적 관행도 억울한 약자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있다. 인권은 당위성으로만 머물고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뿐이다. 약한 사람끼리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이대로 무너지기에는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이 야속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먹고 사는 일이다. 마틴 루터는 <소요리문답>에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에 대해 묻고 또 대답한다. 그는 일용할 양식이란 “삶을 위한 양식과 필수품에 속하는 모든 것들”이라고 전제하면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물론 ‘순수하고 신뢰할 수 있는 통치자, 선한 정부, 좋은 날씨, 평화, 건강, 교육, 명예, 좋은 친구, 신용있는 이웃’까지 포함하였다. 

  사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 부자는 지금 가진 것도 모자라 더 많은 욕심을 부리고, 없는 사람은 당장 먹을 하루 세끼를 구한다. 명동 2지구 세입자들과 함께 드린 거리기도회는 구체적인 ‘일용할 양식’을 위한 간구였다. 지금 내 ‘일용할 양식’이 소중한 사람은 남의 ‘일용할 양식’에 대해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들의 따듯한 그늘이 되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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