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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신학노트4-리쳐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장경현  |  claremontkr@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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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2월 13일 (수) 00:00:00 [조회수 : 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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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신학노트4-리쳐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 네이버 검색 이미지에서
리쳐드 니이버는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와 "문화"로 상징되는 두 언어를 통하여 기독교와 세상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적대적인 관계이고 (그리스도≠문화), 둘째는 같은 선상에서 보는 관계이고(그리스도=문화), 셋째는 기독교가 우월적 위치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관계이고(그리스도-->문화), 넷째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양방의 관계이지만 (그리스도<-->문화) 역설적이고 개인적인 관계이고, 다섯째는 넷째와 같이 양방의 관계이지만 (그리스도<-->문화) 변혁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보여줍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느 관계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은 악하기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첫 번째일 것이고, 기독교를 그저 세상의 여러 일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신다면 두 번째일 것이고, 우월한 기독교의 위치에서 이런 저런 세상 일에 대하여 판단하고 잣대를 대고 설명을 하고자 한다면 세 번째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양방을 인정하고 서로의 영향 안에 있음을 인정하되 개인적이고 역설적인 여러분 자신의 삶에 국한한다면 네 번째일 것이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 변혁을 생각을 하신다면 다섯 번째가 될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 그리고 셋째(-->)는 모두 일방적입니다. 첫째와 둘째는 그리스도와 문화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일방적 선택입니다. 첫째가 그리스도를 택했다면 둘째는 문화를 택한 모습입니다. 셋째는 해석자가 언제나 옳으신 하나님이라면 좋은 방법이 되겠지만 허물 많은 인간(해석자)의 삶의 자리를 생각해 본다면… 비록 그리스도 그 자체는 언제나 옳다고 해도 “설명된 그리스도”가 항상 옳을 수 없기에 역시 일방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일방적인 것은 옳지도 선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인간은 “틈(혹은 사이)적 존재”인 까닭입니다.

[리쳐드 니이버는 바울과 어거스틴을 각각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관계에 적합한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인 어거스틴을 문화와 그리스도 간에 이상적인 모델로 삼고 있는 듯 한데...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려는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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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61.73.197.198)
2006-12-13 13:34:09
.......
리처드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라는 책이 생각나서 잠시 적어본다..

그 당시에 95년도 였을게다.. 어떠한 신학적인 내용에도 관심없었던터라. 그저 읽기에 충겪적인 좋은 내용이었다.. 우리가 누려야할 문화.. 어떤 시대를 거스려 올라간다 해도 비판과 거부를 받지 않은적이 없지 않은가. 그 어느시대에도..

본질의 중요성.. 그 본질이 우선임을 고백한다..

건방지고 교만한 모습으로 비춰질지는 모르겠으나.. 눈만뜨면 접하게 되는 소리들 시야에서 놓을 수 없는 것들.. 나라와 취향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지만.. 현대의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누구하나 경각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자는 없으터..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배척하느냐의 것의 문제가 아니라.. 발빠르게 변하여 가는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기적인고 거만함의 자아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를 놓고 탁상공론으로 굶주림의 모습에 외면하는 배부름이 아니라, 이성을 가지고 분명함을 소유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주장하는 것이 너무 확실해서 오히려 상처받는 자가 더 많아진다면..

그 주장을 잠시 거둬들였다가 필요할 때 본인의 의사를 나타냄이 오히려 낫지는 않을지.. 때가 사람을 낫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때를 기다림이 필요하지 않은지.. 휩쓸려 너나할 것없이 흘러가기보다는 분명한 의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급함으로 실수를 범함이 아닌 좀더 신중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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