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
생명 일꾼 탐방, "평화의 영성으로 지역 공동체를 살린다"-금산평화교회 생명 일꾼 홍대영 목사 이야기
이주현  |  매원교회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2년 05월 12일 (목) 06:20:58
최종편집 : 2022년 05월 18일 (수) 10:39:27 [조회수 : 95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생명 일꾼 탐방

평화의 영성으로 지역 공동체를 살린다
-금산평화교회 생명 일꾼 홍대영 목사 이야기-


이주현 목사(본지 편집위원, 매원교회)

   
▲ 홍대영 목사와 지역아동센터에서 실무책임을 맡고 있는 김영순 사모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으로서 공공신학(Public theology)


기독교 2000년 역사 이래 기독교에 대한 세상의 도전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종교다원주의와 후기 세속화의 영향으로 서구 기독교가 양적인 쇠퇴를 거듭한 지는 꽤 오래다. 뒤늦게 복음이 전파된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세계 그 어디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양적 성장을 이루며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1990년대를 정점으로 교인 수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급격한 사회 환경의 변화라는 구조적인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 저하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농촌 인구 감소라는 또 다른 딜레마 속에서 농어촌 교회의 현실은 출구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교회의 내외적 환경에 맞춰 교회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이 생겨나고 새로운 선교전략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로 불리는 새로운 교회 운동과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새로운 신학적 주제이다. 급격한 변혁의 시대 속에서 교회와 신학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며 생겨난 신학 조류인 셈이다. 복음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면서 동시대적 사명을 수행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흐름이 생긴 것이다.

이러한 이머징 처치와 선교적 교회라는 교회와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공공신학(Public theology)라는 새로운 신학적인 영역으로 모아졌다. 공공신학은 지난 1960년대를 기점으로 서구 기독교 사회를 강타한 자유주의 물결로 인하여 태동하였다(William Storrar). 자유주의 물결은 사회를 종교로부터 급격하게 독립시켰고, 일상에서의 삶이 종교보다는 과학이나 사회참여, 경제적인 주장과 원리들로 짜여지기 시작하면서 종교는 개인적인 일에만 관심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신앙의 사사화(Privatization”가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사사화를 극복하고 공공의 영역에서의 영향력 확대의 필요성과 실천적 대안을 위한 신학적 토대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공공신학”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공신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2008년 2월, “공적신학과 교회 연구소”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기독교 교회와 신학의 주변화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서 신앙의 사사화를 지양하고 공적인 영역에서의 영향력 발휘를 위한 연구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연구 활동은 이미 공공신학의 바탕에서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던 기존의 활동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조명이 이뤄지게 되었고 사회의 공적 영역에 대한 교회의 참여 확대와 지원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향후 기독교와 교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선교전략으로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교회 개척에 앞서 개소한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와 개소식 모습
   
▲ 교회 개척에 앞서 개소한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와 개소식 모습
   
▲ 교회 개척에 앞서 개소한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와 개소식 모습
   
▲ 교회 개척에 앞서 개소한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와 개소식 모습


지역의 공적 영역에서 시작한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


그렇게 신앙의 사사화를 지양하며 교회와 신앙의 공적 영향력 확대라는 시대의 흐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전제가 따라야 한다. 첫 번째는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교회로서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역 주민들과의 깊은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신뢰, 즉 공신력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인 셈이다. 

 

   
▲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 야외 할동
   
▲ 센터에서는 각종 악기를 배우고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필자가 지난 4월 11일에 찾은 금산평화교회(금산군 복수면 수영리 365-1)가 바로 그런 교회이다. 금산평화교회(홍대영 목사, 54)는 2010년 4월 27일 창립된 교회이다. 금산평화교회는 교회보다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2009년 12월 12일)로 먼저 시작되었다.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피면서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인구 3천여 명의 복수면은 두 개의 초등학교가 있다. 전교생이 30여 명 남짓 되는 지역에 지역 아동들의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시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을 간파하고 복수면 주민자치센터 근처 노인회관 2층(복수면 곡남리 461번지)을 빌려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를 먼저 개소한 것이다. 

지역주민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피면서 소통했던 홍 목사의 접근 방식은 적중하였다. 개원 하루 만에 정원(30명)이 채워졌다. 지역에서의 호응을 기반으로 하여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간 결과이다. 지역의 “사람연대”라는 단체의 후원으로 리모델링도 이루어졌고 지역주민들 100여 명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개소식을 치렀다. 복수면에 초등학교 학생 규모의 교육 기관이 생긴 것이다. 금산지역아동센터는 “모든 아이가 행복한 세상”이라는 주제로 아동 참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아동들의 의견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기본적인 교육 철학하에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육, 행복을 나누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그리하여 평화와 공동체, 생태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각종 현장 탐방이나 실습을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홍 목사는 그러한 지역아동센터의 건립 후, 교회 설립을 이어갔다. 기존의 교회 건물을 구입하여 교회를 창립하였지만, 규정상   종교시설에는 지역아동센터가 설립될 수 없어 부득불 새로운 건   물을 신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7년 전, 현재의 교회 건물을 지   어 지역아동센터를 3년여 만에 새 건물로 이사하였다. 3층 건물   에 1층은 교회 2층은 지역아동센터로 분리하여 운영 중이다. 30   여 명의 학생과 센터장을 비롯하여 총 여섯 분의 교사가 수고하   고 있다. 지역아동센터가 차지하는 지역에서의 역할과 비중은 익   히 널리 알려진 바 대로다. 지역아동센터 아동들로 구성된 아름   나라 합창단은 지난 2014년 7월 1일, 안희정 충남도지사 취임식   에 초대되어 축하공연을 펼치기도 하였다.
그러한 홍 목사의 활동은 지역에서 대표적인 문화 복지 활동가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금산지역아동센터 협의회 회장을 2015년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 역임하고 있으며 금산군 마을 만들기 운영위원, 금산군 복수면 지역사회보장복지협의체 운영위원(2018~ ) 활동을 겸하고 있다. 또한 6년 전에는 금산의 이름난 인삼을 주원료로 하는 마을 기업 “홍삼카페 아띠 스칼렛”을 설립하여 지역 일자리와 수익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2018년, 금산군 복수면 기초생활거점사업 주민위원장으로 활동 중인데, 2030년까지 주민위원장으로 내정되어있는 이력이 좀 특이하게 와닿는다. 

 

   
▲ 금산평화교회(1층)와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2층
   
▲ 마을기업으로 운영되는 홍삼카페 아띠 스칼렛

현재 복수면 곡남리 일대에 40억여 원의 대형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지원사업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의 명칭은 “복수면 행복문화센터 및 행복문화광장 조성”사업이다. 농촌의 생활 기반확충을 위해 진행 중인 이 사업은 부지 3,266㎡, 연면적 685㎡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곳 시설을 활용하여 각종 문화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며, 지역의 다각적인 발전과 지속 가능한 지역으로의 발판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복수면 문화복지 시설의 핵심 거점이 될 이곳에 주민위원장으로 홍 목사가 2030년까지 내정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복수면의 모든 복지 문화프로그램의 총괄 기획과 실무,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뜻이다. 홍 목사는 금산평화교회 담임목사지만, 그의 목회 영역은 행복소통 거점지를 통해 사실상 복수면과 금산군을 아우르고 있다. 

 

   
▲ 현재 공사 중인 복수면 기초생활거점 센터 조감도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식견은 담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세상에 공적인 영역까지 확대되어 공공선을 확장하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공공신학의 핵심을 홍 목사는 그의 목회 영역에서 철저하게 적용하고 실천하고 있다. 

 

평화의 영성, 헤시카즘(Hesychasm)으로 다져진 사역 


홍 목사의 목회는 공공신학에 바탕을 둔 사역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의 공공신학적 사역은 철저하게 평화의 영성에 기반하고 있다. 좋은 정책과 프로그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책과 프로그램 속에 담긴 철학과 리더의 성품이다. 그런 면에서 공공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목회자에게 있어 요구되는 것은 좋은 정책과 프로그램보다 그의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홍 목사의 영적 스승, 故박효섭 목사
   
▲ 홍 목사가 개척한 지리산 평화교회(2001)


홍 목사가 지닌 영성은 지역아동센터와 교회 이름에서 볼 수 있듯, 평화의 영성이다. 홍 목사가 지닌 평화의 영성은 4세기 이후 동방 기독교, 특히 수도적 단체 안에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느님을 명상을 통해 추구하는 “거룩한 고요함”(Hesychasm)을 의미한다. 그 “거룩한 고요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최고의 영성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여,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루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홍 목사는 그 단계를 “평화”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셈이다. 이러한 홍 목사의 평화의 영성은 기독교 영성의 뿌리에 대한 남다른 탐구와 수련을 해오신 고 박효섭 목사님(1942~2019)과의 만남을 통해 접하게 된다. 고 박효섭 목사님께서는 평생 동방 교회 영성을 탐구하시고 수련해 오신 분으로 한국 내 동방 교회 영성을 수련하는 카리스마타 수도원을 설립하신 분이시다.

그런 헤시카즘, 평화의 영성에 마음이 끌린 것은 홍 목사가 걸어왔던 삶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문학소녀였던 고모와 신심이 남달랐던 막내 삼촌의 영향으로 교회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홍 목사는 장래 꿈이 교사였다. 그리하여 교원대학을 목표로 준비하던 중, 목회자로 진로가 바뀐 것은 고2 때, 구장회 목사님(현, 내덕성결교회 원로)의 가르침이 그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목원대학교(86학번) 신학과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학대학에서 홍 목사의 신학 수업은 순탄치 않았다. 1986년은 대한민국 어느 대학이나 마찬가지로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 운동의 열기로 뜨거웠다. 자연스레 학교 내 동아리였던 빈민선교회 활동을 하면서 시대 정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각종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광주의 진실을 접하면서 타올랐던 분노는 갈릴리 예수가 그러했듯, 정의와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나타났다. 이후 학생 운동을 통해 시국 활동에 깊이 개입하면서 도피 생활과 강제 입대라는 어려움도 겪었다.

제대 후 복학한 홍 목사는 진정한 인간 해방에 대하여 깊이 고뇌하며 역사신학과 구원론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당시 동방 교회 영성에 깊이 몰두하시면서 가르치시던 부산 괴정 교회 박효섭 목사님을 만난 것이다. 그러면서 나온 석사 학위 논문이 “동방정교회 신화 사상과 존 웨슬리 완전 교리 비교”이다. 왜곡된 현실 앞에서 도피하지 않고 치열한 성찰과 고뇌로 마주했던 한 신학도의 삶의 결실이자 결론인 셈이다. 

이후, 홍 목사는 선배였던 남재영 목사의 소개로 마산 빈들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하였고, 당시 감리교회가 없었던 하동군 옥종면에 김홍선 목사(현, 안산 명성교회 담임)의 도움으로 지리산평화교회를 개척(2001년)하고 그곳에서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 공동대표(2006)를 역임하며 평화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지리산 평화 공부방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지리산 평화 아름나라 예술단”을 결성하여 지역에서 환경과 평화라는 주제로 노래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지리산 지역에서 600여 명이 모여 평화를 노래하는 산중 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여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대전 빈들교회에서 잠시 사역하다, 지금 자리하고 있는 금산군 복수면에 터를 잡고 설립한 금산평화지역아동센터와 금산평화교회에서 볼 수 있듯이 홍 목사의 목회 영역에는 헤시카즘, 거룩한 평화의 영성 흔적이 담겨있다. 교사의 꿈을 키우던 홍 목사가 평화의 왕 예수를 만나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헤시카즘, 평화의 영성으로 지역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생명, 평화 일꾼으로 거듭난 것이다.

 

   
▲ 유등천변서 바라본 금산평화교회와 평화로운 마을(수영리) 모습
   
 


금산(錦山)은 네 개의 광역 지자체를 접하고 있는 내륙 지역으로 인삼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인삼의 역사가 1500 여 년이나 되는 고려인삼의 종주지로서 기후, 토양, 일교차 등 인삼재배를 위한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인삼 생산의 감소와 함께 금산군의 인구도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다. 1974년 12만 5,607명의 인구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여 2022년 현재 50,290명의 인구수로 보아 전입 인구보다 전출인구가 많은 인구감소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금산에 홍 목사의 평화의 영성에 기반한 지역 공동체를 위한 소박한 실험들과 노력이 어떤 결실을 보게 될지 기대가 된다. 
금산평화교회 앞에는 유등천이 흐른다. 진산면 월봉산(542.4m)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흘러 복수면을 지나 대전 시내를 가로질러 금강과 합류한다. 그 유등천변에는 버드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참으로 여유롭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반사하는 유등천은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 없었다. 그렇게 복수면에서 발원한 평화의 영성이 삭막한 도심을 평화로 적시는 꿈을 꿔본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드는 곳마다 모든 생명이 살아났다는 에스겔 예언자의 환상(겔47:1-12)처럼 말이다.

 

 

[관련기사]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