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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The Visual Bible: The Gospel of John, 2003)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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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5월 10일 (화) 00:27:49
최종편집 : 2022년 05월 10일 (화) 00:32:41 [조회수 : 4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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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요한복음》 (The Visual Bible: The Gospel of John, 2003)

필립 사빌(Philip Saville)의 영화 《요한복음》은 파솔리니의 《마태복음》과 비슷한 시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영화 모두 하나의 복음서를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빌 역시 파솔리니처럼 네 개의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든 일화들을 나열하고 수정하고 재배치하여 예수님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기보다, 하나의 복음서를 중심으로 그 관점에 따라 예수님의 생애를 추적하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형식은 비슷해 보이나 사빌은 파솔리니와 완전히 다른 방향의 길을 걷는다. 파솔리니가 마태복음의 관점에 집중하여 영화를 만들어냈다면 사빌은 요한복음 자체에 관심을 집중하여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빌은 파솔리니보다 훨씬 더 철저하고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이 작업을 수행한다.

마태복음만을 토대로 그 안에 나타난 저항자요 선지자였던 예수의 모습을 드러내고 강조했던 파솔리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빌은 요한복음에 들어있는 단 하나의 단어도 버리지 않은 채, 그리고 어떠한 변경도 허락하지 않은 채 요한복음 전체를 그대로 영상화한다. 파솔리니는 해석하지만 사빌은 재현한다. 그것도 완벽하게 그렇게 한다. 그러니 3시간에 육박하는 영화의 상영 시간은 당연하다. 사빌의 《요한복음》은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내레이션까지 재현한 철저한 성경 읽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15년 안에 성경 66권 전체를 영화화하겠다는 일명 ‘비주얼 바이블’(The Visual Bible)이라 불린 프로젝트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이 프로젝트 아래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 이어 5년 만에 세 번째로 등장한 요한복음은 시리즈의 이름답게 그 정체가 비주얼 성경이다. 따라서 눈을 감고 영화의 소리만 들으면 영화 《요한복음》은 내레이터와 등장인물들이 번갈아가며 요한복음 전체를 읽어주는 오디오성경이 된다. 요한복음에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지 않은 영화, 기이한 집착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 시도가 어색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고증을 위한 전문가들의 노력과 2,000명 넘게 동원한 장대한 스케일, 훌륭한 음악과 연출, 그리고 중심 연기자들의 탁월한 연기 덕분이다.

물론 그것이 어떤 책이든 하나의 책을 영상화하는 데 있어 완벽한 재현이란 불가능하다. 매체가 전환되는 순간 모든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해석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사빌이 과연 자신의 영화를 요한복음의 의도와 신학에 잘 맞게 해석했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성서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 요한복음의 전체 텍스트를 영상화한 이 대담한 시도는 요한복음만의 예수님을 똑바로 대면하게 해 준다는 결정적인 덕목을 지닌다. 다른 복음서와는 큰 차이를 보이는 요한복음만의 묘사를 찾아내려면 이 영화의 장면을 떠올려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예수님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신다. 구레네 시몬은 요한복음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을 다른 복음서들과 다르게 유월절 하루 전날로 소개한다. 따라서 유월절 음식을 최후의 만찬으로 드시며 예수께서 행하셨던 성만찬의 제정도 요한복음에는 없다. 오히려 요한복음에서 성만찬은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함께 언급되며 돌아가시기 전 날 식탁에서는 세족식만 거행될 뿐이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공관복음서와 달리 유월절이 아닌 유월절 전날에, 정확하게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 양을 잡는 시간에 숨을 거두신다.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즉 유월절 어린 양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는 모두 네 개의 복음서가 있고, 이 복음서들은 각각 각자가 강조하고 싶은 예수님의 삶과 구원의 의미를 전한다. 즉, 우리 앞에 놓인 복음서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다양하고도 다른 ‘봄’인 것이다. 다름은 이해의 풍성함을 선사하고, 다양한 ‘봄’은 다양한 신앙의 관점 역시 허락해준다. 사빌의 《요한복음》은 복음서들의 이 생생한 차이와 의미를 음미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좋은 길잡이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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