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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통탄할 일햇볕같은이야기
최용우  |  9191a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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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5월 08일 (일) 22:08:38
최종편집 : 2022년 05월 08일 (일) 22:11:25 [조회수 :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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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 사진:최용우

7220.신비로운 자연계

저는 어제 병원에서 심장초음파검사를 받았는데, 제 눈으로 본 제 심장의 파동이 정말 신비로웠습니다. 비록 기계를 통해 모니터에 나타나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벌컥 벌컥 하면서 피를 순환시키는 심장 펌프의 모습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심장이 1분에 60번에서 100번 사이에서 뛰는 일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평생 반복합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기계가 이 정도로 정밀하게 오랫동안 작동될 수 있을까요? 
인간이 만든 최첨단 반도체는 그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정밀하지만, 한번 고장이 나면 고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든 심장은 약간씩 고장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되기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자기도 모르게 오류가 났다가도 자동으로 복구되기를 반복합니다. 그것은 ‘면역력’이라고도 하고 ‘회복력’이라고도 합니다. 젊고 어릴수록 그 매커니즘(mechanism)이 더 잘 작동하겠죠? 
성경은 이렇게 인간이나 자연계에 나타나는 신비한 현상을 ‘하나님의 신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1:20) 그러므로 하나님을 보려면 ‘산신령처럼 하얀 수염을 휘날리는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든 자연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거기에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계를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어머어마하고 광대하고 깊고 오묘해서 인간의 ‘아는 지식’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을 아는 것일까요? ‘모르겠다’는 것만 아는 것 같습니다. 

   
▲ 사진:최용우

 7221.더 신비로운 영계(靈界)
 
제가 중학생일 때 친구들과 함께 장성호로 낚시를 하러 갔습니다. 산을 넘어가서 텐트를 치고 1박 2일씩 놀다오곤 했습니다. 저는 댐의 이쪽과 저쪽을 갔다왔다 할 정도로 수영을 잘했습니다. 더우면 물속에 풍덩 들어가서 수영을 하며 놀았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내 몸은 물속에서 허부적 거렸습니다. 친구들은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막 웃었습니다. 공중에서 그 모습을 내가 보고 있었습니다. 얼른 물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새 물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영과 육이 분리되는 신비한 경험을 한 것이죠.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싶어 어느 수도원에서 ‘관상기도’를 배웠습니다. 관상기도를 하면서 너무도 쉽게 나의 의식을 덮고 있던 무지의 구름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조명이 찬란하게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평소에 영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인지 하나님께서 금방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공간인 ‘심장’에 대한 비밀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너무 신비로워서 ‘이것을 글로 써서 책으로 만들어야지’하고 생각했습니다. <안으로의 여행>이라는 책 제목까지 정했습니다.
3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졌는데 육은 ‘수명’이 있지만 ‘영’은 수명이 없습니다. 그 영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영이 강하다 약하다, 영이 두껍다 얇다, 영이 열렸다 닫혔다, 영이 깨었다 잠들었다, 영이 어리다 장성했다 등등....모두 맞는 표현입니다.
육의 세계는 한계가 있지만 영의 세계는 한계가 없습니다. 성경은 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것을 ‘육으로’ 풀면 전혀 그 의미가 달라지고 말지요. 

   
▲ 감자꽃사진:최용우

7222.혼란스러운 혼계(混界)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뭔가 섬짓한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놀이공원 ‘유령의 집’ 같은 곳은 항상 어둑컴컴합니다. 저는 그 안에 있는 것들이 가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별 망설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속도로 쭉 걸어 나와 버립니다. 뭔가 막 놀라고 소리 지르고 해야 재미가 있을텐데, 아마도 안에 있는 귀신(?)들도 저를 보면 어이가 없을 겁니다. 
우리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빈공간에도 공기와 빛과 미생물들과 그리고 갖가지 파동과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는 ‘영’입니다. 영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계와 겹쳐져서 존재합니다. 빈공간에 공기가 있다는 것을 나뭇잎이 흔들리고 바람이 부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영’의 존재는 ‘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영이 예민하고 얇은 사람은 아주 쉽게 ‘영’을 느낍니다. 그래서 ‘놀이공원 유령의 집’ 같은 ‘악한 영’이 좋아하는 공간에 가면 벌벌 떨면서 무서워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기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록 인간들이 만든 귀신 인형이나, 귀신 흉내나, 귀신 장치이지만, 실제로 그런 곳에 귀신의 영이 붙어서 ‘무서움,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하나님과 그 속에 속한 빛의 영들과, 사단과 그들에게 속한 어둠의 영들이 나를 점령하려고 치열한 싸움을 하는 혼계(混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마음을 열어주느냐에 따라 내 마음에 ‘악한 영’이 들어오기도 하고 ‘성령’님이 들어 오시기도 합니다.

   
▲ 사진:최용우

7223.참으로 통탄할 일

무당들에게 ‘계룡산’은 신내림(?)이 잘 되는 우리나라 3대 영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온갖 잡신들이 다 모여있는 곳이었는데, 머리카락이 없었던 아무개 대통령이 ‘자연보호’한다면서 다 밀어버렸죠. 그렇게 외곽으로 밀려난 무당들이 집단으로 모여있는 곳 근처 산에 산행을 하다가 무엇엔가 홀려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었습니다. 
어둠의 영을 접하는 ‘영매’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눈빛을 보면 어둠의 형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들은 점치러 오는 사람들의 영혼을 제압하여 도적질 하려고 ‘반말로 명령’하는 말투를 사용합니다. 그들 세계에도 상하위계질서가 딱 정해져 있어 길거리 선무당은 맨 아래 졸개이고, 신내림 받아 굿하는 무당이 있고, 무당 위에 법사가 있고, 법사 위에 장군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 영이 세속에 막혀서 육에 속해 있는 사람은 ‘영적 분별력’이 없어서 자기가 지금 무당의 수하 노릇을 하면서도 그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페이스북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아무개 목사님이 “어쩌려고 목사들이 선무당보다 더 아래에 계급에 붙어서 바알세불의 졸개가 되었는고...”하고 통탄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영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면 안 됩니다. 영도 분별을 못하면서 무슨 영적 지도자입니까? 그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 사진:최용우

7224.거짓 예언자들

미가야(micaiah)선지자는 아합왕이 길르앗을 탈환하기 위해 여호사밧과 연합군을 결성해 출정하기 전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때, 아합에게 아부하던 400명의 예언자가 승리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이스라엘 군대가 목자 없는 양 떼처럼 패할 것이고 그 전쟁에서 아합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왕상22:15-17,28) 또한 “누가 아합을 꾀어내어서 그로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죽게 하겠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한 영이 말하기를 “제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의 모든 예언자들의 입에 들어가 그들이 모두 거짓말을 하도록 시키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예언을 했습니다.(왕상22:20-23). 이로 인해 거짓 예언자인 시드기야로부터 뺨을 맞았으며, 결국 투옥되었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왕상22:24-27). 그러나 미가야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왕상22장, 대하18:4-27)
어느 시대나 예언자는 난무하였는데 ‘시대의 영’의 미혹에 빠진 거짓 예언자가 400배나 많을 정도로 영의 세계는 혼미합니다. 이 시대의 영은 ‘자본주의’의 탈을 쓴 ‘맘몬(mammon)’입니다. 이 시대에도 참 예언자의 숫자는 매우 적으며, 대부분은 맘몬을 따라다니는 기회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저에게 “그럼, 너는 참 선지자냐?”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들 수법은 항상 상대방을 물고 넘어지는 물귀신 작전을 쓰거든요.
이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어느 정도 영계에 대해 스스로 배우고 익혀서 분별력을 갖춘 다음 조심스럽게 영을 분별하고 살피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아무나 따라가다가는 함께 지옥으로 갑니다.

   
▲ 작약사진:최용우

7225.왜 그럴까?

종교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 조사(국민일보 2022.4.27.)에서 각 종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톨릭-진정성 있는, 도덕적인, 헌신적인, 희생적인, 공감하는
불교-포용적인, 상생하는, 엄숙함, 경건함,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기독교-배타적인, 세속적인, 물질적인, 위선적인, 이기적인
이 정도면 기독교는 이미 종교로서의 기능은 사라졌다고 봅니다.
종교 지도자가 되려면 ‘수도’가 기본인데, 전혀 ‘수도’가 안된 사람들, 일반 상식적인 수준의 ‘윤리의식’도 없는 사람들이 ‘말빨’로 지도자가 되면 이런 참사가 벌어집니다. 우리나라에 ‘유사 기독교’에 빠진 사람들이 20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교회가 얼마나 ‘영적인 지식과 분별력’이 없는 껍데기인지를 보여줍니다. 교인들이 아주 조금만 영이 열려도 이단 사상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교회가 영적인 세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과 이해력과 그리고 지도자들이 수양, 수도가 거의 안 되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얼마나 한심한지 각 교회마다 입구에 <신O지 출입금지-법적 대응 어쩌고 저쩌고...>를 붙여놓고 처음 온 사람 혹시 신O지 아닌가 도끼눈 뜨고 의심의 눈초리로 봅니다. 그까짓 것 몇 가지만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지는 허깨비 논리 하나 대응을 못해서 교회 문을 걸어 잠그다니... 정말 한심합니다.
신앙은 성령에 이끌리어 영안이 열리고 영의 역사를 경험하고 영의 빛과 생명으로 생동감이 넘쳐야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지리하게 반복되는 인간적이고 육적인 설교에서 영적 만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영이 메마릅니다. 그러다 보니 이단이지만 영의 기운이 감도는 곳에 미혹되고 빠져드는 것입니다. ⓒ최용우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https//cyw.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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