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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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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5월 07일 (토) 03:03:41 [조회수 : 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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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교우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저는 지금 뉴저지의 테너플라이(Tenafly)라는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버지니아 일정을 마치고 지난 목요일 이곳에 왔습니다. 와싱톤 사귐의 교회에서 있었던 사흘간의 집회 내내 좋은 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인들의 따뜻한 환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주셔서 고마웠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교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자수성가한 어느 교인은 자기 집 인근의 숲(자기 땅)을 잘 가꾸고 산책로(1.5마일)를 만들어놓고 지인들을 초대하곤 했습니다. 저도 그 집에 가서 그 트레일을 걸었습니다. 그 광활함과 아름다움이 조금은, 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 부러웠습니다.

25-26일 양일간 버지니아 연회에 속한 한인 목회자들 모임에서 설교와 강의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미국인 교회를 섬기는 분들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소 부족한 영어, 미국 교회의 오랜 전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빚어지는 갈등,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연 중에 배어나오는 인종차별적 눈빛에 상처를 입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번 모임은 그렇게 개별화된 이들이 깊은 복음적 연대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기회였습니다. ‘연결’이야말로 외로움의 해독제가 아닐까요?

버지니아에 머무는 동안 필라델피아 빈민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태후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유튜브에서 ‘필라델피아 빈민가의 기적 이태후 목사’를 찾아보면 그분의 사역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목사님과는 오래 전부터 교류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는 그곳에서 그는 약과 술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의 벗이 되어 살고 있고, 아무런 꿈도 없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좋은 목자입니다. 제가 낼 수 있는 시간이 겨우 1시간 20분밖에 안 됐는데도 이 목사님은 3시간 동안 차를 몰아 찾아온 것입니다. 둘 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근처의 한적한 공원 길을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헤어지면서 이렇게 먼 거리를 달려와 주어 고맙다고 하자 이 목사님은 웃으면서 팬데믹이 준 교훈을 따르는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만나라”가 그것입니다. 우정은 그런 정성을 통해 빚어지는 것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작지만 단단하고, 그러면서도 유연하고 유쾌한 이태후 목사님은 예수적 삶에 가장 근접한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버지니아에서 제게 허락된 단 하루의 자유로운 시간에 저는 김영봉 목사님의 안내로 아팔라치아 산맥 트레일이 지나가는 새난도(Shenandoh) 국립공원을 찾았습니다. 오고가는 길의 경관이 정말 아름다워서 눈을 떼기 어려웠습니다. 차에서 내려 2시간 정도 산길을 걸어 어느 봉우리에 올라가니 광활한 자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동서로 쭉 뻗은 협곡은 빙하가 지나간 자리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빙하가 지나가는 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듯했습니다. 그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난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절로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라는 시의 마지막 연에서 자탄조로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정말 얼마큼 작으냐…”라고 노래했습니다. 시의 맥락과는 다르지만 정말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높은 곳에 오르면 혹은 광활함 앞에 서면 사람은 비로소 자기의 작음을 실감합니다. 고기잡이 기적 이후 예수님의 발치에 엎드려 “주님, 나에게서 떠나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눅 5:8)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의 마음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뉴저지에 와서 만난 ‘은혜와 사랑교회’ 목사님들은 배려가 몸에 밴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환대라는 가치를 체현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겸손하고 따뜻한 성품의 담임 목사님은 아주 절제된 태도로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30대 중반의 부교역자 내외와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잠깐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다른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두 군데서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고 두 곳 모두 면접을 보았다고 합니다. 은혜와 사랑교회 예배에 참여하고 면담을 한 후 그는 ‘여기는 누가 와도 잘 적응하며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한 곳은 교인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서인지 냉랭하기 이를 데 없었고, 교회학교도 거의 무너져 있더랍니다. 그 목사님이 선택한 곳은 뜻밖에도 그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다면 그곳에 가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그 교회에서 일했지만 결국은 탈진하고 말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두루 아파 그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사랑과 은혜교회가 다시 초청해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아주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연하게나마 이민자로 사는 이들의 신산스러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삶의 가장 어려운 시간, 가장 절실했던 순간에 자기를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어쩌면 하나님의 큰 구원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려움을 겪으면서 영혼이 정화되어 아름다운 존재의 빛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겸손함과 천진함이 그들의 태도와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저는 여기서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우리 교우들 가운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가족들이 있어 마음이 아픕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 곁에 머물며 함께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럽습니다. 장례의 일정에 따라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그 가족들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교회 설립 기념일과 어버이 주일, 스승의 날 등이 연이어 맞으며 우리 삶이 누군가의 수고와 사랑 덕분임을 자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영혼의 성숙이란 삶이 사랑의 빚임을 자각하는 것이고, 그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려 할 때 비로소 생명과 평화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잠시 떠나 있다 보니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이 더욱 그립습니다. 그 그리움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합니다. 내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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