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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우리말이 아니다.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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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5월 03일 (화) 22:52:39 [조회수 : 2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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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끔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과거 “짝”이라는 커플 매칭 프로그램의 요즘 버전인 “나는 솔로”라는 방송이다. 미혼의 남성과 여성들이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짠하면서도 참 재미있다. 개인적으로는 방송을 볼 때마다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저 프로그램에 출연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키, 외모, 능력, 직업, 재력 등 나름 여러 가지 조건들이 갖춰져야 할 텐데 젊은 시절의 나를 생각해보니 신청을 해도 심사 중에 탈락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방송에 출연하게 되더라도 짝으로 매칭될 가능성은 더 적어보였다. 그래서 이런 나를 선택해준 아내가 정말 고마워진다. 

최근 보았던 ‘나는 솔로’ 방송에서 참 인상적인 여성이 있었다. 끝까지 남성에게 선택을 받진 못했지만 특유의 긍정 에너지와 유쾌함으로 기분을 좋게 해 주었던 ‘현숙’이란 예명의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자신을 소개할 때 고구마를 좋아하는 여성으로 소개했다. 고구마를 너무 좋아해서 한참 먹을 때는 일주일에 10kg의 고구마를 먹었고 3년 전부터는 오로지 자신이 먹을 목적으로 직접 고구마 밭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심지어는 본인의 첫인상 선택에서도 따끈따끈한 군고구마를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주면서 마음을 표현했다. 끝까지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그녀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고구마를 쪄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볼 때는 내 마음이 속상해졌다. 그녀 덕분에 오늘은 고구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고구마가 우리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말 사투리이다. 남미가 원산지인 고구마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해질 때 함께 들어온 외래어이다.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조선 영조 때인 1763년이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조엄(趙曮)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져와 재배하면서 퍼졌다. 조엄이 조선통신사를 이끌고 일본으로 가던 중 첫 기항지인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목격하고 흉년으로 인해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고구마와 함께 재배법과 보관법을 들여오게 되었다.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처음 본 조엄은 그의 기행문 해사일기(海槎日記)라는 책에서 고구마에 대해 설명하기를 생김새가 마의 뿌리 같기도 하고 무 뿌리와도 닮았으며 토란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오이와 비슷하다고도 했다. 이름은 달콤한 마 혹은 토란이라는 뜻에서 감저(甘藷)라고도 하며 효자마(孝子痲)라고도 하는데 왜의 발음으로는 고귀위마(高貴爲麻)라고 한다고 적어놓았다. 효자마의 일본어 발음인 고우시마(こうしま)를 한자로 고귀위마라고 표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고구마라는 우리말은 대마도 사람들이 감저라는 식물의 별칭으로 불렀던 효자마 즉 고우시마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효자마는 ‘효자가 심은 마 혹은 토란’이란 뜻인데 대마도에 가뭄이 들었을 때 어느 효자가 고구마를 심어 늙은 부모를 봉양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조엄이 고구마 종자를 전하면서 일본 본토에서 부르는 표준어가 아닌 대마도에서 쓰이는 용어를 적은 것이니 고구마라는 우리말은 일본 대마도의 사투리에서 비롯된 외래어인 것이다.

역사기록을 보면 고구마를 처음 우리나라에 들여온 사람은 조엄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으로 고구마라는 작물을 처음 본 사람은 김려휘라는 인물이다. 그가 지금의 오키나와 섬인 유구국에 표류한 때인 서기 1663년에 고구마를 처음 보았다는 기록이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기록되었다. 조엄이 고구마를 들여왔을 때보다 100년을 앞서 고구마를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만 1763년에 고구마가 들어왔지만 중국은 고구마가 1593년 필리핀을 거쳐 지금의 복건성에 전해졌다. 일본 역시 1597년 중국 혹은 동남아를 거쳐 고구마가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뒤늦게 우리나라에 고구마 종자가 들어왔을 때는 사람들이 앞다퉈 심어서 생활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낯선 외래작물이라 탐관오리의 수탈이 심해져 농민들이 고구마 농사를 안짓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이어트 웰빙식품으로 인기있는 고구마이지만 250여년전 도입 초기에는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이다. 

늘 글을 마칠 때쯤엔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고구마는 호박고구마이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현숙이란 여성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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