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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파종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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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4월 21일 (목) 00:17:35 [조회수 : 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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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볍씨를 소독한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소독한 볍씨는 따뜻한 공간에서 일주일동안 식촛물에 아침저녁으로 목욕재계를 했다. 낮에는 따뜻하게 올라오는 식촛물에 몸을 푹 담그고, 밤에는 달빛과 어둠 아래 숙면을 취하며 몸이 부르트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요즘 날씨는 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더웠기 때문에 이틀 사이에 벌써 볍씨에 하얀 촉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딱 파종을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누차 말했지만 때를 놓치면 안되는 것이 농사다. 볍씨의 부활을 맞으려면 지금 하는 것이 좋다. 볍씨가 더 부르트기 전에 상토 속으로 몸을 숨겨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볍씨가 녹아내리든지 아니면 썩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이 된 지난 월요일에 파종을 했다. 

언거푸 얘기한 것이지만, 농사를 짓는 공동체의 수가 점차 줄어들면서 볍씨 파종도 어려움이 있다고 여겼다. 작년엔 소속교회 목사님 자녀 세 명이 아버지의 어르고 달래는 말에 함께 하여 큰 힘을 보태주었다. 또 학교를 가지 않은 토요일이어서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평일인 월요일이어서 인원 동원이 어려웠다. 참석할 머릿수를 세어보니 세 명 정도 될까?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나, 세 명이 발바닥에 불나도록 움직여야 할 판이었다. 간절함이 컸던걸까? 도움의 손길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파종에 쓰일 상토를 가지러 가다가 목사님으로부터 파종할 때에 농사를 함께 짓지 않는 집사님이 와서 도와준다는 희소식이었다. 목수일을 하는 집사는 손이 꼼꼼하고 세밀하여 일감을 맡긴 사람들은 모두 좋아하는 교우였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두둥둥! 파종 날이다.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집사님 그리고 윗집에 계신 훈련원 원장님의 아내되신 사모님 그리고 나, 모두 다섯 명이 모였다. 그래도 모두 농사에 베테랑 선수들이다. 근 30년 혹은 20년 넘게 해왔던 논농사라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분들이었다. 어찌보면 용병부대보다 정예부대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숫자는 적었지만 일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 없이 척척 진행되었다. 나와 교회 사모님은 모판에 상토를 담는 작업을 맡았고, 집사님은 상토를 담은 모판에 볍씨를 뿌리는 역할을, 목사님은 뿌려진 볍씨 위에 상토를 체에 거르는 작업을 맡으셨다. 그리고 윗집의 사모님은 모판을 쌓고 그 위에 조리로 물을 뿌리는 작업을 하셨다. 분업화가 아주 잘 된 경우였고, 협력이 매우 아름다웠던 모습이었다. 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옛날 이야기다. 상토로 볍씨 파종을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도 안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산에 가서 모래흙을 담아다가 체에 걸러 고운 모래를 얻어 하였다고 한다. 무게가 가벼운 상토에 비해 가뜩이나 무거웠던 모래는 물을 뿌리는 순간 물 먹은 솜보다 더 무거워서 꽤나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볍씨 파종은 껌이나 다름없다며 웃기도 했다. 

그렇게 하하호호 하며 일을 하는 사이 모판 120판 작업을 마쳤다. 9시에 시작하여 11시에 마쳤다. 2시간이면 정말 초스피드로 마친 셈이다. 몇 년 전만 해도 250판 정도 했었다. 거기엔 백미도 있었고 흑미도 있었다. 모판을 옮기는 중에 잘못 섞이는 날엔 그해 벼농사는 망칠 수 있기에 모판을 쌓고 옮기는 중에는 정신집중을 해야 했다. 망한(?) 일이 한 번 있었다. 배달 사고였다. 분명 백미라고 알려줬는데 나중에 보니 흑미였다. 그해는 수확도 어려웠고 그것을 탈곡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흑미 파종은 멈췄고 백미 파종만 하기 시작했다. 또 지역마다 수익이 낮아 유색미 정미소가 없어지는 이유도 한몫했다. 한 종류만 하여 편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구수한 흑미를 먹지 못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도 컸다. 지금도 사정만 괜찮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 흑미 파종이다. 아니, 소농으로서 적은 양을 털어줄 수 있는 정미소만 확보할 수 있다면 흑미만이 아니라 다양한 유색 볍씨 종자도 보급하고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여하튼 올해의 볍씨 파종도 정예부대의 활약으로 어렵지 않게 잘 마쳤다. 이제 일주일 동안 볍씨가 발아되어 싹이 트는 것을 기다린다. 상토를 뚫고 올라오는 노오란 싹을 보게 되면 그때는 논으로 옮겨 모내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키우면 된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시작을 할 수 있을까 하였는데 이번에도 막상 부딪히고 나니 군소리없이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로 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를 맞으면, 논농사도 이제 5년이면 족할 것이라고. 5년 후를 어찌 장담할 것이고, 사람의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겠지만 그러나 최소한 5년 정도는 즐겁게 웃으며 논농사를 맞이할 수 있겠으니 최면도 나쁘지만은 않은 셈이다. 어느덧 우리는 논으로 갈 준비를 마친 셈이다. 그렇다. 일주일 후면 우리는 논으로 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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