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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  9191a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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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4월 17일 (일) 21:23:24
최종편집 : 2022년 04월 17일 (일) 21:28:11 [조회수 : 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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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 루핀(lupine)사진:최용우

7204. 비밀번호 입력하기 

최근에 세종시에 ‘세종예술의전당’이 개관을 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운동삼아 거기까지 한번 걸어서 가봤습니다. 올해만 36회 공연이 열린다는 각종 깃발들이 퍽럭이고 안에서는 뭔가 하는 모양인지 들석들석 하는데 저는 궁금했지만 입장권이 없기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건물만 한 바퀴 뺑 돌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아무 때나 하나님과의 교류가 쉽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교류도 ‘입장권’이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접속하여 임재 상태가 되면 무궁무진한 세계가 펼쳐지는데,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없으면 접속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임재가 쉽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시도를 해 본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뇌는 슬픔, 분노, 두려움, 수치심, 절망, 혐오감 여섯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데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런 감정들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는 것이 ‘감사’(샬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며 패스워드인 것이죠.
데살로니가전서5장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다른 여섯가지 감정들이 소멸되고 하나님과 교류할 수 있는 임재 상태가 됩니다. 일상 가운데에서 감사를 찾는 연습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감사함으로 교류의 입구를 쉽게 통과합니다. 

   
▲ 사진:최용우

7205.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아내가 떡을 잔뜩 한 다음 나누어줄 사람들을 세면서 작은 상자에 일일이 담습니다. 
“이건 누구 거, 이건 누구 거, 이건 누구 거...” 
“아무개는 안 줘? 가장 먼저 줘야 할 것 같은데.”
“줄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야. 그는 줘도 감사할 줄 모르고, 좋네 나쁘네 하면서 준 사람 기분 나쁘게 하거든.”
사람들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슬픔, 분노, 두려움, 수치심, 절망, 혐오감 여섯가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육부정심(六不淨心)을 없애야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먼저 성령님께 감사의 순간을 떠올려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머리에 떠오르는 어떤 감사의 기억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하나님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적어보세요.(이때 감사노트를 활용하면 좋습니다. 제가 만들어 교회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감사노트’ 파일 https://c11.kr/yw05 ) 노트를 활용해 감사를 기록해보는 것은 ‘감사 기도’를 쉽게 하기 위한 보조 수단입니다.
감사의 제목을 말한 다음에 그것이 왜 감사한지를 말합니다. 감사한 것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떠오르지 않는다고 기도하고 떠오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감사가 육부정심을 밀어내고 우리의 감정이 감사로 가득 찰 때까지 감사를 계속합니다. 감사 찬송을 계속 불러도 됩니다. 

   
▲ 사진:최용우

7206.하나님의 마음 느껴보기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36세때 자식 셋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장애인으로서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곤고하고 폭폭했겠습니까? 그때 저는 국민학생이었는데 잠결에 어머니의 신세 한탄 노래(?)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노래(창)와 기도가 뒤섞인 모노드라마였습니다. 나중에는 얼마나 웃긴지 숨죽이고 웃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예수 서방님, 저 새깽이들 나보고 어떡하라고 내 서방 댈꾸가버렸소오~~ 안 델꾸 갔다구요? 지가 스스로 왔다구요? 어매, 어매 매정한 냥반... 어떻게 그렇게 상의도 안해 보고 그냥 가불었소오오오.” 제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만 어머니는 가끔씩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들은 말씀을 자신의 말로 되뇌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다음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반응을 하시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 보아야 합니다. 가장 먼저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님의 입이 되어서 되뇌어 봅니다. “그래, 그것이 감사했구나. 그렇게 감사를 표현해 주니 내 마음이 참 좋구나....” 
하나님께 드린 감사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반응이라고 느껴지는 생각에 집중을 하다보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어떤 생각들이 막 떠오릅니다. 성경 구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눈물이 흘러 나오기도 합니다. 생각을 제한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겸손한 태도가 아닙니다.
마귀가 엉뚱한 생각으로 방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치고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집중 합니다. 

   
▲ 사진:최용우

7207.선물

저는 지금 수백장의 각종 전도지를 모아놓고 있습니다. 한 장 짜리 쪽음도 있고 책자 형태로 된 전도지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 소중한 전도지이만, 그런데 뭔가 조금씩 부족한 것 같아서 ‘복음’을 충분히 담은 전도지를 만들고 싶어 기도하는 중입니다. 
많은 전도지가 전도지를 받는 대상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제가 대순진X회 라는 곳에서 나누어주는 그들의 전도지(?)를 한번 받은 적이 있는데,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더군요.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쓰는 ‘교회 언어’들로 만들어진 전도지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한 것입니다. 아마도 전도지를 받고 그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전에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 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최소한 내용은 이해할 수 있게 단어를 풀어서 전달해야 하는데 그런 배려가 부족합니다.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너무 공포스럽게 묘사한 전도지가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에 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겁을 주면 도망가버리지 어떻게 믿겠습니까? 지하철에서 무서운 얼굴과 사나운 말투로 지옥의 심판에 대해 전하는 이들은 전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문을 닫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저는 전도지의 제목을 ‘선물’이라고 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우심과, 영광스러움과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주시기까지 한 그 놀라운 사랑을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제가 좋은 전도지를 만들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 사진:최용우

7208.고난주간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는 ‘고난주간’과 ‘부활절’입니다.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이었던 고난 주간에는 예루살렘 입성, 성전 숙청, 감람산 강화, 성만찬 제정,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체포와 심문, 십자가 처형과 장사 등 그야말로 예수 공생애의 절정을 이루는 대사건들이 숨막히게 전개되는 한 주간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한 의로운 인간의 고난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 태초부터 예정되어진 구속(救贖)의 법을 성취하기 위해 조물주가 당하신 전 우주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이 기간에 금식과 특별기도를 했으며, 스스로 난잡한 행동과 현란한 옷차림을 삼가고 경건하게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고난 주간에 특별히 묵상해야 하는 말씀은 이사야53장5절 입니다. 은퇴하신 아무개 목사님은 목회하는 40년 동안 고난주간에는 항상 이사야53장5절 말씀만 가지고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53:5)
왜 이사야53장5절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가 하면 이 말씀을 이루시려고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십자가 사건이 이 말씀으로 우리와 연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고,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살게 되었으며, 우리는 평화를 얻었고, 우리는 질병을 치유받게 되었습니다. 

   
▲ 사진:최용우

7209.부활절

만약에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라는 종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인들은 예수 외에도 많았기 때문에 그냥 평범한 죄수중의 한 사람으로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겠지요.
청년시절, 부활절 아침 학교 운동장에 모여 지역 교회들이 연합예배를 드리는데 하필이면 당일 새벽에 학교측에서 운동장 사용을 못한다는 통보를 해왔습니다. 운영위원들이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구두로 허락을 받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부랴부랴 교장 선생님이 장로님인 다른 학교를 섭외해서 장소를 그쪽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운영위 말단 보조로서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장소가 변경되었습니다. oo국민학교로 가세요. 여기에 예수님은 없습니다!” 하고 학교 정문에 서서 소리치는 일을 담당했던 애피소드가 기억나는 군요.
예수님 곁에는 항상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처형당하셨을 때, 예수님의 장례식 때, 그리고 안식일 다음 날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했습니다. 죽은 예수님의 시체에 염을 하기 위해서였겠죠. 그런데 무덤 입구가 열려 있었고 예수의 시체가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외쳤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은 없습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즈>라는 유명한 뮤지컬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내가 달라졌다, 정말 달라졌다. 요 며칠 사이 내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 같다. 내가 달라졌다, 맞다. 내 자신을 돌이켜보면 딴 사람 같구나.”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텅 빈 무덤을 경험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변화’가 나에게도 일어났으면.... ⓒ최용우  https://cyw.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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