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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노래하라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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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4월 09일 (토) 22:00:12
최종편집 : 2022년 04월 09일 (토) 22:05:24 [조회수 : 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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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방송국마다 경연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노래가 넘쳐났다. 채널마다 유명세를 꿈꾸는 사람들이 혹독한 순위 싸움을 벌였다. 심사위원들의 과장된 품평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며 놀라워했다. 가히 노래의 과잉 시대이다. 가슴 뜨거운 한국 사람들이 그냥 남의 노래만 듣고 있을 수만은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노래방은 영업의 자유를 제한해왔다. 

  한국인의 노래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린다. 1990년대 중반 독일 한인사회는 가정 노래방 열풍이 불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면 집집마다 노래방 기계를 구입해 오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크고 작은 잔치는 물론 생일 모임 때마다 초대하여 노래방으로 흥을 돋우었다. 저마다 옛 노래와 새 노래로 애창곡을 익히고, 마치 가수처럼 신명을 뽐냈다. 추억의 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랬고, 최신가요를 배우며 나이를 잊고자 하였다.

  나중에 노래 사랑만큼은 적어도 남이든 북이든 남남북녀가 따로 없는 것을 깨달았다. 한민족의 피에는 노랫가락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노래를 즐겨 부르는지 굳이 남북 간 차이를 들라면 ‘남쪽 사람들이 서로 기를 쓰고 다른 노래를 부르려고 한다면, 북한 사람들은 악착같이 서로 같은 노래를 고집한다’는 점이었다. 동북아시아 민족에 대한 여흥문화 평가도 흥미롭다. 어느 일본인 작가는 “일본 사람은 술을 마시면 노래를 부르고, 중국 사람은 술을 마셔도 노래를 부르지 않지만, 한국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노래를 부른다”고 분석하였다.

  세대마다 좋아하는 레파토리가 있게 마련이다. 7080 세대에게 그 시절의 노래는 21세기를 살아도 여전히 최신 인기가요처럼 불린다. 유행가는 한낱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세월 따라 노래 따라’에는 가슴을 아릇아릇 벼리는 감정이 녹아있다. 흥은 흥대로 신명나고 슬픔은 슬픔대로 깊은 맛이 배어있다. 노래는 신통하게도 추억을 불러내는 힘이 있다. 반가운 사람들, 옛이야기들, 그리운 이름들이 귀울림처럼 되풀이된다.

  진정한 명곡은 심금을 울리고 가슴을 찢는 노래일 것이다. 시절을 타지 않는 노래들은 세대의 집단기억으로 소환되게 마련이다. 노래 안에 시대정신을 담아내고, 인간적 연민의 공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는 부를 때마다 공통의 향수를 느끼게 하고, 공감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노래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노래를 잊은 민족은 꿈도 꿀 수 없다.

  예수님도 노래하셨을까?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친 예수님과 일행은 그 밤에 감람산으로 향하셨다. 복음서는 당시 정황을 한 장면으로 들려준다.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막 14:26). 주님과 함께 희생의 떡과 언약의 잔을 나눈 제자공동체는 마지막 밤으로 향해 떠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부른 찬미는 어떤 것일까? 흩어진 심신을 묶어주고, 불안한 마음마다 용기로 깨우는 고난에서 영광으로 이끄는 개선가였을 것이다.   
  
  비록 가난해도 얼마나 흥겨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고통 중에 있어도 여전히 부를 노래가 아직 차고 넘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아픔은 얼마나 위대한 가락을 만들 수 있는지, 슬픔조차 놀라운 진실한 기쁨을 잉태하는지 노래의 저력은 무궁무진하다. 떼제공동체는 아픔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창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찢어질 때 곧 ‘상한 심령’(시 51:17)은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최선의 것이 되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악영향으로 찬양대는 흩어지고, 교회음악가들은 무대를 잃었다. 코와 입을 가로 막은 마스크를 쓴 채 맑은 찬송곡을 함께 부르기는 힘들다. 코로나 시대에 노래의 과잉을 경험하지만, 동시에 찬양의 빈곤 속에 살아가도록 강요받았다. 어느 원로목사 한 분이 은퇴 후에 찬송가 645장 전곡을 다 익혔다면서 자랑하였다. 현역으로 있을 때는 너무 분주하여 찬송가를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숙원처럼 여겼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더 이상 찬송가를 뽐낼 강단이 없어진 이후였다. 노래는 부를 때가 있는 법이다.

  온 세계가 조금씩 사회적 거리두기를 풀고 있지만, 아직도 도시봉쇄가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우한에서 상하이까지’ 중국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이제 막 감염병의 위기로부터 벗어 나는 나라들도 아직 승전가를 부르기에는 때 이르다. 그럼에도 아픔을 노래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 없다. 슬퍼하는 이들 곁에서 부를 노래는 얼마나 많은가? 8년을 맞았으나 여전히 망연자실한 세월호 가족과 함께, 또 흥과 끼에는 한국인 못지 않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등 슬라브 사람들과 더불어 소리 높여 불러야 할 희망의 노래는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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