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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쓴 맛
김정호  |  fumc@fumc.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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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4월 08일 (금) 00:50:17 [조회수 : 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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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조직의 쓴 맛’ 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살아갑니다. 조직이라는 것이 개인(개교회)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해 준다면 좋지만 존재 목적을 상실하고 개인을 도구나 수단으로 여기게 되면 개인은 초라한 존재가 됩니다.

2,000년 전 예수 운동이 조직화된 교회가 되었고 로마제국때 국교가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중심 한 축이 오늘의 로마 가톨릭 교회이고 마틴 루터나 깔뱅과 같은 종교개혁가들로 시작된 개신교가 다른 한 축입니다. 감리교회는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당시 영국 성공회가 귀족화되고 부패한 제도화가 되었을 때 요한 웨슬레와 친구들이 세상 속으로 들어와 복음을 생활화하는 신앙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이 웨슬리언 신앙운동도 결국은 제도 교회가 된 것입니다.

잘되는 ‘조직’은 체계화를 이루고 효율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획일적인 충성을 강조합니다. 여기에는 안정성도 있고 차별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억제되고 나중에는 정치 능력과 결정권을 가진 그룹에 의해 독재가 되는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막아내는 길은 오직 끊임없이 하나님 사랑, 예수 십자가 은혜,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에 의지하기 위해 이를 가로막는 것들을 과감하게 떨쳐버리는 것 뿐입니다.

운동이 조직이 되고 조직이 제도화되는 것은 자연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나 운동에는 있는데 조직과 제도에는 없는 것이 공감(empathy) 능력입니다. 웨슬리로 시작된 웨슬리언 운동은 예수님이 그리 하셨던 것처럼 작은자, 소외된자, 가난한자, 고통당하는 자, 억울함 당한자들에 대한 하나님 사랑으로 공감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도권 교회의 이익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공감 능력입니다.

얼마전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민족 해외동포의 아픔을 그려낸 내 책을 읽고 고통 당한 역사를 살아온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말을 듣고 우리는 모두 깊이 상호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자기 민족 아픔의 역사를 모르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부모세대가 살아온 고난을 공감하기를 바래서입니다. 남들은 패배한 민족의 부끄러운 역사라고 할지 몰라도 그 역사가 얼마나 영웅적(heroic)이면서도 비극적 (tragic)이고 낭만적(romantic)인지 자긍심을 가지기를 바래서입니다.”

바리새인들 문제가 성경은 많이 알지만 하나님 마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품어낸 죄인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이 바리새인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달려든 당시 종교 ‘조직의 중심부’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의인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행위는 바리새인들이 지켜내려는 ‘조직의 가치관과 이익’을 깨고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위협적인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속한 연합감리교회 조직에 문제가 일어나서 오는 5월에 새 교단 ‘글로벌 감리교회’가 조직된다고 합니다. 올해 8월 총회가 열려 ‘상호존중 분리안’이 통과되었으면 각 교회들의 주체적인 결정으로 남을지 떠날지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내년으로 연기됨으로 이제는 나가려면 어렵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인교회들이 조직의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단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진정 신앙을 지키는 용기있는 자들 일까요? 남아있는 사람들은 기회주의자들인 것일까요? 정말 동성애자 목사안수라는 것이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절대적 요소일까요 아니면 오늘날 교회들이 예수님 희년목회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바리새인처럼 되어버린 현실일까요. 문제는 공감능력입니다. 우리 교단의 문제를 보면 좌로는 자기들 정치적 어젠다가 ‘절대적 정의’라고 주장하는 그룹이고 우로는 자기들 성경해석이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그룹입니다. 감리교회가 존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대화’입니다. 신학과 신앙관이 달라도 ‘거룩한 대화’를 할 줄 아는 성숙한 공감 능력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나가서도 또 갈라질 것이고 남아서도 또 싸우느라 세월 허송할 것입니다. 얼마전에 저에게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냥 웃었습니다. 문제는 교단 권세 잡은 자들이 만들어 놓고 이제는 바닥에서 목회하는 개체교회 목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도 교단의 이런 문제와 거의 관계가 없이 살아가는 한인교회를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있으니 기막힙니다.

예수님은 그냥 죄인들과 먹고 마시고 천국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셨고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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