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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와 유일신관 (Prophets and Monotheism)
김종길  |  kimzonggi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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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4월 07일 (목) 21:03:36 [조회수 : 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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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와 유일신관

(Prophets and Monotheism)

 

 

1. 머리말

히브리 성서(구약성서)에 나타난 신관(神觀)은 시대에 따라서 발전해온 양상을 보인다. 이스라엘 종교는 진공 상태에서 단번에 생겨나지 않았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대 근동 세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성장했다. 알베르츠(Rainer Albertz)에 따르면, 이스라엘 종교는 내적 종교 다원주의(Religionsinterner Pluralismus)로, 그 안에 다양한 이질적 요소와 신념이 공존한다. 히브리 성서에는 가나안을 비롯하여 이집트와 바벨론으로부터 유입된 내용도 있다. 히브리 성서는 고대 이스라엘만의 고유한 문헌이 아니라 페르시아 시대와 헬라 시대에 주변 국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된 거룩한 문서다. 그러한 이스라엘 종교의 독특성은 유일신 신앙에 있다. 유일신관은 역동적인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예언자들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스라엘에서 왕정과 더불어 예언자가 등장했다. 왕과 예언자는 길항 관계에 있었다. 예언자들은 국내 왕권을 견제하고 외래 종교에 저항하면서, 진정한 야웨 신앙을 수호하고자 투쟁했다. 바벨론 이주 시대에 위기에 처한 예언자들은 ‘야웨-유일신 신앙(YHWH-Monotheism)’을 정립했다. 그들은 야웨 하나님을 루아흐로 체험하고, 루아흐에 근거하여 말씀을 선포했다. 예언자의 유일신관은 오경을 비롯한 히브리 성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의 제2장에서 필자는 종교사학파(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의 관점에서 야웨-유일신 신앙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예언자들은 야웨-유일신과 루아흐 야웨(야웨의 영)를 연결시켰다. 따라서 제3장에서는 예언서에 나타난 ‘루아흐 야웨’를 중심으로 예언자들의 영성과 하나님 체험을 다루고자 한다.

 

2. 이스라엘 신관 발전사

 

예언자의 하나님 체험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에 앞서, 히브리 성서에 나타난 신관을 살펴보는 것이 요구된다. 이스라엘 종교는 가나안 땅과 미디안 광야에서 생성되어, 주변 세계의 종교를 수용하면서 역사를 통하여 발전하여 왔다. 원시적 족장(가족) 종교에서 야웨-유일신 신앙에 이르는 과정을 시대별로 살펴보겠다.

 

(1) 족장 시대: 엘

창세기 12-50장은 이스라엘 종교의 정초를 이루는 족장 시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족장 시대는 중기 청동기 제2기인 기원전 2,000-1,500년경으로 추정된다. 족장 시대의 역사성과 족장 설화의 역사성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앙고백적 설정이다. 그러므로 족장 설화에서 역사적 가치보다는 신학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족장 종교는 가족 중심의 지역 종교다. 당시에 소규모 집단은 대표되는 조상을 숭배하며 가신상(드라빔)을 만들었고, 제단을 쌓아 제의를 행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24:12, 27; 26:24),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28:13),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출 3:6, 15, 16; 4:5) 등과 같이, 족장의 하나님은 개인과 관련지어 언급된다. 다신교적 세계에서 유래한 가족 신앙은 가나안 민중에게 만연했다.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신 26:5)인 족장들과 가나안 원주민 사이에는 비교적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었다. 히브리와 가나안의 적대적 관계를 묘사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바벨론 이주기의 편저자가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설정한 것이다. 다신교적인 가족신들은 나중에 ‘엘’과 융합되었다. 그리하여 가나안 지역에서 통용되는 신명(神名)은 ‘엘’과 관련을 짓는다. 족장 신앙을 표현했던 ‘엘’은 당시 고대 중동 사회가 공유하고 있던 신명이었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지만, 단수의 의미로 사용된다. 엘이나 엘로힘은 문맥에 따라서 고유명사 또는 보통명사가 된다. 예를 들면, “엘엘로헤이스라엘”(창 33:20)은 ‘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옮겨야 옳다. 앞의 “엘”은 고유명사이고, 뒤의 “엘로헤”는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다. 신명이 동일한 ‘엘’이지만, 가나안 지배자가 만신전에 모신 엘과 일반 대중이 섬기는 엘은 전혀 다르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엘-엘리온(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14:19, 22), 엘-로에(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16:13), 엘-올람(영원하신 하나님, 21:33), “엘-벧엘”(28:19; 31:13; 35:7) 등은 민중이 섬기는 하나님이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서 엘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널리 알려진 엘 샤다이(전능한 하나님, 17:1; 28:3; 35:11; 48:3; 출 6:3)는 가나안 산악지대에서 섬기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족장 종교는 나중에 야웨 종교의 기층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야곱 가족이 이집트로 이주한 내용을 보도하는 창세기 46장 8-27절과 출애굽기 1장 1-7절은 이질적인 족장 종교와 모세 종교를 연결하는 미장센(mise-en-scene)으로 보인다.

 

(2) 모세 시대: 야웨

이스라엘 종교의 시초인 야웨 종교는 모세와 함께 시작되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야웨를 만났고, 이집트에 거주하는 히브리들에게 야웨를 소개했다. 출애굽기가 보도하는 야웨 종교는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한 정치적 해방 경험에 기초하였다. ‘야웨’는 원래 팔레스타인 남부 산악지역에서 유래한, 우레와 폭풍우를 이끌고 나타나는 하닷(hadad) 유형의 신이다. 거기에 정치적, 역사적 의미가 추가되었다. 이집트에 거주하던 노동자, 전쟁포로 등으로 이루어진 하비루 계층은 해방투쟁의 원동력으로 야웨 신앙을 받아들였다. 야웨 신앙은 집단의 내적 결속력을 강화하고, 그 집단을 불의한 사회질서로부터 분리시켰다. 출애굽 전승은 이후에 시내산 전승과 결합되었다. 그리하여 야웨 종교에서 성막, 법궤 등이 제작되고, 율법과 언약 개념이 형성되었다. 야웨는 신상 제작을 금지하고, 말씀(해방의 언어)으로 히브리 집단을 이끌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로 소개하였다. 번역 성경마다 이 구절을 다양하게 읽는다. ① ἐγὼ εἰμι ὁ ὤν(LXX). ② ego sum qui sum(Vulgata). ③ I am who I am(RSV, NIV). ④ Ich werde sein, der Ich sein werde(Luther). 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개역). ⑥ “나는 곧 나다”(공동번역, 새번역). ⑦ “나는 있는 나다”(천주교 성경). 이와 같이 그 구절을 한 가지 뜻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우리말 성경(개역)에서 이 구절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리스의 신개념인 ‘제일원인’ 또는 ‘부동의 동인’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은 존재론을 바탕으로 신을 논한다. 히브리어는 논리적인 언어이기보다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언어다. 그러므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는 역동적인 언어로 옮겨져야 한다. 그래서 부버(M. Buber)는 이 구절을 “나는 내가 현존하고자 하는 대로 현존할 것이다”라고 번역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매순간, 모든 곳에 현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야웨’와 ‘에흐예’는 모두 “…이다, 있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하야’에 근거한다. 동사 ‘하야’는 존재가 아니라 동작을 강조한다. 야웨는 명사화된 3인칭 미완료 동사로서, 하나님의 현존과 역동성을 표명한다. 요컨대, 살아계신 야웨는 언약을 이루고, 구원을 위해 행동하는 하나님이다.

 

(3) 사사 시대: 엘과 야웨의 융합

이집트의 지배를 받던 가나안의 도시들이 쇠퇴하면서 탈도시화 현상이 일어났다. 지배자를 피해 도시를 이탈한 자들은 주로 산악지역에 거주했다. 소규모 출애굽 집단이 야웨 종교를 가지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가나안 민중과 출애굽 집단이 합하여 부족 동맹을 결성했다. 이스라엘의 기원과 관련하여 정복설(올브라이트, 존 브라이트 등), 평화적 이주설(알트, 노트), 농민 혁명설(멘덴홀, 갓월드), 도시 이탈설(기어스, 렘키, 스테이저) 등이 있다. 필자는 이 가운데서 이탈 모델을 수용한다. 두 집단이 연합하면서 서로 다른 신앙이 하나로 결합되었다. ‘이스라엘’은 원래 가나안 변두리에 거하던 민중 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그것은 나중에 탈출 집단이 합류하여 탄생한 부족 동맹체의 이름이 되었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 이스라엘은 중앙 집권적 군주제에 반대했다. 머리 없는 연체동물과 같은 부족 동맹은 각 부족이 신앙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결속된 형태였다. 이집트의 파라오 체제와 가나안 지배자의 학정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왕을 세우기를 거부했다. 공동체에 위기가 발생하면 임시적으로 ‘사사’가 다스렸다. 사사는 히브리어로 ‘쇼페트’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쇼페트는 그 용어에 나타나듯이 평시에 백성을 재판하거나 전쟁시에는 군대를 통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사사 시대의 지파 동맹은 엘과 야웨가 통합된 ‘야웨 신앙’과 궤를 같이했다. 처음에는 ‘엘’이 부족 동맹의 하나님이었으나, 나중에 ‘야웨’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엘과 야웨가 하나로 융합되었다. ‘야웨’와 ‘엘 샤다이’가 결합되어 등장하는 창세기 17장 1절은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반영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지파 동맹의 이름은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 이름은 ‘야웨’로 통일되었다. 야웨 신앙은 가나안 족장의 신앙 전통과 출애굽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을 함께 수용한다. 야웨는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야웨’(출 3:18; 7:16; 9:1, 13; 10:3 등), 곧 땅의 소유자이며 대규모 집단의 하나님이다. 야웨는 빈자와 약자를 돌보시며, 가나안의 지배세력과 싸운다. 히브리 사람을 위해 싸우시는 야웨의 모습은 “여호와는 용사”(출 15: 3), “만군의 여호와”(삼상 1:3; 시 59:5),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 24: 8) 등으로 표현된다.

 

(4) 왕정 시대: 국가 종교와 대중 종교

지파 동맹이 쇠퇴하고, 이스라엘에도 “이방 나라들처럼”(삼상 8:5, 20) 왕정 시대가 도래하였다. 왕정사가들은 사사 시대를 영적 암흑기로 평가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삿 21:25). 그들은 사사 시대를 평가절하하며 다윗 왕국의 출현을 정당화했다. 왕정이 진행되면서, 다윗은 ‘야웨의 전쟁’(삼상 18:17) 또는 해방전쟁 대신에 정복전쟁을 수행했다. 토지는 야웨의 기업이 아니라 왕의 하사품이 되었다.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중앙집권적 체제가 강화되었다. 왕권신학에 의해 야웨 신앙은 통치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 일반적으로 다윗과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전성기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예언자적 관점에서 보면, 그 시기는 인간의 권력이 하나님의 주권을 제약하는 ‘영적 쇠퇴기’였다. 지배계층의 의도와는 달리, 대중은 여전히 개인적 야웨 종교를 고수했다. 이스라엘 종교는 내적 종교 다원주의로, 국가의 공식적 종교와 대중 종교(개인 종교)는 일치하지 않았다. 동시대, 한 국가 안에서도 서로 다른 종교적 신념과 제의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래적 요소가 국가 종교 안으로 들어오면서, 야웨 신앙이 혼잡하게 되었다. 그러자 예언자들은 외세와 종교적 혼합주의에 대하여 저항했다. 그들은 왕정 이전의 야웨 신앙을 이스라엘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표준으로 삼았다. 이후에 이스라엘 전역으로 퍼져 나간 예언운동은 9세기 북왕국의 예언자인 엘리야에게서 시작되었고, 8세기에 호세아에게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종교가 바알 종교이며, 종교 혼합주의로 규정했다. “에브라임은 우상들과 한 패가 되었으니, 그대로 버려 두어라”(4:17). 그는 신상들을 비판하고, 가나안 요소를 배격했다. “이스라엘에서 우상이 나오다니! 송아지 신상은 대장장이가 만든 것일 뿐, 그것은 신이 아니다”(10:6). 호세아에 따르면, 야웨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및 광야 시대의 초기 신앙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나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 살 때로부터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 나는 저 광야에서, 그 메마른 땅에서, 너희를 먹이고 살렸다”(13:4, 5). 예언자들의 활약은 7세기에 진행된 신명기적 종교개혁으로 결실을 거두었다. 왕정 시대에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공식(어용) 신학, 예언자 집단의 저항 신학, 양자의 절충을 모색하는 중도 신학이 있었다. 포로기에 성립된 신명기 신학은 국가 종교와 예언자 정신을 종합한 중도 신학으로 볼 수 있다. 신명기적 역사가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로 인하여 위기에 처한 국가 종교와 아울러 망국의 상황에서 위기에 처한 가족 종교를 살려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종합의 신학자로 평가된다. 예언운동을 통해 야웨는 인간 왕국과 주변 국가들의 신들에 대항하는 하나님이 되었다. 왕권을 견제하는 예언운동은 왕정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이를테면, 주권과 유일성을 강화하는 야웨의 왕권사상은 왕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야웨-유일신관은 포로기의 예언자들에 의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5) 바벨론 이주 시대: 유일신 야웨

오경의 종교 개념은 7세기에 발전하여 포로기 후기에 형성된 것이다. 야웨-유일신관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당면한 위기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났다. 절망한 유대인들이 보기에, 국가의 멸망과 바벨론 이주는 하나님의 무능과 신앙의 무용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여 신앙의 의미를 추구했다. 유다 왕국의 멸망은 세계 역사를 주도하는 우주적 하나님의 행동으로 해석되었다. 유일한 야웨는 바벨론의 신들을 제압하고, 마침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러한 유일신관은 제2이사야서의 본문(40-55장)에 잘 나타난다. “나는 시작이요, 마감이다. 나 밖에 다른 신이 없다”(44:6). 이사야는 바벨론의 신들이 무능하다는 것을 선언했다. “벨 신이 고꾸라졌고, 느보 신이 넘어졌다”(46:1).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며, 너희가 하는 일도 헛것이다 …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일 뿐이요, 헛것일 뿐이다”(41:24, 29). 반면에 야웨는 창조의 주님이시다. “너의 구원자, 너를 모태에서 만드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바로 만물을 창조한 주다. 나와 함께 한 이가 없이, 나 혼자서 하늘을 폈으며, 땅도 나 홀로 넓혔다”(44:24). 역사의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새 일을 행하신다.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43:19). 하나님은 고레스를 세우신다. “나 주가 기름 부어 세운 고레스에게 말한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굳게 잡아, 열방을 네 앞에 굴복시키고, 왕들의 허리띠를 풀어 놓겠다. 네가 가는 곳마다 한 번 열린 성문은 닫히지 않게 하겠다. 고레스는 들어라!”(45:1).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40:29). 예언자의 배타적 유일신관은 절망스러운 바벨론 상황에서 창조신앙을 전제로 하여 확립된 것이다. 예언자의 야웨-유일신관이 히브리 성서를 지배하게 되었다.

히브리 성서는 택일신론(henotheism)에서 발전된 유일신관(monotheism) 또는 ‘야웨이즘(Yahwism)’을 제시한다. 그러한 신앙고백은 신명기 6장 4절에 소개된,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잘 나타난다: “야웨 엘로헤누 야웨 에하드.” 이 문장은 끊는 곳에 따라서 다양하게 번역된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개역).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새번역).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오직 주님만이!”(왕대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천주교 성경). 이 구절에서 ‘에하드’는 야웨의 유일성을 강조한다. 야웨가 유일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유일’은 숫자상 하나의 개체를 뜻하지 않으며, 여러 신들 가운데 최고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유일한 여호와” 또는 “한 분”은 숫자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궁극성을 표현한 것이다.

 

3. 예언자의 하나님 체험: 루아흐 야웨

 

이스라엘 종교사에서 신관(神觀)이 시대를 따라서 변천되어왔으며, 예언자들이 유일신관 정립에 기여했음을 살펴보았다. 유일신관은 ‘루아흐 야웨’와 깊은 관련이 있다. 히브리어 ‘루아흐’와 헬라어 프뉴마‘는 동일한 의미로 바람, 숨, 영을 뜻한다. ‘루아흐 야웨’는 전기 예언서에서 하나님의 생명력 또는 능력을 가리키고, 후기 예언서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의미했다. 신약성서에서 프뉴마는 점차 신격성을 지니게 되었다. 예언자들은 야웨 하나님과 루아흐를 긴밀하게 연결했다. 예언자의 소명 체험과 예언 활동은 하나님의 영에 근거한 것이다. 루아흐는 예언자에게 영감과 예언의 원천이었다. 예언자들은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메시지의 전거는 전승이 아니라 루아흐의 역사였다. 루아흐 체험은 무아경과 이성을 포함한다. 예언자들에게서 초월 현상을 배제할 수 없다. 무아경은 초이성적이고 비가시적 신적 세계에 접속한 상태다. 루아흐는 예언자의 일상적 의식을 압도하면서도 예언자의 개성과 세계관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메시지에서 예언자의 색깔이 드러났다. 예언자의 영적 체험은 선포 활동으로 이어졌다. 초월 체험은 진리(하나님 말씀)보다 앞서지 않는다. 말씀과 영의 관계에서, 말씀 사건은 곧 루아흐 사건이었다. 루아흐와 말씀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비롯하고, 둘 사이에는 기능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구약성서에서 곧바로 ‘성령론’을 전개하기는 어렵다. 유일신관을 강조한 예언자에게서 삼위일체론을 찾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구약성서에서 “거룩한 영”이라는 표현이 세 번 나타난다(시 51:13; 사 63:10, 11). 이러한 용어는 삼위일체의 위격적 존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신약성서에서 성령을 뜻하는 프뉴마와 하나님이 동일시되기도 한다. 예수에게 임한 성령은(막 1:10)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임했다(행 2:1-4; 8:17; 19:6). 성령은 하나님의 존재 양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중세기에 삼위일체론으로 발전했다.

성서에 나타난 ‘루아흐’의 개념과 기능은 다양한데, 다음과 같이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자연현상과 관련하여: 공기, 바람 등을 말한다. ② 인간기능과 관련하여: 숨, 마음, 정신을 가리킨다. ③ 신성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영, 임재, 현존 등의 뜻을 지닌다. 일상용어인 ‘루아흐’는 신학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필자는 주로 신성과 관련하여 루아흐를 논의할 것이다. 히브리 성서에서 영은 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등장한다. 히브리인은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육(바사르), 혼(네페쉬), 영(루아흐)으로 보았다. 이러한 요소들은 존재론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은 전인적 존재로서 혼과 영을 지닌 몸이다. 여기서 ‘루아흐’는 초자연적인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하며, 하나님이 그것을 통제하신다. 루아흐가 감성적, 지성적 기능으로 인간 안에 있지만, 인간이 루아흐를 임의로 소유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히브리 성서는 예언서를 전기 예언서(여호수아서, 사무엘서, 열왕기)와 후기 예언서로 구분한다. 이 글은 전기 예언서에 등장한 루아흐를 약술하고 나서, 주로 후기 예언서에 나타난 루아흐를 살펴볼 것이다.

 

(1) 전기 예언서에 나타난 루아흐 야웨

전기 예언서에서 하나님의 영은 특정인에게 임하여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루아흐는 선택된 자로 하여금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완수하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 영이 임하는 모습은 다양하게 서술된다. 강령(降靈)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주님의 영이 ∼위에 내리신다[하야 … 알]. 이러한 표현은 영의 임재와 하나님의 현존을 강조한다.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리니,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전쟁터에 싸우러 나갔다”(삿 3:10). “ 주님의 영이 입다에게 내렸다”(삿 11:29).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 열광 상태에서 예언을 하며 걸어갔다”(삼상 19:23).

② 주님의 영이 ∼에게 들이닥친다[찰라흐 … 알]. 이러한 서술은 물리적이고 신체적인 차원에서 급작스러운 변화를 보여준다. “그 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덮쳤다”(삿 14:19). “그 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세차게 내리니, 사울이 그들과 함께, 춤추며 소리를 지르면서 예언을 하였다”(삼상 10:10).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삼상 16:13).

③ 주님의 영이 ∼를 사로잡다[라바쉬]. 이것은 특정 개인을 사로잡아 활동하는 영의 모습을 묘사한다. “주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잡으니”(삿 6:34).

④ 주님의 영이 ∼를 움직이다[파암]. 이 구절은 주님의 영이 특정인을 격렬하게 흔들고 동요시키는 상태를 보여준다.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삿 13:25, 개역).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천주교 성경).

전기 예언서가 보도하는 ‘강령’ 사건은 특정한 개인에게서 발생했다. 하나님은 루아흐 야웨가 임한 개인을 통하여 이스라엘 집단을 직접 통치하셨다. 그 개인은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얻어서 집단을 이끌었다. 강령 현상은 지속적이지 않고 임시적이다. 영은 특수한 목적을 위해 특정 개인에게 개입하고, 일을 마치거나 필요가 없으면 떠났다. 루아흐 체험은 엑스터시나 카리스마를 동반했다. 무아경 체험은 회개나 내면의 정화와는 무관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한 내면적, 윤리적 변화는 주로 바벨론 이주 이후에 기록된 예언서에서 나타난다.

 

(2) 후기 예언서에 나타난 루아흐 야웨

후기 예언서에서 루아흐 야웨는 보다 깊고 성숙한 의미를 지닌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예언자는 성전이나 제의 대신에 하나님의 영을 강조했다. 예언자는 루아흐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인식했다. 특히 바벨론 이주 이후에 선포된 예언서들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 재창조와 회복, 구성원의 내적 변화 등을 표명한다. 여기서는 이사야서와 에스겔서로 범위를 제한하겠다. 이들 예언서에서 루아흐의 속성과 활동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보도한다.

 

1) 영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은 불, 폭풍 등 자연현상으로 표현하였다. 율법이 수여된 후에는 법궤, 성막, 성전이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하였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이 루아흐 야웨로 대체되었다. 이사야는 물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강령 현상을 묘사한다. “내가 메마른 땅에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듯이, 네 자손에게 내 영을 부어 주고, 네 후손에게 나의 복을 내리겠다”(사 44:3). 그는 ‘강령’ 사건을 ‘도유(塗油)’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서술한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사 61:1). 물과 기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묘사하는 이미지다. 바벨론 이주 이후에는 당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영으로 임하셨다. 바벨론 이후로는 강령 대상이 특정 개인에서 모든 개인으로 확장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욜 2:28-29).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에게 직접 강림하기에, 중개자가 필요 없게 된다. 하나님의 영은 목자가 되어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신다.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겔 34:15).

 

2) 영은 재창조와 회복을 주도한다.

루아흐는 창조와 소생의 영이다. 이사야는 야웨의 창조능력을 강조했다. “내가 바로 만물을 창조한 주다. 나와 함께 한 이가 없이, 나 혼자서 하늘을 폈으며, 땅도 나 홀로 넓혔다”(사 44:24). “나는 빛도 만들고 어둠도 창조하며, 평안도 주고 재앙도 일으킨다”(사 45:7). 에스겔 37장은 하나님의 영이 주도하는 재창조와 회복의 주제를 다룬다. 에스겔은 골짜기에 흩어진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나는 환상을 보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영을 부어 주겠다고 선포하신다.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37:5). 여기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전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한다. 루아흐는 재창조의 역사를 주도하여 피조물을 새롭게 한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고, 너희를 너희의 땅에 데려다가 놓겠으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나 주가 말하고 그대로 이룬 줄을 알 것이다”(겔 37:14). 재창조와 회복은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건이다.

에스겔서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을 선언한다. 분열된 남왕국과 북왕국이 하나님의 영으로 연합하게 된다. “내가 에브라임의 손 안에 있는 요셉과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지파의 막대기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유다의 막대기를 연결시켜서, 그 둘을 한 막대기로 만들겠다. 그들이 내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37:19). 하나님은 바벨론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백성을 모아서, 통일 왕국을 이루어 번영하는 희망을 제시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 살고 있는 그 여러 민족 속에서 내가 그들을 데리고 나오며, 사방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37:21). 정치적으로 회복된 이스라엘은 정의와 공정이 실현된 공동체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 그들 모두를 거느리는 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규례를 지키며 살고, 내 율례를 지켜 실천할 것이다”(37:24).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루아흐 야웨로 말미암아 실현된다는 환상을 제시했다.

 

3) 영은 내적 변화와 윤리적 성숙을 실현한다.

하나님의 영에 의한 내적 변화에 관한 본문은 바벨론 이주 이후에 나타난 신앙 양상을 잘 보여준다. 내적 변화는 ‘마음 할례’ ― ‘새 언약’ ― ‘새 영’으로 연결된다. ‘새 언약’을 상징하는 ‘마음에 베푸는 할례’와 ‘마음에 둔 새 영’은 율법에 대한 순종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하나님의 영이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마음의 할례를 언급한 신명기 30장 6-8절은 야웨의 은총을 통한 구원을 진술한다. “야웨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의 마음과 너희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순종하는 마음을 주실 것이다”(30:6). ‘마음 할례’는 예레미야가 선포한 ‘새 언약’을 뜻한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 …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렘 31:31-33). 새 언약을 맺음은 에스겔에서 ‘새 영’ 또는 ‘하나님의 영’을 마음에 둔다는 구절과 일치한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된 마음을 주고, 새로운 영을 그들 속에 넣어 주겠다. 내가 그들의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겔 11:19). 그리하여 인생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살 수 있게 된다.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겔 36:27).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며 새로운 영을 넣어 주셔서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신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율법에 따라서 행동하게 된다. 하나님의 영은 각 개인이 내적으로 변화시켜서 율법과 윤리를 실천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인 ‘새 영’은 인간의 응답과 책임을 요구한다(겔 11:19; 18:31).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인 동시에 인간의 책임인 것이다.

 

(3) 예언자 영성에 대한 평가

유일신관을 정립한 예언자들은 루아흐를 통하여 야웨를 체험했다. 루아흐 야웨는 개인의 내면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개벽의 원동력이었다. 예언자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선교는 종교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 영역과 사회변혁으로 확장되었다.

알베르츠는 예언자들이 야웨 종교를 재정립했다고 평가했다. 첫째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개념을 일반화하고 강화하였다. 야웨는 이스라엘을 넘어서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둘째로,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세계의 차이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거리 두기를 강조했다. 야웨는 불의한 정치권력과 경제 질서를 비판하고, 경건하지 않은 제의에 거리를 두신다. 셋째로, 예언자들은 야웨 종교의 윤리적 차원을 강화했다. 율법 종교의창시자들인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하는 공동체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요컨대, 예언적 저항 집단이 고립되고 소규모였을지라도, 예언자 영성이 이스라엘 종교와 인류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4. 맺음말

 

이스라엘 종교는 내적 종교 다원주의다. 그것은 주변 세계와 마찬가지로 다신교적 종교로, 그 안에 다양한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야웨-유일신 사상은 후대에 형성된 것이다. 가나안 족장들이 섬기는 하나님(엘)과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하나님(야웨)이 통합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었다. 사사 시대에 부족 동맹은 야웨 신앙을 중심으로 자유와 평등을 추구했다. 왕정 시대에 예언자들은 왕권과 국가 종교에 맞서서 야웨 신앙 운동을 전개했다. 유일신 신앙은 왕정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유일신관은 예언자에 의한 투쟁과정의 산물이었다. 바벨론 이주 시대에 예언자는 제국의 신들을 제압하고 우주를 통치하는 야웨-유일신을 선언했다.

루아흐 야웨는 하나님이 임재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예언자들은 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루아흐에 근거하여 예언활동을 수행했다. 전기 예언서에 등장하는 강령 사건은 특정한 시기에 개인에게서 발생하였다. 강령 현상은 임시적 사건으로, 엑스터시나 카리스마를 동반했다. 영은 특정 개인에게 개입하고, 일을 마치면 떠났다.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하나님의 영이 강조되었다. 바벨론 이주 이후에 활동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과 관련하여, 개인의 체험을 강조하고 각자의 내면적 변화를 역설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은 망국의 백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영적, 윤리적 공동체를 이루도록 이끌었다.

루아흐 야웨를 소위 ‘성령론’과 직결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일 수 있지만, 루아흐 야웨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의 성령운동이 신비체험에 집중하고, 소유와 권력 등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여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찰해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에 ‘예언자 영성’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교회가 내적으로 윤리적으로 성숙하고 열린 마음으로 교회개혁 및 사회변혁에 참여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를 기대한다. 󰁋

 

 

(※ 이 글은 <농촌과 목회> 통권93호에 실린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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