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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감동의 연속, 일본 생태기행정주목회 훈련 10일 간, 일본 생협운동, 유기농업, 공동체를 둘러보다
양재성  |  hfmc1004@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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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2월 11일 (월) 00:00:00 [조회수 : 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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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목회 일지

11월 20일(월)
인천공항에서 12시 10분 일본항공 소속 비행기를 타고 2시에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번 열흘간의 일행은 차홍도목사, 박순웅목사, 김명준목사, 양재성목사, 홍승표전도사, 통역을 맡은 가오리상 등 여섯이다.

   
▲ 농과 자연의 연구소를 방문하여 우네상의 강의를 들으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실히 기록하였습니다.
처음 찾아간 곳은 오사카에서 기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 간 효고현에 있는 탄바지방의 야마나상 댁이다. 일본의 농촌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아름다웠다.

탄바는 <붉은 물결>이란 말인데 이는 들판에 심겨진 붉은 쌀에서 유래되었단다. 그 붉은 쌀은 우리나라에서 건너갔다고 들었다. 야마나상은 300년, 11대를 이어오는 고급 청주를 만드는 양조장 주인이다.

   
▲ 야마나 상 양조장 앞에서, 얼마나 친절한지 감동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11월 21일(화)
오전에 유기농업을 하는 하시모토상을 그의 밭에서 만났다. 하시모토상의 밭 흙이 살아 있었다. 그의 손에 박힌 굳은 살이 그의 성실함을 보여주었고 얼굴에 미소가 행복을 말해 주었다. 흙을 분석하여 흙에 적합한 거름과 작물을 선택하여 전인적인 농사를 짓는다고 하였다.

   
▲ 바로 집 수로에서 가재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시모토상은 먹을 양식만큼의 논농사를 짓고 밭은 2,500평에 여러 가지 채소를 가꾸고 있으며, 닭을 500수 친다고 하였다. 지은 작물은 모두 직거래로 판매된다고 하였다.

점심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소바 식당을 찾았다. 300년이 넘는다는 전통가옥이 참 멋있고 근사했다. 주인은 유기농 메밀로 직접 하루 정량만 만들어 판다고 하였다. 정성만큼이나 맛도 좋았다.

   
▲ 아라카와 목사님의 강연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후에 히로시마현 미오시시의 공생암을 찾았다. 공생암은 절 냄새가 나는 이름을 넘어 십자가 없는 교회이다. 아라카와목사는 존경받고 안정적인 교회의 목사였다. 하지만 교회 구조를 통해서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모험을 시작하였다. 그 때가 55세였다. 더 늦으면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공생암은 농업, 자연, 사람을 키워드로 정하였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만드는 농업, 자연 속에서 지내는 일, 고민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11월 22일(수)
오후엔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찾았다. 일본에서 히로시마만큼 잘 알려진 도시도 없다. 히로시마는 원자탄의 위력이 어떠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상황은 기억하기조차 싫지만 인류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평화공원은 당시 상황을 그대로 알려주어 다시는 핵전쟁이 없는 지구를 만드는 것이 조성이유다. 당시 잘 조성된 계획 도시 히로시마는 군사지역이었다. 원자탄이 투하되자 반경 십리 안에 있는 모든 건물은 초토화되었고 생명체는 다 죽었다.

   
▲ 위 사진은 45년 8월 6일 8시 15분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었을 당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입니다.
이름이 원폭입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입니다.
20만 명이 죽었고 그 중에 한인이 2만 명에 이른다. 그 후유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원자핵의 위험을 증언하고 있다. 당시 가장 단단한 건물이었던 산업장려관만이 당시의 흔적을 증언하며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원폭이란 이름을 얻었고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전되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모한 짓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을 파멸로 몰아가는 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거대한 괴물들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히로시마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하늘에 다했다.

11월 23일(목)
오전엔 후쿠오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농과 자연의 연구소>를 방문하였다. 대표 우네상을 만났다. 농촌지도소 소장이었던 우네상은 관행농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고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 농과 자연의 연구소
논엔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잡초와 생물들이 자라고 있다. 농사는 벼만 키우는 것이 아니고 엄청난 생명체들을 키우고 있는 생명의 보고이다. 건강한 밥을 먹는 것은 유기 농가를 살려 주변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다. 결국 옛날 방식으로 농사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네상은 10년 전부터 손으로 모를 심고 있으며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정농(正農)이었다.

   
▲ 아브람함의 집을 방문하여 오오고 신부님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오오고 신부의 이야기를 통해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1월 24일(금)
오오고 신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학생 시절에 만난 한센병 환자의 고백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그의 고백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 전도는 그 변화된 삶을 보고 그 변화의 원인을 찾아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란다. 100% 동감이다. 말로만 전도하는 가벼움을 씻었다. 그밖에도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일본인들의 자존심 후지산을 보았습니다.
11월 25일(토)
신칸센을 타고 가면서 후지산을 보았다. 후지산은 일본을 상징하는 산이다. 3780m인 후지산은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화산이라 단조로웠지만 그 웅장함이 가슴을 울렸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고요함을 느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수천 년 동안 땅 저 밑에서 열을 토해 내었던 후지산, 이젠 안식을 얻고 그윽한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을 보면서 꿈을 꾸었을 것이다. 후지산은 일본인들의 영혼을 하늘로 이끄는 구도자요, 가교요, 선구자이다.

   
▲ 안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회는 34년간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생명거래를하고 있었습니다. 생산자들이 유기농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도쿄에서 기차를 바꾸어 타고 타테야마 미요시무라 마을에 도착하였다. 한국에서 온 가톨릭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본부 조대현신부와 맹00부장이 함께 했다. <안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회>를 찾았다. 생산지였지만 소비자 단체 대표들이 와 있었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 단체가 생기게 된 동기를 소비자 대표로부터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동경의 잔류농약을 공부하는 동경어머니회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미요시무라에까지 이르렀다. 유기농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달라고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18가정이 이 일을 시작하였다.

그 이후 28가정으로 확대되었고 34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농사는 자연농업이다. 가격은 농민이 정하고 주문받지 않고 생산자들이 지은 농산물을 배분하여 보낸다. 소비자는 850가정이다.

11월 27일(월)
교토에서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을 방문했고 그 모임을 이끄는 스찌다 다카시 선생님을 뵈었다. 옥상엔 텃밭이 있었고 여러 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물류센터도 돌아보았다. 생산자 20가정, 가공자 40가정 소비자 1600가정이 참여하고 있다.

   
▲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의 스찌다 다카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사무실 옥상엔 텃밭이 있었습니다.


다카시 선생님을 모임을 만들게 된 동기를 자세히 소개하였다. 공업문명(사회)이 풍요로운 삶을 가져왔다. 풍요로움이 좋다고 생각하는 위험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쓰고 버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유통, 대량소비의 시대가 열렸다.

   
▲ 스찌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공업사회는 환경파괴와 공해를 만들었다. 결국 공업사회는 지속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공업문명이 범죄행위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정치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결국은 한 사람, 한 사람 의식을 바꾸는 것을 통해서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 에스코프 소비자들과 강연회를 마치고
11월 28일(화)
오전엔 한국의 농도생협과 에스코프의 교류회가 있었다. 박순용선생이 한국 생협운동을 소개하였고 차흥도목사가 농도생협의 정신을 소개했다. 나에겐 생소한 이야기였지만 생협운동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 일본의 대표적인 유기농 생협인 에스코프의 이사장인
야마구찌 상입니다.
기차 안에서 차흥도목사에게 들은 소비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일본 생협운동과 유기농업 생산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한국 생협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생협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농도생협은 에스코프에 음성고추가루를 보급하고 있었다.

오후엔 오사카에서 대표적인 오사카성을 둘러보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성으로 일본에 남아 있는 성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성이라고 들었다. 성벽은 집채만 한 크기의 바위들로 이루어졌다.

   
▲ 십자가, 오사카성을 축성한 노역꾼들중에 상당부분이 기독교도였다.
누가 어디에서 이렇게 큰 돌을 여기까지 날랐을까? 기중기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쌓았을까? 여기에 동원된 노동자들은 누구였을까? 반역자들이었다. 특히 그 중에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엔 돌에 비표를 새기게 하였는데 십자가 표시와 물고기(초대교회 기독교의 상징) 표시가 많이 나왔다고 전한다. 실제 확인할 수 있었다. 민초들의 고통이 뼈 속 깊이 들려왔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성앞에서 오사카에서 일본인 교회를 섬기는 조영철목사를 만났다. 마음 저 밑에서부터 그리움이 올라온다
오사카에서 목회하는 친구 조영철목사를 만났다. 학교 다닐 대는 제법 친하게 지낸 친구인데 세월이 적당한 거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자기 자리에서 성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참 좋았다. 믿음이 가는 친구다.


   
▲ 에스코프 사무실에서
11월 29일(수)
에스코프 농장, 사무실과 물류센터를 둘러보았다. 대단한 규모다. 일본은 아무리 작은 단체라도 내용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에스코프는 참 좋은 사람들이 모여 이룬 일본 최대 규모의 유기농 생협이다. 소비자가 25,000가구며 일 년 매출액만도 500억이나 되었다.
   
▲ 유전자조작이 되지 않은 유채밭을 가꾸고 있었다. 유채기름으로 바이오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이다.
유채농장을 찾았다. 기름을 짜서 바이오 에너지로 사용한다고 했다. 정부의 위탁사업이라고 하였다. 유채씨앗은 유전자조작이 아닌 씨앗을 사용한다. 끝가지 친절하게 안내해준 000상에게 감사한다.

   
▲ GMO 반대 집회에 참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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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54.219.74)
2006-12-15 16:39:40
재성이 형님께
저는 복지시찰로 다녀왔는데,
역시 형답게 생태기행으로 다녀와 좋네요.
저희들도 '뿌리목회단' 하나 만들어보게 기도해주세요.

넘넘 힘들게끔
우리들은 늦네요.

산중에 이세종선생님수양관에
심상봉목사님께서 혼자 힘들게 일하시어
어젠 일좀 도워드리고 왔어요


늘 생명살림 생태운동에
하나같이 열심을 낼께요.

좋은 사진이랑 소식 잘 보았어.

좋은 사람들 좋은 여행담 샘지에도 한번 소개하소. 동생종옥목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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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
mustard 洪 (218.159.38.176)
2006-12-11 21:37:32
앗! 이런 벌써 기사가 실렸네요....^^;
앗! 이런, 양재성 사무총장님의 글이 벌써 당당뉴스에 실렸네요.
저도 갔다와서 빨리 기행문을 쓴다는 것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아무튼 양목사님의 귀한 글이 실리게 되어 반갑네요...

사진을 보내달라고 재촉하신 이유가 있었네요...
이곳에 실리기 위해서였네요....
저도 시간 내서 빨리 기행문을 써 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음성 문수봉 아래서 홍승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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