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선물-3

인생 스승을 만나다.

사진/조석진 글/황대성

좋은 친구는 오랜 시간 함께 있어도 편해야 한다. 착하기만 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답답해지고 불편할 때가 있다. 나에게 좋은 친구의 첫째 조건은 지적인 사람이다. 대화의 소재가 금방 고갈되거나, 깊이가 드러나면 먼 길을 동행하기가 힘들다. 눈에 보이는 대로, 느낌이 오는 대로, 자연을 보면서, 때로는 문학과 예술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평택제일교회의 주청환 목사와는 이웃교회 학생회장으로 만나서 신학생을 거쳐 목회를 마칠 때까지 동행하고 있다. 만나면 논쟁을 벌이지만, 태백의 표창근 목사와 함께 은퇴 후를 논하는 친구다. 정학진 목사와는 교단에서 다양한 집필활동과 문학상 심사, 강의 등을 하면서, 함께 있으면 편하고 헤어지고 나면 만나고 싶은 친구가 되었다. 필리핀에 짓고 있는 은퇴목회자들을 위한 보금자리에 고진하 목사와 1, 2번을 예약해 뒀다고 말할 때, 동행의 의미를 되새긴다.

▲ 왼쪽부터, 정 목사 부부, 필자, 복음성가 가수 가족)

얼마 전 소천한 소설가 현길언 선생과 경주의 아동문학가 박숙희 선생과는 문단에서 만나면 이야기가 끝이 없다. 시골교회의 봉숭아꽃잔치에도 준비위원으로 참여하겠다고, 언제나 달려와 주었다. 본질과 현상계간지를 같이 창간하면서 창간호에 실어주기도 했다. 각자의 문학 장르가 다른 것이 담백한 대화의 배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초대 품바인 김시라와 괴승 중광은 눈빛이 맑은 사람들이었다. 이천 도요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중광은 하룻 밤을 지새우며, 도자기에 쓴 나의 시에 십자가 휘호로 우정을 다짐했는데,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 중광이 필자의 시에 쓴 십자가와 사인

김 시라는 유네스코 인증을 위한, 강화고인돌 문화축제의 시 낭송 프로그램에 함께 참석했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 날, 웅크리고 날밤을 새우며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가슴에 새겼다. 자신의 극장이 있는 대학로에 오면 멋지게 맞아 주겠다던 그는 어느 날 신문을 통해서 부고를 전했다. 그래서 ‘눈이 너무 맑은 사람은 일찍 죽는다’고 믿는다. 박창현 감신대 교수와 정연수 이현식 손웅석 목사 등과 건강한 목회연구소를 하면서 개척교회를 위해 쏟은 열정과 목양의 깊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쉽지 않은 행운이었다.

▲ 최장수 장로 안수 보좌하는 필자

15-6년 전부터는 동기들 10여 명이 서울의 임형순 목사를 중심으로 함께 늙어가는 의미를 깨닫는 중이고, 은퇴 후에 토스트에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정독하고 인문학 밴드를 만든 정옥성 목사와 은퇴 목사들을 위한 개척교회를 하면서 편안한 노후를 반납한 이천식 동기가 있어서 그렇게 낯설지 않다. 10여 전 어느 날 은 갑자기 시골의 신생 상업고등학교 동기들이 찾아왔다. 수줍고 착하기만 하던 최장수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정원이, 기호, 상구 등과 옛날의 상처를 감싸주고, 며칠 전에는 자가격리 중인데도 차에 고기부터 청과상의 과일을 종류대로 다 싣고, 서재까지 들어와서 두어 시간 머물다 갔다. 코로나도 막아서지 못하는 유일한, 하나님이 보내 주신 천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나서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고향의 부모나 형제들까지도 눈치를 봐가며 얼굴을 봐야 하는 시간이 2년을 넘기고 있다. 하나 둘씩 떠나가고 거리는 멀어지는데, 몸은 무너져 내리고 가슴의 빈자리는 점점 더 커졌다. 집을 나서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고 모든 관계가 증발해 버린 것 같다.

그때 라이딩을 시작했다. 몇 번 같이 땀을 흘리고 나니까 허물이 없어졌다. 라이딩 거리가 20km에서 30km로, 다시 40km에서 5,60km로 늘 (김병대 목사와 함께) 어날 때마다 신기하고 믿어지지 않아서, 밥을 먹고, 차를 같이 마시는 일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편해졌다. 라이딩은 여럿이 모여서 출발하지만, 달릴 때는 혼자다. 가끔 외마디 말을 건네기는 하지만, 언덕을 오를 때는 숨이 턱에 차고, 평지라도 고속으로 달리면 가슴이 터질 듯하고, 조금의 방심이 사고를 부르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만나는 회가 거듭될 때마다 마음의 거리는 좁혀지고, 한여름이 지날 때쯤에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눈을 뜨면 보게 되는 친구들이 되어 있었다.

▲ 김병대 목사와 함께

김병대!

나는 우리 라이딩 팀의 리더인 그를 대장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대장인 조석진 목사 두 사람은 내 생애 중 처음 만난 완벽한 스승이다. 조석진 목사가 지장이고 맹장이라면, 김병대 목사는 덕장이고 진정한 섬김의 리더십(Serent leadership)의 전형이다. 조석진 목사가 연습과 실전, 코스 디자인부터 사진과 기록까지, 다재다능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총괄코치라면 김병대 목사는 조용한 미소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고, 목소리의 톤이 높아진 적도 없고,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망설임이나 당황한 적이 없이 완벽하게 상황을 장악하고 정리하는 감독이다. 초보인 내가 보기에는 끝을 모르는 라이딩 실력을 갖추고, 자전거의 조립부터 수리까지 혼자서 다 처리하면서도 10명의 동호회원 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를 지킨다. 정기 라이딩을 하루 하다 보면, 나처럼 잘 넘어져서 자전거의 체인이 엉키거나, 뒷드레일러가 이탈되고 행어가 휘어져서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경우, 펑크가 나서 (노상수리하는 김병대 목사) 뙤약볕이나 손이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현장 수리해야 하는 경우가 꼭 생긴다. 그래서 대장이 있어야 모두 안심하고 즐거운 라이딩이 된다.

▲ 노상수리하는 김병대 목사

그는 친구가 아니라 위대한 스승이었다. 나는 좋은 친구 10명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 스승을 얻은 것이다. 누가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1년 동안 바꿔 놓을 수 있을까? 나뿐 아니라 함께 하는 모두가 그의 손으로 다듬어 놓은 작품이다.

나는 좋은 스승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래서 교수를 좋아한다. 충주에 와서 봉숭아꽃잔치를 시작하고 백 한기 면장의 권유로 ‘충주포럼’을 하면서 한국교통대학교의 도시공학과, 건축과 교수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들도 나의 서재 2층에서 차를 마시며, 내려다보는 봉숭아꽃밭을 좋아해서 매년 여름에는 삼겹살을 굽기도 했다.

▲ 봉숭아꽃잔치의 황금찬 시인

▲ 최규창 시인의 시

▲ 이탄 시인의 친필 시

황금찬 선생은 미수를 넘긴 노구를 이끌고, 처음 시작하는 시골 교회의 봉숭아꽃잔치에 3년 동안 시 낭송과 문학강연을 하시면서, 충주시 의회 부회장 과 서충주농협 조합장을 지내신 권 용훈 선생과 함께 봉숭아꽃잔치를 키워 주신 분이다. 기독교문인협회를 함께한 최규창 시인을 중심으로 경희대의 박이도, 외대의 이탄, 인천대의 유승우 교수와 임승천 , 신을소 시인, 언제나 교정을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는, 장애인문학상 시상식에서 관계자로 만난 편집하는 수필가 김지안 선생은 목회하면서도 펜을 놓지 않게 해 주시는 고마운 분 들이다.

50대 후반에 교통대 영문학과에 편입해서는 조남호 교수를 만났다. 철없이 학술대회에 참가한 나이 든 학생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끝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형성과정을 통해서 본 미국영어와 영국영어의 비교연구’라는 논문은 그래서 나에게 좋은 스승이 있다는 포만감을 안겨준다.

 잃어버린 건강과 코로나로 인한 단절은 이 모든 것들을 과거형으로 돌려놓았다. 생각해 보면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고, 선뜻 전화기를 들기도 쉽지 않다. 현실은 황량한 사막인데 지난날의 영화를 이야기하고 꿈꾸는 것처럼 초라한 일이 어디 있을까?

▲ 오프로드 라이딩, 오른쪽부터 조석진, 김병대

무심히 지나치고, 눈길 한번 안 줄 때도 가까이 있었고, 내가 한발 다가서고 마음을 열자, 한결같이 곁을 지키는 우리의 대장, 김병대 목사를 보면서 매일 회개한다. 언제부터인가 감독 감리사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라는 카스트와 교회의 크기에 따라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영악함이 몸에 배어 버린 나와 감리교회와 한국교회를!

코로나바이러스가 천형이라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죗값이라면, 모든 걸 포기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책임을 정치인들에게 돌리고, 정부의 잘잘못을 따지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어느새 목회자도 한껏 높아진 교인들도 세상과 똑같이 가진 것에 대한 집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종교인이 되어버린 것인가.

하나님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버린 관계들을 거미줄 걷어 내듯이 깨끗이 청소해버리고 싶으셨는가 보다. 그런데 인간들의 저항이 너무 거세서 1년, 2년, 3년이 돼도 끝이 나지 않으니 지쳐가고 계시지는 않은지. 그 허허벌판에서 만난 친구들이 고맙고 소중하다. 20여 년을 같은 자리에서 함께했던 얼굴들이었는데, 다 잃고 포기해야 할 절박한 순간까지도 깨닫지 못했다.

평생을 찾았던 스승이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진짜 스승은 지독한 코로나바이러스였다.

▲ 춘천 의암호반에서 김병대 대장

(춘천 의암호반에서 김병대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