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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구경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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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3월 24일 (목) 01:05:34 [조회수 : 2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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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이다. 음성의 장날은 2와 7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 그러니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로 한 달에 여섯 번의 장이 서는 것이다. 매달 여섯 번의 장이 서는 날이면 한산한 읍내가 사람들로 북적거려 사람사는 풍경을 보여준다. 더욱이 봄을 맞은 장날은 겨울에 여는 장보다 더 시끌벅적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시장은 일이 있건 일이 없건 어슬렁거리기에 좋은 장소다. 상점 안의 물건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과 일대일로 마주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물건을 구경만 하고 나오는 것도 껄끄럽다. 괜히 등 뒤가 뜨거워지는 느낌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그런 불편을 덜어준다. 지나가다 눈에 띄는 물건이 있으면 얼마냐 물어보고 고민하는 척하다 안사도 상점만큼의 불편함은 없다. 주인도 억지로 사라고 독촉하지 않는다.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 모두 그러려니 한다. 상점과 같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활짝 열려 있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장날 오일장에 있다. 그래서 그 기분을 맛보러 종종 장날 구경을 나선다.  

음성의 시장은 작다. 평일의 시장은 건물 안에서 물건을 판매한다. 도시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오일에 한번씩 열리는 장날은 그야말로 시골스러움이 다분하다. 평소에는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지만 장날만은 그 도로를 온전히 사람들만이 오고가는 공간으로 변신한다. 좌우 양쪽으로 천막을 치고 그 아래에 갖가지 먹을거리와 생필품들이 즐비하게 세워진다. 채소, 생선, 건어물, 국밥, 호떡, 옷, 이불, 농기구, 항아리, 꽃화분, 새, 과일, 뻥튀기 등 노랫말처럼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음성 오일장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 할지라도 가판에 펼쳐진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는 여러모로 쏠쏠하다. 그렇게 구경하다 눈이 가고 마음이 가는 곳엔 발걸음이 천천히 움직이다가 멈춰서곤 한다. 사실 딱히 살려고 발을 멈춘 것은 아니지만 발길이 머문 그곳에서는 잠시 망설이다 어느새 지갑이 열리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내가 주로 사는 것은 핫도그나 도너츠와 같이 집에서 해먹기 불편한 튀김 종류다. 기름 냄새의 유혹과 학창시절 먹었던 추억을 따라 핫도그를 산다. 방금 튀겨낸 핫도그는 설탕과 케찹 범벅으로 먹는게 맛있다. 핫도그 하나는 시장 입구에서 시장 끝까지 구경하며 먹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물론 그 긴거리를 조절하여 먹는 것도 나름의 능력이다.

춘삼월이라 요즘 장에는 꽃과 나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시장 입구부터 화려하고 화사한 꽃들이 반겼다. 사람들이 꽃을 가리킬 때마다 주인의 입에서 꽃 이름이 술술 나왔다. 또 꽃의 용도도 기가 막히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얼마 전 철쭉 다섯 주를 사다 뒤안에 심었다. 나도 꽃 종류를 사고 심지만 수많은 냥이들과 닭들의 횡포(?)에 꽃들이 해를 넘기는 것을 못봤다. 냥이들은 볼일을 보느라 땅을 파헤치고, 닭들은 눈에 띄는 것이라면 뭐든 먹어치우기 때문에 꽃들이 매년 죽어버렸다. 그런 뒤로는 꽃보다는 꽃나무를 심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모르고 다양한 꽃들을 심기도 하고 씨앗을 뿌리며 멋진 정원을 꿈꿨는데, 웬걸! 해마다 풀들만 무성하였다. 그렇게 하여 지금은 가장 무난한 개나리와 라일락으로 대체하였다. 그런 정성이 올해는 뒤안 여기저기 개나리와 라일락 꽃망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장날의 봄꽃들은 아쉽지만 그저 구경만 할 뿐이다.  
 
그런 볼거리가 요즘은 뜸해졌다. 뭐든지 익숙해지면 그렇듯이 장날에 펼쳐진 좌판도 거의 외울 정도가 되면서 시들해졌다. 이전에는 하나씩 정성을 들이며 천천히 둘러보았는데 이제는 바람에 스치듯 후딱 갔다가 돌아온다. 그러면 10여 분도 채 안되어 시장 구경을 마치는 셈이다.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 마음을 뜨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나이드신 분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그분들은 내가 처음 장날을 맞은 때와 같은 느림으로 이곳부터 저쪽까지 둘러보고 흥정하고 물건을 사신다. 손에는 깜장 비닐이 한가득이다. 아마 일주일치 찬거리가 아닐까. 나같이 젊은 사람이야 수시로 차를 몰고 나와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겠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오랜 세월 장날을 통해 물건도 구입하고 사람도 만났을 터이니 장날을 맞는 마음이 나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된다. 그 다르다는 마음가짐이 옷차림에서 나타난다. 화려하고 깔끔한 옷차림새다. 신발은 깨끗한 구두를 신고 가죽 가방은 필수다. 그리고 손가락엔 번쩍이는 반지나 옥반지가 꼭 있다. 게다가 새색시와 같이 얼굴에 곱게 분칠을 하고 나오신다. 장날을 대하는 자세가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듯하다. 평소엔 농삿일에 분주하여 아무렇게나 입고 다녔을 터인데, 장날엔 화려한 변신을 하고 화려한 외출로 하루를 빛낸다. 그 정성과 마음가짐이 아름답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장날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활발했다. 그리고 재작년 읍사무소가 터미널 옆에 있었던 때만 해도 장날이라 하면 제법 장다운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읍사무소가 외곽으로 옮겨가고, 코로나가 연거푸 찾아오면서 장날 분위기도 한풀 꺽였다.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는 장날도 잠정 휴업을 하기도 하였다. 나부터도 한달에 여섯 번 중 한두 번 갈까말까 했다. 농촌의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그나마 장날인데 장터를 찾는 발길이 줄어들면 나중엔 장터도 하나둘씩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기 전에 다음 장날에도 할 일이 있건 없건 어슬렁거리며 입구에서 끝까지 구경하러 가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핫도그와 도너츠도 사고. 그리고 화려한 변신을 하고 외출한 그분들도 마주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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