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되었다. 5%나 뒤져있던 윤석열 후보가 12시 반경부터 역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세 시가 넘어서야 그가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되는 것을 보고 나서 잠을 청해 보았지만, 네댓 시간 초박빙의 개표 결과에 몰두했던 탓인지 바로 잠이 오지 않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 정치에 입문한 지 겨우 8개월 만에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출구조사에서는 0.4%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고 하더니 개표 초기에 5%나 뒤져있다가 결국 0.73%로 차이로 당선되었으니 이건 정말 마음조리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의 결말은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안도의 한숨을 쉴 만한 일이다. 어느 편을 들든지 이번 대통령 개표는 보지 않으면 후회할 만한 드라마였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된 후에 방송에서는 그를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보통 ‘당선자’라고 했는데, ‘당선인’이라는 말이 새롭게 들렸다. ‘자’자를 붙여서 흔히 애국자, 독자, 혹은 신자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습관인데, 왜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꾸었을까? 

그렇게 바꾼 것은 당선자의 ‘자’자가 ‘놈자(者)’자여서 그 글자에 하대하는 뉴앙스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물론 우리가 당선자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당선된 ‘사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선자와 당선인이 의미하는 것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자’를 ‘인’으로 바꾼 것은 우리가 지금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대통령을 어느 정도 예우하는 것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 아닐까?

당선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개역개정 성경>에 나오는 “애통하는 자”, “믿는 자”, “악한 자” 같은 단어들이 생각났다. 우리는 지금 일상생활에서 ‘자’ 대신 ‘사람’을 써서 애통하는 사람, 믿는 사람, 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도 ‘자’ 대신 우리가 흔히 쓰는 ‘사람’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에서는 왜 지금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애통하는 자’로 번역된 <개역개정 성경>을 고집하는가? 성경을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번역해야 해야 하지 않을까? 옛날에 기록된 성경은 옛날 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말로 번역해야 하나님의 계시를 우리가 쉽게 그리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눅 6:24) 같은 구절이 그 표현이 몸에 밴 교인들에게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그들이 지금 전혀 사용하지 않는 “화 있을진저”를 읽으면서 어리둥절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이든 교인들에게는 문장에 구두점이 없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글을 쓸 때는 반드시 구두점을 찍어야 한다고 교육받은 젊은이들에게는 구두점이 없는 성경의 문장이 틀린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사용한 옛날 사람들은 문장에 구두점을 찍지 않았지만, 번역문에서는 지금 우리가 문장을 쓰는 원칙대로 구두점을 찍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개역개정 성경> 외에 현대인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이 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부요한 자’를 ‘부요한 사람’으로, ‘화 있을진저’를 ‘화가 있다’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그 성경에서는 구두점도 찍어 놓았다. 이렇게 이 시대에 맞는 말로 번역된 성경이 있는 데도 많은 교회에서 <새번역 성경>을 채택하지 않고 <개역개정 성경>을 고집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시원한 바람과 햇빛을 외면하고 답답하고 어두운 우물 안에 살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교회 지도자들의 고집 때문인가 아니면 무지 때문인가? 그들의 고집이나 무지 때문에 한국교회의 문이 닫혀가고 있다.

교인들 가운데에는 그렇게 시대를 따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느냐고, 문화를 따르려다 보면 신앙의 본질이 훼손될 염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주의의 기본 노선이다. 전통적인 신앙의 내용이 변해서는 안 되지만, 그 내용을 표현하는 언어는 시대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성경의 언어 표현이 이해되지 않거나 생소한 것이라면 그 내용이 올바로 전달되지 못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30년이 한 세대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5년이 한 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IT 기술은 해마다 바뀌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빨리 변하는 사회에 사는 젊은이들이 성경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옛날 말을 접하게 되면, 그들은 고리타분한 교회를 떠나고 만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 중요한 것 하나는 교회가 시대를 등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17:21)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안에서 역사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이 시대를 등져서는 안 된다. 이 시대 안으로 들어가서 이 시대와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지금 ‘당선자’라고 말하지 않고 ‘당선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애통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애통하는 자’라고 한다. 교회가 시대를 앞서가기는커녕 시대를 따라가지도 못한다. 그런데 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지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되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하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