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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다.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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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3월 09일 (수) 23:12:49 [조회수 : 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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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를 두고 확실히 따뜻하다. 아침 저녁으로 냉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춘삼월 중순으로 향한다. 일주일 전만 해도 외출을 할 때면 완전 무장은 아니더라도 겨울다운 옷을 입고 나갔는데, 요 며칠 사이는 그 느낌을 훌훌 털어버렸다. 겉옷으로 패딩조끼만 입더라도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고, 살짝 두터운 바지는 둔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겨울내내 신었던 덧버선은 양말과 덧버선 사이에 열선을 깐 듯이 후끈거렸다. 여러모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겨울의 무거운 무게들이 하나둘씩 털어지고 한낮엔 가벼운 옷차림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햇살이 따사롭다. 

햇살이 따사로우니 몸도 저절로 가벼워진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당에 내려가 쪼그려 앉아 봄을 쬔다. 간식거리를 들고 앉았으면 내 옆으로 수많은 냥이들과 한라가 모여든다. 제일 덩치가 큰 한라부터 한 조각 떼어주고, 그 다음에는 눈에 들어온 냥이, 간식을 먼저 낚아채려는 냥이, 저만치 물러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냥이, 숨어 있는 냥이들에게 한 조각씩 나눠준다. 더 먹겠다고 요동치는 녀석에겐 꿀밤을 한 대 주거나 낮은 목소리로 차례를 기다리라고 주의를 주곤 한다. 알아듣는 냥이도 있지만, 천방지축 죽어라 달려드는 냥이도 있다. 이런 저런 모습으로 나의 손만 바라보던 녀석들은 나의 손이 깨끗해지는 것을 볼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린다. 얼마나 얄미운지 모른다. 그러다 내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잽싸게 몸을 돌려 내 옆에 와서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행동한다. 그렇게 따사로운 햇살 아래 주거니 받거니 하며 봄을 보낸다. 

엊그제는 집 주위를 돌다가 무너진 담벼락을 보았다. 작년 가을에 커다란 소방차가 운전 미숙으로 우리집 담장을 들이받았는데 이제 갓 들어온 신입 소방사가 진급에 영향이 간다면서 선임 상사가 선처를 구해 보험처리 없이 얼기설기 담장을 보수하도록 했다. 회반죽없이 돌만 얹어 놓은 상태라 고양이들이 담을 넘을 때마다 돌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겨울 동안 그 담이 눈에 거슬렸는데 엊그제야 비로소 무너진 담을 정리했다. 정리라고 해야 나도 그 소방사처럼 무너진 돌들을 주워 쌓아 올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무너져 내려 휑한 것보다는 나았다. 그런 다음 길가 쪽으로 너무 뻗어있는 앵두나무, 찔레꽃, 뽕나무, 이름을 모르는 나무 등의 가지를 소심하게 잘라냈다. 과감하게 자르지 못하는 것은 나만의 작은 이유 때문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꿀벌 개체 수가 엄청나게 줄었다고 한다. 농사에는 꿀벌이 있어야 한다. 꿀벌로 인해 작물의 수정이 이뤄지는 것인데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의 먹을거리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고 그러면 우리의 밥상은 초라해질 수 밖에 없다. 말이 초라해지는 것이지 꿀벌 소멸은 기후 위기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사실 농촌살이 10년째 들면서 해마다 우리 집을 찾아왔던 꿀벌들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접한다. 꽃은 피나 벌은 찾아들지 않는 이상한 일도 있다.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만 우리 주위 농사가 대부분 친환경 농업이 아닌 농약을 치는 관행 농업이 잦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자연의 위기 앞에서는 인간보다 작은 생물들이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연유에서인지 해마다 오월에 피는 앵두꽃에서 꿀벌의 윙윙대는 소리를 들으면 무척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다. 한 마리의 꿀벌이라도 더 유혹하기 위해 나는 앵두나무를 잘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뽕나무는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났다. 이삼 년 사이 훌쩍 자라 매년 6월이면 굵은 오디가 지붕과 땅에 떨어져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도시에 있었더라면 무공해 오디에 눈이 휘둥그래졌겠지만, 해마다 열리는 열매이고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또 앵두나무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오디는 앵두에 비해 매년 찬밥 신세였다. 올해는 관심을 갖고 열매를 얻어 볼까 한다. 그런 뽕나무 가지도 가지를 타고 올라가 잘라냈다. 찔레나무는 번식을 너무 잘해서 매년 잘라준다. 그렇지 않으면 옆에 있는 나무를 덮어 의도치 않게 죽이기 때문에 몇 가지만 남겨두고 모두 잘라버려야 한다. 대신 찔레꽃의 진한 향기를 맡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런 다음 함석 지붕을 타고 올라간 마당의 머루나무 가지도 대부분 잘라내었다. 그 가지들은 한데 모아 뒤안에 무너져 있는 담장을 대신하여 메꿔 놓았더니 나름 운치있어 보였다. 

조병화 시인의 ‘해마다 봄이 되면’ 중에 첫 구절이 이렇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 맞는 말이다. 생각지않게 집 전체를 둘러보니 올해도 보수해야 할 부분이 눈에 많이 띄었다. 웅크렸던 몸을 움직이며 찾아온 봄을 부지런히 맞으려는 시늉을 한다. 차차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는 날도 줄어들 것이다. 해는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다음 주 정도면 농한기의 여유를 박차고 일어나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에 부지런히 준비할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을까. 올해도 나는 봄을 그렇게 맞는다. 봄을 맞다.

며칠 사이를 두고 확실히 따뜻하다. 아침 저녁으로 냉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춘삼월 중순으로 향한다. 일주일 전만 해도 외출을 할 때면 완전 무장은 아니더라도 겨울다운 옷을 입고 나갔는데, 요 며칠 사이는 그 느낌을 훌훌 털어버렸다. 겉옷으로 패딩조끼만 입더라도 어깨가 무겁게 느껴졌고, 살짝 두터운 바지는 둔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겨울내내 신었던 덧버선은 양말과 덧버선 사이에 열선을 깐 듯이 후끈거렸다. 여러모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겨울의 무거운 무게들이 하나둘씩 털어지고 한낮엔 가벼운 옷차림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햇살이 따사롭다. 

햇살이 따사로우니 몸도 저절로 가벼워진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당에 내려가 쪼그려 앉아 봄을 쬔다. 간식거리를 들고 앉았으면 내 옆으로 수많은 냥이들과 한라가 모여든다. 제일 덩치가 큰 한라부터 한 조각 떼어주고, 그 다음에는 눈에 들어온 냥이, 간식을 먼저 낚아채려는 냥이, 저만치 물러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냥이, 숨어 있는 냥이들에게 한 조각씩 나눠준다. 더 먹겠다고 요동치는 녀석에겐 꿀밤을 한 대 주거나 낮은 목소리로 차례를 기다리라고 주의를 주곤 한다. 알아듣는 냥이도 있지만, 천방지축 죽어라 달려드는 냥이도 있다. 이런 저런 모습으로 나의 손만 바라보던 녀석들은 나의 손이 깨끗해지는 것을 볼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린다. 얼마나 얄미운지 모른다. 그러다 내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잽싸게 몸을 돌려 내 옆에 와서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행동한다. 그렇게 따사로운 햇살 아래 주거니 받거니 하며 봄을 보낸다. 

엊그제는 집 주위를 돌다가 무너진 담벼락을 보았다. 작년 가을에 커다란 소방차가 운전 미숙으로 우리집 담장을 들이받았는데 이제 갓 들어온 신입 소방사가 진급에 영향이 간다면서 선임 상사가 선처를 구해 보험처리 없이 얼기설기 담장을 보수하도록 했다. 회반죽없이 돌만 얹어 놓은 상태라 고양이들이 담을 넘을 때마다 돌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겨울 동안 그 담이 눈에 거슬렸는데 엊그제야 비로소 무너진 담을 정리했다. 정리라고 해야 나도 그 소방사처럼 무너진 돌들을 주워 쌓아 올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무너져 내려 휑한 것보다는 나았다. 그런 다음 길가 쪽으로 너무 뻗어있는 앵두나무, 찔레꽃, 뽕나무, 이름을 모르는 나무 등의 가지를 소심하게 잘라냈다. 과감하게 자르지 못하는 것은 나만의 작은 이유 때문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꿀벌 개체 수가 엄청나게 줄었다고 한다. 농사에는 꿀벌이 있어야 한다. 꿀벌로 인해 작물의 수정이 이뤄지는 것인데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의 먹을거리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고 그러면 우리의 밥상은 초라해질 수 밖에 없다. 말이 초라해지는 것이지 꿀벌 소멸은 기후 위기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사실 농촌살이 10년째 들면서 해마다 우리 집을 찾아왔던 꿀벌들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접한다. 꽃은 피나 벌은 찾아들지 않는 이상한 일도 있다. 그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만 우리 주위 농사가 대부분 친환경 농업이 아닌 농약을 치는 관행 농업이 잦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자연의 위기 앞에서는 인간보다 작은 생물들이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연유에서인지 해마다 오월에 피는 앵두꽃에서 꿀벌의 윙윙대는 소리를 들으면 무척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다. 한 마리의 꿀벌이라도 더 유혹하기 위해 나는 앵두나무를 잘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뽕나무는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났다. 이삼 년 사이 훌쩍 자라 매년 6월이면 굵은 오디가 지붕과 땅에 떨어져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도시에 있었더라면 무공해 오디에 눈이 휘둥그래졌겠지만, 해마다 열리는 열매이고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또 앵두나무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오디는 앵두에 비해 매년 찬밥 신세였다. 올해는 관심을 갖고 열매를 얻어 볼까 한다. 그런 뽕나무 가지도 가지를 타고 올라가 잘라냈다. 찔레나무는 번식을 너무 잘해서 매년 잘라준다. 그렇지 않으면 옆에 있는 나무를 덮어 의도치 않게 죽이기 때문에 몇 가지만 남겨두고 모두 잘라버려야 한다. 대신 찔레꽃의 진한 향기를 맡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런 다음 함석 지붕을 타고 올라간 마당의 머루나무 가지도 대부분 잘라내었다. 그 가지들은 한데 모아 뒤안에 무너져 있는 담장을 대신하여 메꿔 놓았더니 나름 운치있어 보였다. 

조병화 시인의 ‘해마다 봄이 되면’ 중에 첫 구절이 이렇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 맞는 말이다. 생각지않게 집 전체를 둘러보니 올해도 보수해야 할 부분이 눈에 많이 띄었다. 웅크렸던 몸을 움직이며 찾아온 봄을 부지런히 맞으려는 시늉을 한다. 차차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는 날도 줄어들 것이다. 해는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다음 주 정도면 농한기의 여유를 박차고 일어나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에 부지런히 준비할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을까. 올해도 나는 봄을 그렇게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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