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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나는 봄기운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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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3월 03일 (목) 00:00:55 [조회수 : 3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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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세찬 비가 내렸다. 바람도 불고 간간이 하늘 저편이 번쩍이더니 ‘콰르릉’ 하며 천둥도 내리쳤다. 저녁밥을 먹던 냥이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밥상이 난장판으로 변했다. 한참 지난 뒤 진정이 되었던지 그제서야 슬금슬금 밥상 앞에 모이더니 다시 밥그릇에 머리를 박으면서도 연신 주위를 경계하며 남은 밥을 먹었다. 그 옆에서 나는 녀석들을 안심시키며 흩어진 사료를 줍느라 꽤 고생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빗방울이 싫지 않았다. 이주 전에 내린 비만 해도 쌀쌀한 기운을 느꼈는데 불과 일주일 사이에 내리는 빗방울은 쌀쌀함이 아니라 시원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밤새 지면을 흠뻑 적실 만큼 내린 비는 이월의 마지막 날, 겨울의 끝을 멋들어지게 장식하고 새 계절인 봄을 맞게 하였다. 잠시 찬 바람이 불긴 했어도 하루 이틀 사이 매운 기운은 사라지고 낯을 간지럽히는 훈풍으로 봄을 알렸다. 

삼월 아침, 하늘이 맑다. 현관문을 여니 따뜻한 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다. 한라와 냥이들이 현관 앞에서 기다리다가 내가 나가니 일제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반긴다. 아침밥 달라는 소리다. 녀석들 물그릇을 들여다보니 얼지 않았다. 간밤 기온이 영하가 아니었다는 소리다. 먼저 한라에게 밥을 챙겨주고, 냥이들의 식사 장소로 발길을 옮기는데 가는 길이 푹신푹신했다. 겨우내 꽝꽝 얼었던 땅이 지난 일주일 사이 따스한 기운에 녹기 시작한 것이다. 땅이 녹으면서 작년 여름에 열심히 도포해 놓았던 시멘트 바닥이 균열이 생기면서 거의 1~2센티 정도 불쑥 올라와 있었다. 그곳만이 아니다. 코제뜨라는 냥이에게 밥을 주다가 밥그릇 밑에 깔려있는 새싹이 눈에 띄었다. 그릇을 들어보니 어느새 쑥이 쑤욱 올라와 있었다. 긴 겨울을 견디고 돌 틈 사이로 아기 손가락 마디만큼 얼굴을 디밀고 올라와 인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침마다 돌 틈의 쑥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다. 밭 옆의 비탈은 어떤가. 그곳을 지나가는 봄기운에 언 땅이 녹으면서 땅 위로 물이 배어나오고 흙은 포슬포슬 흘러내리고 있었다. 

봄기운에 몸과 마음도 덩달아 변했다. 겨울내 내 몸을 추위로부터 보호해주었던 옷이 무겁게 느껴졌다. 사무실의 난로는 금새 차가운 공기를 흡수하여 따뜻한 공기를 뿜어내었다. 그 바람에 겨울 동안 느끼지 못했던 목의 칼칼함이 더없이 느껴져 얼마나 건조한 환경속에서 견디어 왔던가를 새삼 깨닫기도 했다. 춥다는 핑계로 움직이는 것을 최대한 절제하여 왔는데 따뜻한 기운은 나를 밖으로 내몰았다. 그래서 아주 오래간만에 한라의 목줄을 바꿔 산책을 나갔다. 얼씨구나 좋다를 연발하는 한라는 산책하는 내내 여기저기 영역 표시만 하기 바빴다. 한라가 영역을 표시하는 동안 나는 산과 들과 하늘과 바람을 바라보며 봄을 느낀다. 봄기운에 여유로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렇게 몸이 활력을 되찾으니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어릴적 내가 배웠던 ‘지덕체’는 농촌에 내려와서 ‘체덕지’로 바뀐지 오래다. 나이도 나이이거니와 농사를 지으면서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짐을 깨달았다. 갱년기를 맞이한 지난 2년 동안은 몸 상태가 매우 헤롱헤롱 하여 정신까지 안드로메이다를 다녀왔었기에 더욱 그렇다. 

봄기운이 솟아나면 농부의 손길이 바빠질 때다. 지난 주일 교우 한 분이 오지 않았다. 마을 공동체에서 하는 고추 모종을 포트에 심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예배를 드린 교우 모두가 벌써 고추 모를 심는 시기이냐고 놀라면서도 달력을 보니 아, 벌써 그렇게 되었네 라며 수긍했다. 그리곤 지난 시절 동고동락하며 농사를 지었던 얘기를 하였다. 어떤 해는 고추 모를 잘못 관리하여 모두 얼려 한 해 고추 농사를 망친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발을 동동구르며 안타까워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모두 추억이란다. 지금 그분들은 모두 예순이 넘고 칠순을 바라보고 계신다. 농사라면 지긋지긋 하다고 하시면서도 농사 얘기만 나오면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농사는 막막했던 일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교회는 교우뿐만 아니라 마을 농사일에까지 품앗이로 정을 나누어서 지금도 그때 일을 잊지않고 고마워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맛이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 기업농처럼 바뀌거나 아니면 농사를 짓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맘때면 농부의 발소리가 흔히 들렸는데 논이 밭으로, 밭이 대지로, 대지에 집들이 들어서면서 농토는 계속 줄어가고 있다. 그러니 봄기운이 솟아나기는 하지만 그 기운에 한 해를 시작하는 농부의 손길은 차츰 사라지고 있으니 농촌도 도시와 별반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은 순식간이겠다. 

어쨌거나 솟아나는 봄기운에 밭으로 출근할 날이 머지 않음을 직감한다. 남아있는 콩도 털고 팥도 털며 농기구들을 살피고 농사지을 준비를 해야 하겠다. 느긋함과 한가로움은 가고, 에헤라! 이제 토요일과 주일이 바빠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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