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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수자 차별 찬반 논쟁에서 누가 이길까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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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2월 28일 (월) 23:43:27
최종편집 : 2022년 03월 20일 (일) 16:06:47 [조회수 : 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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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단 경기연회는 이동환 목사가 인천에서 2019년 8월 31일에 열린 퀴어 문화 축제 현장에서 성 소수자들에게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 목사를 교단 재판에 회부했다. 그러자 소장파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서 이 목사를 단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교단의 장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리회 재판국에서는 이 목사에게 정직 2년을 선고했고 이 목사가 항소했다. 그 항소심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런저런 사유로 1년이 넘도록 연기되다가 지난 1월 25일로 재판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때 재판정 앞에서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어서 양측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했다. 그런데 심사위원장이 불출석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져서 재판이 무산되고 말았다. 

올해 2월 15일에는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 공동체』라는 제목의 한국교회 최초의 성 소수자 목회 안내서가 나왔다. 이 책을 내면서 최형묵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 안에 엄연히 존재하는 성 소수자의 현실을 잊지 않고, 당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 내미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이 안내서가 성 소수자 목회에 관한 공적인 논의를 형성하는 ‘제안서’가 되기를 바란다.”

이동환 목사의 재판에 이어서 성 소수자를 위한 목회 안내서가 나옴으로써, 앞으로 한국교회에서는 성 소수자에 관한 찬반 논쟁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뜨거워질 성 소수자 차별 찬반 논쟁에서 어느 편이 이기게 될지 궁금하다.

성 소수자에 관한 찬반 논쟁은 한때 팽팽하게 맞섰던 여성 안수에 대한 찬반 논쟁을 상기시킨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측은 성경의 기록을 앞세웠고 찬성하는 측은 여성 차별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현대의 사회·문화의 상황에 맞게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랫동안 치열한 공방 끝에 가까스로 다수의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교단에서는 여성 안수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 안수의 논쟁과 마찬가지로, 성 소수자에 관한 찬반 논쟁도 성경의 기록을 내세우는 측과 현대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고려하는 측이 대립하고 있다. 이렇게 두 가지 문제에서 찬반의 논거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새로 대두된 성 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여성 안수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기로 한다.


여성 안수에 대한 논란의 귀결

성경에는 여성 차별이 명시되어 있다(고전 14:34-35; 딤전 2:11-14). 따라서 성경에 따르면 여성에게 안수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로교 합동 교단이나 고신 측에서는 지금도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야 말로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신실한 신앙인들이라고 믿는다. 

반면 기독교장로회나 감리회 교단같이 진보적인 교단에서는 여성주의 운동을 받아들여서 진작부터 여성을 차별하지 않기로 했다.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 사람들의 편에서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불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교단에서는 여성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 된 세상에서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 중간 지대에 자리한 장로회 통합 교단에서는 무려 60년 동안 치열한 찬반 논쟁을 거쳐서 결국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기에 이르렀다.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성경의 기록뿐 아니라 여성 차별에 관한 고정관념도 반대 측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에는 남녀차별이 명시되어 있으나 그 기록은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남녀가 평등하다고 믿는 지금 성경의 기록을 따르기보다는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았다. 성경의 기록을 중시해야 하지만,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기록된 성경 구절이 현대의 사회적 통념과 다른 경우에는 그 기록을 지금의 통념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유럽인들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모토를 앞세우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그들의 곤경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했다. 18세기 말에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를 앞세우고 일어난 불란서 혁명은 차별받는 일반 대중이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 일으킨 시민혁명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미국의 남북 전쟁 역시 차별받는 흑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었다. 

교회에서는 유물론적 공산주의를 배격하지만, 19세기 중반에 마르크스가 정립한 공산주의 이론도 소외되고 차별받는 노동자와 농민들을 해방시키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럽에서는 가부장 사회에서 차별받아온 여성들이 여성 해방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은 남녀평등 사회를 이루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소외되어왔던 장애인도 인간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고 믿고 장애인 복지를 위해서 힘쓰고 있다.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줄기찬 인간 해방 운동의 결과, 지금 우리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대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교회가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소외된 자들을 차별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이러한 사회·문화적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성 소수자 차별 논란에서 예상되는 귀결

성경에는 여성 차별에 관한 기록뿐 아니라 동성애를 금하는 기록도 나온다(레 18:22, 20:13; 롬 1:27; 고전 6:9; 딤전 1:10). 그래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그 구절들에 근그해서 교회에서는 모름지기 동성애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 안수 문제는 오랫동안의 논란을 거쳐서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지만, 동성애 문제는 최근에 와서야 진보적인 교단에서 대두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반대하는 측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퀴어 축제에서 축도한 이동환 목사가 제소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성 안수를 반대하던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성경의 기록이지만, 실상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이다. 그런데 여성 차별의식보다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성 소수자들을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여성 안수를 거부하던 측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측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 양측은 우선 성경의 기록을 내세운다. 그리고 사회적인 고정관념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남녀가 동등하다는 현대의 시대정신을 따라서 여성 차별에 관한 고정관념뿐 아니라 성경적 근거를 극복함으로써 다수의 교단이 여성 안수를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 교회가 인간은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현대의 사회정신에 따라서 성 소수자들도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여성 차별이나 동성애 혐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나 고정관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뜻을 본받는 일이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모든 소외된 자들을 품음으로써 인간을 차별하는 당대의 고정관념을 해체하셨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옛날의 고정관념에 따라 기록된 구약과 신약의 서신서에 나오는 여성 차별과 동성애 혐오가 예수님의 삶이나 가르침과 다를 때, 우리는 그 고정관념을 해체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죄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그리스도 사건 안에서 오직 민족들과 집단들의 현실적, 역사적, 종교적 차별이 철폐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인간에 대한 전망도 생겨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차별이 철폐되어야 할 대상에는 여성과 성 소수자도 포함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든 차별을 철폐하신 예수님의 초청에 응해야 한다.


마치면서

계몽주의의 영향 아래 19세기에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어느 특정한 신앙 고백이나 신조를 절대시하지 않고 시대사조에 맞추어 자유롭게 그것들을 수용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역사주의적 성경 해석을 받아들여서 축자영감설을 반대했다.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근본주의 신학에서는 과학을 비롯한 현대 학문이나 문화를 외면하고 전통적인 교리를 수호했다. 그리고 그들은 축자영감설을 앞세워서 성경을 문자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주의 신학 사이에 복음주의 신학이 자리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전통적인 신앙 고백을 따르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복음을 현대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해석하려고 했다. 우리가 보수적인 교회라고 말할 때 그 교회는 근본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교회고 진보적인 교회는 일반적으로 복음주의를 따르는 교회다. 

지금 한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근본주의 아니면 복음주의에 속하는데,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기본적인 차이는 근본주의자들은 현대의 학문이나 문화를 외면하는 데 반해서 복음주의자들은 그것들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근본주의적인 보수 교단들에서는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고 복음주의적인 진보 교단들에서는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보수적인 고신대의 이상규 교수는 『다시 쓴 한국교회사』에서 여성 안수에 관해서 언급하면서 교회가 현대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도 교회가 처한 역사적 상황 혹은 시대정신과 무관할 수 없다.”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보수 교단에서 세운 고신대 교수의 이러한 언급은 보수주의의 아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특별히 지적하려는 것은 이 교수가 그의 책에서 교회가 여성 안수를 받아들이게 된 것을 단지 소외된 자를 차별하지 않으려는 현대의 시대정신에만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말대로 시대정신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여성이나 성 소수자 문제를 다룰 때 시대정신보다 더 중시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다. 

과거에 교회는 소외된 자들을 차별하는 시대정신과 예수님의 뜻이 상반될 때 무조건 시대정신을 따랐다. 다시 말하면, 소외된 자들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교회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신 예수님의 뜻을 외면하고 사회의 고정관념에 따라 기록된 여성이나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성경 구절들을 앞세워서 소외된 자들을 차별했다. 인간을 차별하는 고정관념이 예수님의 뜻을 억압했다.

그런데 현대인은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소외된 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대정신과 모든 인간을 품으신 예수님의 뜻이 일치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러한 세상에서 구시대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소외된 자를 차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외면하는 일이다.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정신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일치하는 지금,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 소수자 차별 찬반 논쟁에서 차별에 반대하는 측이 결국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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