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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뜨기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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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2월 16일 (수) 22:48:47 [조회수 : 3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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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을 좋아한다. 치즈의 꼬릿한 냄새를 좋아하듯 청국장 특유의 꼬릿한 냄새도 좋아한다. 어릴적엔 그 냄새가 싫어 코를 막고 억지로 먹었지만 어느 순간 되니 입에 붙기 시작하여 식당에 가면 된장찌개보다 청국장찌개를 더 선호했다. 식당의 음식 재료가 대부분 대기업 맛임에도 불구하고 청국장은 그래도 좀 덜한 기업의 맛이라고 생각하며 먹곤 했다. 청국장이 된장보다 만들기 쉽다고 생각한 얼토당토않은 이유에서였다. 

2014년인가? 이웃에 사는 젊은 내외가 그들이 직접 수확한 콩으로 청국장을 띄었다. 장맛에 일가견이 있으신 연세가 많으신 권사님을 모시고 콩을 삶는 것부터 시작하여 볏짚에 발효하고 찧어 보관하는 방법까지 가르쳐주시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본 적이 있었다. 그 젊은 내외의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이었지만 처음 한 것 치곤 그때까지 먹어본 청국장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잘 띄어졌고 맛도 끝내주었다. 

그 모습과 맛이 기억 저편에서 나를 늘 유혹했다. 나도 언젠간 장 담그는 일을 해보리라 했던 것이 이후 고추장과 된장을 담가봤다. 고추장은 발효가 잘 되어 친구와 지인들에게 나눔을 하였다. 맛이 좋다는 평을 받았다. 대기업 맛과 다른 깊은 맛, 달지 않아 좋았고, 찌개가 깔끔했다는 평이었다. 그 이후 고추장은 떨어지면 담가먹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담갔다. 살짝 실패한듯 싶다. 엿기름을 삭히고 달이는 과정을 조리법대로 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아쉽다. 

된장도 담가봤다. 이웃 어른의 도움으로 한 말을 담갔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항아리를 잘못 보관한 것이다. 습한 곳에 저장한 것과 틈새를 통해 파리가 들어갔나 보다. 한창 발효가 일어날 때 구더기도 같이 번식을 하였다. 결국 단백질 제공에 닭들만 신이 났다. 간장도 색이 맑거나 곱지 않았다. 탁하고 냄새도 역했다. 눈물을 머금고 몽땅 밭 귀퉁이에 쏟아버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죄지은 마음이다. 이후 된장은 이곳저곳에서 얻어먹고 있다. 혼자 먹는 장이라 그런지 한번 받으면 뜻하지 않게 몇 년 더 묵히게 되어 찌개든 나물이든 어느 된장을 써도 음식 맛은 보장되는 셈이 된다. 

올해는 청국장에 도전했다. 내가 직접 심고 거둔 콩 중 밭에 떨어진 아까운 콩들을 주워서 해본 것이다. 레시피는 인터넷이나 유투브에 널려있다. 그중에 만만한 레시피를 선택하여 하면 된다. 가장 쉬운 방범을 찾아서 시작했다. 너무 많이 하면 실패했을 경우 감당하지 못하니 1킬로 정도로 시작해보란다. 콩도 마침 1킬로 정도 되어 하라는대로 했다. 요즘은 옛날처럼 뜨뜻한 아랫목이 없어 전기장판을 이용한다고 한다. 가장 약한 온도에 맞춰 발효를 하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온도가 맞지 않았던거 같다. 3일 후 이불을 제치니 콩이 그대로였다. 가느다란 진이 천갈래 만갈래 일어나야 하는데 겨우 몇 가닥만 보였다. 실망이었다. 된장처럼 버릴 수는 없었기에 약간 으깨질 정도로만 빻은 뒤 뭉쳐서 냉장고에 넣고 하루 정도 숙성을 했다. 그런 다음 마음을 가다듬고 찌개를 끓였다. 냄새는 그럴듯 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비록 내가 생각했던 만큼 만들어지진  않았어도 맛은 청국장이었다. 아니, 실패한 것치곤 근사했다. 내 입이 보장을 하였으니 이웃과 나누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두번째 도전은 좀 신중했다. 콩도 잘 삶았고 볏짚이 없는 대신 마른 풀들을 모아 넣고 발효를 시켰다. 3일 후 이불을 열었더니 오, 성공이다. 콩을 찧을 때마다 가느다란 실같은 진들이 거짓말 보태어 수억 갈래 일어났다. 손가락에도 엉길 정도로 끈끈했다. 덩달아 기분까지 좋아졌다. 소금과 고추가루를 넣고 간을 맞췄다. 빻아 놓은 절구 안에 청국장 진이 가득하여 물에 흘려보내기 아까워 그것으로 찌개를 끓였다. 오호라, 이번에도 괜찮았다. 간이 심심하여 밥 한그릇 뚝딱! 이번것도 맛을 보라고 이웃과 나눴다. 

자신감이 붙었다. 세번째 도전을 하려고 하였으나 아직 콩을 털지 못한 상태다. 청국장은 4월 전까지 띄울 수 있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날이 너무 따뜻하면 콩이 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2월이 지나기 전 콩을 털어보리라 시간을 엿보고 있다. 이번주 우수가 지나면 따뜻한 햇살을 등에 지고 털다보면 콩 한말은 나오지 않을까. 꼬릿한 청국장도 띄우고, 고소한 콩가루도 빻고, 콩자반도 하고, 조금 남겨놨다 여름엔 콩국을 만들어 콩국수도 해봐야겠다. 

점차 옛 맛이 그리워진다. 엄마의 음식이 먹고 싶다. 획일적인 기업의 맛이 아닌 서로 다른 장맛을 맛보고 싶다. 그럴려면 번거로운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시간과 수고가 있어야 먹을 수 있는 것이 엄마의 맛이지만, 엄마의 밥상은 시간과 수고를 해서라도 찾고 싶고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 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그 맛을 얻고자 종종 사서 고생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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