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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
이광섭  |  h-stai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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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2월 11일 (금) 00:18:25 [조회수 : 3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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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업 전력량 100% 재생 에너지 전환 캠페인’이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무개 후보는 ‘RE100’을 잘 알고 있는데, 아무개 후보는 ‘RE100’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게 드러나자, 그 후보는 준비 안 된 후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후보가 상대방으로부터 ‘RE100’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간 “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라는 말 앞에 그만 마음이 덜컥했습니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말은 그의 본심을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라는 말은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즐겨 했던 말이고, 가장 익숙한 반응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것에 안주하고 미래를 닫아버리는 폐쇄적인 사고방식의 전형입니다. 

대통령선거는 미래를 여는 선거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가치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새로운 미래 사회를 열어갈 준비와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검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미래 사회를 열기 위한 핵심과제가 무엇일까요? 기후 위기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는 기후 위기 문제를 여전히 경제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RE100’이나 ‘EU 텍소노미’ 문제도 탄소세 국경이 강화되면 수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방점을 찍고 있잖습니까. 현실적으론 맞습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 문제는 그보다 더 근원적입니다. 우리 인생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물리적인 기반의 문제이면서 존재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과 사랑의 문제입니다.

그럼 이 중차대한 기후 위기 문제를 놓고 어떻게 해야 대통령 후보들에게서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 방안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후보 TV토론입니다. 이보다 더 현실적인 장치는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언론매체들입니다.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기자들은 공적 영역에서 질문이 허용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질문하기’가 삶의 방식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은 ‘질문 권력’을 소유한 것입니다(강남순, <질문빈곤사회>). 그런데 새로운 미래 사회를 열어야 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질문이 사라졌습니다. 민심의 골목에서는 질문이 넘쳐나고, 또 다른 골목에서는 올바른 질문 몇 번이면 뻔하게 사라질 거짓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올바른 질문이 사라졌습니다. 

기자들은 자기에게 부여된 ‘질문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고 무장 해제한 투항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도 기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발길에 수없이 챕니다. 혹시 기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올바른 질문, 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 이러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라면 올바른 질문 이면에 감춰진 보이지 않는 이익과 손을 잡았거나요. 

일찍이 성경은 ‘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라는 말을 불순종과 반역의 말로 간주해 왔음을 증언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민수기 13장에 나오는 가데스 바네아 정탐꾼 기사입니다. 정탐꾼 12명이 가나안을 정탐한 후에 그중 대다수인 열 명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고합니다. ‘가나안은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지만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합니다. 우리가 그 땅을 정복하다니, 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민13:25-33). 하나님은 진노하시지요. 그리고 그게 어디 가능하겠느냐는 그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시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게 어디 가능하겠어요?”, 이 한마디로 전 국민 앞에서 미래 의제인 기후위기 대응 방안을 단숨에 부정하고 그 문을 닫아 버린 대통령 후보. 그런 대통령 후보에게 그 말을 왜 했는지, 그 말에 담긴 철학이 무엇인지 질문하기를 포기한 기자들. 그들은 정말 남들이 모르는 내밀한 동맹을 맺은 것은 아닐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절실합니다. ‘주님, 우리 대한민국이 미래를 향해 열린 나라가 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이 도우시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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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2-02-11 01:38:23
‘그게’를 보는 관점이 진보는 “그게 가능하다!”, 보수는 “그게 가능하겠어요?”인데 일률적으로 진보의 관점에 서지 않는다고 난리구먼!
물 컵에 물이 반이 있다. 사람에 따라 물이 반이나 남아있다고 만족해하는 사람도 있고, 물이 반밖에 남아있지 않아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관점의 차이란 존재한다.

본문 글은 환경을 바라보는 진보의 입장은 ‘이런데’ 반해 보수의 입장은 ‘저래서’ 지구환경을 보는 보수의 입장은 어떠어떠한 맹점이 있다. 보수의 입장은 어떠어떠한 맹점이 있으니 진보의 입장에 서야만 그나마 지구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개선할 수 있다고 독자를 설득하는 글이 아니다. 글쓴이와 정치적으로 입장을 달리 하는 대통령 후보를 교묘히 까고 덧붙여 글쓴이와는 성향이 다른 기자들도 교묘히 까는 도구로 지구환경을 더럽게 이용하고 있다.

(1) 알이 원 헌드레드, 이유 텍소노미 등에는 관심 없는 사람이 넘쳐나는 데... 이러이러한 이유로 유럽에서 많은 호응을 받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관심을 기울이자!

(2) 어느 대통령 후보는 알이 원 헌드레드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게 가능하겠어요?”라고 하고, 기자들은 질문도 하지 않으니 감추어진 이익과 손을 잡았다고 본다!

정말로 지구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노심초사하는 (1)이 바람직한가? 지구환경을 빌미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좌파 선거운동에 열심히 복무하고 있는 (2)가 바람직한지는 뻔할 뻔자 아니겠는가?

지구환경 관련 지나치게 급진적인 정책 때문에 글쓴이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EU도 급진적인 정책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原子力發電 문제다. 독일은 원자력 폐기했다가 가스문제로 최근 러시아에 발목이 잡혀 노심초사하고 있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은 프랑스는 다시금 원자력으로 돌아갔다. 문재인이가 영화 한편 보고 감동받아 졸속으로 내린 한국의 원자력폐기정책의 현주소는 어떤가?

지구환경 문제에 관해 좌파 문재인 식으로 무조건 밀고나갔다가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좌파 쪽에서는 일말의 반성도 없이 또 다시 무대뽀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부작용도 좀 참고하면서 나가자는 “그게 가능하겠어요?”라는 정책이나 문재인 식으로 “못 먹어도(즉 무조건) Go!”하는 정책이나 간에 一長一短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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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익 (39.119.25.235)
2022-02-19 18:33:04
그래서 아무 생각도 없고, 무식하기는 이를 데 없이, 물욕 권력욕으로 처와 장모의 똥꼬나 닦으러 다니는 사람을 대통령에 뽑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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