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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立春大吉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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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2월 09일 (수) 23:39:45 [조회수 :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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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설날에 큰 눈이 내렸다. 보기 드물게 내린 함박눈이었다. 이 눈을 서설瑞雪이라 일컫는다. 옛 말에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라고 했다. 풀이하자면 ‘새해의 첫 날인 설날에 상서롭게 여기는 눈이 내리면 마음이 풍성해지고 기쁨이 넘칠 뿐만 아니라 쌓인 눈이 온 땅을 덮어 보리싹을 비롯한 농작물이 얼어 죽지 않게 보호해 주니 풍년이 들 것이라 믿었다’(한국세시풍속사전) 하여 설날의 눈을 매우 반겼다고 한다. 나도 이곳에서 지내는 몇 해 동안 설날에 눈을 맞은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조상들의 기쁜 표현만큼 나도 설날 오전 내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올 한해의 농사가 잘되어 모두의 시름이 덜어지길 기도했다. 

그 주간에 계절은 봄으로 들어섰다. 입춘立春! 실질적으로는 겨울 한복판에 들어있는 셈이지만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을 맞으면서 벌써 농사 시작을 떠올렸다. 함께 공동으로 농사를 짓는 소속교회 목사님과 사모님과는 이미 올 한해의 농사 계획을 세웠다. 이제 한 달 보름 정도 되면 감자를 심는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없는 트랙터를 구할 방도를 모색하곤 한다. 우리 형편에 트랙터 구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농업기술센터에서 저비용으로 빌릴 수 있어 언제 몇 번 빌려 밭을 갈 것인지 나눴다. 그래서 감자를 심는 3월과 들깨, 콩을 심을 시기인 5월 말이나 6월 초에 각각 한 번씩 빌려 하기로 했다. 

논은 소여 2구의 이장님에게 맡기기로 했다. 써래질과 평탄작업, 그리고 모를 심는 것까지 맡기고, 우리는 볍씨 소독과 파종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작년까지 함께 농사를 지었던 집사 내외가 읍내로 이사를 하여 인해전술과 같은 농사가 올해는 여차하면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지을 판이다. 가뜩이나 힘든 농사가 더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나도 어느새 머리 위에 하얀 눈이 내리게 되면서 꽤 썼던 힘들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켁켁거리고, 좀 무거운 짐을 들면 에구구 하는 신음소리는 저절로 나오고 있다. 

지난 가을 집 앞에 쌓아놓은 퇴비가 이태를 해와 비와 바람에 노출되어 포장이 헤지면서 퇴비가 자꾸 쏟아지게 되었다. 밭에 뿌릴 때가 되었고, 또 날이 궂을 때면 거름 냄새가 심하게 나서 옮길 필요를 느꼈다. 이십 킬로 되는 거름이 거의 오십 포대 정도 되었다. 평지에서 평지로 옮기는 것이라면 별반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옮겨 놓을 밭은 거의 45도 되는 경사를 지나가야 했다. 하루 열 포대씩 옮겨 일주일 만에 끝내자고 머리를 짰다. 그런데 웬걸! 세월에 묵은 퇴비는 해와 비와 바람에 떡이 되어 실제 무게보다 배가 되게 느껴졌다. 두 번 그러니까 네 포를 옮기고 나니 완전 넉다운이 되었다. 한 포 한 포를 수레에 옮기고 45도 경사로를 낑낑대며 끌고 올라가는데 수레바퀴는 거름 무게에 눌려 거의 주저앉아 버려 질질 끌다시피 하여 옮기는 꼴이 되었다. 결국 몇 주에 걸쳐, 겨울이 오기 전 11월 말에 겨우 비닐하우스 근처로 옮겨놓을 수 있었다. 원더우먼의 힘이 어디로 새어 버렸는지 모를 정도로 나의 근력이 바닥이 나 버렸으니 앞으로의 농사짓는 것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농사의 계절, 봄은 찾아왔다. 입춘! 옛 어른들은 대문기둥이나 대들보·천장 등에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붙였고, 보리 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점을 행하였다고 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믿었다. 입춘대길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됨에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을 담은 이 모든 행위는 힘든 농사를 평생의 주업으로 살아간 이들의 진심어린 염원이었으리라. 철이 없었을 때는 입춘대길의 뜻이 그저 그런 뜻으로 치부했었는데 농사를 짓는 지금에서 보니 그 글귀가 바로 내 마음이 되어가고 있다. 서설을 맞이함에도 그렇고, 입춘을 맞이함에도 그렇다. 그 간절한 마음이 올해도 나를 밭으로 논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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