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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나이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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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2월 05일 (토) 21:33:47 [조회수 : 3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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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전야 두 아들과 가족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식구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가장 걱정되는 것이 아빠의 미래인 모양이었다. 어느새 상담자가 되어줄 만큼 부쩍 자란 아이들이 고마웠다. 애들은 사회생활의 출발점에서 두근두근 고민이 많고, 나는 어언 목적지를 내다 보며 더듬더듬 내일을 살핀다. 고민의 지점은 다르지만 생각은 같다. 길건 짧건 인생의 기회를 잘살려 보려는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나이가 점점 길어지니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토론이 많아졌다. 용케 건강이 허락한다면 인생 2모작, 3모작은 당연하다. 늘어나는 나이만큼 인생을 요령껏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만약 노년에 들어 삶의 재미와 의미를 잃어버린다면 정말 두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청춘만세는 유행가일 뿐이다. 흔히 입버릇처럼 ‘도전’이란 말을 하는데, 계속 도전만 하는 인생은 낯설고 피곤한 일이다. 이젠 도전이 아니라 ‘다움’을 고민할 이유가 있다. 그러려고 먹는 나이가 아닐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공동체의 화목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주변을 보면 부모가 출세했다고 자녀가 꼭 잘되는 것은 아니더라. 앞선 세대의 경험이 항상 지당한 것도 아니었다. 당장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와 에코 세대 자녀의 갈등이 자주 부각 된다. 그런 점에서 가정의 화목은 웬만큼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위험사회에 살고 있는가? 우리 사회가 누리는 자유의 건강도와 우리 세대가 마주한 여유의 행복도는 여전히 마뜩찮다.

  <병명은 가족>(생각정원)이란 책이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기저질환’이란 부제가 무겁다. 가장 친밀하고 다정해야 할 가족이 오히려 상처와 아픔을 준다는 내용이다. ‘알코올 중독, 조현병, 거식증,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 등’ 병명은 제각각이지만 모든 증상은 ‘일그러진 가족’이란 토양에서 발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건강하게 살려면 가정의 행복이 참 중요하다. 부부간, 자녀, 노부모 모두 낱낱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토스토예프스키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은 유명하다. 모든 언어와 세대에 크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불행한 가정에는 저마다 나름나름의 원인으로 아픔이 있다. 그런데 행복한 가정은 분명한 공통분모가 있다. 그러니 행복한 가정을 원한다면 간단하다. 공통분모를 잘 따라 하면 될 일이다.

  자식은 이미 부모와 닮은 꼴을 하고 살아간다. 유전자의 무늬와 함께 삶의 중심과 언저리를 공유한다. ‘그 아버지의 자식’이란 말들을 하는 이유다. 물론 예외도 있다. <사명당실기>를 쓴 신학상은 “사람은 그들의 부모보다 그들의 시대를 닮는다”고 했는데, 아들 신영복이 <감옥으로부터 사색>에서 인용해 유명해졌다. 인간은 자기 부모를 닮지만,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놓인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 아버지의 그 아들은 참 억울하다. 영화 ‘친구’에서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를 따지던 나쁜 버릇은 뼛속에 사무친 옛 풍속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천주교 편력을 다룬 <파란>에 조선시대 과거시험 이야기가 나온다. 이름을 가리고 채점하는 까닭은 공정성 때문이었다. 마침내 급제자를 가리고 나면 그제야 이름을 확인한다. 그날 전시에서 장원은 심봉석이란 인물이었는데, 그런데 아버지 이름을 적지 않았다고 실격을 당했다. 그래서 2등이 장원으로 오르는데 그가 정약용이다. 

  주변에서 세대 간 대화 단절을 호소한다. 조금 나이가 들어도 ‘라떼’라고 핀잔을 듣기 십상이어서 미리 자기 검열하기 일쑤다. 언젠가 “나 때는 말이야”란 자부심으로 말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나마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만화 <송곳>에 나온 말이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 듣지.” 그러니 먼저 좋은 사람, 좋은 부모, 좋은 어른, 좋은 선배, 좋은 목사가 되면 ‘라떼’도 가능할 것이다.  
 
  사실 지금 젊거나, 나이가 들거나 두 세대 모두 공통적인 면이 있다. 젊든, 나이가 들든 그 안에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한다는 현실이다. 차이는 호기심이 더 크면 젊은 부류로 인정받고, 두려움이 더 많으면 노인 세대 취급을 당한다. 그러니 젊어지려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 많이 인생의 호기심을 품을 일이다. 젊은이는 저기를 바라보는 사람이고, 늙은이는 늘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더듬더듬, 두근두근 묵은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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