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황광민 목사의 설교노트
주님의 품에 거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2년 01월 29일 (토) 22:33:43 [조회수 : 1068]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시편 26편 8-12절

주님의 품에 거하라

 

가. 주님의 품에 거해야 한다.

8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 본문은 하나님의 품에 거하는 것을 기뻐하는 시인(다윗)의 노래다. 시인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따라야 할 모범적인 신앙생활이다. 하나님의 품에 거하며 그의 은총을 구하면서도 그의 성품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신앙이다.

* 본문에서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품을 상징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기를 즐거워해야 한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전의 건물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한다.

* 신앙생활에서 교회가 최종목표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 거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 구원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 단순히 교인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주님의 품에 안겨서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나. 세속의 악한 것에 빠지면 안 된다.

10절,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 주님의 품을 찾는 사람들도 세속의 악한 것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악한 것들이 매력적인 유혹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사악함’(잠마)은 ‘숨어서 기다리다’ 또는 ‘악을 꾀하다’라는 뜻의 ‘자맘’에서 유래한 말이다. 앞에서는 ‘선물’(샤하드)을 주는척하지만 뒤로는 ‘뇌물’(샤하드)을 통해 반대급부를 얻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남을 해하고자 악을 꾀하는 것은 안 된다.

* 계속해서 하나님의 품에 거하려면 그분과의 교제를 통하여 그분의 성품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도 어둠에 행한다면 이는 거짓말이다(요일1:6).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어갈 수 없다. 세속의 악한 유혹을 뿌리치고 항상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한다.

* 아간은 세속의 악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범죄하여 나라에 해를 끼치고 자신을 망쳤다(수7장 참조).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세속의 악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성령과 사도를 속이다가 자신을 망쳤다(행5장 참조).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품에서 쫓겨났고 그분과의 은총의 교제를 누리지 못했다.

 

다. 자신의 완전함에 충실히 행하라.

11절,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주님의 품에 거하려면 자신의 완전함에 충실히 행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완전이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고 하셨고,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이러한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강조하였다.

* 그런데 본문에서 시인은 ‘나의 완전함’(베툼미)을 강조하였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니”(1절)와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11절)는 의미가 있다. 비록 하나님은 완전을 원하시지만 인간이 완전에 이를 수 없는 것을 아신다. 오직 자신의 완전함에 충실히 행할 것을 원하신다.

*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함에 이르려고 하는 것인바 자신의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얻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도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는 말씀을 참조하라.

 

라. 주님의 품에 거하는 길은 평탄하다.

12절, “내 발이 평탄한 데에 섰사오니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 시인(다윗)은 주 여호와의 품에서 자신의 완전함에 행하므로 자신의 발이 평탄한 데에 섰다고 고백하였다. 여기서 ‘평탄’(미쇼르)은 ‘정직, 공정’이라는 뜻과 ‘평지, 평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는 ‘바른 길을 가다’ 또는 ‘형통하다’라는 뜻을 가진 ‘야샤르’에서 유래한 말이다. 평탄은 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이다. 이것은 기복신앙을 뛰어넘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 다윗은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바르게 살려고 힘썼다. 실수한 적도 있지만 철저하게 회개하였고, 하나님은 그를 견고하게 하셨다. 솔로몬은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자신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행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기를 원했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큰 은혜를 베푸셨고”(왕상3:6).

* 이사야는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사26:7)라고 하였다. 거짓된 삶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오직 반석 위에 세운 집이 영원히 견고하다. 

황광민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5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