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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목적” 요한계시록 1장 1절~8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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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1월 24일 (월) 17:33:35 [조회수 :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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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을 기록한 목적” 요한계시록 1장 1절~8절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① (1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 모든 글은 저마다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된다. 신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도 예외가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서두에 글을 쓴 목적을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요한이 육신의 안목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비전이라는 사실이다. 묵시와 이상으로 기록한 이유는 희망이 사라진 절망적인 상황 때문이고, 은유와 상징으로 기록한 까닭은 이 계시가 특정한 이들에게만 주시는 예언이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종말론적 상황)에 놓인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요한의 계시는 절망적인 눈앞에 현실을 넘어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이 계시의 권위는 요한의 말이 아니라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는 점이다. 예언자의 진정한 권위는 언제나 여기에 있다.

▶ ‘반드시 속히 될 일’은 요한계시록의 핵심 주제인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이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눅 21:35).” 모든 사람이 경험할 뿐 아니라 곧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왜 아직 안 오시는가, 혹시 안 오시는 것 아닌가? 이와 같은 의문을 품는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대답한다. “사랑하는 자여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종말의 진정한 메시지는 더디다고 방심해선 안 되고,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빨리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데 있다. 또한 너무 힘들다고 낙심해서도 안 된다. 반드시 오신다고 확언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믿음은 인내다.

 

② (2절)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 하였느니라”

▶ ‘요한이 보고 증거 했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하신 내용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실 때 외치신 천국 복음과 일맥상통한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마9:35).” 예수께서 증거 하신 복음은 ‘천국 복음’, 곧 ‘하나님 나라’다. 존 웨슬리는 ‘하늘 가는 길’을 목회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다. 오늘날 하늘의 상급보다 세상의 상급, 하늘의 보화보다 땅의 보화에 더 관심을 갖기에 천국복음에 대한 관심과 능력이 약해졌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천국을 맛보며, 하늘의 복을 누리는 신앙공동체다. 많은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천국, 하나님 나라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시종여일하게 강조했던 하나님의 통치다. 메시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천국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지상(地上)에서 천상(天上)에 속한 자로 하나님의 통치를 좇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다.

▶ (메시지성경) “요한은 자신이 본 모든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 왕국의 도래’, 곧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치(천국,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마침내 완성될 것을 증언하고 있다. (※ 일제강점기에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전개된 친일 기독교혁신교단에 앞장서던 친일파 교회지도자들이 성경에서 구약(예언서)을 배제시키고 메시아, 그리스도, 왕, 구세주, 재림, 평화와 같은 단어가 들어간 찬송을 삭제하거나 개작한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경의 본래적 메시지를 상실한 채 개인 구원과 교회 성장에 매몰되어,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이 소멸한 원인과 배경이 여기에 있다.-필자주)

 

③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요한의 계시는 특별하고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바벨론 포로기를 전후해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 했던 말씀이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친히 종말에 대처하는 믿음의 자세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신 말씀을 거듭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눅 21:36).” 이는 요한계시록의 결론과 일치한다.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계 22:20).” 아람어 ‘마라나타’는 종말에 대비하는 믿음의 자세다. 성경이 전하는 모든 종말신앙의 메시지는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라!’는 것이다. ‘마지막’이 아니라, 마지막을 자각하며 사는 ‘오늘’에 초점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대를 바라보며 사는 지금 이 순간, 오늘 나의 삶을 통해 마지막 날을 준비하며 사는 지혜다. ‘읽는 자, 듣는 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사도 바울의 권면과 맥을 같이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 이는 씨 뿌리는 비유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을 넘어 지켜야 한다. 이 메시지는 산상수훈의 결론에서 더 분명해 진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한마디로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 곧 신앙의 생활화다. 요한계시록은 비록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을 요청하고 있다. 이것이 전대미문의 재난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가, 다시 요한계시록을 펼쳐 읽어야 하는 이유다.

 

 

2. 요한계시록의 본래적 메시지

 

① (4절 상)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말씀이 아니다. 과거의 실제적인 역사 속에서 선포된 말씀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전이해가 필수적이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한 역사적 배경은 주후 70년 경, 헤롯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소아시아 터키 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에 대한 로마제국의 극심한 핍박과 박해다. 요한계시록에 자주 등장 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 ‘일곱 교회’는 특정한 교회를 넘어 핍박과 박해 가운데 있는 모든 교회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시공을 넘어 초대교회와 같은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는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소망의 말씀으로 읽어야 한다.

 

② (4절 하~5절 상)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길 원하노라”

▶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종말 신앙은 단순히 장차 다가 올 미래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의 전 시대를 포괄하는 말씀이다. 종말의 때는 과거의 역사적 종말(바벨론 포로기, 로마제국의 박해)을 넘어 미래의 우주적 종말(전 지구적 종말, 개인의 죽음)을 예고하고, 무엇보다 현재의 종말론적 상황(삶에서 만나는 위기, 비가 오고 창수가 나는 날)을 모두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에 구약의 예언서(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등)가 직간접적으로 자주 인용된 까닭은, 역사적인 시대는 다르지만 ‘멸망(종말)’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언서가 ‘바벨론 제국에 의한 솔로몬 성전의 파괴’라는 상황에서 기록된 것처럼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에 의한 헤롯 성전의 파괴’라는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상황이 같다. 믿었던 하늘(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져 내리고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마치 온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종말론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길 원하노라’ 이 문장 속에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목적이 담겨 있다. 요한계시록은 임박한 종말론으로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이단들의 주장대로 두려운 책이 아니라, 믿음의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기 위해 기록된 책이다. 지금 눈앞에 현실에서는 핍박과 박해지만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도 여전히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위로와 소망, 의의 최후승리를 증거하고 있다. 지금 세상에서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왕 노릇하지만 믿음의 눈을 들어 보면, 하늘 위에서 보좌의 계신 이와 어린양이 통치하고 계시고 마침내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기의 깊은 절망 중에도 에스겔은 성소에서 흘러나온 생수가 생명의 강을 이루어 만물에 생명을 공급하는 회복의 비전을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는 속수무책의 상황 속에서 믿음의 눈을 들어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때다. 해결책을 찾기보다 하나님을 찾고, 전대미문의 재난 속에 있는 우리와 여전히 함께 하시고,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일 때다.

 

③ (5절 하~6절 상)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능력으로 다스리실 것을 선포한다. 그의 영광과 능력은 과거에 만이 아니라 ‘세세토록’ 오늘, 지금 이 순간까지다. 오늘날 로마 제국의 통치는 사라졌지만, 돈이 세상을 다스리는 ‘물질만능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현실이다. <『2050 거주불능지구』, 데이비드 W 웰스, 2020.04.22.> 무엇보다 ‘왕관’이라는 뜻을 가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와 불안으로 다스리는 시대다. 시대는 다르지만 상황이 똑같다. 요한계시록은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위기의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는 것 같은 죽음보다 무서운 절망의 순간에 믿음이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긴박한 회개를 촉구하며 삶을 빼앗기지 않고 일상을 아름답게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요한계시록 예언을 다시 읽고 숙고해야 할 이유다.

 

④ (7절)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곧 하나님의 통치가 마침내 이루어 질 것을 미리 예고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전1:9).”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신다는 확실한 증언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대가 열리는 날이다. 그 날은 과거 성경의 역사 속에 기록된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는 날과 로마 제국의 박해가 끝나는 날과 같은, ‘개인의 죽음’, ‘온 세상의 종말’,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을 통칭한다. (※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는 광복의 그 날이다. 《그 날이 오면-심훈》)

▶ 그 날에 벌어질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한 문장으로 묘사한다.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 날에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 하나는 기쁨의 눈물이고, 하나는 슬픔의 통곡이다. 1945년 8월15일은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한 날이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광복의 날이다. 그 날에 벌어질 엇갈린 운명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경이 누누이 강조하는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이다. 세상이 끝나는 종말의 날에 양과 염소로 구별되듯 영생과 영벌에 놓이게 될 것이다. 누구도 예외 없이 맞이하게 될 죽음의 순간은 세상의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의 날과 고대하던 아버지의 품에서 눈을 뜨는 날로 구분될 것이다.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에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위에 지은 집으로 판가름 날 것이다. 지금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그 날을 외면하고 무시하며 살지만, 그 날에는 모두 확실히 알게 되고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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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는 쓰레기 (39.118.5.143)
2022-01-29 14:35:11
메시지가 성경인가요?
메시지는 성경 번역본도 아니고 성경을 따라한 소설만도 못합니다.
저는 보자마자 쓰레기통에 쳐넣었습니다.
이런 쓰레기를 마치 성경 마냥 인용하는 목사들은
그 자격이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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