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을 오가는 기러기

해마다 가을 깊어 가면 어디서 왔는지 기러기 떼들이 머리 위를 날아간다. 끼룩끼룩 소리하며 정겨웁게 노래하듯 창공을 날아오른다. 일정한 대오를 이루며 브이(V)형으로 푸른 하늘을 힘차게 나른다. 점차 추워지는 날씨에 움츠러드는 우리들에게 어깨 펴고 힘차게 걷고 달리고 힘을 내라고 소리하는것 같다. 저 북녘하늘 어디에서, 저 시베리아 벌판 한 가운데서 아니면 북극과 오호츠크해와 흑룡강을 거쳐 이 곳에 우리를 만나러 온 것이리라. 거친 것들에서 참신한 기운이 생기고 들판에서 자유의 바람이 불어오듯이 푸른 하늘 저 끝에서 기러기떼들이 추운 겨울 대지를 다시 달구고 우리 가슴에 맑은 공기를 불어 넣는다.

기러기(wild goose)는 한자로는 기러기 안(雁)이 쓰였고, 홍(鴻)·양조(陽鳥)·옹계(翁鷄)·사순(沙鶉)·주조(朱鳥)·상신(霜信)·홍안(鴻雁)이라고도 불렸다. 몸이 크고 몸빛은 암갈빛을 띠며 부리 밑 부분은 노란 새이다. 목은 길고 다리는 짧다. 깃털은 방수가 되어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1.5-4kg 몸무게로 논·밭·저수지·해안·습지 또는 개펄 등지에 내려앉으며, 하천가와 하천의 섬에서도 볼 수 있다. 북반구 북부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남으로 이동해 봄이 되면 돌아간다.

기러기들은 늘 함께 나른다. 둘이 짝을 지어 나르거나 여러 마리가 대오를 갖추며 열병하듯이 창공을 나른다. 물론 혼자 급히 짝을 찾아 날아오르는 새도 있다. 기러기는 생물행태면에서 땅이나 물에 내릴 때는 전혀 대오를 갖추지 않고 흩어져서 제 빠르게 육지에 내려 않는다. 이는 주변의 천적이나 위협으로부터 내려앉는 위치를 탐지당하지 않고 위험을 줄이려는 행동이라 한다.

기러기의 비상(飛翔)에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시인도 있고, 높이 나는 비행이 낮은 들 숲이나 울타리 등에 서식하는 제비, 참새, 뱁새들과 다름을 ‘연작안지 홍곡지지(燕雀安知 鴻鵠之志)’라 지적한 선인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러기는 지조와 기품 있는 새로 기억되어 혼례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기러기는 생태학적으로 한번 짝을 맺으면 짝이 먼저 죽어도 다시 다른 짝을 맺지 않는다. 따라서 평생 한 번만 짝을 맺는 기러기처럼 평생을 사랑하고 다복하게 살라는 뜻으로 전안례 (奠雁禮)를 하는 것이다. 『규합총서』에서도 기러기를 평하여 “추우면 북으로부터 남형양에 그치고 더우면 남으로부터 북안문(北雁門)에 돌아가니 신(信)이요, 날면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하니 예(禮)요,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節)이요, 밤이 되면 무리를 지어 자되 하나가 순경하고 낮이 되면 갈대를 머금어 주살(실을 매어서 쏘는 화살)을 피하니 지혜가 있기 때문에 예폐(禮幣)하는 데 쓴다.”고 하였다.

오늘도 겨울하늘을 기러기떼 날아간다. 함께 정겨운 얘기 주고받으며 멋진 대오를 이루며 추운 겨울 하늘을 함께 날아오른다. 성경은 계절과 하늘의 법도를 아는 새들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대비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고니도 철을 알고 산비둘기나 제비나 두루미도 철따라 돌아오는데, 이 백성 가운데는 내가 세운 법을 아는 자가 하나도 없구나”(공동번역, 렘,8:7 Even the stork in the sky knows her appointed seasons, and the dove, the swift and the thrush observe the time of their migration. But my people do not know the requirements of the LORD.)

▲ 동천을 나르는 기러기

<함께 나는 기러기>

바람과 하나 되어

저녁 햇살을 등에 지고

만공(滿空)을 나는 기러기

우리들 함께하면

바람과 달빛과 어울리며

구만리 먼 길도 멀지 않아

서로 달라도 한 대오(隊伍) 이루어

추운 동천(冬天)을 가르며

유유히 구름타고 시공(時空)을 나르네

홀로 나는 독수리 도반(道伴) 되어

아래의 연작(燕雀)도 우리 친구

저 들판 낱알들은 우리의 축복

자유로이 함께하는 우리들의 날개 짓

허허로운 우주에 계절을 숨쉬며

새벽이슬 맞으며 오늘을 나른다

▲ 함께 나는 기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