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웃겨?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유민석, 서해문집, 2019

“단순히 혐오표현을 처벌하거나 규제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혐오표현의 해악을 인식하고 문제의 심각성과 대응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의식적 변화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식이 법적인 규제에 비해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다.”(189)

타자와 대화를 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타고난 성격 탓이 클 것이다. 상호 존중의 분위기, 존댓말을 쓰며 적당한 간격을 두는 관계, 그런 안전한 환경이 좋다.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과의 모임 혹은 사교모임들에 비해 독서토론모임에 가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다. 조그마한 인신공격에도 기분이 상하고, 그 감정을 숨기는 게 잘 안 된다. 사적인 콤플렉스를 지적당할 때, 텔레비전 속 예능인들처럼 자기 희화화를 하면서 맞받아치는 등, 여유 있게 대처하고 싶지만, 울컥하고 마음이 크게 동요하며 표정은 차갑게 경직된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진 자들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이성복 시인은 “아, 입이 없는 것들”이라고 탄식한 바 있다. 발화를 금지당한 이들을 위한 ‘비가’라고, 내 멋대로 차용해보고 싶다. 이성애자, 비장애인, 국민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도 구석으로 내몰린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만, 소수자들이 겪어내야 하는 수모와 비할 바는 안 될 것이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그들이 일상 속에서 당하는 위협은 얼마나 클까. 이 쯤 되면, 개인 신상을 가지고 공격적인 말을 쏟아내는 추악한 인간의 문화란, 적응을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해내야만 하는 환경임을 깨닫게 된다.

유민석의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은 이런 맥락에서 시의적절한 책이다. 혐오표현이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해악하고 위험한 것인지, 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명료하게 기술했다. 그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서열을 매기고, 차별을 정당화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가리킨다. 타자로부터 억압당하고, 자신이 당하는 혐오를 당연한 것이라고 내면화하기도 하며, 피해자들의 존엄성은 훼손된다. 권력관계의 비대칭이 시발점일 것이다. 강자는 소수자에게 증오발언을 할 수 있지만, 그 반대는 가능성이 희박한 까닭이다. 불평등과 차별을 증폭시키는 역할로서의 혐오표현, 사회정의나 민주주적 가치들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혐오표현은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을 오염시키고, 거기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며 다방면에 해악을 끼친다. 피해자의 사적 자유를 제한하고 청자들이 차별적인 메시지를 내면화하게 하여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며, 소수자들을 재종속시키고 그들의 침묵을 강제한다. 일본 우익들의 혐한이나 반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 간의 긴장과 적대를 고조시켜 평화와 공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말로 인한 상처는 단순히 막말로 인한 기분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고개를 돌려서 회피하면 그만인 것도 아니다. 혐오표현은 오래도록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모욕감을 남겨 인간으로서의 존엄, 사회정의와 안전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공격한다.”(187-8)

헤이트스피치 금지 법안이나,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재와 처벌만으로는 산적한 문제들을 온전히 풀어낼 수는 없다. 재일조선인 사례만 봐도 그렇다. 헤이트스피치 금지 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재일조선인의 신변은 여전히 위태롭다. 자기네들의 침략으로 인해, 일본 땅으로 이산된 이들의 후손을 그렇게 적대하다니. 제국주의의 망령이 잔존해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공감과 감정이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닌 것 같은데, 다른 소수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할까.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어야 할 때가 있다. 동료들의 연대, 적절한 조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고, 당사자들은 대항표현을 통해서 기존 가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주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의 골자로, 저자는 주디스 버틀러의 말을 인용한다. “혐오표현은 비록 침묵시키고자 하는 행위이기는 하지만, 침묵당한 자의 어휘 내에서 예상치 못한 응수로서 회복될 수 있다.”(78에서 재인용) 꿈틀댈 시간이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