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험이 ‘체험’으로 고백되는 순간

<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 을유문화사, 2020

오늘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이다. 사실 ‘소설 장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일본 현대소설의 살아있는 유산이자, 심지어 노벨문학상 수상자(1994년)인 ‘오에 겐자부로(1935~)’라는 작가를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한 키워드들의 연결과 만남을 통해 이뤄졌는데, 그 과정을 먼저 나누고자 한다.

라오스에서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며 나름의 적응기간을 갖고 있는 내게 최근 가장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물은 ‘알버트 슈바이처(1875~1965)’이다. 어쩌다 보니 이 사람도 노벨평화상 수상자(1952년)인데 많이 알려졌다시피 슈바이처는 진보적인 신학자이자 음악가(오르간 연주자), 그리고 인도주의적 의사였다. 특히 적도아프리카의 랑바레네에 병원을 세워 의료선교에 힘썼던 그의 삶은 선교의 영역을 넘어 인류애적 사건으로 기억되면서 전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라는 책은 슈바이처가 당시 아프리카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직접 기록한 유일한 저서이다. 최근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의 요약본을 접한 나는 굉장히 큰 감흥을 받았고, 그 원본을 구하고자 애써보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절판된 책을 한국도 아닌 여기 라오스 현지에서 구할 길이 만무하였다. 결국 온갖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며 헌책방 사이트를 통해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개인적인 체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장르도 내용도 전혀 상관이 없는 두 책이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아프리카’, ‘체험’, ‘변화’ 등의 키워드가 이 두 책의 연결지점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 라오스에 머물고 있는 입장에서 비슷한 정서를 담고 있는 키워드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소설 <개인적인 체험>은 아프리카에 가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주인공, 일명 ‘버드’가 겪는 혼돈의 몇 일을 그려내고 있다. 그 ‘몇 일’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임신한 아내의 출산일로부터 시작하여, 주인공 버드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아기를 만나 번뇌하고, 결국 그 아기를 자신의 삶 가운데로 받아들이는 시간까지를 의미한다.

여기서 작가는 단 ‘몇 일’을 3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의 분량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그 만큼 주인공 버드의 심경을 자세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식을 두고 온갖 고뇌와 더불어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짓을 감행하는 버드의 비윤리적인 행동을 따라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이 작가의 실제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섣부른 윤리적 판단은 소설의 진행 과정 틈새에 끼어들 명분을 잃어버린다. 그렇다.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실제로 뇌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큰 아들의 출산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이 소설 <개인적인 체험> 안에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 사이렌은 버드에게 있어 늘 그저 먼 곳으로부터 다가왔다가 그 옆을 스쳐 지나 멀어져 가는 일종의 운동체였다. 하지만 지금 사이렌은 그의 내부의 질환처럼 그에게 들러붙어 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멀어지지 않는다.” -본문 중-

위의 인용문은 의사로 부터 막 태어난 자신의 아이에게 뇌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산부인과에서 뇌전문병원으로 이동하는 엠뷸런스 안에서 버드가 고뇌하는 장면이다. 도대체 이제 막 아버지가 되어버린 버드.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장애가 있는지도 모른 채, 또 살는지, 죽을는지도 모를 아이를 데리고 뇌병원으로 가고 있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멈추지 않는 ‘사이렌’ 소리는 버드의 심경을 섬뜩하리만치 잘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나와는 상관없던 ‘고통의 소리’가 어느새 내 삶의 한 복판에 들어와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는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고난이라는 보편적인 위기 상황을 실제로 마주했지만, 그 상황 가운데 놓인 자신의 아픔과 방황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개인적인 체험”으로 승화시켜가고 있다.

소설은 결국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간직한 채, 비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죽음의 위기를 견뎌낸 자신의 아이와 함께 새로운 내일을 꿈꾸는 버드의 모습으로 마무리 된다. ‘아프리카’라는 허황된 상상 속의 꿈이 아닌,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일궈나갈 실제적 내일을 위한 버드의 꿈은 1960년대 전후의 혼란스러운 일본 사회를 향해서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소설 속 버드의 체험, 그리고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체험, 덧붙여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 활동했던 슈바이쳐의 체험은 모두가 보편적인 경험이지만, 특별하고도 유의미한 ‘개인적인 체험’으로 승화되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영감을 나눠주고 있다. 결국 그 어떤 삶의 경험도 ‘체험’으로 고백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이들의 순간순간을 응원해본다. 비록 고통과 아픔으로 점철된 삶일지라도 그 안에 ‘희망’이 숨겨져 있다는 소설 속의 메시지처럼 말이다.

이관택 목사(라오스평화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