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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와 탱고 사이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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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1월 14일 (금) 23:06:03 [조회수 : 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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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새 해의 시작과 함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열렸습니다. 1939년 시작된 빈 필의 신년 음악회는 세계 92개국에 중계가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 부터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생방송으로 공연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1992년에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좋아했는데 앞으로는 그로부터 정확히 30년 뒤에 열렸던 올 해의 음악회 또한 두고두고 회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두 음악회는 완전히 상반된 의미로서 기억될 것입니다. 1992년 신년음악회가 전적으로 지휘자의 역량과 거기에서 나오는 음악 때문이었다면, 2022년 신년음악회는 오케스트라의 역량과 음악 자체가 인류에게 주는 의미 때문에 저의 기억 속에 각인 될 것입니다.

1992년, 62세의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가장 완숙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 리허설을 했고 공연 실황에 담긴 관중의 함성소리를 들어 보면 알 수 있듯이 연주 또한 완벽했습니다. 모든 지휘 동작 하나 하나에 음악적인 의미가 있었지만 그 멋스러운 동작과 표정은 어느 무용수의 그것만큼이나 기품이 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지휘자였습니다. 어느 오케스트라에도 속박되길 원하지 않았고 그의 라이벌이었던 카라얀은 클라이버가 냉장고가 빌 때마다 지휘를 한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클라이버는 74세의 나이에 아내의 고향 슬로베니아의 작은 마을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2022년, 80세의 다니엘 바렌보임은 노쇠했습니다. 그의 비팅은 젊을 때처럼 날카롭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빈 필하모닉이기 때문입니다.

빈 필하모닉의 제1 바이올린 주자이자 악장을 역임했던 라이너 퀴힐이 오케스트라의 입장에서 볼 때 ‘좋은 지휘자’는 '우리들의 음악을 방해하지 않는 지휘자'라고 대답한 적이 있듯이 빈 필하모닉은 전통적으로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고 단원들이 주도적으로 지휘자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격적으로 매우 유연하며 유대인이지만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애쓰며 음악을 통해 범인류적인 메시지를 전하고자하는 바렌보임은 빈 필하모닉이 사랑하는 지휘자이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2022년 음악회에 가장 적합한 지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새 80세가 된 그의 노쇠함은 이번 음악회에서 만큼은 그의 장점이 되어 온 인류를 향한 매우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의 특징은 음악회의 거의 모든 음악이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의 왈츠 음악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며 음악회 막바지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새해 인사 후에 앙코르곡으로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An der schönen blauen Donau, Waltz, op. 314’와 아버지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ch, op. 228’ 두 곡을 연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첫 번째 앙코를 연주하기 전 지휘자의 선창으로 빈 필하모닉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Die Wiener Philharmoniker und Ich wünschen Ihnen allle PROSIT NEUJAHR!”

“비엔나 필하모닉과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멋진 새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박수가 잦아들 즈음 바렌보임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여러분이 허락해 주신다면 세계의 모든 방청객들을 향해 영어로 몇 마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비엔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매 년 이 음악회를 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 열리는 이 음악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온 세상이 매우 힘든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음악회에서 여기에 있는 모든 음악가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는 단지 의학적인 재앙이 아니라 범인류적인 재앙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 서로서로를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아름답고 특별한 공동체의 연합을 모범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들은 심각한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들처럼 우리는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도 그것을 펼쳐 나아가야 합니다.”

올 해 신년 음악회의 재미있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잘 보면 그 명확한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곡 ‘Phönix-Marsch’와 두 번째 곡 ‘Phönix-Schwingen’에는 공통적으로 전설의 새 불사조 ‘피닉스’가 등장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 세상이 절망스런 상황이지만 잿더미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는 불사조처럼 우리 인류도 다시 비상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장면은 올해 서거 100주기를 맞은 오스트리아 작곡가 칼 미하엘 치러(1843~1922)의 ‘Nachtschwärmer/밤의 방랑자들’ 왈츠를 음악회 80여 년 역사상 처음으로 연주했다는 것입니다.

작곡가 치러는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父子)와의 동시대 인물로서 그 가문의 중요한 라이벌 이었습니다. 그래서 80년의 역사 동안 치러의 음악은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는 이 때에 인류애적인 화해의 의미로서 2022년 신년음악회에서는 치러의 음악이 처음으로 연주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덤으로 치러의 왈츠를 듣다 보면 오케트트라 단원들의 노랫소리와 휘파람 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이색적이면서도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왈츠는 삼박자의 우아한 춤곡입니다. 지난주 영상으로 예배드렸던 교회의 설교에서 목사님은 시드니 카터의 ‘춤의 왕’이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시인이 ‘태초부터 있었던 생명의 일렁임, 예수 안에서 약동했던 힘을 ‘춤’이라는 은유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22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지금, 시인이 상상한 그 춤곡을 저 또한 상상해 봅니다. 물론 귀족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비엔나 왈츠의 선율은 아니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리듬은 왈츠의 그것과 가장 닮았을 것 같습니다. 왈츠는 단순한 삼박자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그 삼박자의 비밀은 두 번째 박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아하면서도 강렬하게 당겨지는 그 두 번째 박자의 마법은 한사람의 지휘자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단원이 오케스트라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의 연합체를 이루는 비엔나 필하모닉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와 교회 공동체의 동력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동시에 모두가 하나가 되는 힘 말입니다.

그 춤곡의 선율은 어떨까요? 어렴풋이 아리랑 같기도 하고 라벨의 파반느 같기도 한 선율이 들려오는데 잡힐 듯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올 해는 그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살고자 합니다. 또한 내가 살아 있는 그 곳에서 하모니를 이루며 생명의 왈츠를 추며 살아가 볼까 합니다. 영화 ‘여인의 향기’의 알 파치노의 말처럼 스텝이 엉키면 탱고라도 되겠지요!

https://youtu.be/K6smjwItp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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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2-01-15 03:32:53
푸르트벵글러가 비엔나 필을 지휘한다면?
본문 글을 읽고선 바람개비처럼 몸을 흔들고 술 취한 사람처럼 손을 벌벌 떨면서 휘젓듯이 지휘를 해대니 단원들이 지휘자를 바라보기보다는 아예 악보를 바라보는 편이 더 편안했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었던 푸르트벵글러가 비엔나 필을 지휘하는 광경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술 취한 사람 같은 지휘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연주로 관중의 혼을 빼놓았다고 합니다. 괴벨스가 감동, 흥분하여 눈물을 글썽였다고 하더군요.

처음 이 사람이 지휘하는 것을 보았을 때 웬 미친 사람이 지휘랍시고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부드럽기도 하면서 섬세하기도 하여 놀랐습니다. 그 후임자인 딱딱한 카라얀보다는 백배 더 호감이 갔습니다. 마지못해 나치에 협력한 전력 때문에 대부분으로부터 백안시 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사람의 지휘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가장 호감 가는 지휘자인 푸르트벵글러가 2022년 비엔나 필을 지휘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봅니다.

본문 글에 “빈 필하모닉의 제1 바이올린 주자이자 악장을 역임했던 라이너 퀴힐이 오케스트라의 입장에서 볼 때 ‘좋은 지휘자’는 '우리들의 음악을 방해하지 않는 지휘자'라고 대답한 적이 있듯이 빈 필하모닉은 전통적으로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고 단원들이 주도적으로 지휘자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라는 언급에 가장 적합한 지휘자는 푸르트벵글러가 아닌가 싶었기에 몇 자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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