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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국제선교센터해외선교 이야기 ②
이현식  |  hanmch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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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1월 09일 (일) 16:42:35
최종편집 : 2022년 01월 16일 (일) 16:52:52 [조회수 :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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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교 이야기 ② 우크라이나 국제선교센터

   
 

김여일 선교사의 ‘선교시계’라는 책 제목처럼 2010년 3월, 새성전 봉헌과 함께 43년 역사의 진관교회에 해외 선교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2010년에 필리핀지역에 교회를 하나 지었습니다만 파송 선교사와 함께 3.3.3.3 프로젝트이 일환으로 기도하며 시작한 것이 우크라이나 국제선교센터였기에 이것을 제 1교회로 잡고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장종일 선교사로부터 우크라이나 지역에 복음의 전초기지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에 우크라이나에 대해 알아보니 과거 우리나라처럼 약 80년간 소련의 지배를 받았으며, 세계 역사상 최악의 원전누출사고라 불리는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일어났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마약, 범죄 등으로 인해 사회적 불안과 혼란을 겪고 있으며, 전쟁을 준비하는 등 위기와 위험이 상주하는 곳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다시 실효 지배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정도로 아픔과 슬픔이 많은 나라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난 후에 우크라이나에 복음의 한 알의 밀알을 심자는 마음으로 우크라이나에 국제선교센터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제선교센터의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도 은혜의 여정이었습니다. 센터의 부지를 찾던 중 과거 소련 공산당이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숲 속의 1만여 평의 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허가의 과정을 거쳤지만 센터를 준공할 수 있게 되었고 진관교회 성도들이 헌금했던 새성전 건축헌금 중 일부인 2억원을 들려 지상 2층으로 된 국제선교센터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각 층에는 예배실과 함께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는 세미나룸과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게스트룸을 구비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빼앗기 위해 사용되었던 군사훈련장을 주님의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은혜의 터전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어진 국제선교센터는 원래 동유럽 선교센터라는 이름이었으나 동유럽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국제선교센터로 명칭을 변경하게 됐습니다.

현재 국제선교센터는 매년 여름마다 약 3~4000명의 청년과 청소년들이 모여 대형수련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강사로 참여하며 경험한 수련회의 모습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자발적으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며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예배 후에도 삼삼오오 모여서 찬양과 기도를 멈추지 않는 모습은 놀라움과 함께 벅찬 감동이 되었습니다. 또한, 캠프 일정 동안 제대로 된 숙소가 부족해 숲속에 직접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해 먹으며, 불편한 가운데서도 스스로 숙식을 해결하는 모습은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젊은이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은혜로운 광경이었습니다. 이외에도 국제선교센터는 목회자들을 위한 목회교육을 비롯해 선교 훈련, 양육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는 교육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픔이 많은 나라에 한 알의 밀알을 심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우크라이나의 아픔을 보듬어주시고,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교제하는 하나의 숲으로 만드셨습니다.

2012년 7월, 국제선교센터 봉헌 이후 우리 교회는 현재 그곳에 3개의 교회(휴모테진관교회, 마린진관교회, 듀빈진관교회)를 더 건축하여 봉헌하였고 앞으로 소개하겠지만 그 교회들은 현재 교회뿐만 아니라 마약 중독자들 재활센터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작은 미미하게 사람이 하지만 그 일을 크게 이루어 가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잠언16장 9절)을 다시 한 번 고백하며 선교시계의 첫 바늘을 움직여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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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2-01-09 18:33:30
우크라이나에 대한 오해
본문 글에 우크라이나가 80년 동안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후루시초프는 소련 연방 내의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스탈린은 소련 연방 내의 그루지아 출신이다. 소련은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이 연합(연방)하여 100년도 지속되지 못한 聯邦國家이다. 소련 중 러시아의 땅 덩어리가 가장 크고, 인구도 가장 많고, 연방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연방의 수도가 모스크바다보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지배한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에 불과하다.

최근 폴란드에서는 폴란드인의 나치 협력에 대해 입만 벙긋해도 벌칙을 가하는 법령이 만들어져 서방세계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다. 나치 독일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폴란드인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치에 협력하여 2만명이상의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런 부역행위 전체를 나치독일에 덮어씌우는 데 급급하고 있다. 폴란드는 나치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나치의 협력자인 셈이다. 현 폴란드 정권은 “폴란드는 나치로부터 피해를 입기만 했지 다른 민족을 박해한 적이 없다.”고 발뺌하며 피해자 코스프레 하고 있는 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양심적인 폴란드인의 입을 틀어막고자 발버둥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백러시아 등과 함께 나치를 상대로 싸웠고 동시에 스탈린 등과 합세하여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우크라이나는 엄연한 소련의 일원이었다. 그래서 소련 치하의 양민학살 책임에 러시아 못지않게 많은 책임이 있다.

역사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와 독일 북부의 프로이센이 수세기동안 치고받고 했지만 결국 <게르만민족>이었듯이 백러시아, 키에프 부근의 우크라이나, 모스크바 부근의 러시아는 수세기동안 서로 치고 받고 해온 사실상 같은 <동슬라브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서로 갈라지는 것도 자유다. <한민족>이 한국과 북한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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