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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김연수 옮김, 민음사, 2008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는 하인리히 뵐의 1974년 작품이다. 발표한 지 6주 만에 15만 부가 팔리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언론의 폐해를 다룰 때 빠짐없이 인용되는 고전이다. 하인리히 뵐은 작품 속에서 대중의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언론이 어떻게 한 개인의 명예와 인생을 파괴해 가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한 일간지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범은 카타리나 블룸. 27세의 평범한 여인이다. 그녀는 경찰을 찾아와 자신이 기자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다. 가정관리사로 일하면서도 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로 주위의 호감을 사던 총명한 여인 카타리나. 그녀는 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소설은 2월 20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닷새간의 그녀의 행적을 경찰의 심문 조서와 검사, 변호사로부터 들은 정보 그리고 여러 참고인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한다.
사건은 2월 20일 수요일, 카타리나가 대모이자 친구이며 가장 신뢰하는 엘제 볼터스하임의 집에서 열리는 저녁 파티에 참석하면서 일어났다. 빈틈없고, 지인들 사이에 ‘수녀’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카타리나는 몇 년 만에 파티 참석으로 마음이 설렜다. 그곳에서 그녀는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괴텐은 강도 살해 용의자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였고, 사랑에 빠진 카타리나는 그의 도주를 돕는다. 21일 목요일 아침, 괴텐을 추적하던 경찰은 그의 검거를 위해 카타리나의 아파트를 습격하지만 이미 괴텐은 달아난 뒤였다. 결국 카타리나는 연행된다.
이 소식은 하이에나처럼 특종을 찾아 헤매는 일간지 기자 퇴트게스의 시야에 포착되고 끈질긴 특종 사냥꾼 퇴트게스는 그녀를 순식간에 ‘살인범의 정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그뿐 아니라 퇴트게스의 허위 기사는 카타리나의 아버지를 위장한 공산주의자로 어머니는 교회 물건을 절도한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운다. 24일 일요일 낮 12시 15분, 절망한 카타리나는 자기 아파트에서 퇴트게스 기자를 총으로 살해한다. 저녁 7시, 카타리나는 경찰을 찾아가 자신의 범죄행위를 자백한다.
48년 전 작품을 읽으며 깊은 기시감(旣視感)을 느낀다. 오늘날도 언론의 과장, 왜곡 보도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 교묘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기레기’라는 조롱까지 등장하겠는가! 이제 언론 기사의 팩트체크는 상식이 되었다. 공신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이 자신의 허위, 왜곡 보도에 대해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해 국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든지 또 다른 카타리나 블룸이 나올 수 있는 현실에 살고 있는 셈이다. 특별히 3월 대선을 앞두고 다시 읽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새삼스러운 까닭이 여기 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 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 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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