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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교회, 성스러운 성당"천주교 개종자 만난 목회사회학연구소 심층면접 결과…강요하고 가식적인 교회가 싫었다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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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2월 06일 (수) 00:00:00 [조회수 :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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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 실린 정재영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글입니다.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는 지난 9월 29일 서울에 있는 한 성당의 도움을 받아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 10명을 집담회 형식으로 면접했고, 그 가운데 3명은 따로 만나서 일대일로 심층면접했다. 이들 외에 4명을 더 심층면접했다. 면접 대상이 모두 여성이었으므로 이후 남성 개종자 2명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목회사회학연구소는 이들을 심층면접한 결과는 11월 30일 ‘개종자를 통해 본 한국인의 종교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다음은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가 발표한 연구 결과다(편집자 주)

   
 
  ▲ 정재영 교수는 교회에서 성당으로 떠난 사람들이 느낀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과 성당의 긍정적인 모습을 대비했다. ⓒ뉴스앤조이 유헌  
 
통계상으로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경우가 두드러지게 드러났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 연구에서 개종에 주목한 이유는 개종자의 경우에는 개신교와 천주교에 대한 뚜렷한 이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심층면접을 연구방법으로 택했는데, 그 이유는 현실상 개종자를 수백 명 찾아서 설문조사를 한다는 것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 질문을 피상적으로 던지는 설문 조사를 통해서는 한 사람이 개종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복잡한 심경 변화와 그들의 의미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개종 이유에 대한 일반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개종한 모든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개종한 사람들 중 일부가 갖고 있는 개신교와 천주교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또한 이들의 이해가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종교 지도자는 이런저런 의도를 가지고 교육을 하기도 하고 평신도들을 이끌어가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평신도들이 실제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종교 지도자들의 의도와 사뭇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종교지도자들의 의도나 법규화되어 나타나는 종교 교리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그들의 삶에서 실제로 구성하는 의미세계를 밝혀보고자 한 것이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이 매우 제한된 연구이지만, 이제까지 개종에 대한 실제 조사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개종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위한 첫 걸음을 시작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아울러 한 가지 밝혀두고자 하는 것은 이 연구는 엄정한 학문의 관점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히 천주교의 성장 요인이나 장점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종교성의 성격을 조명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실천적인 관심이 있다면, 한국 교회에 대하여 성찰할 기회를 갖고 개 교회보다는 한국교회 전체가 가야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와 올바른 소통을 하는 데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1. 개신교가 밀어내는 요인

이 연구에서는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는 과정을 ‘개신교가 밀어내는 요인’과 ‘천주교가 끌어당기는 요인’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 가지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요인들이 작용하는 가운데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됨으로써 개종이라는 행위의 결단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종자들이 말하는 밀어내는 요인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된다.

개신교는 ‘표현’의 종교

우리가 만난 개종자들이 개신교에 대해서 받은 인상은 개신교가 전체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사람은 개신교를 ‘표현’의 종교라고 표현했다. 천주교는 묵상을 강조하는 데 반해서 개신교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밖으로 표출하는 데 더 몰두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성찰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묵상하기보다는 빠른 박자의 찬양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표출하기에 애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나 성경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하기 보다는 ‘덮어놓고 믿는 식’이라며, 목사님 말씀에는 “할렐루야”, “아멘”하고 외치라고 하고, 하지 않으면 왜 아멘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다그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천주교에서는 성당에 출석을 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교리 교육을 받고 영세를 받아야 정식 교인으로 인정하는 데 반해, 출석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교육을 제대로 하지도 않고 등록을 하라고 강권하는 교회가 많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심지어 한 개종자가 출석했던 어떤 교회는 처음 출석하던 날에 등록을 하라고 요구해서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말한다.

종교사회학자들은 개신교는 대개 중상층의 사람들이 많고, 천주교는 개신교와 비슷하지만 중간층이 다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이원규, “종교와 사회계층,” <종교사회학의 이해>(서울: 사회비평사, 1997), 449~450쪽). 그리고 중상층은 종교 지성주의를 나타내고 중하층은 종교 감성주의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종교의 계층성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천주교에서는 교리 공부 등을 통해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제시하며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종교 생활을 하는 데 반해, 개신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성경공부는 단답형의 단순한 질문의 연속에 그나마도 주어진 정답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흔히 개신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표현하지만, 설교가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숙고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개신교에서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종교개혁은 반지성에서 지성으로 간 운동인데, 종교개혁의 주체인 개신교에서 오히려 반지성주의의 경향이 강하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과 상반되는 것을 나타낸다.

외형에 치중하는 교회, 자리 싸움하는 교인

우리가 만난 개종자들은 한결같이 교회가 지나치게 외형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교회 이미지와 관련된 설문 조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헌금에 대한 강요나 교세 확장에 대한 몰두와 같은 내용이 개종의 원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한미준·한국갤럽, <한국교회 미래리포트>(서울: 두란노, 2005), 232~235쪽), 또한 지나치게 직분에 연연해하는 교인들의 모습에도 크게 실망을 했다는 말을 했다. 유아세례를 받고 30대까지 교회 생활을 하다가 개종한 한 여성은 교회에서 헌금 그래프를 그려놓으며 헌금을 많이 내도록 강요했고, 헌금을 많이 한 어떤 교인이 교회에 출석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금세 집사가 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을 해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개신교는 ‘주일 성수’와 같은 외형으로 나타나는 종교성을 강조하고, 그 주일 성수도 반드시 자기 교회에 가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매우 배타적으로 여겨졌다고 말한다. 특히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매우 친절하게 인사하며 반갑게 맞아주지만, 한 주 결석이라도 하면 무서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큰 죄인인양 대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을 교세 확장의 수단으로 여기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교회에 가봐도 어떻게 하면 우리 교인으로 끌어들일까 하는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아 매우 가식적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유명 교회에서 집사로 구역장을 지내다가 권사 후보에 오른 후에 성당으로 옮긴 한 개종자는 “자기 교회와 같은 좋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쓸데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보다는 목사님을 하나님 같이 섬기며 장로나 권사가 되려고 선거 운동 하는 모습에 질렸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성당에서는 얼마나 봉사를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직분을 받고 그것도 임기제로 이루어지만, 교회에서는 봉사 정도보다도 헌금 정도에 따라 직분을 받는 것 같이 보였으며 안수를 받아 평생 누리게 되는 직분을 얻으려고 너무나 애를 쓴다.“며 안타까워했다. 심지어는 교회 지도자인 목회자마저도 돈이 많거나 사회에서의 지위가 높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가족 같은 교회, 시댁 같은 교회

개종자들은 교회에서 사람들은 가족같이 너무 복잡대고 부대끼며 서로 상처를 많이 주고받는다고 말한다. 개신교회 구성원들은 서로 간에 매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것은 친근감을 준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사생활의 영역이 침범 당한다는 느낌을 주어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중보기도회와 같은 자리에서 은밀하게 나눈 기도 제목조차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다가와서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면 고맙다기보다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신의가 지켜져야 할 목회자와의 상담 과정에서 나눈 얘기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누설되는 매우 불쾌한 경험을 했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부부 사이에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던 남편이 목사님과 상담을 했는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목사님의 사모님이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더라는 것이었다. ‘고해성사’라는 제도를 위해 훈련을 받는 천주교 신부와 달리 상담에 대한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한 개신교 목회자들은 신도와의 상담에 대한 신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로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교회와 목회자와 목회자 부인에게 크게 실망한 이 사람은 “사모님 없는 교회, 밥 안 먹는 교회”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성당이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며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천주교에 비해, 개신교에서는 처음 교회에 온 사람에게도 친근감을 표시하며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권유를 하고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런 저런 봉사 활동을 강요하다시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교회에 대해 한 개종자는 교회를 ‘시댁’과 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교회 여전도회장의 요구로 주방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인문학 박사인 자신은 교육 분야에서 봉사하고 싶었지만, 이런 일에 대해 사전에 동의나 양해를 구하지 않고 무턱대고 나와서 밥을 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서로 돕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며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받으려고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는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밥을 하라고 불러서 결국 ‘밥댁’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실망한 사람들이 왜 다른 교회를 찾아보지 않고, 성당을 택했는지를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교회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서 교회는 가고 싶지 않았고, 같은 하나님을 믿는 성당을 택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대답은, 교회는 교단과 교파를 따져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매우 번거로웠고, 지역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 표준화 또는 평준화 되어 있는 성당에 비해 교회는 목회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교회를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성당은 매우 일관성이 있고 통합된 인상을 주지만, 교회는 각각의 형편과 수준에 따라 차이도 심해서 한 교회를 선택한다는 것이 매우 위험부담이 큰일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개신교의 신도들이 이사와 같은 이유로 교회를 옮겨야 하는 경우에조차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들은 멀리 이사를 가더라도 다니던 교회에 출석하기를 강요하고, 그럼에도 교회를 옮기려고 하는 신도의 입장에서는 교회를 새로 결정하기도 쉽지 않아 이중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2. 천주교가 끌어들이는 요인

개신교에 실망하고 떠난 교인들이 천주교를 선택하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교회에 대한 실망이 다른 교회로의 이동이 아닌, 천주교로의 개종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신교의 밀어내는 요인과 함께, 천주교에서 신자들이 끌어들이는 요인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아래에서는 개종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직접 말하고 있는 개종 이유를 정리하고 있다.

세속스러운 교회, 성스러운 성당

인터뷰 과정에서 천주교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은 ‘천주교는 성스럽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천주교의 ‘성스러움’을 개신교의 ‘세속성’과 대비시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성스러움’의 내용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성당의 성스럽고 엄숙한 분위기를 지적한다.

“성당을 다녀보니까 상징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성스럽게 해주는 것 같아요. 우상 숭배다, 뭐 옛날에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것이 없어졌어요.”

“미사를 딱 들어가면 사람들이 굉장히 진지하고 엄숙하고 묵상의 종교구나 라는 느낌은 많았어요.”

“우선 성당 안에 들어오면 성당 안의 분위기, 전례의 분위기, 우선 성당 안에 제대가 있고, 성화, 성물, 이런 것이 있어요. 그것을 보면서 엄숙해지고 진지해지죠.”

이러한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는 개신교의 “화려하고 활기차”지만 “시끄럽고, 가벼운” 교회 분위기와 대비된다. 이러한 천주교의 엄숙한 분위기에 있다 보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나아가 용서받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성직자들과 성도들의 생활 모습 역시 천주교의 ‘성스러움’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개신교의 목사님들은 일반 성도들과 같이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낳고, 그래서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세속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결혼을 하지 않고, 그만큼 경제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신부나 수녀님들은 훨씬 더 성스러운 생활을 하고 존경할 수 있다고 말한다(이에 반해 신부나 수녀는 결혼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의 생활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주지 못한다는 의견도 소수 있었다). 성도들의 교회 생활도 많이 비교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개신교에서는 집사, 권사, 장로 등의 직분을 둘러싸고 갈등이나 경쟁이 극심할 뿐 아니라, 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별이 심하다는 것이다. 반면 천주교에서는 직분이 임기제이기 때문에 깨끗하고, 그것을 둘러싼 암투도 없다고 말한다. 인터뷰에 응한 어떤 사람은 “(개신)교회라는 데가 상업적이라는 느낌”이 든다고까지 표현했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가지는 이러한 이미지의 차이를, 어떤 사람은 피아노와 파이프 오르간의 비유를 통해서 표현했다. 개신교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피아노는 화려하기는 하지만 가벼운데 반하여,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파이프 오르간은 웅장하고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개신교에 비하여 천주교는 역동성은 없을지 몰라도, 깊이와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개신교는 표현의 종교이고, 우리 가톨릭은 묵상의 종교인 것 같다”는 것이 그 신자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천주교의 이미지는 인터뷰한 천주교 신자들만의 것은 아니라, 어느 정도 널리 퍼져있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우리신학연구소 박영대 소장은 “천주교는 중앙집권적인 단일 조직이고, 인사이동을 계속해 부패가 곪아 터지기 어려운 조건이며 사회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개신교는 왜 홀로 쇠퇴하고 있는가?’ <시사저널>, 2006년 10월 19일).

이 밖에도 천주교의 성스러움의 이미지에는 1980년대 암울했던 시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같이 사회봉사 활동이나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물론 인터뷰를 했던 사람들 가운데 직접 이런 요인을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천주교를 분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당의 ‘성스러움’에 대한 이미지는 현대의 각박한 사회생활에 지친 많은 현대인들에게 안식처로서의 의미로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피곤한 교회, 자유로운 성당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는 한 마디로 ‘피곤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단 천주교로 개종한 인터뷰 대상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신교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지나친 전도 행위, 나아가 다른 교회 사람들에게까지 자기 교회로 끌어들이려는 노력 등을 곱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뷰 한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 나갔을 때, 교인들이 자신들에게 보이는 친절이 진정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자들 끌어들이기 위한 가식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에 비하여 천주교는 “미온적”이고, “너는 너, 나는 나”로 “깊이 사생활 침해는 안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물론 천주교도 개신교처럼 조직이야 구역으로 다 나누어져 있지만, 활동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구역활동을 특별히 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분석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가족 같은 교회’나 ‘시댁 같은 교회’는 구성원들의 따뜻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친하게 같이 얘기도 많이 하고 그랬었지만 서로 어느 정도까지 절제되는 그런 것이 있어요. 그러니까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절제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갔는데 막 아는 척하고 이런 것 친절하게 하는 것 있잖아요. ‘ 어머, 자매님, 왜 교회에 안 다니시냐’고 그러면서 그래서 무서워요. 거기 가기가 무서워요. 다 저한테 그런 눈으로 쳐다봐요. 왜 교회를 안 다니나, 성당은 안 그러잖아요. 제가 혹여 주말을 못 지켰어요. 제가 그렇다고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 못 지켜도 누가 저한테 전화해서 왜 안 오냐고 그러지 않잖아요, 적어도. 못 지킬 수도 있고….”

이처럼 사람들은 천주교는 자신의 사생활이 심하게 침해당하지 않고서도, 자유롭게 품위 있게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여긴다.

흑백 논리의 교회, 융통성 있는 성당

인터뷰 대상자들이 성당을 긍정으로 생각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는 융통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내용은 술과 담배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것,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다원주의적인 현대 사회에서 폐쇄적인 개신교에 비해, 천주교는 개방적이고 융통성이 있다는 이미지를 갖게 하였다.

융통성 있는 천주교의 이미지는 한 개종자의 사례에서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다. 개신교회에 다녔던 응답자는 불교도인 시어머니로부터 불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교회를 다니는 줄 알지 못했던 시어머니의 계속된 권유에 고민하다가, 결국 오랫동안 가져온 신앙을 포기할 수 없어서 천주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그녀가 천주교로 개종한 이유는 어른들의 생각에 개신교는 절대 안 되지만, 천주교는 불교와 비슷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막내 시동생 신부감을 고르면서 시어머니의 그러한 태도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신부감의 종교가 천주교라면 용납할 수 있겠지만, 개신교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신교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며 사람만 보면 전도하려고 들어 피곤하게 하지만, 천주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포용력이 있고 사람을 자기 종교로 끌어들이려는 부담을 별로 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천주교가 포용적이고 관대하다고 말한다. 이들 대부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제사 등 우리 전통을 수용하려는 천주교의 태도를 긍정으로 보는 것이다.

정재영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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