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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기둥을 세워주신 분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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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1월 05일 (수) 23:52:33 [조회수 : 3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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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처음 올라와 아직 낯설기만 할 때 집안 어른이 내게 골목 어귀에 있는 가게에 가서 담배 한 갑을 사오라 이르셨다. 초등학교 4학년이라곤 하지만 어수룩한 태를 내고 싶지 않았다. 골목길을 걸어가며 몇 번이나 서울말 연습을 한 후 마침내 가게 주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담배 한 갑 주세요.” 하지만 가게 주인의 응답은 나를 좌절시켰다. “너 시골에서 왔구나?” 굳이 그렇게 지적을 해야 했는지 모르겠으나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골학교에서 서울로 전학 올 때 커다란 대포알을 잘라 만든 종을 울려 전교생을 운동장에 불러 모으고는 나의 장도를 축하해주셨던 교장 선생님이 떠오르며 아뜩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부모님은 어쩌자고 눈 뜨면 코까지 베인다는 서울에 막내아들을 올려보내셨는지 모르겠다. 문화적 충격이 컸다. 시골에서는 학교에 갈 때 한 동네에 사는 사촌 누이와도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것도 신작로 좌우편으로 갈라선 채. 서울은 달랐다. 반은 남반 여반 구별되어 있었지만 운동장에서는 남녀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았다.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못지않게 내게 놀라웠던 것은 체육시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진짜 공을 보았다. 시골에서가지고 놀던 공이래야 기껏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은 게 전부였다. 마을의 어느 집에서 돼지를 잡는 날은 아이들에게도 축제였다. 쉽게 닳을까 무서워 돼지 오줌보 공에 새끼줄을 정교하게 감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공이라니. 별천지였다. 

그러나 부모님을 떠나 사는 서울생활이 조금은 외로웠다. 따뜻한 돌봄이 그리웠다. 가장 큰 문제는 몸이 아플 때 혹은 어려움이 닥칠 때 그것을 홀로 견뎌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연탄가스를 맡고 쓰러졌을 때도 혼자였고, 한강물이 범람하여 방까지 밀려왔을 때도 홀로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 견디기 위해 나 자신에게 늘 질문을 던지곤 했다. “야, 이게 네가 견딜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이야?” 그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스스로 대답했다.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와중에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늘조차 없었을까?

5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은 그런 나를 눈여겨보셨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주셨다. 선생님은 역할극을 통해 수업을 진행할 때가 많았는데, 늘 내게 좋은 역할을 맡기곤 하셨다. 도산 안창호가 되어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할 때도 있었고, 민족의 직면한 문제를 부둥켜안고 고민하던 춘원 이광수의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져 피가 흘러내려도 아무렇지 않은 듯 달리고 또 달렸다. 학년을 마칠 때 선생님은 반 학생 80명 모두에게 상장을 주어 격려하셨다. 우등상 개근상 품행상 저축상만이 아니었다. 상장에는 아이들 각자의 특성이 적혀 있었다. 내가 받은 상장에는 ‘감투상’이라는 상명이 적혀 있었다. 과감하게 싸우는 사람이라는 뜻이겠다. 우리 속에 갇혀 있을 수도 있었을 특성이 누군가의 호명을 통해 드러나기도 하는 법이다. 그 상장을 받던 날부터 나는 그 단어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애써왔던 것 같다. 그 상은 사는 동안 내가 받았던 상 가운데 최고의 상이었다.

사는 동안 어려운 고비가 왜 없었겠는가? 인생은 선택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도 걷지만, 길이 우리를 선택할 때도 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맡아야 하는 역할이 있지 않던가. 우연처럼 맡겨진 일들을 마치 내가 선택한 삶인 듯 살아내는 게 어쩌면 인생의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변함없이 굳건한 확신 속에서 사는 사람은 없다. 어긋나가고, 미끌어지고, 길을 잃어버릴 때도 많다. 일탈에의 욕망에 확고히 사로잡히기도 한다. 마음에 후림불이 당겨지면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렵다.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느라 안간힘을 쓰다 보면 밑도 끝도 없는 공허감이 슬그머니 떠올라 실력발휘를 할 때도 있다. 푸접없는 세상살이에 지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멋대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소싯적에 받은 ‘감투상’을 떠올린다. 아직은 그 상을 받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 반 세기하고도 여러 해가 지났다. 허릅숭이 제자의 가슴에 든든한 기둥 하나를 세워주신 나의 선생님, 이재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 <월간 에세이>,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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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2-01-06 13:15:37
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선생님 그립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는 어떨까요?
아래는 인터넷 검색하다가 퍼온 글입니다.

*초 · 중 · 고 모두 ‘학교 붕괴’ 현상 극심 <골든 타임즈의 글, 출처 조갑제닷컴>

제멋대로인 학생들 때문에 요즘 학교에선 정상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초 · 중 · 고 모두 ‘학교 붕괴’ 현상 극심하다고 한다. 요즘 교사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교사들은 아침에 눈 뜨면,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낼까 막막해진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한다. 개학하기 며칠 전부터는 학교에 가기 싫어 잠도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안갈순 없고.

서울 어느 고교 1학년 교실. 수업 종이 울리고 교사가 교실에 들어섰는데도 교과서를 펴 놓은 학생이 거의 없다. 교사가 교탁 앞에 서면 학생들은 비로소 교실 뒤에 있는 사물함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가 교과서며 공책을 꺼내온다. 아직까지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가 5명, 교사가 이들을 깨운다. 부스스 일어나는 아이들. 미안해 하는 기색은 손들만큼도 없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학교가는 학생들이다.

수업 중에 양치질 하고 오는 학생이 없나. 인문계 ·실업계, 초· 중· 고를 가릴 것 없이 교사들은 수업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모 고등학교 교사는 수업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집중하는 아이3명. 내처 자는 아이 5명. 잡담하고 노는 아이 10명. 딴생각 하는 아이 30명. 수업 도중 예닐곱은 화장실에 간다며 흐름을 끊기 일쑤이다. 개중에는 흡연 욕구를 이기지 못해 수업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 '한 대 꼬슬리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이상은 어느 신문에 나온 이야기다)

누가 학생들을 이 따위로 만들었나? 싹이 노랗다. 

*여기에 달린 댓글(무학산의 글)

꼬시다
깨소금 열두 단지보다 더 꼬시다
교사 새끼들이 제 이익을 노리고 전교조할 때 알아봤다
제 스스로 스승에서 노동자로 내려 앉았으니 학생이 그에 맞는 대접을 할 뿐이다

전교조 등쌀에 학교 가기 싫다는 교장을 여럿 보았다
전교조가 교장실 크기가 크다고 난리치는 바람에
예산을 들여 축소 공사까지 했다는 데가 수두룩하다
전교조 새끼들이 학생들에게 지금의 학생이 되라 가르친 결과이다
누구를 탓하랴 전교조 소상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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