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박영돈 지음, IVP, 2011

성령의 권능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이름난 부흥사들과 성령운동(?)의 횡행 이면에는 성서에 대한 무지와 성령과 그 은사에 대한 몰이해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신학교 시절에는 신학의 자유로운 풍토에서 거의 불가지론자나 은사 폐기론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해왔다. 

역설적으로 척박한 목회 현장에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결국 자신도 믿지 않는 거짓 성령의 은사를 마치 목회의 프로그램들 중 하나처럼 도입하는 퇴행을 마주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금가루를 뿌리고 다니는 사기꾼의 행태를 여러 교회는 좌시하고 있었다. 병고침에 대한 병적인 집착, 분별없는 방언수여식(?)을 뒷짐 지고 지켜보거나 부추기기까지 하는데 그들의 패착은 그들이 만들어낸 소문보다 훨씬 더 큰 악재가 되어 교회 망신을 시키니 개탄스럽다. 목회와 복음 전도마저도 단기간에 효과를 기대하는 투입 산출의 원리에 지배당한 것이다.

교회력은 일 년 중 가장 긴 기간(부활절 이후부터 창조절이나 대림절까지)을 성령강림절로 지킨다. ‘현대의 기독교는 십자가와 부활 사이에 머물고 있는 아주 슬프고 실망스러운 모습’이라고 했던 스텐리 존스의 지적처럼 오늘날 성령강림절의 문제는 정작 성령을 외면한다는데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초대교회 사도들의 행적이 현대 교회에서 실종된 것은 아닌가? 잃어버린 곳은 지금 이곳의 교회이기에 되찾아야 할 곳 또한 교회인데, 사람들은 마치 어디론가 떠나버리신 성령을 찾아 나선 것처럼 해외선교지에서, 심심산중의 기도원에서, 주중에 모이는 또 다른 신령한 집회에서 성령을 찾고 있다.

이런 때에 박영돈 교수의 저술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의 적절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후 세대의 부흥의 역사를 재현할 기세로 일어나는 무분별한 성령사역과 이를 부정하는 은사폐기론 사이에서 교회는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여기에 이단들까지 속출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혼돈상태를 정리해줄 성서에서 드러난 성령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령론을 설명하고 있고, 문제의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관찰해 조목조목 평가해 둔 저자의 노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반향을 일으켰던 것이다. 

성령론의 정공법은 성서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성서학･역사･문화 비평적 이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방식처럼 현재 나타나는 이른바 성령사역의 현장을 공론화하여 성서적으로 검증하는 방식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성령사역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과 저자의 견해를 정립해본 뒤 저자의 생각과 비교･대조해보는 것도 권장할만한 읽기의 방식이겠다.
 
저자 박영돈 교수는 성령을 이렇게 정의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보혜사입니다. 성령은 ‘얼굴이 없는 인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의 얼굴을 감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인가 아닌가를 분별하는 저자의 준거는 명백하다. 성서를 통해서만 성령의 근본적 사역이 무엇인지, 그 사역의 특성과 패턴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성서가 분별의 척도가 된다. 성령은 성서에 계시된 진리에 거스르는 가르침을 통해 역사하시지 않는다.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한편으로 미혹의 영을 자유롭게 하는 행위임을 깨달아야 한다.

몇 차례나 천국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증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저자는 이를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천상의 세계를 엿보려는 영적 관음증이요 조급함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경은 신비한 체험을 자세히 간증하거나 진술하는 것을 전혀 권장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처럼 신령한(?) 사람들을 따르는 성도들의 자세다. 이른바 점쟁이 수준 ‘예언’의 폐해도 심각하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예지력이 성령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심각한 오해가 아닐 수 없다. 미래를 미리 안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삶이 불가능해진다. 운명의 꼭두각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알려진 미래는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다. 하나님께서는 알지 못하는 미래 앞에서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고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길을 택할 수도 있고, 저 길을 택할 수 있도록 우리의 미래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융통성을 허용하신다. 어떤 길을 택하든 하나님을 중심에 둔 삶의 목적과 원리 가운데 내린 선택이라면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현혹하는 기사와 이적들 앞에서 세미한 음성으로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한다. 그것은 시내 산에 임하셨던 두려운 광경과 대조를 이룬다. 세미한 음성은 두려운 영광의 현현이 아니라 연약한 아기 예수로의 성육신과 무력한 십자가의 구속 방식과 궤를 같이한다. 이것이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어찌할 수 없는 기적과 표적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로 일으키시는 진정한 변화의 능력이다.

원래 기적이 없었다고 보는 이들이나 성서가 기록될 당시에 일어난 기적은 더 이상 오늘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겠다는 세속주의 세계관에 직간접적으로 동의하는 셈이다. 현대 교회에 은사에 대한 혼란이 가중된 것은 은사를 모두 사이비와 광신집단에 맡겨버린 채, 건전한 은사사역을 등한시해 온 기존 교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치유 집회에 대해서도 비판과 정죄로 일관하기보다 성경적인 치유 신학을 정립하고 바람직한 치유 사역의 모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더 긍정적으로 문제를 대처하는 방안이다.

바른 치유 사역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자라게 하기 위한 것이기에 치유의 은사도 반드시 이 목적에 부합되게 사용되어야 한다.
2) 치유는 말씀 사역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복음의 일부분이다. 생명력 있는 말씀 사역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3) 교인들이 서로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라.
4) 사랑이 식으면 사랑의 방편으로 주시는 은사도 고갈되어 간다.

신현희 목사 (안산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