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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십일조,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의 척도” 말라기 3장 7절~12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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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년 01월 03일 (월) 14:36:34 [조회수 : 2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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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십일조,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의 척도” 말라기 3장 7절~12절

 

 

1.말씀으로 돌이키는 회개

 

① (6절)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 (메시지성경) “나는 하나님이다. 그렇다. 언제나 하나님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지 않기에, 너 야곱의 자손이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은 것이다” 택하심을 받은 야곱의 자손들이 소멸할 위기에 빠진 이유는,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선민 이스라엘의 배신 때문이다. 소멸로부터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은, 우리의 의로운 공덕이 아니라 우리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한결 같은 하나님의 은혜다.

 

② (7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 (메시지성경) “너희는 오랜 세월 동안 내 명령을 무시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일을 하나도 행하지 않았다. ‘내게 돌아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만군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멸망의 원인과 멸망에서 벗어날 해법을 함께 제시한다. 원인은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은 것이고 준행하지 않은 이유는 경외해야할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 단 한번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수없이 반복된 일이다. 에덴동산의 아담에서 출애굽 광야와 사사기 약속의 땅에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사울 왕과 솔로몬, 뒤를 이은 열 왕들까지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은’ 반역의 역사를 대물림했다. 해법은 ‘내게로 돌아오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회개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반성이 아니라 욕심에서 말씀으로 중심을 바꾸는 회심이다. 성경이 전하는 회개는 ‘욕심-죄-사망’에서 ‘말씀-의-생명’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③ (7절 하)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 (메시지성경) “너희가 묻는다. 저희가 어떻게 돌아가야 합니까?” 순순히 회개의 방법을 묻는 게 아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자꾸 회개하라고 하시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는 항변이다. (말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메시지성경) “너희 제사장들이 나를 멸시한다. 너희는 말한다. 그럴 리가요! 저희가 어떻게 주님을 멸시한단 말씀입니까?”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지 않고 죄를 부인하는 뻔뻔함이다. 한마디로 돌이켜 회개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변함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는 이스라엘의 완고함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무거운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죄를 회개치 않는 완악함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다. 다만 회개치 않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우리의 죄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악보다 하나님의 긍휼이 더 크신 까닭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2. 온전한 십일조의 정신

 

① (8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 (메시지성경) “정직한 일부터 시작하여라. 정직한 자들은 하나님의 것을 훔치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는 날마다 내 것을 훔친다. 너희가 묻는다. ‘저희가 어떻게 주님의 것을 훔쳤단 말씀인가요?’ 십일조와 헌물이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말씀에 대해 또다시 반항하며 항변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신앙의 척도는 물질(돈, 보화)이다. ‘척도(scale, 尺度)’는 자로 재는 길이의 표준이나 평가하고 측정하는 기준을 말한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의 바로미터다. ‘바로미터(barometer, 기압계)’는 사물의 수준이나 상태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하나를 보면 열을 알 듯 물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보면 무엇을 섬기며 사는지 알 수 있다.

 

② (마23장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구약의 십일조에 관한 신약의 유일한 말씀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외식을 책망하시며 십일조의 정신을 ‘정의, 긍휼, 믿음’이라고 하셨다. ‘정의(正義)’는 정직한 계산이다. 십일조의 정신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정직한 고백이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땅에서 거둔 소산물도 하나님의 소유다. 삶에서 누리는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 곧 은혜의 결과물이다. 이 고백 위에 감사와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이 십일조를 비롯한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물이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모든 피조물이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다. 말라기 시대 신앙인들과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의 공통점은 형식적인 십일조를 드리면서 여전히 물질을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말라기가 하나님의 것을 마치 제 것처럼 여기는 부정직한 행위를 불의한 도둑질로 정죄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의 조건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제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③ (9절)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 (메시지성경) “지금 너희와 너희 모두가 저주 아래 있는 것은, 너희가 내 것을 훔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온 세상과 모든 인류에게 일용할 양식을 허락해주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왜 한해에 수십 만 명이 굶어 죽게 내버려 두실까? 오늘날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 양극화로 인한 절대 빈곤의 원인은 일용할 양식을 베푸시는 하나님 탓이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필요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탐욕에 빠져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물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에는 충분하지만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까닭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을 충분한 양식을 인류에게 허락하셨다. 다만 타인의 일용할 양식을 빼앗아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탐욕으로 인해서 세상은 빈곤과 가난으로 신음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자신을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다. 이것이 십일조의 두 번째 정신인 ‘긍휼’이다.

 

 

3. 하나님의 명예를 건 보증

 

① (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 예수께서 말씀하신 십일조의 세 번째 정신은 ‘믿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준행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으로 보답하신다는 언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성경은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에 따라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누이 강조한다. 온전한 십일조는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의 척도다. 이 말씀을 근거로 십일조를 단지 물질적인 축복의 수단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이 언약이 전하는 본뜻은 하나님께서 만복의 근원 되시고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뚜렷하게 증거 하시는 말씀이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에 최우선 과제를 두고 사는 이들에게 만물의 주관자가 친히 약속하는 확실한 보증(保證, guarantee)으로 읽어야 한다.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다. 언약을 준행하면 그 언약대로 축복하시는 약속 위에 세워진 신앙이다. 구약과 신약, 지난 이천년 동안 이 약속은 수많은 삶에서 성취되고 이루어져왔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친히 보증하신다.

 

② (11절~1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예수께서도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통치에 두고 사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친히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언하셨다. 말라기 시대의 신앙인들과 예수님 시대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문제는,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보다 물질에 두고 살았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 대한 바리새인의 태도에서 속내가 드러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16:13~14)” 그들은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열의 아홉은 자신의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해서 부의 축적을 스스로 정당화하면서 삶의 목적을 물질적인 부요에 두고 살았다. 십일조를 물질적 축복의 수단으로 오해하는 건 그들의 오류를 반복하는 일이다.

 

③ 「강단과 목회」, <온전한 십일조의 정신>, 김명섭, 2021년 9‧10월호에서 인용.

▶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는 예수님의 선명한 가르침 앞에서 십일조에 대한 논란은 일말의 여지없이 종결된다. 하지만 오늘날 십일조에 대한 논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교회의 부요가 교회의 타락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철저한 십일조로 인해 크고 강한 교회가 되었지만 동시에 오만과 타락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날이 선 비난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 재정에 대한 건전성과 투명성을 철저하게 재고하고 재정립하는 데 더 힘써야 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십일조가 복이 아니라 도리어 화가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십일조를 안 드린 것이 아니라 십일조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삼상2:29)”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거룩하게 드려진 제물을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남용했다.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은 성경 속에만 나오는 추태가 아니다. 십일조를 온전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것만큼 하나님께 바쳐진 십일조를 온전하게 선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십일조의 준수와 더불어 십일조의 정신을 온전하게 실천하는 자리까지 성숙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온전한 십일조로 하나님의 통치를 삶에서 체험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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