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이 온다 할지라도

(<최후의 유혹>,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옮김, 열린책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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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유혹을 받은 적이 있는가? 유혹의 순우리말 표현은 ‘꾐’이다. 그 뜻은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속이거나 부추겨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하는’ 것이다. 말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유혹이란 행동에는 두 사람, 혹은 두 모둠이 있다. 바로 속이는 자와 속는 자다. 누군가를 유혹해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속는 자의 욕망을 미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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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은 예수의 공생애 전부터 십자가 죽음까지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이 말해주듯 소설 속 예수는 끊임없이 유혹에 시달렸다. 누군가를 유혹하려면 속는 자의 욕망을 건드려야 가능하다. 메시아의 길 대신 예수가 마음에 품은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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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산화한 후 하느님 나라의 표징으로 부활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늙을 때까지 생을 맛보며 살아가길 원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를 위해 욕을 먹고 박해받는 삶보다 악인과 선인에 대한 차별없이 해와 비를 주시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더 원했고 그래서 최후까지 유혹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유혹을 이겨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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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는 자가 예수를 유혹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메시아 도래의 지연이다. 하느님은 선지자를 통해 메시아를 보내 이스라엘 뿐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소설 속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제베대오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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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메시아 이야기라면 신물이 나. 하나 나타났다 하면 십자가에 매달리고, 또 나타났다 하면 또 십자가에 매달리고. 그리고 자넨 안드레아가 그의 아버지 요나에게 무슨 소식을 전했는지 아나? 어디를 가거나, 어디에 멈추거나, 십자가가 눈에 띈다는 거야. 지하 감옥은 메시아로 꽉꽉 들어찼고. 지긋지긋한 일이지! 우린 메시아 없이도 잘 지내 왔고, 메시아라는 자들은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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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거나 연극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기약없는 기다림이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를 알았다. 선지자를 통해 약속된 메시아 도래의 지연 역시 유대인들을 무기력과 불신앙으로 이끌기 충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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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자신도 악마가 보여준 환상 속에서 늙어가던 중 사도 바울을 만나 이렇게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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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선량한 벗이여.” 예수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가려는 곳으로부터 이미 돌아왔어요. 당신처럼 젊었을 때 나도 세상을 구원하려고 나섰어요. 세상을 구하기를 원한다면, 그건 젊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나는 맨발에 누더기를 걸치고 옛날 선지자들처럼 못을 잔뜩 박고 가죽 띠를 허리에 두르고 돌아다녔어요. 나는 ‘사랑하시오! 사랑하시오!라는 둥 많은 얘기를 외쳤지만, 이제는 그런 일은 기억조차 하기 싫어요. 사람들은 나를 과일 껍질로 때리고, 매질을 하고, 하마터면 십자가 처형을 당할 뻔했어요. 내 선량한 친구여, 당신도 똑같은 과정을 거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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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오늘도 이런 패배주의적 독백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후의 유혹>에서의 예수는 유혹을 극복하고 메시아의 삶을 완성해 간다. 그 승리의 비결은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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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는 최후까지 명예롭게 그가 지켜야 할 자리를 지켰으며, 약속을 지켰다. (중략) 그의 제자들은 꿋꿋하게 살아 잇었다. 그들은 바다와 뭍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모든 일이 올바르게 이루어졌나니, 하느님께 영광을!
그는 승리감에 차서 소리쳤다. “이루어졌나이다!”
그리고 그 말은 이런 뜻이었다. <모든 일의 시작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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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갈 바를 알고 있다면 그곳을 향해 계속 전진하자. 일희일비하지 말고 굿굿하게 자리를 지키자. 유혹이 온다 할지라도.

이원영 목사(예장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