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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새로운 삶을 위한 첩경” 말라기 3장1절~6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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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2월 27일 (월) 17:18:19 [조회수 :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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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새로운 삶을 위한 첩경” 말라기 3장1절~6절

 

 

세례요한과 예수그리스도

 

①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타락한 성전(나라, 왕, 제사장)을 회복하시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내리신다. ‘언약의 사자’를 보내시는 것이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그리스도, 왕, 거룩한 성전, 거룩한 대제사장)다. 언약의 사자가 오시기 전에 주의 길을 예비하는 ‘내 사자’를 먼저 보내신다. ‘내 사자’는 세례요한이고 ‘언약의 사자’는 예수그리스도다.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초림)으로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재림)으로 완성된다.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알 수 없는 때에 갑자기 오시기 때문에 그 날을 미리 예비(준비, 대비)해야 한다.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첩경이 ‘회개’다.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베푼 물세례를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눅3:3)’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개는 새로운 삶을 위한 선행조건이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개는 잘못된 행실을 뉘우치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中心)을 돌이키는 회심(回心)이다. 세례는 단순히 물로 씻는 종교적 의식이나 기독교인 되었다는 신고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이자 탐욕에 이끌려 살던 삶에서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중심을 돌이키는 회심이다. 본능을 좇던 삶에서 거룩하신 말씀을 좇아 사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3:5~8)” 사람은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한다.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첫 번째 출생이라면, 두 번째 출생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이다. 세례는 거듭난 삶을 살겠다는 약속이며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는 증표다.

▶ 강림절의 유래는 세례 예비자들이 회개로 세례식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성탄절의 중요한 의미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넘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그리스도인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롬6:3~5,8)”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세례식의 본질은 욕심에 이끌려 살던 옛 자아는 물과 함께 수장되어 죽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은총의 순간이다. 결혼식이 행복한 가정을 위한 출발점이듯 세례는 거듭남을 향한 거룩한 구원여정의 출발이다.

 

② (2절 상)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 누구도 인생의 종말인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그 날에 누구도 예외가 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업적이나 물질, 권세나 명예(직분)는 아무 소용없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1)”, 천국의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이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심판의 기준인 중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으로 드러난다. 경외와 순종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겨울이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여름에 무엇을 하였느냐고(슬로베니아격언)’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곧 우리의 중심에서 우러나온 삶대로 심판하신다. 따라서 신앙의 본질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반듯하게 세워나가는 것이다.

 

③ (2절 하~4절)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 (메시지성경) “그는 용광로 속의 맹렬한 불과 같다. 그는 가장 강력한 세정제 같다. 그는 금과 은을 정련하고 더러운 옷을 깨끗이 빨듯이, 레위 제사장들을 정련하고 깨끗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을 하나님께 합당한 자들, 의의 제물을 바치기에 합당한 자들로 만들어 낼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유다와 예루살렘은, 오래 전처럼 하나님께 합당한 존재, 기쁨을 드리는 존재가 될 것이다” 구원의 유일한 조건인 거듭남의 시작은, 세례요한의 물세례이고 거듭남의 완성은 예수께서 주시는 불세례, 곧 성령세례로 완결된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되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도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눅3:16)” 세례요한은 자신이 베푼 물세례와 구별되는 불세례, 곧 예수께서 베푸실 ‘성령세례’를 증거 한다. 물세례가 나 자신의 의지적인 결단에 의한 나로부터 시작되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라면, 성령세례는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성령세례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불타올라서 더러운 죄악을 온통 불사르는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이며 우리의 더러운 삶을 씻어내는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려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통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마치 우리 몸을 지면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처럼 죄가 우리를 죄악의 심연(深淵)으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롬7:16~25). 이는 물세례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이 만성질환같이 완고하고 완악한 까닭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물세례와 더불어 예수께서 성령과 불로 베푸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나기 위해선 회개의 물세례와 더불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2. 심판의 목적, 멸망 아닌 구원이다!

 

① (5절)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 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너희가 하는 말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괴롭힌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괴롭힙니까? 하고 너희가 묻는다. 바로 이런 말로 하나님을 괴롭힌다. 하나님은 죄인도 죄도 다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뭐든지 사랑하신다. 심판이라고? 하나님은 너무 좋으신 분이어서 심판 같은 것은 하지 않으신다(말1:17)” 앞서 살펴본 말라기의 예언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핑계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분명하게 증거 한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다. 이천년 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미 심판을 받았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심판을 완성하신다. 중요한 점은 심판의 목적이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 말라기는 심판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술수 하는 자’는 메시지성경에 마술을 부리는 자로 번역한다. 부동산투기로 거두는 불로소득은 돌로 떡을 만드는 마술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사단의 매직(magic)이다. ‘집을 두 채 가진 자 이성을 잃고 두 여인을 품은 자 영혼을 잃는 다’는 프랑스격언처럼 ‘간음하는 자’는 육체적 간음을 넘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영적 간음을 가리킨다. ‘거짓 맹세하는 자’는 제8계명인 ‘이웃에 대한 거짓 증언’을 일삼는 행위다.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부당한 임금착취다.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이다.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무주택 서민의 고통과 나라를 잃고 떠도는 난민의 눈물을 외면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모든 죄악을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통칭한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삶의 양태는 하나님을 경외치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심판의 기준이 신앙생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이라는 사실이다. 일상은 삶으로 드려지는 예배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기준과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곧 ‘신앙의 생활화’다.

 

② (6절)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시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리라”

▶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는 반드시 죽음으로 귀결된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소멸하지 않고 다시 사는 구원(생명, 삶)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엇인가? ‘나 여호와는 변역(變易, 변개)지 아니하시니’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의 공로에 의한 자력구원이 아니라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타력구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구원을,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변함없는 구원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할 단 하나의 선결조건이 있다. 그것이 ‘회개’다. 회개하는 깊이만큼 새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주홍 같은 죄가 눈과 같이 희어지고 진홍 같이 붉은 죄가 양털같이 희어지는 변함없는 구원의 길은 ‘회개’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사1:17~18)” 회개의 내용은 내 멋대로 거역하던 삶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으로의 변화다. 진정한 회개는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준행으로 드러난다. 진정한 회개는 중심을 돌이키는 회심이다. 욕심을 좇아 살던 삶에서 말씀을 좇아 사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른다. 이와 달리 ‘말씀’대로 준행하면 ‘의’를 이루고 의의 열매는 ‘생명(삶)’이다. 진정한 회개는 욕심에서 말씀으로 삶의 방식을 뒤바꾸는 것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기 위해선 ‘회개’말고 다른 길은 없다. 말라기가 고발한 여섯 가지 죄보다 더 심각한 죄악은 회개하는 척을 하는 것이다. 죄를 뉘우치는 시늉을 하는 완고함은 가장 무서운 구제불능의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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