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영하 5도, 쌀쌀한 바람 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겨울 오후 6시 40분, 벌써 해는 지고 캄캄한 저녁이 되어 거리의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바쁜 일이 있어 대도로 사거리 주변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쁘게 볼일을 보는데 알지 못하는 분으로부터 두 번이나 전화벨이 울려 받고 보니 주차요원이었다. 자신은 84세나 되는 늙은 노인주차요원이며, 날이 춥고 배가 고파도 집에 가지 못하고 7시까지는 근무를 해야 하는데, 7시 전까지 올 수 있느냐는 거다. 가끔 자기가 퇴근한 후 7시 넘어서 오는 분들이 주차비 자진납부를 하지 않아 자기가 물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 하루 종일 일해도 손해나는 날이 있다는 거다.

     노인주차요원의 말을 듣고 나니 너무 안됐다. 얼마나 가정형편이 어려우시면 그 연세에 추운 날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쌀쌀한 거리에 서서 시려운 발을 동동 구르며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여 빨리 나의 일을 마치고 7시 전에 주차장에 가서 천오백 원 나온 주차비를 2천원을 드리고, 따뜻한 국밥이나 한 그릇 드시라고 2만원을 손에 지켜드리다. 내 자신도 이발료 만원이 아까워서 서울 가는 날 종로 3가에 가서 5천 원짜리 이발을 하려고 미루고 있는 넉넉하지 못한 처지이면서, 너무 주제넘은 일을 한 것 같아 운전을 하고 돌아오며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노인주차요원과 헤어지고 약 20분 정도 지났을 때 쯤 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엔 충남 보령에 사시는 박 원로장로님이 몇 달 만에 전화를 하셨다. 박 장로님은 내 안부를 무르시고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당신이 올 해 벼농사를 좀 지었는데 나에게 쌀 좀 보내겠다고 주소를 좀 알려 달라 신다. 그 전화를 받자마자 즉각적으로 내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은, 아버지가 조금 전 내가 한 일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격려하며 보상을 해 주시려는가보다 하는 느낌이다. 아마 원로장로님이 보내시는 쌀이 10kg만 되어도 내가 노인주차요원에게 드린 2만원의 두 배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빨리 갚아 주실 것은 상상도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 형편을 잘 아시기에 조기에 조치해 주신 것 같다. 사실 우리 집에 쌀을 사야할 때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보다 내 형편을 더 잘 아신다.

    살을 에이는 듯한 찬바람과 함께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성탄절의 의미도 모르고 좋아서 흥청망청 즐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고령의 나이에 거리에 서서 한 푼이라도 벌어야 사는 분들도 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하여 있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지진과 태풍으로 고난당하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다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로 물고 뜯고 자기가 대통령으로 적격이라고 마치 대통령 병에 걸린 사람처럼 분주하게 유세하는 후보자들로 인해 세상이 더 어지러운 기분이다. 그런 사람들은 백성을 구원할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다. 오로지 정권욕에만 빠져있을 뿐이다. 그런 자들에겐 구원이 없다. 나라를 구원할 사람들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궂은일을 마다않고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각처에 있는 서민들이다. 그분들에게 진정 구원이 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디에 누구를 위하여 오실 것인가?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정치인들의 시끄러운 유세장을 피하여 찬바람이 이는 노동의 현장에서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일하는 자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손을 잡아 주실 것이다. 코로나와 지진과 태풍과 추위로 얼어붙은 백성들의 마음을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는 훈훈한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교회가 예수님의 박애정신을 보여주지 못하면 교회와 목사는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릴 것이다.

     -주포리, 전인치유생명연구소에서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