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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말라기 2장 1절~9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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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2월 12일 (일) 17:00:29 [조회수 :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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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말라기 2장 1절~9절

 

 

1. 누가 제사장이냐?

 

① (1절)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 성전의 타락은 제사장의 타락이고 제사장의 몰락은 성전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성경의 제사장(사제, clergy)은 오늘날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은 교회의 직제, 곧 성직제도에 관한 물음이다. 이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종파와 교단의 직제에 관한 질문은 간단히 대답하기 어렵다. 기독교는 크게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 ‘정교회(Orthodox Church)’, ‘개신교(Protestant Church)’로 구분되고, 개신교는 ‘감리교, 침례교, 장로교 등’으로 세분화된다. 모든 교회의 직제는 성직제도에 따라 ‘주교제(감독제), 장로제, 회중제’로 구분된다. (※참조 : 『교회론의 변천사』 E.G.제이, 주재용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2.03.30.) 서로 다른 교회의 직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성직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사장 직책에 대해 합의된 바가 없고 상이하지만, 제사장이 예배를 위해 특별한 소명을 맡은 이들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은 제사장(성직자)을 교회로 부르신 것처럼 모든 성도를 가정과 일터의 제사장으로 부르셨다는 주장이다. 칼빈의 ‘직업소명설’은 교회에서 행하는 일만 성직이 아니라, 직업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여기면 성직이라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구약의 제사장을 부르신 것처럼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을 섬기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사장들을 향한 말라기의 예언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명령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② (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말라기에 따르면 제사장의 소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사장은 법도와 계명에 귀 기울이고 마음에 두어 말씀대로 준행해야 한다. 문제는 제사장들이 이를 듣지 않고 마음에 두지 않아서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롬2:24)”,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1:21~25)” 일제강점기에 교회의 지도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신사참배’에 앞장선 것처럼 오늘날 물량주의와 성장주의, 부동산 투기와 같은 부의 축적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여기는 물신숭배가 만연하고 있다.

▶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사명을 맡은 제사장의 직분은 축복이다. 하지만 직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복이 아니라 독이 된다.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본래적 사명을 망각하면 축복이 도리어 저주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성경에 기록된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와 역사 속에서 ‘중세로마가톨릭교회’를 비롯한 타락한 교회지도자들의 추태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다.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와 친일행각을 일삼았고 6.25전쟁 이후 반공주의에 편승해서 군부독재의 시녀로 전락했다. 오늘날 교회의 부흥을 ‘양적 성장’으로만 여기는 물신주의에 빠져있다. 본래적 사명을 망각하고 세속적인 물량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의 몰락은 당연한 결과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③ (3절) “보라 내가 너희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과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 (메시지성경) “그렇다. 그 저주는 너희 자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너희가 너희 얼굴에 악취 나는 쓰레기를, 너희 축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바를 것이다. 너희에게 곧 닥칠 일이다!” 타락한 제사장들이 얼굴에 똥칠을 하는 수치를 받고 배설물처럼 버림 당하게 될 것을 경고한다. 한국교회는 난파선에 쥐가 사라지듯 교회학교에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젊은이와 지식인들에게 외면을 당한다. 한국교회의 모판인 신학교들은 하나같이 정원미달의 똥통학교로 전락했다. 한국교회의 다음세대가 암울한 현실이다. 이는 맛을 잃은 소금의 피할 수 없는 비참한 운명이다.

 

 

2. 징계의 목적

 

① (4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 말라기의 경고는 비난이나 저주가 아니라 숨겨진 의도와 목적이 있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메시지성경) “그렇게 하면 너희가 정신을 차릴 것이다. 레위 제사장들과 맺은 언약, 곧 만군의 하나님의 언약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내가 너희를 기소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고난(재난)에는 뜻이 있다. 징계의 목적은 새롭게 하시기 위함이다. 징계는 치유의 과정이다.

 

② (5절)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 (메시지성경) “내가 레위와 언약을 맺은 것은 그에게 생명과 평화를 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와 맺은 언약을 지켰고, 그는 나를 높였다. 그는 경외심을 가지고 내 앞에 섰다” 레위인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맡았다. 민수기는 레위인을 선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시한다.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네가 그들을 정결케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라...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민8:14~18)” 레위와 세운 언약은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돌리는 초태생의 언약이다. 유월절에 초태생을 구별하듯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척도다.

 

③ (6절)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 (메시지성경) “그는 진리를 가르쳤으며,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평화와 의를 실천하며 나와 동행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수렁에서 건지고, 바른 길로 이끌었다” 그는 첫 번째 제사장 모세를 가리킨다. 레위지파는 모세의 뒤를 이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무하도록 선택받은 제사장 가문이다. 시내 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첫 번째 우상숭배의 장면을 통해 레위지파를 선택하신 이유를 분명하게 기록한다.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바 된지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8~29)” 레위 제사장을 세운 목적은 말씀대로 준행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경외~준행, 준행~동행, 동행~축복’의 소명을 망각했다. 말라기의 경고는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목회자가 돈과 부동산, 명예와 쾌락에 집착하면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과연 이 기준이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가? 세속적인 부와 성공, 명예와 쾌락을 일삼는 목회자의 타락을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세속적인 부와 성공, 명예와 쾌락을 당연하게 여긴다. 거룩한 삶은 제사장뿐 아니라 모든 성도의 책무다.

 

 

3. 제사장의 본분

 

① (7절)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 (메시지성경) “제사장의 일은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만군의 하나님의 특사다” 가르치고 길을 안내하는 메신저 역할이 쉽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은 진리를 싫어한다. 말씀대로 보다 소견대로, 배우기보다 가르치려고 한다. 좁은 길보다 넓은 길로 가려고 한다. 나침반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가이드를 따르지 않는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대중들의 요구 앞에 속이 터져서 한 말이다. 사도바울의 깊은 고뇌와 단호한 선택이다. 진정한 메신저는 비록 가시와 찔레 가운데 거할 찌라도 대중의 이해와 요구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준행해야 한다.

 

② (8절)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 레위의 언약이 무엇인지 민수기18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성소의 직무와 단의 직무를 지키라...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19~2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자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사명을 맡은 레위자손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불행하게도 정도에서 떠나 특권을 상실했다. 직분을 맡는 것보다 맡겨진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프랑스어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특권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어떤 이는 지도자의 특권을 문제 삼지만, 문제는 특권이 아니라 특권은 누리면서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않는 지도자들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이다. 맛을 잃은 소금이다. 하나님은 레위와 맺은 소금 언약을 파기하셨다. 청지기의 직분을 맡기신 분께서는 불의한 청지기에게서 직분을 박탈하신다.

 

③ (9절)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길 잃은 목자가 된 것이다. 율법을 행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잘못 행했다.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편벽은 아첨하고 치우치다는 뜻이다. 제사장이 하나님보다 사람에게 아첨하고 치우친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보다 사람의 방법으로 치우친 이유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32장은 첫 번째 레위 제사장 아론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유가 백성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직분을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멸시와 환멸의 대상으로 만드셨다. 감리교회의 최고지도자인 감독이 되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종다수결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감독선거제도의 문제는 하나님이 개입하실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잠16:33).’ 제비뽑기를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권을 부정하는 행위다. ‘멸시 천대의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오리니’ 찬송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에 유명한 가사다. 십자가는 고난인데 모든 멸시 천대가 십자가의 고난은 아니다. 멸시 천대를 받는 이유가 의를 위한 핍박의 고난인지 죄로 인한 징계의 고난인지 분별해야 한다. 의를 위한 핍박은 인내해야 하지만 죄로 인한 징계는 속히 회개해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성전을 파괴하시고 거룩한 새 성전을 세우셨다. 타락한 제사장들을 멸하시고 거룩한 새 대제사장을 보내셨다. 길 잃은 목자를 대신해서 선한 목자를 보내셨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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