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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Annette, 2021)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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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2월 06일 (월) 21:20:40
최종편집 : 2021년 12월 08일 (수) 00:00:21 [조회수 : 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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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아네트》 (Annette, 2021)

 

상상해 본다. 가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만일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이 아닌 가인의 제물을 받으셨다면 애초에 가인이 아벨을 살해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랬다면 가인은 아벨을 위로하는 좋은 형의 모습을 기꺼이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만일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의 제물 모두를 받지 않으셨다면 어떨까? 미움과 살해는커녕, 두 형제는 서로의 불행을 위로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더욱 의좋은 형제가 되었을 것이다.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야 자유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가정들은 모두 이야기의 본질을 벗어난다는 데에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철저히 가인이며, 가인의 형제 살해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을 가장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라는, 시쳇말로 쪽팔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원죄의 옛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서 벌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은 그 대상을 마음속에서 죽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해당한 아벨의 후예가 아니라 살아남은 가인의 후예다.

열패감과 열등감이 어디까지 관계를 망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열등감의 피해는 어디까지 미치는 것일까? 레오스 카락스의 이상한 영화 <아네트>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뮤지컬이다. 가장 고상한 오페라의 프리마돈나와 가장 경박한 광대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실로 소중한 딸이 태어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고상한 프리마돈나 아내의 명성이 치솟을수록 광대 남편의 명성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더 이상 아무도 웃길 수 없는 광대는 더 이상 광대가 아니고, 대중들에게 버림받은 광대는 화풀이 대상을 찾는다. 못난 남자들의 화풀이 대상이 언제나 잘난 여자이듯이, 열등감에 뒤틀린 광대는 찬란한 명성을 누리는 아내를 취기에 살해한다. 그리고는 우연히 발견한 어린 딸의 기적 같은 재능으로 쇼 무대에서의 재도약을 꿈꾼다.

<아네트>는 보통의 뮤지컬 영화를 생각할 때 기대하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결코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의 분위기는 비극 오페라처럼 어둡고, 모든 장면들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특히 오페라가수인 안과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 부부 사이에서 딸 아네트가 태어나는 과정은 그 기괴함의 극치다. 태어난 아기의 역할을 꼭두각시 인형 마리오네트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뿐 아니라 계속 자라나면서도 아네트는 마리오네트로 등장한다. 사람이 아닌 인형이 사람 역할을 하는 것도 기괴하고 그 인형을 사람으로 대하는 등장인물들도 기괴하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녀 아네트는 실제의 사람으로 변해 노래한다. 그때 영화는 왜 영화가 아네트를 꼭두각시로 표현했는지, 왜 영화의 제목이 아네트인지를 단박에 납득시켜준다.

감독 레오스 카락스는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나쁜 아빠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네트에게는 아빠만 나쁜 것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분열과 갈등, 질투와 열등감, 증오와 분노가 남발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정작 갈등의 당사자들이 아니다. 폭력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고리를 부수고 망가뜨린다. 그리고 서로를 망가뜨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장 크게 망가뜨리는 이 가장 약한 고리를 결코 의식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용하고, 이용한다는 의식도 없이 이용하여 결국 가장 큰 상처를 입힌다. 이 긴 이 뮤지컬 영화는 이렇게 무거운 생각으로 이끈다.

“그럼, 시작해도 될까요?” 영화는 딸과 함께 밴드를 바라보며 감독이 던지는 이 말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 말을 받아 뮤지컬은 영화를 여는 첫 노래를 역시 같은 가사로 시작한다. “So, may we start?” 시작을 해도 될까? 왠지 허락을 묻는 듯한 이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사처럼 들린다. 무책임한 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은 과연 그 관계를 시작할 자격이 있었냐고, 그래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냐고 묻는 무서운 질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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