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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천로역정>, 존 버니언 지음, C. J. 로빅 편집, 마이크 윔머 그림, 최종훈 옮김, 포이에마
# 1
고등학생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방탈출 카페에 간다고 하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여러 미션을 통과하고 방을 탈출할 수 있는 카페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음료를 파는 카페라기보다는 제한된 시간 안에 추리 및 단서발견, 게임 및 퍼즐을 푸는 방식으로 밀실을 통과하는 놀이문화공간과도 같은 곳이라고 한다. 미션 완수, 방 탈출... 문득 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 여름수련회에서 늘 하던 천로역정이 떠올랐다. 지금도 천로역정의 변형된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 있는데 매년 여름행사의 빠지지 않는 단골 프로그램이 바로 천로역정이었다.
# 2
천로역정이 여름행사 프로그램 이름이 아니라 존 번연의 책이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진 기독교 고전이라는 사실을 신학교에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다. 몇 년전 목회자들과의 독서모임에서 천로역정을 접하고는 언젠가 꼭 읽어야지 했던 천로역정에 대한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천로역정에 푸욱 빠져 성도들을 모시고 가평 필그림 하우스의 천로역정 순례길도 다녀오고, 천로역정에 관한 설교도 하고, 청년들과 천로역정에 관한 여름수련회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크리스쳔(천로역정의 주인공)이 걸어갔던 그 순례의 여정이 곧 우리들이 걸어가는, 걸어가야 할 하늘 가는 길(웨슬리의 구원의 여정)이기에 더 가슴 깊이 와닿던 시간들이었다.
# 3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흔히 순례자가 천성(하나님 나라)를 향해 떠나는 과정을 담은 신앙소설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천로역정은 단순히 소설을 넘어 철저하게 성경으로 시작해서 성경으로 끝나는 성경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 장소, 사건, 대화, 결말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책이다. 단순한 플롯, 지금의 시선으로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전개와 교과서적인 결말이 오늘의 젊은 세대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천로역정이 담고 있는 깊은 성경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는 천국의 기쁨과 비견될지도 모르겠다.
# 4
존 번연은 1660년 영국 국교회와 배치되는 예배와 설교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12년간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그 때 천로역정을 집필하게 되었다. 청교도적인 신앙으로 불탔던 그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천로역정을 쓰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정완 목사는 천로역정을 가리켜 ‘복음 설명 소설’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말씀과 함께 하는 천로역정, 하정완) 크리스쳔의 순례 여정을 통해 죄의 문제, 율법, 천국과 지옥, 성경, 사단과의 싸움, 시험과 유혹, 교회와 공동체, 하나님 나라, 십자가, 구원의 문제를 성경의 말씀과 연결시켜 복음에 관하여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 5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처음 천로역정을 읽고 나서 품었던 나의 물음이었다. 천로역정에는 많은 장소들이 나온다. 멸망의 도시, 절망의 늪, 좁은 문, 해석자의 집, 십자가의 산, 곤고의 산, 미궁(평화의 방, 서재, 무기고), 겸손의 골짜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허영의 시장, 절망 거인의 감옥, 기쁨의 산, 마법의 땅, 쁄라의 땅, 죽음의 강, 천성...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나 대상들을 만난다. 전도자, 고집과 변덕, 도움, 세속현자, 신의, 해석자, 철창 속 타락자, 세 천사, 단순, 나태, 거만, 허례와 위선, 겁쟁이와 불신, 두 사자, 네 자매(신중, 분별, 경건, 자유), 아볼루온, 신실, 소망, 롯의 처, 허풍선, 허영의 시장 사람들, 두 마음, 데마, 절망 거인, 의심, 네 목자(지식, 경험, 경계, 성실), 무지, 작은 믿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시 묻게 된다. 나는 누구이며 누구와 함께 있는가?
# 6
천로역정의 이야기는 크리스챤의 여정을 담은 1부와 2부에서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크리스쳔이 있는 천성을 향해 떠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천로역정은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이미 읽었던 이들도 다시 한번 크리스쳔으로 돌아가 그 순례의 여정에 임하며, 아직 읽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천성을 향한 순례 길에 참여해 보길 권한다. 천로역정에 관한 많은 해설서 내지 설교집도 추천해 본다.(말씀과 함께 읽는 천로역정-하정완 지음, 이동원 목사와 함께 함께 걷는 천로역정) 더불어 가평에 있는 필그림 하우스의 천로역정 순례길 코스도 함께 접해 보시길 추천한다.
박세훈 목사(해미제일교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