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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교회의 서리집사제도와 제직회에 관한 고찰어떤 제도든 운영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 교회의 앞날이 결정된다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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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2월 03일 (일) 00:00:00 [조회수 : 1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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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이민교회의 실상을 다루는 복음과 희망(www.gospel-hope )에 "이민성도" 라는필명으로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장로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당당뉴스 운영자)

한국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직분이 많습니다.

"교육전도사, 서리집사, 권사, 전도사, 강도사, 준목, 명예권사, 명예장로, 명예목사, 원로목사, 원로장로, 은퇴장로......"  모두가 한국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제도입니다. 미국교회에서 전도사 강도사는 "목사후보생 또는 목회보조자(조수, 조사, ASSISTANT PASTOR)" 로 통일되어 있으며, 권사제도는 아예 없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옛날에 전도사들을 "조사" 라고 불렀습니다. 옛날이 지금보다 훨씬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주류교단에서는 20세이상만 되어도 장로, 안수집사의 피택자격이 부여됩니다. 미국교회에서는 20대 청년장로, 안수집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장로로 피택되어 3~5년간 섬기고 임기가 끝난 후, 휴무후, 다시 시무 당회원으로 피택을 받을 때, 전회에 시무장로였는데 시무안수집사로 피택시키는 교단이나 교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도 일단 설교강단이나 목회직을 떠나면 "목사라이센스" 를 반납하도록 하는 교회도 상당히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젊은 목회자들 가운데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서 통분하면서 "목사안수증" 을 교단에 반납하는 일도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만약 오랫동안 "시무장로" 로 섬겼던 사람을 다음 번에 "시무안수집사" 로 피택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 교회는 뒤집어질지 모릅니다. 웨스터민스터에서 공부를 하였던 어떤 유명한 목회자가 순수한 마음으로 "장로임기제" 를 교단과 교회에 부르짖었다가 "큰 화" 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결국 한번 시무장로가 되면 종신 장로로 생각하였던 시무장로들이 "목사임기제" 를 들고 나온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의 장로제도, 집사제도의 피택방식, 운영방식도 한국교회에 교회정치 및 의회제도를 가르쳐 주었던 미국주류교단(PCA, PCUSA, RCA, CRC, UMC....) 의 교단법에 비추어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흔히 행하는 10년 이상 시무한 담임목사(당회장)에게 죽을 때까지 (또는 교단법임기까지) 가 그곳 한교회에서 떠나지 않는 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모든 목회활동과 생활과 노후를 전부 보장한다는 일종의 결혼서약과 같은 서약을 교인들에게 서약(맹세) 시키는 "한국식위임목사제도" 는 한국만이 가진 독특한 제도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들이 이렇게 온통 한국형 교회정치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국에 있는 한인이민교회의 목회자들만이 유독 "서리집사제도" 에 대해서 만큼 "한국교회만이 가진 제도" 라고 강조하는 이유를 우리들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서리집사나 직분자들로 구성되는 "제직회" 는 목회자와 당회의 목회와 교회운영(예결산, 정책토론, 예산분배) 에 대하여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제도로 운영만 잘 하면 대단히 아름다운 제도 중의 하나입니다. 

정상적이고 성경적인 목회를 하는 목회자들은 당회에 결정된 내용을 전체 성도들이 모인 임시공동의회 또는 정기공동의회에 내어 놓기 전에 중간 토의 기구의 성격을 가진 제직회(전체교인수의 50% 전후가 제직원임) 에 내어 놓고 의견과 이해와 토론을 구하면서 목회를 하면 당회가 제시안 대부분의 안건들이 잡음도 일어나지 않고 "의회민주적인 회중목회를 하는 훌륭한 목사님과 당회원 장로님" 이라는 좋은 이미지를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대단히 좋은 제도중의 하나입니다.

한편, 당회가 인본주의적으로 흐르거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에 제직회에서 제동이 걸리는 일도 많습니다.    

최근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인 소망교회에서 부목사들의 연임건에 대해서 당회가 부목사전원 연임건을 부결하였는데, 제직회는 부목사 전원 연임을 의결하였습니다. 당회가 부결한 이유는 부목사 중에 청소년 담당 부목사가 386주사파의 영향을 받은 듯한 통일사상교육을 하였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서리집사가 주류인 제직회는 주로 30대 40대가 주류이기 때문에 50-60대의 당회 결정에 반발한 것입니다.

따라서 50, 60대 연령의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에 대하여 30대, 40대의 집사들이 메인스트림인 제직회는 과거 독재의 망령에 사로잡혔던 옛날과는 달리 당회가 결정한 것을 토론이나 논의도 없이 그대로 제직회가 거수기 노릇이나 하는 곳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민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국교회와 같이 서리집사로 구성된 제직회를 만들면 완전히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고를 가진 30, 40대의 이민 1세, 1.5세, 2세대들이 메인스트림이 되고, 구사고에 사로잡힌 당회원들의 뜻대로 그냥 무조건 맹종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골치아프게 여기는 회사의 CEO 감각을 가진 목회자나 독재의 망령에 사로잡힌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가 있는 교회의 경우에,  민주적인 토론과 토의가 이루어지고 목회방향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따지고 드는 제직회가 눈에 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들고 나오는 것이 바로 "미국에는 이러한 한국형 제직회가 없다는 핑계를 말하면서"  모양은 한국형 제직회와 대단히 유사하면서도 '한국형제직회" 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운영되는 "운영위원회, 청지기회. 기획위원회, 직분자회의' 등으로 명칭변경 및 기능저하로 만들어 교회를 철저하게 소수의 "담임목사중심, 당회중심" 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서리집사를 세운다고 하여도 안수집사가 되는 중간과정 또한 안수집사회도 장로가 되는 중간과정 정도로 인식을 시켜서 담임목사나 당회의 눈치나 보고 줄이나 서는 비굴한 서리집사들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입니다.

미국교회에는 없는 제도라고 하면서 서리집사제도 자체를 없애거나 서리집사를 세운다고 하여도 제직회를 운용하지 않는다면 한국식의 교육전도사, 권사, 강도사, 장로 및 안수집사의 선거제도는 왜 철저하게 한국식으로 하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이민한인교회들이 가진 교단법(교회법)은 전부 한국교회의 교단법을 거의 그대로 베낀 (일부 조금 바꾸는 정도) 철저하게 한국식입니다. 한국교단법은 미국교단의 1960년대판, 70년대판의 교단법(Book of Order)에 근거한 것으로 철저하게 담임목사 및 당회중심의 거의 독재형(?)에 가까운 법입니다. 이미 한국교회 안에서도 교단헌법개정에 대한 움직임이 40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들은 목회현장에서 본인에게 유리한 교단법조항은 철저하게 한국식으로 운영하면서 자기의 목회에 불편한 조항에 대해서는 미국에 있는 이민교회의 특성운운하면서 자기입에 맞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금번 중부교회에서 있었던 시무장로권고휴직, 교회재판은 1960년대만들어진 한국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교단법을 그대로 베낀 KAPC교단법을 들고 나와서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지금 와서 "서리집사제도는 한국형제도" 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언어도단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이민교회들 가운데 목회자들이 이와 같이 자기 목회의 편리를 위해서 서리집사들이 중심이 된 제직회를 없애고 "운영위원회, 청지기회, 기획위원회, 발전위원회, 직분자회" 등 별 희한한 수식어를 달고서 실제적인 "한국형제직회의 고유기능" 을 전부 떼내어 버리고서 목회자와 당회의 친위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한국교회의 힘이 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회나 금식기도회나 구역예배에서 나와 세계의 교회들이 부러워하고 배우려고 하듯이 "한국형 서리집사제도와 제직회제도" 는 한국교회를 동력화 시키는 좋은 제도로 세계 교회들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서리집사제도와 제직회제도" 는 운영만 잘하면 너무나 성경적이고, 너무나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으며 교회의 유기적인 윤활유 및 완충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제도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직위와 계급과 서열을 너무 의식하는 한국인의 의식구조 안에 있는 교회에서 서리집사를 뽑는 것이 너무 문제가 된다면  만 20세 이상, 교회 등록후, 1년 이상 출석하였으며, 세례교인이면서 정회원이라면, 특히 다른 교회에서 온 성도들의 경우에는 반드시 전에 다닌 교회에서 이명서를 받아서 오도록 하여, 모두에게 서리집사의 자격을 당회가 일괄적으로 부여하여 임시공동회의를 열어서 일정수의 "제비뽑기"로 서리집사를 세우면 가장 잡음이 없습니다.  

사실 안수집사와 장로의 피택도 "제비뽑기" 로 선정하면 가장 투명성이 있고 불평 불만이 없습니다. 수년전부터, 한국교단의 총회장 선거에 돈이 너무 많이 뿌려지니까 아예 총회장을 이런 식으로 "제비뽑기" 로 하는 교단도 있을 정도입니다.

"서리집사지원제"  자체는 나쁜 제도가 아니고 "가장 잡음이 덜 일어날 수 있는 제도" 중의 하나이며 한국교회에서도 최근 도입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서리집사지원제" 로 뽑혀진 "서리집사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당회에서 제출된 안건에 대한 토론,  예결산 심의,  교회의 각종 사안에 대해서 토론이 있는 "의회민주적인 제직회" 로 기능을 한다면 두말 할 것도 없이 서리집사지원제로 뽑혀진 "제직회" 는 가장 성경적이고 아름다운 제도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분쟁하는 교회에 있어서 당장에 헌금액과 예배참석자의 수가 줄어들 우려가 있습니다. 헌금액수를 제대로 채우고, 예배참석자의 수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연말에 최대한 "서리집사" 들을 많이 세워서 그들만이 확실하게 십일조하고 확실하게 예배에 참석하면 그 교회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이상야릇하고 괴상하며 변칙적인 생각을 가진 목회자와 당회가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근거는 이미 중부교회사태를 통해서 약간 보여졌습니다.

KAPC 교단법에 따라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직분자로 세우지 않거나 해임하겠다" 는 중부교회 담임목회자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중앞에서 편법으로 치리하였던 어떤 시무장로의 복귀를 거부한 명분으로 "십일조" 를 들고 나왔던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편법으로 치리를 당하였던 "시무장로" 가 들고 나왔던 것은 교단법에 "양심의 자유" 와 "시무당회원은 교회의 비리와 부도덕에 대하여 바로 세울 의무가 있다" 는 근거조항을 들고 나와서 "교회내 모든 재정문제의 투명성" 이 해결되면 "그동안 모아두었던 십일조" 를 교회에 바치겠다고 미리 말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한 교회에서 "교인수와 헌금액수와 예배참석수" 는 담임목사의 목회능력과 당회원의 교회 운영능력을 보여주는 기준이라는 지독하게 "비성경적인 샤머니즘" 에 젖어 있었던 그 의식이 고스란히 "십일조에 의한 직분자 임명과 해임기준" 이 나왔던 것입니다. 재정조사위원회에 참석하였던 집사들과 직언하였던 장로들이 포함된 8명에 대한 교회소란죄로 교회재판을 끝까지 열고자 하였던 재판위원회도 알고보면 그러한 "비성경적이고 샤머니즘적인 기준" 에 의거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있는 서리집사나 안수집사나 당회원들로 구성된 "제직회" 를 만들면 가장 간단한데 왜 구태여 제직회를 폐지해버리고 "운영위원회, 청지기회, 개선위원회, 발전위원회"  등 변치적인 옥상옥을 만드는지 그 속에 들어있는 담임목회자와 당회원들의 의식구조를 일반성도들은 통찰할수 있어야 합니다.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80만 제적성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실제 주일에 출석하는 숫자는 20만명도 되지 않으며,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은 당회원 2,000여명, 교역자 300여명, 권사와 안수집사와 서리집사 5만여명 정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80만명의 제적성도라고 하지만, 직분자들과 일부 성도들만이 십일조와 각종헌금을 제대로 하니까 그 교회의 연간예산 2,000억원이상의 헌금수입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중부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마 담임목회자와 당회가 지금의 어려운 교회상황을 타개하는 비상대책의 방법은 교인들 본인들이 지원한다면 무조건"서리집사" 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남과 차별되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면 최대한 집사라도 되어야 하겠다는 교인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전체 교인들로 하여금 "십일조와 각종헌금을 열심히 내게하고 예배참석수를 늘이는 일명 개미군단" 을 만들겠다는 대단히 변칙적인 발상일 수도 있습니다. 비지네스형 CEO 형 목회자들이 잘 쓰는 변칙적인 수법이기도 하며, 한국에서 상당히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워진 "서리집사들이 "이 당회의 각종 안건을 심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한국형 제직회의 구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헌금액수와 예배참석수" 을 유지하는 수단과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심하게 말하면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행각" 인 동시에 "성도들을 혹세무민시키는 제도" 가 될 수 있습니다. 

서리집사를 세울 때 임명제로 하건, 지원제로 하건, 제비뽑기를 하든, 나이순으로 하든, 헌금액수순으로 하든. 교회온 순서로 하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어떤 조직에도 어떤 제도를 선택하건 반드시 잡음이 있고, 찬성과 반대가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 서리집사로 세우든 "목회자나 당회의 의도성"이 서리집사들로 하여금, 안수집사가 되기 위하여 거치는 중간과정(인간속에는 지위에 대한 대단한 의식이 있습니다)의 거수기노릇, 말 잘듣는 사람들의 모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냥 돈이나 내고 집회에 참석하게 하기 위한 제도라면, 표면적으로는 정통교회의 우산 속에 있지만 그 내용은 제도를 통해서 사람을 묶어 두고 서로 경쟁시키는 "종교적인 사이비 집단의 제도" 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이비 집단의 특징은 교주중심, 교주를 중심으로 한 추종자들의 비밀주의와 기득권주의가 득세하고, 일반 맹신도들의 의견을 전부 맹종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데 중부교회를 비롯하여 서리집사제도를 운영하는 이민교회의 목회자들과 당회는 현재 채택하거나 채택하고자 하는 "서리집사제도" 가 과연 무엇을 위한 제도인지, 무엇을 위한 목적인지를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 거의 완전에 가까운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회장선거도 직선제이고, 활발한 토론이 있는 세상입니다. 대학총장선거도 평교수들에 의하여 직선제로 도입되는 곳도 많습니다. 과거에는 교수를 뽑을 때도 학과의 교수들이 마음대로 하였지만 지금은 단과대학 평교수회의에서 신임을 받아야 받는 정도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왜 꺼꾸로 돌아가려고 합니까?

교회는 신본주의라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신본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이 아니고 왜 목회자만 되어야 합니까? 목회자만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새로운 담임목회자를 청빙하고 세울 때, 떠나거나 은퇴하는 전 담임 목사가 임명하거나 또는 목회자들의 모임인 교단에서 일방적으로 파송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는 사고교회가 아닌 이상 한국교회에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신본주의라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위임대리자가 담임목사라고 교단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 어느 누구도 교회의 후임 목회자에 대하여 전체성도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교단이나 목회자가 일방적으로 지명이나 임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인정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신본주의가 전체 성도들에 의회민주적인 여론과 투표에 의하여 교회에 부임하였던 목회자들이 성도들이 자기에게 도전한다고 "교회는 신본주의이다를 운운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 편의대로 한다면 그것은 자기기만이자, 자기 신학의 부정이 됩니다.

한국교회에서 신본주의를 가장 강하게 부르짖었던 목회자가 바로 세계최대의 교회 담임목사이신 순복음교회의 담임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후임자를 뽑는데 당회장의 신분인데도 후임자 인선 투표도 참여하지 않았고 후보지명의 언질 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여러 뉴스매체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세계최대교회를 개척하였고, 담임목사의 말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적인 목회를 해왔으며, 신본주의의 위임대리자가 당회장 목사인데, 자기 후임자 한명도 자기가 선정할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 가 존재하는 목회현장을 보십니까? 

정직하게 보십시오. 평생 성령운동을 해왔고 카리스마적인 신본주의를 부르짖었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교회의 담임목회자 조차도 결국 "전체 공동의회에 참석한 성도들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 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성경적인 사고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식적인 사고를 뛰어 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셨던 초대교회 즉 사도행전의 시대에 가롯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에 하나님께서 누구를 뽑으라고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닌 "제비뽑기" 로 사도를 세웠습니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상식과 사람의 상식은 같습니다.

만약 당시에 베드로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누가 사도가 되어야 한다" 고 하나님이 지시하셨다고 합시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한 베드로를 주목한다는 사실입니다.

12제자들 가운데 베드로만이 하나님과 직접계시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베드로만을 추종하고 베드로만을 따르고 베드로만을 우상숭배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었다는 성경구절만을 부각시켜서 사도의 전승이 캐톨릭교회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바로 캐톨릭사상이며, 거기에 따른 엄청난 "교황무오설" 이라는 우상숭배가 일어났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동안 하나님께서는 양적으로 한국교회를 축복하시고, 이민교회를 축복하셨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비롯한 초대교회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들에게 그 내용을 질문하시고 계십니다. 과연 "성경적이고, 상식적이냐" 는 것입니다.

미국의 헌법정신은 미장로교단의 헌법정신에 기초를 두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교회법이 한 나라의 법을 좌우하는 시대 속에서 미국이 탄생하였고, 민주주의 및 민주적인 의회제도의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그러한 세계 최고의 미국에서 살고 있으면서 아직도 그 옛날 70년대 80년대의 한국적 독재망령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그 망령 속에서 시달리면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대로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중형교회마다 익명성이 보장되거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자유게시판, 토론게시판, 나눔방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론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실존적인 역사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이민교회의 제직회나 인터넷에 민주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며, 미국의 NPO법에 의하여 교회재정의 운영과  목회자의 사례가 정확하게 공개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가면 남김없이 전부 드러날 것인데,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것이 그렇게도 두렵습니까?

그 두려움의 뿌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전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과 성도들에 대한 불신" 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양이 이리로 돌변할지 모른다" 는 불안과 초조한 의식이 없고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자 법치국가 안에 살고 있으면서 교회는 여전히 편법과 불법과 기득권주의와 비밀주의와 비공개주의와 비민주적인 변칙적인 제도들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걱정하는 것은 제도자체가 아닙니다. 우려하는 것은 주님의 나라와 복음전파를 위해서 세워진 거룩한 교회 안에서 정치성을 가진 기득권자들이 권력의지를 발동하고서, 특정한 소수는 알고 다른 누구들은 알아서는 되지 않고, 누구는 목회자와 당회편이고 누구는 반대편이며,  누구는 내편이고 누구는 네편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 가 넘치는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데, 아무렴 죄가 드러난다고 해서 얼마나 엄청난 죄가 드러나겠습니까? 아무렴 목회자이고 당회원들인데 설마 살인을 하고, 강도짓을 하고, 남을 때려서 반신불수로 만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왜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이 주님이 것인데 모두가 투명하게 공개하고 함께 자복하고 함께 의논하고 함께 걱정하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 하고 그렇게 무서워 떨고 있습니까?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결국 사람들이 볼때 교회가 분쟁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는 사라지고, 기득권유지와 명분과 생계유지라는 저급한 싸움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정신을 차리고서 성령께 의지하고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분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로 깊히 진입하지 않으면 평생 사람들의 눈치나 보면서 허무한 삶과 종된 삶만 살게 됩니다.  

교회가 어려울수록 더욱 개인기도에 집중하고 더욱 말씀 묵상에 시간을 내고 더욱 가정예배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서 조직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에 불신자에게 전도해서 안심놓고 보낼 수 있는 좋은 교회를 찾으려고 하면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불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성경 속으로 진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꺼꾸로 되어서 목회자의 설교로 진입시키려고 합니다.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 목회자가 만약 돈이나 밝히고, 음란하고, 패역한 일이라도 일어나면 초신자는 하루아침에 넘어져 버립니다.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합니까?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분들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극복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과 신학교가 전부 사라져도 성경만 있으면 복음은 계속 전해진다는 것이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든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 교회의 앞날이 결정된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영적상황을 분별해야 합니다. 오직 기도와 말씀과 나눔만이 숨어있는 악한 모든 계교를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과 교회내의 악한 권세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권력지향적인 마음을 가지고서 법과 제도를 이용하여 사람을 늘 묶고 종삼고 조종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생명의 말씀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여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하시며,  무한한 은혜와 사랑의 바다 속에 마음대로 자유하면서 헤엄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도와 법입니까?

복음입니까?

은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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