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제임스  홀  내한  130주년  기념  심포지엄  강연  2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의 신앙과 사랑의 길

- 제임스 홀의 청일전쟁 전후 의료사역과 순직을 중심으로

성백걸(백석대 기독교학부/감리교역사와 신학연구소)

▲ 성백걸 교수

            목차

             1. 인간의 짧은 활동과 하나님의 긴 울림
             2. 제임스 홀의 성장과 뉴욕 메디슨 슬럼가 의료선교 
             3.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의 사랑과 한국선교활동
             4. 제임스 홀과 로제타의 청일전쟁 전후 평양의료사역
             5. 제임스 홀의 순직과 사랑의 승화  

1. 인간의 짧은 활동과 하나님의 긴 울림

이 글은 19세기 말 조선에서 의료선교사로 짧은 활동을 하고 긴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를 남긴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16. - 1894.11,24,)이 한반도에 내한한 지 130년을 기념하여 그를 기리기 위해 쓰는 글이다.

그는 1891년 12월 15일 한국선교사역을 시작하여 1894년 11월 24일 청·일전쟁의 죽음터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감염되어 세상을 떠남으로써 안타깝게도 3년 남짓한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3년여의 선교활동이 지니고 있는 신앙과 사랑의 감동과 울림이 아주 커서 여전히 살아 한반도와 세계로 메아리쳐 나가고 있다.

그리고 제임스 홀이 그 짧은 활동과 헌신의 죽음이후에도 한국교회사와 한국의료사와 인류사랑사에서 소중한 위상과 빛나는 의미를 지니게 된 데에는 그의 부인 로제타 홀의 증언과 기록과 기념사업과 의료선교사로서 창조적인 계승의 비전과 헌신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실로, 제임스 홀이 떠난 후 로제타 홀의 계속된 영적인 사랑과 기념비적인 선교활동이 없었다면 그의 가치와 의미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의 선교활동과 그 유산을 유기적으로 한 관점에서 접근하여 파악하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의료선교활동의 원동력으로서 신앙과 보편적인 인류애의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사랑의 역사를 밝히는 데 이 글의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왜, 그토록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의 깊은 곳에서 움직여 그들로 하여금 이 한반도로부터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도록 했을까?

▲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16.-1894.11.24)

2. 제임스 홀의 성장과 뉴욕 메디슨 슬럼가 의료선교

제임스 홀은 1860년 1월 16일 캐나다 온타리오 그렌 뷰엘(Glen Buell, Ontario)에서 아버지 조지 홀(George Hall)과 어머니 마가렛(Margaret)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의 장로교인이며 석공이었다.

홀은 어려서부터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14세 때 장로교회에서 헌신하는 신앙생활을 했으며, 몸이 약한 편이었다. 17세 때 목공 일을 위해 학업을 떠났었으나 폐병으로 고생을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후에 홀은 한국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정성껏 목관을 만들어주었는데, 이때부터 그의 목공의 기술이 몸에 배인 것으로 보인다.

홀은 1883년 아덴고등학교(Athens High School)를 졸업하고 교사 자격(Teaching Certificate)을 얻어 2년간 가르쳤다. 1885년 온타리오 킹스턴에 있는 퀸즈대학교 의과대학(Medical College at Queens University in Kingston)에 입학했으며, 거기서 인도 선교사 존 포만(John Forman)의 영향을 받고 선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매사추세츠 노스 필드에 있는 무디 여름학교(the Dwight L. Moody Summer School in Northfield, Massachusetts)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여기서 국제의료선교회 이사 도우노트(George D. Dowknott, the Director of the International Medical Missionary Society)를 만났다. 도우노트는 뉴욕에서 의료선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훈련을 제공하고 있었다.

홀은 1887년 뉴욕 벨레뷰 의과대학(Bellevue Hospital Medical College)으로 옮겼으며, 1889년 졸업을 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감리교회 사업인 뉴욕 메디슨 거리 의료선교의 책임자(Medical Superintendent at the Madison Street Medical Mission)로 일했다.

홀은 종교적으로 아주 강하게 장로교회에 기초해 있었다. 그래서 메디슨 가의 의료선교 메니저로 있던 섬머 스톤(J. Summer Stone)은 홀의 감리교회 의료선교사역을 “은혜의 로망스”(romance of grace)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했다.

3.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의 사랑과 한국선교활동

그리고 여기서 홀은 그의 동료요 부인이 되는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 출신의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Rosetta Sherwood)를 만났다. 둘이는 뉴욕 루즈벨트 거리 진료소(the Roosevelt Street Dispensary)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했다. 1889년 8월 홀과 로제타 셔우드는 약혼을 했다.

홀은 캐나다감리교회에 의해 중국선교지로 가게 되어 있었다. 로제타 셔우드는 1887년에 중국의료선교에 지원해 있었으나, 한국에서 시작된(1887) 여성전문병원 보구여관의 하워드(M. Howard)가 건강악화로 1889년 귀국하여 그 후임으로 1890년 8월에 한국으로 파송을 받았다. 그러자 홀도 한국으로 선교지를 바꾸었다. 그러고 보면, 로제타 셔우드의 한국행으로 홀이 사랑하는 약혼녀 로제타 셔우드를 따라 한국으로 오게 된 셈이다.

한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9.19.-1951.4.5.)은 미국 뉴욕 주 설리반 카운티 리버티(Liberty)에서 아버지 셔우드(R. Sherwood)와 어머니(P.G, Sherwood)의 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장을 경영했다. 그녀는 체이스넛리지학교와 뉴욕의 오스웨고 주립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얻어 1년간 체이스넛리지학교에서 가르쳤다.

▲ Rosetta Sherwood Hall, 1865.9.19.-1951.4.5.

거기서 그녀는 미 감리교회 토번(J.M. Theoburn) 감독과 그 부인 의사인 챈들러(K. Chandller)의 의료선교 강연에 감동 받아 의료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886년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889년 졸업한 후 감리교여성자선의 집(The Methodist Deaconess Home)에 지원하여 뉴욕 빈민가에서 의료선교사업을 하면서 그의 남편이 될 홀을 만났다.

로제타는 1890년 8월 22일 고향 리버티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18일 만에 요코하마에 와서 고베, 나가사키를 거쳐 10월 10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녀는 배 안에서 선교사로서 다짐을 새롭게 했다. 1890년 9월 2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무엇보다 내 의무를 다하고 싶다. 그 의무가 아무리 보잘것없고 내 키지 않는 것일지라도 나는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 지금 내가 있다고 생각한 다. 그리고 잠잠히 기다리다 보면 왜 이렇게 인도하셨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어 9월 14일 일기이다.

오, 주님. 기도하오니 저로 하여금 충성되게 하시고 성공을 염두에 두지 않게 하소서. 비록 성공이 충성함의 결과로 자연히 따라오는 것일지라도 그 에 연연하지 않게 하옵소서.

9월 19일 25세 생일날은 이렇게 썼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아침, 나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다. 고향집 식구들도 기억하고 있을까? 오늘 아침 생일을 깊은 바다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슬프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너댓 번은 다시 올 이날을 낯선 땅, 낯 선 사람들 틈에서 맞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 또한 조금은 서글프다. 그렇지 만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기 광대한 바다에 나와 함께 계시니 저 낯선 땅에서도 함께해 주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삶 가운 데 함께하시며 넘치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는가.)

로제타가 제물포에 상륙한 것은 10월 13일 월요일이었고, 이튿날 서울에 입성했다. 그녀는 10월 13일 일기에서 ‘하나님의 눈이 항상 살피고 계시며, 자신의 모든 염려와 걱정을 맡아 주시고, 친히 할 일을 선택해 주셨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썼다.

오전 8시. 이 밝은 아침이 얼마나 기쁜지! 우리는 곧 서울의 항구인 제물 포에 이르렀다. 밤이 오기 전에 나의 길고 길었던 뭍과 바다에서의 여행은 끝이 나고, 힘써 일할 사역지 '고요한 아침의 나라' (Land of Morning Calm)에 이르렀다. ‘여호와의 눈’이 나를 살피고 계심을 느낀다. 그가 나의 모든 여정을 인도하셨고 친히 나를 위하여 할 일을 ‘선택’해 주셨으며 '모든 걱정과 염려'를 맡아 주셨다. 이제 그가 나를 ‘행하며 견딜 수 있게’ 도와주 실 것이다. 어찌 내가 행복하지 않겠는가?

로제타는 보구여관에서 일하면서 한국의료사에서 아주 소중하고 획기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보구여관의 한 방에서 간호원양성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후에 한국인 최초의 의학박사요 또한 여의사가 된 박에스더가 첫 학생이었다.

그녀가 한국에 온 다음 해인 1891년은 특히 한국인들을 치료하며 의료선교사로서 그의 사명과 정체성을 굳게 다지는 해였다. 그해 3월 7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는 일 년에 몇 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몸을 치료하기 위해온 사람들에게 영혼을 치유하시 는 분을 만나게 하려고 온 것이다.

그리고 5월 17일 일기는 다음과 같다. 로제타는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보낸 것처럼, 아들이 자기를 보냈고, 그것을 통해 아버지께서 보내서 한국에 왔다.’는 의료선교사로서 자기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 선교사들의 완벽한 본보기이다. 예수님께서는 늘 마음으로 자기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임을 의식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위하 여 행동하지 않고 보내신 이를 위해 행동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기준으로 나를 본다면, 나는 얼마나 멀리 있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알면 서도 그것을 전파하는 일에 얼마나 게으른지, 그리고 얼마나 자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 만약 주님께서 내 머리에 주입시켜 주지 않으셨다면 내가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을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으스대면서 말 이다.

 "보내신 자” 

  요한복음 4:34 

                     5:24, 30, 37, 38 
                     7:16, 28, 29, 33 
                     8:16, 18, 26, 29, 42 
                     9:4 
                     11:42 
                     12:44, 45, 49 
                     13:20 
                     14:24 
                     15:21 
                     16:27, 28 
                     17:8, 18, 21, 23, 25 
                     20:21

"내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 왜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을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 니” 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우리의 임무는 그리스도와 같은 것이다. 이 것은 너무 높고 커 보인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나는 혼자가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를 보내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쳐 …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고 하 신다. 그리고 축복의 보증을 더하신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 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을 공부하는 동안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만약 아버지께서 보내시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까? 나는 예 수님이 자원해서 오신 것으로 늘 생각해 왔다. 그리고 어떤 면으로는 그렇 다. 그렇지만 우리를 이런 방법으로 구원하실 생각을 누가 먼저 하셨을까? 아버지이신가 아니면 아들이신가? 요한복음 7장 28절은 말한다. “내가 스스 로 온 것이 아니로라.” 요한복음 8장 49절에서 “내가 아버지께로 나서 왔음 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내가 요한복음 17장 21, 22, 23절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 신 것을.....” 나는 어떻게, 왜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지 모른 다. 다만 그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틀림이 없음을 알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게 하셨을 리 만무하다.

하나님께서 이들 한국인들을 그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신다는 것 을 생각하면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로제타는 10월 27일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그녀는 ‘한국과 한국인들과 한국사역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홀 박사를 이곳으로 이끄는 도구가 된 것이 한국선교사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 느끼며, 이 특권을 부여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과 한국인들 그리고 이곳에서의 사역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 리고 홀 박사가 이곳으로 파송된다는 것은 진정 놀라운 축복이라고 생각한 다. 이들을 위해 그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사실 내가 홀 박사를 이곳으로 이끄는 도구가 된 것이 한국 선교 사역을 위 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 느끼며, 이 특권을 부여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를 이 길로 이끄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께서 '그대와 나 사이를 지키고 계시니 절대 두려워하지 말아요. 주 께서 당신 손을 잡으시고, 주께서 내 손을 꼭 잡으시고 우리를 가까이 지키 고 계신다오.”

로제타에 이어 홀이 1891년 12월 미감리교회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3개월여 후인 1892년 3월 그는 존스(G.H. Jones) 선교사와 함께 북부지방 순회여행을 떠나 개성, 서흥, 대동, 평양, 의주까지 여행을 한 후에 선교지를 평양으로 하기로 정했다.

제임스 홀과 로제타 셔우드는 1892년 6월 27일 서울에서 올링거(F. Ohlinger) 목사의 주례로 결혼을 했다. 홀은 로제타와 중국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평양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9월에 다시 평양을 여행했다.

홀은 1892년 12월 21일자로 미감리교회 해외 선교부를 이끌고 있던 레너드 박사에게 3월과 9월 선교여행에 대해 보고했다. 특히 평양에서 588명의 환자를 치료해주었고. 감사 부하의 아들 치료가 선교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 주목된다.

한국, 서울 1892년 12월 21일

친애하는 레너드 박사님,

9월 21일, 책과 약을 조랑말에 싣고 북쪽으로 향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송도에 이틀간 머물렀는데, 송도는 서울에서 북쪽으로 160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인구 50,000명의 도시입니다. 나는 송도에서 여러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기독 서적도 62권을 팔았습니다. 서울에서 450리 떨어져 있 는 주민 16,000명의 도시 황주에서도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서 울에서 110리 길에 있는 4,500명의 봉산포와 서울에서 340리 밖에 있는 3,000명의 소흥포, 그리고 서울에서 650리 밖에 있는 온주에도 사역을 개 척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평양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평양은 서울에서 550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약 45,000명의 도시입니다. 평양이 중심이 되어 온주, 황주, 봉산, 소흥 등지로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입 니다. 송도는 서울에서 관할할 수 있는 곳입니다. 주민들은 아주 호의적이 고, 내륙 사역의 전망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지난 봄 존스 형제와 북쪽으로 첫 전도 여행을 했을 때 감사는 미신적인 서적 구입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고, 이후 사람들은 우리 책자들을 사지 않 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가을 두 차례 여행길에서는 조금도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고, 사람들은 몹시도 우리 책을 구입해서 읽고 싶어 하는 듯했습니다. 나는 책을 603권이나 팔았습니다.

의료 사역으로 사람들은 우리에게 큰 호의를 갖게 됩니다. 나는 평양에서 588명의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리고 8평방 피트 크기의 작은 방에서 먹고, 자고, 환자를 진료하고, 책을 팔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곳 에 진료소, 병원, 예배당, 서점, 주거 등을 위한 적합한 건물이 몹시 필요합 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있는 약속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이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사역은 그분 것이고 사역에 관한 그분의 관심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 리의 길을 일어 주실 수 있고 또한 열어 주실 것입니다.

첫 번째 여행 때 나는,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친 감사의 부하 아들을 진료 하기 위해 갔습니다. 한의가 침을 놓았던 자리에 농양이 생겼고 양쪽 다리 밑 부분에도 농양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아이는 감아놓은 천 때문에 다리가 부어 있었으며 아주 수척한 상태였습니다. 평양에 있는 동안 날마다 그 아 이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평양을 떠나올 쯤에는 상태가 훨씬 나아졌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몹시 고마워하며 선물을 여러 개 주었습니다. 치료가 중단되 면 처음 상태로 돌아갈 것 같아서 그 아이를 두고 떠나는 게 정말 미안했지 만 그들에게 약을 좀 주고 떠나 왔습니다. 4주쯤 후 다시 그 어린 친구를 찾아가 보니 거의 완쾌되어 있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던 편안한 방 두 개를 내주며 평양 에 머무는 동안 그곳에 묵으면서 내 집처럼 편안하게 모든 것을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우리가 사역하기에 적합한 집을 사려는데 혹시 그럴 만한 집이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며칠 후 그는 도시를 둘러봐도 적 당한 집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자기 집을 내게 팔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무 척 놀랐습니다. 그 집은 도시의 제일 좋은 지역에 있는 아주 값비싼 건물이 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옥은 도심지 근처 언덕 위에 있는 기와집으로, 옹기종기 붙어 있는 집들로부터 충분히 떨어져 있어서 좋은 공기를 줄 수 있는 주택입니다. 대 지 면적은 길이 104피트, 폭 102피트입니다. 이 가옥은 35칸 집으로 우리 사역에 꼭 맞는 건물입니다.(한 칸은 약 8평방 피트입니다.) 여성과 남성을 위한 진료실 2개, 예배당, 서점 그리고 주거 공간이 있습니다. 예산을 세울 당시에는 평양에 사역을 개척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에 평양에서 건물을 구 입할 예산은 단 한 푼도 책정된 게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 열린 문 안으로 꼭 들어가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또한 우리는 이 문을 주님께서 열어 주신 것이라 생각하며 그분이 우리 길을 막지 않으신다면 이 일을 추 진해 나갈 것입니다. 이 가옥의 가격은 780엔이고, 이 집 뒤편에 있는 4채 의 작은 집들도 필요합니다. 이 가옥들을 다 구입하면 부지가 도로변까지 연결되기 때문에 우리는 언덕배기 전체를 거의 다 차지하게 됩니다. 이 작 은 집들의 가격은 200엔이고, 두 부지를 합한 가격은 금화 700불이 됩니다. 이사회에서 금화 350불을 보조해 주신다면 나머지는 내가 책임질 것입니다. 모든 것에 대한 보고서를 이사회에 올린다면 이곳의 사역을 위해 미국에 있 는 친구들에게 모금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내게 돈이 직접 오 게 할 수 있는지요? 아니면 이사회를 통해 와야 하는 것인지요?

평양에는 많은 사람이 기독교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영광스러 운 결과를 주실 줄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는 절대 실망하는 일 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이끄시는 곳이면 우리는 따라갈 것이며, 무엇을 주 시든지 그분께 모든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한국과 한국인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내륙에서 건물을 매입할 때 한국인 명의로 집문서를 발급받아 그 문서를 우리가 보관한다면 별로 위 험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우리에게 매우 친절하 며 특히 우리 의료 사역에 대단히 호의적이어서 우리의 건물 구입에 전혀 반대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크랜턴 박사의 사역을 말씀드리자면 곧 세례 받을 예비 신자들이 15명 있으며, 진심으로 복음을 알고 싶어 하는 자들이 날마다 그를 찾아오고 있 습니다. 올링거 형제의 사역은 고무적입니다. 12월 11일에 주민 6명에게 세 례를 베푸는 것을 내가 도와주었습니다. 존스 부인은 제물포에서 사역을 잘 하고 있습니다. 맥길 박사는 원산으로 전도 여행을 다녀왔는데 아주 희망적 인 보고를 해주고 있습니다. 노블 형제는 학교 업무와 언어 공부를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버스티드 박사의 봉급의 절반을 2년간 책임지겠다는 나의 제안은 버스티드 박사가 1년 안에 이곳으로 파송된다면 유효할 것입니다. 버스티드 박사가 사역에 압도당하기 전에 언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지 금 이곳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주님 안에서

W. J. 홀

그리고 1893년 2월 그는 노블(W. A, Noble) 선교사와 함께 또다시 평양과 평안도지역을 순회하며 전도여행을 했다. 이번이 네 번째 북부지역선교여행이었으며, 지난 가을에 아들을 치료했던 평양감사의 부하 집으로 갔다. 이때 평양 서문통에 한옥 한 동을 구입하여 선교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렇게 평양에 선교를 개척한 것은 감리교회가 처음이었다. 홀의 이때 평양선교여행에 관한 보고이다.

친애하는 레너드 박사님,

2월 20일 저는 노블 씨를 동반하고 저의 네 번째 한국 북부 내륙 지역 선교 여행을 출발했습니다. 조랑말 등에는 많은 책과 약 그리고 약간의 서 양 음식을 실었습니다. 날씨는 아직 추워서 장비를 꽤 잘 챙겼음에도 일행 은 상당히 고생을 했습니다. 강이 얼어 있었기에 얼음 위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날 아침에 우리는 길에 누워 있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처음에 는 아프거나 술이 취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점검해 보니 죽어서 딱딱하게 얼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참혹한 광경이었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는 데까지 이 사건을 추적해 보았더니 이 불쌍한 남자는 병을 앓고 있던 터에 집과 친구 도 없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지경에서 혹한의 밤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 었던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친구가 없는 병자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들은 도성 밖으로 버려져 죽기도 합니다. 종종 우리는 아주 늦기 전에 그들을 발 견하고 병원으로 옮겨 옷을 입히고 음식을 먹이며 좋은 방에서 적절한 치료 를 해줍니다. 그러면 그들은 곧 회복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많은 귀한 생명 이 살아났고 그리스도께 인도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30마일 정도를 여행했습니다. 조랑말들이 빨리 갈 수 없어서 우리는 몸을 따뜻이 하려고 거의 도보로 여행했습니다. 여관에 도착하면 방 들이 아주 춥거나 너무 덥곤했습니다. 해충들이 우리를 몹시 괴롭혔지만 더 운 날씨 때보다는 나은 편이었습니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지만 허기진 배는 많은 분량을 잘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엿새 후 우리는 서울에서 180마일 떨어진 평양에 당도했습니다. 즉시 작 년 가을에 머물렀던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그 친구는 감사의 비서로, 작년 여름에 죽어가는 아들을 치료해 달라고 저를 불렀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서 도우서서 그 소년은 곧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무척 고마워하면서 달걀, 닭, 오리 등의 선물을 주었습니다. 제가 가을에 갔을 때 는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아주 좋은 방을 내 주었습니다. 더럽고 좁은 8평 방 피트방에서 지내며 환자들을 한 명씩 진료할 때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변화인지요!

이 새 친구는 기독교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관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후 자주 늦은 밤에 찾아와 자정이 되도록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그러고는 우리와 함께 무릎 꿇고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습니다. 이 씨뿌림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두 번째로 그를 찾아갔을 때는 부모님을 만난 것보다 더 기쁘다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고 다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 조력자의 도움으로 사역할 장소를 잘 구하게 되었는데, 이 곳은 곧 우리 병원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 건물은 지난번에 제가 지냈던 곳 과 다른 구역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를 몰라서 제가 있는 것을 불편해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에게 가서 무서우니 외국인을 몰아내 달라고 했습니 다. 감사는 “이 외국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신사다. 아픈 자를 돌보고 불 쌍한 자를 돕는데 좋은 사람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머물고 있는 지역 포도대장에게 사람들을 조용히 하게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잡아들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의 두려움은 가라앉았고, 이곳은 도시와 부근 각처에서 몰려오는 환자들로 곧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약 시간 전에 미리 진료소 앞길에 모여서 차례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평양을 떠나기 전에 저는 하루 60명 이상을 치료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마를 가지고 와서 자기 집으로 와서 진료소에 올 수 없는 병자를 봐달라 고 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모든 환자는 기독교 서적을 샀고 기독교에 큰 관 심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전에 그들과 예배를 드렸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매일 밤과 일요일에 함께 모이도록 해서 더 가르 쳤습니다.

서울에 돌아온 후 저는 그들로부터 속히 다시 와 달라는 서신을 받았습니 다. 제가 가르친 사람들이 일요일마다 모여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드 린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친구들의 약을 받아가기 위해 엿새 동안 먼 거 리를 걸어오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그들과 지내면서 진리를 가르칠 수 있도 록 얼마나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한지요!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 는 땅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쥐고 계신 하나님께 맡깁니다.

평양에 도착한 후에도 우리는 아직 계획의 사분지 일밖에 여행을 하지 못 했습니다. 우리는 북쪽으로 170마일을 더 올라가면서 지나치는 촌과 마을 곳곳에서 병자들을 치료하고 복음을 가르치며 기독교 서적들을 팔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의주에서는 거의 한 주간을 머물렀는데, 우리가 지낸 여관방이 천연두 환 자들이 있던 방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 중에 조랑말들이 자주 넘어져서 우리를 땅에 내팽개치곤 했습니다. 한 곳에서는 가파른 산고 개를 넘던 중에 제 앞에서 가고 있던 조랑말이 미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뒤로 자빠지면서 등에 짐을 실은 채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는 조랑말로부터 제가 피할 수 있는 자리는 겨우 한 발짝 정도의 틈 뿐이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저는 깔려 뭉개졌을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조랑말은 약간의 상처만 입었고, 짐을 진 채로 다시 우리와 여행할 수 있었 습니다.

선교사의 곤고와 위험 그리고 고난은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교사들에게 해가 닥치지 않도록 특별히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삶이 주를 섬기기에 가장 잘 사용될 수 있도록 내어 놓습니다.

“세상 부귀 안일함과 모든 명예 버리고 즐겨 고난 길 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한편, 1893년 6월 27일은 홀과 로제타의 결혼 1주년 기념일이었다. 로제타는 그날 일기에서 행복한 사랑과 신앙의 사역에 대해 ‘일도 우리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 썼다.

오늘은 결혼 1주년 기념일이다. 결혼한 지 1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두 사람에게 아주 낯설게 느껴진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실감하기 어렵다. 지난 한 해는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의사 선 생은 어떻게 내가 그의 행복을 완성시켰는지 지칠 줄 모르고 되뇐다. 그는 완벽하게 만족스러워하며, 자신의 큰 사랑을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말보다 더 중요한 행동'(actions that speak louder than words)으로 표현하면서 도 늘 더 많이 속삭여주고 싶어 한다. 나 역시 1년 전에는 의사 선생을 향 한 내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행 동으로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의사 선생은 그런 나를 이해하고, 나 도 그를 이해하며, 우린 매우 행복하다.

앞으로 1년 동안 우리의 사역지가 어디가 될지 잘 모르지만 우리의 앞날 은 무척 밝아 보인다. 그 일도, 우리도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렸다. 우리는 그 저 주께서 인도하시는 곳이 가장 좋은 곳임을 확신할 뿐이다.

현재 우리는 예전에 맥길 박사가 살던 집에서 매우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방은 우리가 한쪽을, 노블 가족이 다른 쪽을 차지하고 있고, 홀, 식 당, 창고, 부엌은 함께 사용한다. 공동 살림을 하는데, 예전처럼 노블 부인 과 내가 한 달씩 교대로 하고 있다. 버스티드 박사는 홀 박사와 노블 씨가 여행비와 첫해 경비를 부담한다는 조건 하에 파송되었기에, 우리가 그의 숙 식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병원 건물에 그의 방들을 마련하 느라 바빴다.

로제타는 1893년 6월에 남대문 진료소에서 여성의료사역을 시작했다. 그녀는 “남대문 진료소(맥길 박사가 있었던 곳)에서 여성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다. 에스더가 나를 돕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 가고, 주일 오후 예배를 거기서 드린다. 동대문 사역도 계속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사흘은 병원에서 일한다.”고 했다. 이곳은 맥길에 의해 1890년 가을에 문을 열었다.

그해 6월은 비가 많이 내렸다. 홀은 준비한 선교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매우 열심히 일했다. 먼저, 이 집 수리를 감독했고, 그 다음엔 상태가 심히 좋지 않은 대학건물과 맥길 박사의 병원 그리고 아펜젤러씨 집을 수리했고, 또 선교부 전체의 울타리를 고쳤다. 그리고 스크랜턴 박사를 대신해서 의료사역 대부분을 감당했다. … 이렇게 우리 결혼생활의 첫해가 막을 내렸다. 우리 둘 다 상상을 초월하는 최고의 행복을 누린 한해였다. - 헛된 꿈은 없다. 어떤 꿈은 가장 명백한 사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꿈꾸는 자에게는 오직 자신의 진정한 꿈을 좇게 하라. 그러면 어느 날 그는 그 꿈 안에서 깨달은 모든 것보다 더 위대하고 좋은 것을 실현할 것이다.- 조지 맥도널드(George MacDonald)"

홀과 로제타는 그 후 7월에 2주 동안 여름휴가를 가졌다. 그들은 북한산에서 텐트 야영을 하며 보냈는데, 지친 심신을 회복하며 영성을 건강하게 키우는 아주 소중한 기간이었다. 선교사들은 쾌적하고 아름다운 북한산 여름휴가를 아주 좋아했으며, 산사에서 지내기도 했다. 로제타는 홀과 함께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신선한 북한산 숲에서 지내는 행복한 야영생활을 1893년 7월 26일 수요일 일기에서 생생하게 기록했다.

우리는 북한산 정상에서 밤낮으로 야영을 하고 있다. 이 산은 서울 근교 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의사 선생이 아름다운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 대한 절벽 위에 그의 캐나다제 텐트를 쳤고, 밤에는 여기서 잔다. 하지만 낮에는 너무 더워서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느티나무에 해먹을 걸고 대부분 의 시간을 그 위에서 보낸다. 식사도 주로 해먹 위에서 하지만 아침은 텐트 안에서 먹을 때도 있다. 우리는 요리사를 데려왔고, 의사 선생이 취사반장 을 자청해서 맡았기 때문에 나는 모든 책임에서 해방되었다. 아, 너무 좋다. 우리는 종일 ‘날이 샐 무렵(Peep of Day)’을 한국어로 함께 읽고 있다. 이 책은 우리 한국어 교과서 중 하나다. 대개 내가 바느질을 하는 동안 의사 선생이 이 책을 크게 읽으며 공부를 한다.

저녁마다 우리는 함께 등산을 한다. 의사 선생은 자주 “키스 한번 해주세 요. 내 소중한 사랑” 하면서 나를 세우곤 한다. 정말 이것은 첫 신혼여행과 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달콤한 또 하나의 신혼여행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결혼 생활은 날마다 달콤함이 더해지는 신혼여행의 연속이다. …

대체로 우리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오전 6시에 일어나서 목욕을 한 다음 옷을 입고 7시에 아침을 먹는다. 아침으로는 밥 한 그릇, 달걀, 빵과 코코 아를 먹는다. 다음엔 우리 둘만의 기도시간을 가진 후 요리사와 의사선생의 언어선생과 함께 한국어로 기도한다. 9시 전에 시간이 있으면 프랜시스 하 버갈의 생애를 조금 읽는다. 그런 후에 한국어 수업을 시작해서 점심때인 정오까지 계속한다. 점심으로는 닭고기, 햇감자, 빵, 여린 옥수수 또는 오이 를 먹고, 가끔 후식으로 라이스 푸딩, 커스터드 또는 타피오카푸딩을 먹는 데, 의사 선생은 후식주문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오후 2 시까지 독서를 하고, 다시 5시까지 한국어를 배운다.

그런 다음 근처 불교사원에서 여름을 지내고 있는 몇몇 다른 선교사들을 만나 함께 성경공부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주제로 택해서 공부하고 있 다.

6시에는 저녁식사를 하는데, 콩국이나 감자 수프 혹은 닭고기수프에 빵, 케이크 그리고 과일 통조림을 곁들여 먹는다. 식사 후 의사선생은 밤에 잘 자리를 준비하고 우리는 함께 산보를 한다. 그런 다음 목욕을 하고, 9시 전 후하여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우리는 매우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마치 늘 야외에서 생활하는 집시처럼 살면서 딸기처럼 갈 색으로 그을려가고 있다. 밤낮으로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오늘 아침식 사 후 의사선생은 한국에 온 이래 이런 편안함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했 다. 이런 생활도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 내가 취할 수 있 는 휴가는 2주가 전부인 듯하다. 아무튼 이 정도 휴식이면 충분하다고 생각 한다. 이곳에 오기 한 두주 전에는 집에 있는 동안 무척 지쳤고, 밤에는 너 무 더워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하루는 무어 목사, 의사선생과 함께 '연뿔 모양'(Sugar Loaf)의 산봉우리 로 등산을 갔다. 우리를 마주하고 있는 이 봉우리는 아주 높고 매끄러우며, 상당히 큰 민둥바위이다. 정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있었 다. 그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올라가려면 반대쪽으로 빙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점심도 가져가지 않았고, 아침식사도 아주 가볍게 했기 때문에 정상 에 오르기도 전에 몹시 지쳐버렸다. 무어씨는 몇몇 한국인의 안내를 받으며 더 높이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꼭대기까지 기어서 올라 갔다. 그는 로키산맥을 수없이 올랐었지만 이번이 목숨을 건 가장 어려운 등반이었다고 한다. 휴식을 조금 취한 뒤 의사선생과 나는 기왕 시작한 등 산을 마쳤다. 아름다운 황해와 강 그리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시골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봉우리에서 내려왔는데, 아, 나는 텐트에 도착하기 도 전에 너무 지쳐 버렸다. 한낮인데다 날씨도 아주 더워서 기진맥진했다. 점심만 가져갔어도 괜찮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녁식사 후 빨리 회복되었고, 그 다음 날에는 이러한 등산 후에 보통 겪는 뻐근한 증세도 없었다.

로제타는 8월 2일 수요일에 북한산 휴가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홀은 그 전날 저녁에 성안으로 내려가서 노블 부부에게 자기들이 떠나면 그 자리를 차지하라고 권하러 갔다. 홀의 배려가 돋보이는 행동이다. 그녀는 북한산에서 서신들에 답장을 했고, 구멍난 양말과 스타킹을 많이 기웠으며 홀의 바지멜빵 하나를 떴고 자수도 많이 놓았다.

홀과 로제타는 8월에 열린 미감리교회 연회에서 평양으로 파송을 받았다. 지난 1년 동안 로제타는 6,260 명을 치료했는데, 2,125명은 새 환자였고, 3,495명은 재방문 환자였으며, 531명은 왕진 환자, 119명은 입원 환자였다, 그녀는 3년 동안 치료한 환자는 14,000명을 넘었다.

1893년 11월 10일 오전 10시에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태어났다. 그는 1년 14일 만에 아버지 홀을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대를 이어 한국의료선교를 개척하는 역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4. 제임스 홀과 로제타의 청일전쟁 전후 평양의료사역

1894년 정말 파란만장했던 한 해였다. 동학혁명이 일어났고, 청일전쟁이 발생했다. 평양기독교인 박해사건이 일어났고, 청일전쟁 후 환자들을 돌보던 홀이 세상을 떠났다.

홀은 1894년 1월 평양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구입한 한옥에서 교회와 의료와 교육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교회는 남산현교회로, 학교는 광성학교로, 병원은 평양기독병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2월 28일 김창식과 가족이 여선이와 함께 평양으로 떠났다. 로제타는 3월 17일 일기에서 “김창식은 올링거 목사의 요리사로 있었던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진정으로 마음이 변화된 소수 한국인의 한 사람이다. 올링거 씨가 떠난 이후 지금까지 의사 선생은 그를 자신의 조력자로 채용했다. 그이는 창식과 그의 가족을 평양으로 옮기도록 했다. 의사 선생은 평양 사역에서 크게 힘을 얻은 듯하다.”고 했다.

홀은 평양에서 여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학교도 시작하여, 독실한 기독교인 교사 1명과 13명의 소년들이 공부이었다. 그들은 아침과 밤에는 기독교교리를, 나머지 시간에는 한글과 한문을 공부했다. 이것이 광성학교의 시작이다. 홀은 로제타에게

“이곳에 새벽이 밝아오고 있음을 하나님 찬양드린다오.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며 앞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오. 그분을 더욱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오. 주님 안에서 온전히 안식하는 것이 정말 좋구료, 주께서 몇 번이나 더 내게 이 교훈을 가르쳐 주셔야 하는지, 주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며 오래 참으시는지 … 이번 여행은 모든 면에서 내게 큰 축복이었다오. 이 여행은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좀 더 온전히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지요. 사랑하는 당신을 이렇게 오래도록 떠나 있다는 게 내겐 엄청난 시련이오. 하지만 이어질 축복은 천 배나 값지리라 믿소. 당신을 전보다 천배는 더 사랑하는 것 같소. 고난은 내게 유익을 줍니다. 시련은 필요한 것이오. 하지만 이 모든 시험과 시련을 이겨 내도록 나를 들어 올려 주시고 그분 안에서 늘 기뻐할 수 있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드린다오. … 지금 이곳에는 열심히 그리스도께로 나오고 있는 남성들이 여섯 명 있는데, 그들은 엄청난 핍박을 견뎌 내면서 신실하게 공부하며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오. 이곳 주민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걸 보면 정말 기쁘오. 매일 밤 정규 예배 전에 소년들과 모임을 갖는데 보통 15명 정도가 열심히 참석하고 있다오. 어젯밤에 내가 전에 가르쳐 준 것들에 관해 물어 보았는데 얼마나 많이 알고 있던지 내가 놀랐지 뭐요. 나는 매일 아침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환자 진료 및 운동을 한 후 저녁에는 모임을 주관하고 있소. 오늘은 16명의 환자를 진료했는데, 그중 3명은 왕진 환자였소. 모든 게 무난히 잘 되어 가고 있고, 매일 친구를 사귀며 한국인들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오. 이제는 우리가 평양에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오.”

홀은 아침 식사로 장국밥을, 점심엔 꿩고기, 김치, 수프 등을, 저녁엔 꿀을 곁들인 팬케이크를 먹었다. 로제타는 “가엾고 용감한 내 사랑하는 의사 선생, 정말 그와 함께하며 보살펴 주고 싶다. 그이는 자신을 돌볼 줄 모르고 늘 남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고 했다.

그 후 서울로 돌아온 홀은 부인 로제타와 아들과 함께 제물포에서 증기선을 타고 떠나 중간에 폭풍을 만나 고생을 했지만 5월 8일 평양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하자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평양 주민들이 서양부인과 아이를 구경하러 몰려 든 것이다. 로제타의 기록이 자세하다,

우리는 화요일에 가마를 타고 강에서 올라와 오후 2시쯤 이곳에 도착했 다. 과일나무 꽃과 노란 장미가 피고 있는 멋진 우리 집 마당을 얼핏 보았 을 뿐, 남녀 구경꾼들 때문에 밖으로 나가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다.

의사 선생은 구경꾼들에게 내일 오후에 와서 청하면 내가 방에서 한 번에 여성 10명씩 5분 동안 보여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시간당 120명을 보여 줄 수 있고, 그들은 전부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었다. 모두 가 그 제안에 동의하는 것 같았고, 그날뿐 아니라 어제 수요일 오전까지 그 들을 돌려보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작은 방 두 개를 치우고 한 방에는 내 침대와 아기 침대, 그리고 내 옷가방, 상자와 의자 하나를 들 여놓고 우선 옷장으로 쓰려고 선반 몇 개를 달았다. 다른 방에는 테이블, 내 휴대용 의자와 전에 의사 선생이 가져 온 의자 두 개를 들여놨다. 벽에 있는 것들을 모두 쓸어내리고 바닥에 새 매트를 사서 깔았으며, 나는 그림 몇 점을 걸어 벽을 장식했다. 의사 선생은 당분간 이 방에서 밤에는 침대를 펴고, 아침에 접고 하면서 지내려고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식당과 거실로 사용하게 될 방이 하나 더 생길 것이다. 지금은 이 집의 전 주인인 김 씨 가족이 그 방에 살고 있다. 여선이 널따란 부엌을 청소했고, 그곳에 우리는 작은 조리용 스토브를 들여놓고 한국식 주전자처럼 생긴 보일러와 우리 한 국인 사역자들을 위한 밥솥 2개를 설치했다. 아직 짐을 다 풀지 않았지만 벌써 편안함이 느껴진다.

평양의 이 집이 홀과 로제타와 아들이 함께 생활한 처음 그들의 집이자 마지막 집이었다. 물론 함께 생활한 기간도 그때가 전부였던 셈이다. 로제타는 그래서 “우리 집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평양에 살았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여지껏 우리는 한 번도 우리 집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거기서 나는 정말 행복했고, 서울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로제타는 그날 점심을 먹자마자 방으로 들여

 “여인들을 보기 시작했다. 세 번은 열 명씩 무리를 지어 아주 질서 있게 제시간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마당은 물론 대문 밖까지 꽉 메운 사람들 대부분은 계속 질서를 지키고 싶어 했지만, 나중에 도착한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모르고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방 두 개가 꼼짝도 못할 정도로 꽉 차 버렸다. 그들을 내보내려면 내가 마루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한 차례씩 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그렇게 네 번에 걸쳐 마당에 가득 모인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았다. 적어도 1,500명은 되었던 것 같다. … 셔우드가 큰 구경거리임이 밝혀졌다. 오후 4시쯤 의사 선생이 관아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대문 밖과 담 너머로 너무나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니 '기수'를 세워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지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 우리는 저녁을 먹고, 기도한 다음 평화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고 했다.

그런데 5월 10일에는 이른바 평양기독교인 박해사건이 발생했다. 평안도 관찰사 민병석과 평안감사 신덕균이 홀의 조사인 김창식과 장로교회 마펫의 조사 한석진 등을 연행하여 고문하고 투옥시켰다. 전해에 돈을 빼앗으려다가 실패한 발피 김낙구의 아들 김호영이 치안의 문제로 신덕균을 부추겼고, 신덕균은 다시 민병석에게 교인 체포를 건의하여, 민병석은 ‘서양 사람은 잡을 수 없는 즉 조선교인만 잡으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하여 1894년 5월 10일 새벽에 교인들이 체포된 것이다.

그들은 홀에게 사람을 보내 돈 10만 냥을 내면 모두 석방하겠다고 기별을 여러 차례 보냈다. 날이 밝자 홀은 평양 관아로 갔으나 민병석은 만나주지 않았고, 투옥된 사람을 면회하고 귀가했다. 그리고 서울로 스크랜턴에게 전보를 쳐서 영국과 미국 공사관이 개입하여 석방되었다.

로제타는 이 때의 급박한 정황을 5월 10일과 11일자 일기에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그에 따르면,

“새벽 2시에 평양 기독교인 두 명이 우리를 깨웠다. 오 씨와 이(Ni) 씨가 신실한 일꾼 창식이 투옥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온 것이었다. 창식은 의사 선생이 서울로 떠난 후 이곳에 살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집 전 주인인 김 씨와 마펫 씨 집의 전 주인 그리고 마펫 씨의 전도사 한 씨도 감옥에 갇혔다고 했다. 창식은 새벽 1시쯤 어떤 사람이 홀 박사가 보낸 사람이라며 방 창문을 두드리기에 문을 열었다가 포도대장의 부하들에게 잡혀간 것 같다. 그리고 매를 맞고 형틀에 갇혀서 아주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오 씨와 이 씨는 오늘 아침에 또 포졸들이 창식을 때릴 거라고 했다. 잠시 후 창식의 아내가 왔다. 그들은 포졸들이 감히 홀 박사를 칠 수 없어 대신 창식을 때리는 것이라고 했다. 아침 6시 30분 정각에 의사 선생은 감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청하러 나갔다. 7시 30분까지 기다렸지만 관원들은 감사가 자고 있어서 만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 선생은 즉시 서울의 스크랜턴 박사에게 전보를 쳤다. ‘창식 감옥에 갇힘, 오씨와 마펫의 전도사 한씨 매맞음, 현재 나무집(tree house) 전 주인과 함께 모두 감금됨, 가족들 및 하인들의 보호를 요청함.‘

의사 선생이 나가 있는 사이에 그들은 돈 10만 냥을 내면 오늘 아침에 창식이 매맞는 것을 면하게 될 것이라는 전갈을 보내 왔다. 나는 집에 그만한 돈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을 시켜 의사 선생에게 가서 전하도록 했다. 의사 선생은 8시쯤 집에 돌아왔다. 그는 감옥에 갔고, 갇혀 있는 사람들을 모두 보았다. 창식은 형틀에 아주 단단히 매여 있어서 심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오 씨가 의사 선생과 동행했는데, 의사 선생이 잠시 집 안에 있는 사이 그도 우리 집 앞마당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감옥으로 끌려가 도둑들이 수감되어 있는 방에 갇혔다. 의사 선생은 아침 식사를 한 후 다시 감사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나갔다. (가는 길에 위의 전보를 서울로 보낸 것이다.) 중국 전신국에 있는 영어 통역관은 늘 홀 박사에게 친구가 되어 주었으므로 의사 선생은 그에게 감사를 보러 함께 가줄 수 없겠냐고 했다. 친절하게도 그는 요청을 들어주었다.

이때 의사 선생이 집을 비운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였다. 구경 온 여인들과 아이들은 하루 종일 10명에서 12명씩 무리 지어 들어왔다. 그들은 질서정연했고, 대부분 깨끗한 옷차림이었으며,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평양의 여인들을 대단히 좋아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그들은 이 집 주변의 어떤 일에도 신경쓰지 않았고, 주어진 시간을 모두 아기와 나를 보는 데 열중했다. 모두가 셔우드에게 ‘곱소’ (lovely)라고 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도 그렇다고 했다. 나는 구경꾼들에게 우리 친구 여러 명이 오늘 투옥되었는데 이 집에 들어오는 게 두렵지 않냐고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과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들에게 나를 잘 이해시킬 수 있다는 것과 나도 쉽게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큰 소동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계속 맴돌았고, 우리 한국인 조력자들도 겁에 질려 있어서 밝은 얼굴과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나는 그렇게 해냈다.

그러는 사이 불쌍한 창식이 옥졸들의 감시를 받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그들은 창식이 또 다시 매질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10만 냥을 내라고 했다. 나중에 오 씨도 이렇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는 표정이 매우 밝아 보였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는 갇힌 자들에게 곧 석방 명령이 내려질 거라 했다. 오 씨는 내가 돈을 주는 것을 원치 않았다. … 1시쯤 관청 사령이 나를 찾아 와서 한문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전해 주었다. 에스더가 그들이 우리가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 취지의 공문서일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없다며 받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종이를 대문에다 붙였다. 의사 선생의 친구가 나중에 그것을 통역해 주었는데,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이 공문서는 감사 다음 직위에 있는 사또가 이 고을 포도대장인 김에게 내리는 것이었다. ‘포도대장은 이 집에 전 주인이 돌아오게 하라. 너는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제 홀 의원이 부인과 함께 왔으니 이는 여기서 오랫동안 살겠다는 표시이므로 전 주인이 즉시 집을 돌려받게 하라. 많은 구경꾼이 큰 소동을 빚고 있으니 환자들만 오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오지 못하도록 하라. 천주교와 개신교는 모두 아주 나쁜 것이므로 누구도 그 가르침을 들어서는 안 된다.’ 이 서류에는 공식 직인 세 개가 찍혀 있었다. 이후 일어난 일들을 보면 옥졸들이 실수로 그 서류를 내게 준 것인지,아니면 포도대장이 읽고 나서 우리를 겁주려고 보낸 것인지 모르겠다.

오후 2시에 의사 선생이 스크랜턴 박사로부터 전보가 왔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공사관에서 즉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어려운 사항에 대해 자세히 전보로 보내시오.’ 홀 박사가 전보를 쳤다. ‘마펫이나 나와 관련된 모든 이들이 감옥에 갇혔음. 이유는 알 수 없음.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니 즉각 도움이 필요함. 감사는 나를 만나기를 거부하고 호소를 듣지 않으며, 보호를 거부함. 집에서 퇴거 명령 받음.’ 의사 선생은 다시 서둘러 나갔다. 중국인 통역사가 서울로 전보를 쳤다는 것과 또다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감사에게 전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의사 선생과의 면담을 거부하고 있다.

오후 4시에 의사 선생은 가드너(Gardner) 총영사가 보낸 다음과 같은 전보를 가지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외무부는 관원들에게 한국인 하인들과 모든 이들을 즉시 풀어 줄 것과, 당신과 가족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요청할 것임.’ 이때 감옥에서 하인들이 와서 다시 돈을 요구하며 돈을 주지 않으면 모두가 또 매질을 당할 거라고 했다. 김 포도대장의 부하도 와서 대문에 붙였던 종이를 달라고 했다. 모두들 벽보를 보관해 두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의사 선생이 조금 전에 그것을 떼어 두었다. 그때는 그것이 김 포도대장에게 내려진 서류인 것을 알지 못했다. 의사 선생이 식사를 하려던 참에 그들이 처음으로 그 서류를 요구하러 왔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우리도 한국식으로 대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 선생이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만날 수 없으니 아침에 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통사정을 해서 할 수 없이 의사 선생이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사또가 김 포도대장에게 그것을 가져오라고 했다며 만약 그 서류를 받아 가지 못하면 자신들은 심한 매를 맞게 될거라고 했다. 나는 의사 선생에게 그 종이를 주지 말라고 했다. 당연히 포도대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서류를 되찾아 오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떠났다.

그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미친 황소가 포효하며 노하여 땅을 긁어 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 포도대장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는 의사 선생의 조력자인 노 씨가 지난번 이곳에 올라왔을 때 노 씨에게 채찍질을 한 사람이다. 노 씨는 그가 사람이 아니라 돼지라고 했다. 나는 그가 돼지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귀신 떼가 들어갔던 돼지들 중 하나일 거라고 믿는다. 의사 선생이 나가서 설득해 보려 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듣지 않으려 했고, 계속 격렬하게 분노를 터뜨렸다. 나는 사람이 그렇게 노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셔우드는 깊이 잠들었다가 요란한 소리에 몇 분만에 금방 화들짝 깨어나고 말았다. 그때 마침 여선이 마당에 나가 있었다. 그는 온종일 방 안에 잘 숨어 있었는데, 그때 안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 포도대장은 여선이 의사 선생의 하인임을 지적받자 즉각 그에게 달려들어 상투를 움켜쥐었고, 격노한 듯 때리고 발로 차면서 그를 끌고 가라고 명령했다. 이것이 단지 그 종이를 받아내려는 의도에서임을 의사 선생은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여선이가 포기하라고 애원하는 상황을 버틸 수 없었다. 결국 그 악마 같은 남자는 는 만족해하며 떠났다.

저녁 8시, 실(Sill) 공사의 전보가 왔다. '영국 총영사와 나는 외부(foreign office)가 즉시 마펫 씨와 당신의 고용인들을 석방할 것을 명령하고, 조약에 따라 투옥 사실 및 이유를 제출할 것과 당신의 보호를 지시해 줄 것을 촉구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같은 시간에 마펫 씨로부터 다음과 같은 반가운 전보가 왔다. ‘호수아 1장 9절, 주위 사람들에게 전보 내용을 말하시오.’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이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우리는 밤 10시에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5월 11일, 오전 7시에 감사의 부하(김 포도대장의 아들)가 와서 감사로부터 전보가 왔다고 전했다(우리가 예상했던 바였다). 그런데 전보 내용은 영국과 미국 공사가 국왕을 알현했고, 그들 모두 평양은 복음을 전파할 수 없는 곳이라는 데 동의했으며, 국왕은 홀 박사가 나쁜 사람이라고 했을 뿐 아니라 감사에게 오늘 모든 기독교인을 참수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거짓말임이 분명하지만 그들은 창식을 도둑들의 방에서 사형수의 방으로 옮기고 다시 형틀에 묶었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의사 선생이 그를 보기 위해 갔다. 그는 좌절감에 빠져 자포자기한 것 같았다. 계속되는 심한 매질과 죽음의 위협에 이 불쌍한 친구가 수백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감사가 이렇게 늑장을 부리며 전보에 적힌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있으니 그가 풀려나기 전에 죽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의사 선생은 창식을 보러 갈 때마다 그 광경이 너무 처참하여 울고 만다. 그들이 창식을 오 씨나 한 씨보다 더 심하게 때리고 위협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불응하고 있을 뿐 아니라 풀려나면 복음 전파를 그만 두겠느냐는 물음에도 계속 전파하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바울(Korean Paul)153로 인해 주님께 찬양을 드린다!

의사 선생이 전신국에 다시 갔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여선이 매질을 당한 것과, 감사의 부하가 전하는 감사 앞으로 온 전보 내용, 그리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풀려나기는커녕 사형수의 방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9시, 포도대장은 물꾼들에게 곤장을 치며 우리에게 물을 가져다주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어제 아기를 씻기는 데 물을 사용하였으므로 오늘은 밥 지을 물은커녕 아기 이유식을 만들 물도 부족했다. 모두들 계속 창식과 한 씨가 복음을 전파한 죄로 오늘 참수 당하게 될 거라고 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모두 절망 가운데 낙심하여 주저앉아 평양에 온 것을 비통해 하고 있다. 이 아침에 나는 그들이 용기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들이 곧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오에 우리는 가드너 총영사로부터 의사 선생이 아침에 보낸 전보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답을 받았다. ‘지난 밤 11시에 외무부에서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한국인 하인과 기독교인을 석방하라는 전보를 평양으로 보냈습니다.’ 의사 선생은 다시 감옥을 방문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 한국인들을 때려죽이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가 자기에게 온 전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울에 다시 전보를 보내 이곳에 있는 우리 이웃 사람들이 하나같이 우리가 '동학'(Tong Hak) 교도라고 자기에게 고했을 뿐 아니라 우리와 우리 조력자들이 한국 전 지역에 그 교리를 퍼뜨리기 위해 많은 집을 짓고 있다고 자백했다고 할 거라고 했다. 또 그들은 감사는 왕비의 친척이기 때문에 전보로 받은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가드너 총영사의 저보에 대한 답장으로 우리의 식수 공급을 끊었다는 것과 죄수들을 석방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모두 '동학교도 (일종의 종교성을 띤 정치 분파로 1년 전 남쪽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반란을 도모했으나 정부에 의해 진압되었다)라고 써서 보냈다. 모든 정황으로 보건대 더 이상 다른 조치가 내려지지 않으면 그들은 실제로 창식과 한 씨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후 4시, 스크랜턴 박사로부터 전보가 왔다. ‘그들을 감히 죽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외부에서 그들을 모두 석방하라는 명령을 두 차례나 내렸습니다. 외부대신과 영국 영사가 지금 함께 있으니 당장 두 사람을 만나 보겠습니다. 하루 세 차례 이상 전보로 소식을 전해 주시오.’ 나중에 또 한 통의 전보가 왔는데 감사에게 내린 명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내용인즉 그가 지시를 따랐는지 물으면서 만약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다른 조치'가 내려질 것이니 감옥에 갇힌 자들을 즉각 풀어 주라고 할 거라며 ‘이후 두 번이나 이 같은 전보를 보냈으며 마펫 씨와 멕켄지 씨가 금요일에 북쪽으로 출발하여 사흘 후 도착할 것이고 감사가 미국과 영국에 반항하지만 않는다면 겁낼 것 없다.’ 라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이 전신국에 가고 없는 사이 6시쯤 되어 사또가 모든 죄수를 자기 앞으로 끌고 나오라고 했다. 에스더와 실비아는 그들이 죽임을 당할 게 틀림없다며 매우 불안해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 사또가 그들을 이제 풀어 주려는 좋은 소식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7시쯤 되었을 때 창식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서 말도 제대로 못했고, 몸은 축 처지고 차가웠으며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집으로 오는 내내 감사의 부하이자 포도대장의 아들인 김의 명령에 의해 돌로 맞았다고 했다. 나는 그를 따뜻한 담요로 덮은 뒤 약간의 클로로프름 마취제(Spts. Chloroform)에 모르핀 그레인을 섞어 주고 실내를 조용히 유지하도록 했다. 곧이어 의사 선생이 돌아왔다가 모두 풀려났음을 알리는 전보를 치기 위해 다시 나갔다. 밤 9시쯤 되자 창식은 다소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음식도 조금 먹었다. 그리고 사또가 각각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풀려난 후에는 더 이상 복음을 가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 내려 했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었다.

이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은 석방이 지나치게 오래 지체되고 있는데다가 전보 내용도 몰랐기에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으며, 잔인한 고문을 받아 약해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힘없는 가족들에 생각이 미치자 창식을 제외한 모두가 베드로처럼 복음을 가르치지 않겠노라고 약속해 버렸다. 창식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리가 나쁜 것이라 여긴다 해도 자신은 그것이 좋은 것임을 알았고, 그 교훈을 따라 살 것이며 그 진리를 가르치겠다고 했다. 사또가 자기에게 예수를 부인하고 모독하라고 명령했지만 그리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사또는 그에게 가라고 명하면서 아무도 동행하지 말고 혼자 가게 하라고 했단다. 이에 김 포도대장의 아들은 즉시 창식을 돌로 때려죽이라는 지시를 내렸고, 창식이 우리 집 대문까지 오는 내내 소년들과 남자들이 그를 향해 돌을 던졌다고 했다.

곧 이어 오 씨도 왔다. 그는 중한 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보기 위해 집으로 먼저 갔었다. 바로 얼마 전에 쌍둥이를 출산해서 몸이 허약해진 그녀는 이 문제로 큰 충격을 받아 몸져누워 버린 것이다. 이 모든 일을 겪는 동안 용감하게 의사 선생 곁을 지켰던 니(Ni) 씨와 김이라는 이름의 젊은이도 들어왔다. 나와 셔우드는 몇몇 어린 사내 아이들과 여선, 실비아, 에스더와 함께 우리 작은 방에 있었다. 우리는 다함께 짧은 찬양 예배를 드렸다. 창식이 사도행전 16장을 읽고 기도를 인도했다. 어찌나 존경스럽던지. 의사 선생은 그의 발 앞에 무릎 꿇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신실한 순교자! 어디서도 이런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여기 기록처럼 기독교인들은 심한 매질과 함께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당했다. 이때 김창식은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인내와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가 직후에 쓴 글이다.

내방비장 신덕균씨가 분부하되, 너희들을 죽일 터이로되 내 용서하고 물 어 볼 말 있노라. 너희가 이제라도 나아가서 도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욕하 면 살릴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하고 하나씩 무를 때, 처음 김호 세에게 물은 되 하나님을 욕하고, 또 홍종대에게 물은 되 하나님을 욕하고, 또 한석진에게 무른 되 욕하고. 그 다음 내게 왔으니, 내 마음이 대단히 분 하고 원통하여 하늘을 쳐다보고 욕할 수 없다 하니, 그 놈들이 좌우에서 대 단 때리며 욕하라 하며 무수히 난타함에. 신덕균씨가 내보내라 하니, 문 밖 으로 끌고 나옴에, 마침 교우의 도움으로 도망하여 왔소.

이 같은 어려움을 당한 후에도 홀과 로제타는 한 달여 동안 평양에 있으면서 매일 20~30명의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5월 23일 스크랜튼 감리사가 평양에 왔다. 그는 로제타와 아기는 가능한 한 빨리 그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쓴 영국 영사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6월 5일 화요일 아침에 홀 가족은 귀경 길에 올랐다. 평양 사역은 김창식이 맡았다. 홀 가족은 6월 10일 일요일에 증기선을 타고 출항했고, 약 27시간 만에 제물포에 도착했으며, 그 이튿날 오후 4시쯤 서울에 도착했다. 로제타는 그때 청일전쟁의 발생을 예감하며 조선의 운명을 걱정했다.

한국은 남쪽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중국에 도움을 청한 것 같 다. 중국은 일본에 알리지도 않고 한국에 군사를 상륙시킴으로써 그들 사이 의 조약을 위반했다. 그래서 일본도 계속 한국으로 군사를 보내고 있다. 마 치 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이 일본과 중국은 그들의 옛 전장으로 되 돌아 온 것이다. 가여운 한국, 이러한 충돌로 나라가 소멸될까 걱정된다.

홀은 1894년 5월 평양선교상황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894년 9월 <차이니즈 레코더>에 실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 내륙 지역 개척 선교 사역

의학박사 W. J. 홀 목사

5월 4일, 나는 홀 부인과 아기를 데리고 제물포에서 증기선을 타고 평양 을 향해 떠났다. 떠난 지 몇 시간도 채 안 돼 태풍을 만났고, 배는 33시간 동안 정박해 있어야 했다. 월요일 오후에 평양에서 25마일가량 떨어진 보산 에 닿았는데, 이곳은 평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이다. 우리는 원주민 나룻배를 타고 나머지 여행을 계속하여 화요일 정오에 평양에 도착했다.

한국인 성도들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해안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 리가 도착하자 곧 많은 주민들이 우리를 구경하려고 왔다. 홀 부인은 수요 일 오후에 그들을 보겠다고 했다. [수요일] 정오가 되자 수백 명의 여인과 아이들이 홀 부인과 아기를 보려고 마당 밖 거리에 몰려와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열 명씩 조를 짜서 들어오게 한 후 5분간 머물게 했다. 잠시 동안 이 방식이 유용한 듯했는데 곧 뒤에 있는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한꺼번에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대문을 부수고 마당과 집을 순식간에 가득 메워 버렸 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홀 부인이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방법밖 에 없었다. 그렇게 한 마당씩 해서 총 천오백 명 이상의 여성들과 아이들에 게 구경시켜 주었다. 더 이상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사 또를 찾아가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군인 한 명을 세워 달라고 했다. 그 는 다음 날 군인을 보내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목요일 새벽 1시쯤 우리는 두 평양 성도들에 의해 잠에서 깨어났는데, 그 들은 우리의 신실한 조력자 창식과 우리가 머물고 있던 집의 전 주인이 투 옥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 들을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에 감사를 찾아갔는데 그가 자 고 있어서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감옥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 쪽 사람 들뿐 아니라 장로교 선교부 마펫 씨의 조력자와 그 사람이 살고 있던 가옥 의 전 주인도 투옥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투옥시킨 포졸이 그날 밤 마펫 씨가 평양에서 머물렀던 집에 찾아가 그곳에 있던 모든 한국인 기독교인을 잔인하게 매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식은 발이 형틀에 묶여 있었고, 극심한 통중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나는 홀 부인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갔는데, 우리의 한국 인 기독교인 중 한 명인, 나와함께 감사를 만나러 갔던 오 씨가 그때 잡혀 수감되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한국인 성도 이씨를 동반하고 감옥과 전 신국을 돌았다. 이 씨는 내게 “다음에는 제가 수감될 터인데 그렇게 되면 혼자 다니셔야 할 겁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십만 명의 이교도들이 살고 있 는 이 도시에서 외국인은 우리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홀 부인과 어린 셔우 드를 무방비 상태로 남겨 둔 채 감옥과 전신국을 오가야 했으니, 우리가 처 해 있던 상황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건 현황을 서울의 스크랜턴 박사에게 전보로 알렸고, 그와 마펫 씨는 이 문제를 영국 공사관과 미국 공사관에 가져갔으며, 바라던 소식이 곧 전보로 왔다. “공사관들은 즉각 조처를 취할 것이다.” 서울에서는 일각 도 지체하지 않았다. 선교사들과 공사관들은 그 특유의 영국인과 미국인의 열성으로 함께 움직였다.

곧 영국 총영사 가드너 씨와 실 주한 미국공사로부터 자신들이 외부에 수 감된 자들을 즉각 석방해 줄 것과 조약에 따른 우리의 안전보장을 지시해 줄 것을 촉구했다고 전보로 알려왔다. 목요일 저녁 마펫 씨로부터 '여호수 아 1장9절'이라고 적힌 전보 한 통을 받았다. 그날 밤 우리 집은 돌에 맞아 담이 무너졌다. 언제 폭도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금요일 이른 아침에 감사의 부하 한 명이 와서 국왕으로부터 전보를 받았는데, 왕은 우 리가 나쁜 사람들이라며 모든 기독교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했다. 나는 감옥으로 갔고, 거기서 이 보고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우리 기독교인 들은 사형수의 방으로 옮겨져 있었고 고문도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은 죽기를 각오하고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물꾼들에게는 우리에게 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금지되었다. 평양에는 우물 이 없고 반 마일 거리에 있는 강에서 물을 길어온다. 평양 감사는 이곳 한 국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왕비의 집안 친척의 한 사람으로, 외부에서 보 낸 전보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한국 땅에 종교적인 관용의 기회가 왔고,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 중 몇몇의 희생을 요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 죽을 준 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모든 시련 가운데서도 은혜가 충분하였고, 또 한 필요할 때마다 풍족히 주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 는 우리의 신실한 형제들이 극단적인 고문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목격한 나 는 가슴이 찢어졌다. 여러 신부들을 포함한 수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믿 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버린 그때 이후 28년 동안 이곳에서 기 독교인들이 이런 고난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목요일 밤 이후 외부에서는 전보를 두 통이나 보냈지만 금요일 오후 5시 가 되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후 6시가 되자 36시간의 옥중 고 문과 수없는 죽음의 위협을 당한 끝에 드디어 모두가 사또에게 불려가 매를 맞고 풀려났으나 집으로 오는 내내 돌에 맞았다. 심한 상처를 입은 창식은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나는 그의 발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 다. 이토록 신실한 예수님을 위한 순교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펫 씨와 맥켄지 씨로 구성된 구호대가 금요일에 서울에서 출발했다. 그 들은 밤낮으로 여행하여 다음 주 화요일 평양에 도착했다. 일주 후에는 스 크랜턴 박사가 도착했다. 스크랜턴 박사와 맥켄지 씨는 그다음 주에 서울로 돌아갔다.

이 같은 어려움이 발생한 후 나와 홀 부인은 한 달 동안 평양에 남아 있 으면서 매일 20~30명의 환자들을 치료했다. 우리는 일요일은 물론 매일 밤 예배를 드렸다. 마지막 주일날에는 나는 20명의 남성과, 홀 부인은 7명의 여성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기독교에 관심이 깊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평양에 있는 영혼들을 수확하시려고 방해물들을 제거해 주시고 오물들을 말 끔히 치워 주고 계신다.

사람들은 대체로 우리에게 친절하다. 문제를 일삼는 선동자들은 몇몇 관 리들과 그들의 부하들이었다. 옥에 갇혔던 사람들에게서 빼앗았던 돈의 반 환 및 이 일에 가담했던 무리에 대한 처벌을 외부를 통하여 요구했고, 이제 그 명령이 내려졌다. 귀경 길에 우리가 탄 선박에는 400명의 평양 군인들이 함께 타고 있었고, 제물포에 이르러서는 13척의 대포를 실은 군함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거의가 일본군과 중국군 것이었다. 중국와 일 본 사이에 전쟁 위협이 감돌고 있었고, 그들은 한국을 그들의 전장으로 삼 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세상 나 라들이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게 되는 복된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1894년 7월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조선 땅에서 일대 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평양은 그 싸움의 처참한 전장이 되었다. 그리고 양국 군대의 혈전장에서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7월 23일 0시 30분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인질로 잡았다. 이것은 이후 한반도와 동아시아 판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 징조의 사건이다. 일본은 고종에게 청나라를 몰아내달라는 칙서를 요구했다. 그리고 대원군을 복귀시켰는데, 그는 밀서로 평양의 청군에게 도움을 청하는 한편 동학군의 재봉기를 요청했다.

이때 홀은 10~12명 정도 되는 한국 부상병을 상동 감리교병원에서 치료했다. 20일에는 제물포에서 얼마 떨어진 풍도에서 일본군과 중국군 사이에 해전이 있었다. 29일에는 육지 성환에서도 교전이 있었는데 일본군은 두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각 나라 군함에서 병사들이 와서 자국 공사관과 외국인 거류지를 지켰다. 모든 사람이 여름 내내 도시 안에 머물러 있었다. 육로나 수로를 이용한 여행이 안전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은 비도 평소보다 적어 아주 무더웠다. 너무 더워서 밤에도 집 안에서 잘 수 없었다. 그래서 홀은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쳤고, 그의 가족은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리고 10월 1일 월요일 홀은 마펫 씨와 리 씨와 함께 육로를 통해 평양으로 떠나 6일에 도착했다. 홀은 10월 8일자로 로제타에게 평양 상황을 알려주는 편지를 썼다.

오는 동안 우리는 숙식 조달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즐거운 여행을 했다 오. 군수품 운송에 쓰이던 길을 지날 때 수많은 말들과 소들이 죽어있는 것 을 보았소. 많은 마을이 텅 비어 있었으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정착하기 시작하고 있더구려. 우리는 아무 문제없이 군사선을 뚫고 나갈 수 있었소, 평양에서 남쪽으로 33마일 떨어진 황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일본군 파견 대를 만났는데, 450명이나 되는 중국 포로들이 그곳에 있더구려, 평양에서 14마일 남쪽에 있는 중화에서는 중국군에게 사살당한 일본 정찰병 일곱 명 의 무덤이 있는 것을 보았소. 평양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강을 만났고, 한번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도 거쳤다오.

9월 13일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그날은 총알 몇 발만 발사하더니 14일에 는 그 전날보다 더 많이 발사하였고, 15일 토요일에는 큰 교전이 벌어졌다 오. 중국군은 강 건너 남쪽과 평양성에 견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성 북쪽 의주로 가는 길 양쪽에도 하나씩 두 개의 요새를 갖고 있었소, 그날 아침 일본군은 강남쪽 요새를 공격했으며, 의주로 가는 길에 있던 북쪽 요 새들은 정오에, 평양은 저녁쯤에 각각 쳐서 중국군을 각 처소에서 몰아내며 성 안으로 진입했다오, 토요일 밤 일본군이 성 북쪽에서 성 안으로 진군하 자 중국군은 남문으로 도망쳤다는구려. 일본군이 성문과 도로를 지키고 있 었지만 중국군은 용케도 빠져나와 의주를 향해 달아났다고 들었소.

우리는 전장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온통 중국군의 시신들로 뒤덮여있었으 며 아직 묻지 않은 시체들도 있었고 나머지는 고작 몇 인치 두께의 흙으로 만 덮여 있었다오. 악취가 지독한 가운데 형언할 수 없는 참상이었소. 중국 군 14,000명과 일본군 10,000명이 전투에 가담했다고 하더구려.

우리는 뉴욕 월드(New York World)신문사 크리얼리노 기자와 런던 스 탠다드(London Standard) 신문사 프레드릭 빌러즈기자도 만났다오. 언제 그들과 저녁 식사를 할 참이오. 그들도 무척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소. 마 펫 씨의 모든 건물은 창고까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지 뭐요. 그래서 마펫 씨와 리 씨는 지금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오.

나는 아무것도 잃은 게 없고 다만 소년들의 학교로 사용하던 가옥만 창문 이 깨지고 문들이 떨어져 나갔으며, 벽 일부가 조금 무너져 내렸을 뿐, 모 든 것이 괜찮다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훌륭하게 견뎠고 지금도 잘 버티고 있소. 일요일에는 예배를 두 번 드렸고 오늘밤(월요일)에도 한 번 드렸다오. 한동안 우리가 이곳에 남아 있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소. 중국 군대는 중국으로 떠났다는 보고가 있고, 일본군은 의주로 행진하고 있다는구려.

일본군 장군이 부상당했다는 소식이오, 내일 가서 그를 보고 일본인 의사 들과 상담할 것이오.

평양은 거의 죽은 도시 같구려. 한국인들이 막 돌아오기 시작했소. 그들 모두가 이곳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기뻐하고 있으며, 우리는 사역에 큰 결과 를 기대하고 있다오. 땅이 부드러워져 옥토가 되었기에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 믿고 있소.

주님을 위한 우리 사역에서 지금보다 더 희망적으로 보인 적이 없소. 우 리가 이곳에 있다는 게 기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실 줄 믿는다 오. 그분의 약속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 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 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라."

주 안에서,

W. J. 홀

5. 제임스 홀의 순직과 사랑의 승화

홀은 10월 8일 편지를 부친 후 평양을 떠나 서울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홀은 마펫과 함께 5-6주 동안 평양에서 헌신적으로 의료사역을 했다. 평양은 청일전쟁의 사상자들뿐만 전염병이 만연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그는 전쟁의 부상자와 환자를 돌보느라고 몸을 아끼지 않고 과로를 했고, 말라리아(Malaria, 학질)에 걸린 마펫의 열을 내리느라 고생을 했다. 홀도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다. 홀은 진남포에서 마펫과 테이트 목사와 함께 증기선을 타고 11월 14일 수요일 제물포에 도착했다. 그 배는 열병과 이질을 앓고 있는 일본병사들을 실은 배였다.

홀은 이 증기선에서 발진티푸스에 감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도착했을 때 심한 구토와 열로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로제타의 기록이다.

모두들 마펫 목사가 더 위독해지기 전에, 그리고 주위 상황이 더 심각해 지기 전에 집으로 출발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서울로 가는 말을 구할 수 없었다. 증기선을 탈 희망도 희박했을 뿐 아니라 증기선이 있 다 하더라도 나루터까지 횡단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모 두들 온종일 걸려서 강 나루터에 내려가 형편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일본인 병사 600명을 이동시키는 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병과 이질을 앓 고 있는 병사들을 태운 배였다. 평양에서는 죽은 중국인 병사들이 살아 있 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아빠, 마펫 목사, 테이트 목사 는 11월 14일 수요일에 제물포에 도착하는 이 배의 선실을 잡았다. 사랑하 는 아빠는 이 여행 동안 배멀미를 하지 않았고 상태도 조금 좋아졌다. 하지 만 배가 땅에 닿자마자 구토, 고열과 오한으로 다시 앓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물포에서 서울로 가는 증기선이 없었고, 아픈 홀이 육로로 갈 수는 없었다. 그가 토요일에 타고 출발한 증기선은 3시간 정도 뒤에 바위와 부딪혀 침몰했다. 다행히 홀은 구출되었으나, 이 사건이 홀의 병세을 악화시킨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인다. 로제타의 기록이다.

토요일 저녁에 출발한 증기선은 출항한 지 세 시간 만에 바위에 걸려 침 몰했다고 한다. 아빠는 안전하게 구출되었지만 아빠의 약 상자, 책, 옷가지 등은 모두 떠내려갔다고 한다. 밤새 시끄럽고 지저분한 여관에서 지내야 했 기 때문에 아빠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밤 중 내내 위독했다고 한다.

아침에 그분들은 보트를 구해서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썰물 때라 물살을 거슬러야했으므로 다시 하 루 낮과 밤을 강 위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홀은 월요일에야 서울에 도착하여 로제타의 극진한 치료와 간호를 받았으나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귀경 도중 발진티푸스(typhus fever)까지 걸렸으며, 서울에 도착한 지 1주일 뒤인 1894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한국선교활동 3년여 만이요, 결혼한 지 2년여 만에 아내와 어린 아들, 딸(유복자)을 남기고 별세하여 한국감리교회의 첫 순직자가 되었다.

홀의 순직 전후 급박하고 간절한 상황에 대해서는 로제타가 1894년 12월 10일자 일기에서 훗날 아들 셔우드를 위해 쓴 자세한 기록으로 전해주고 있다.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픈 묘사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불쌍한 우리 셔우드! 지난 달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단다. 너는 어려서 지금은 그 상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느끼게 될 거야. 비록 내가 너로 인해 아픈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열대 지역의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차이나호 안에서 기록함.)

바로 한 달 전 셔우드의 생일날, 사랑하는 아빠는 평양을 떠나 집으로 향하셨다. 마펫 목사가 말라리아로 인한 열과 이질로 아주 심하게 아팠기 때문에 아빠는 그 열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으셨고, 결국에는 와버그 팅크제를 사용해야만 했다. 이때쯤 아빠에게도 열이 있었으나 키니네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와버그 팅크제가 거의 동이나서 아빠는 정량의 절반 정도를 복용했고,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에는 체온계가 고장 나서 체온을 정확히 잴 수 없었다.

이즈음 아빠와 마펫 씨는 지난 5-6주 동안 평양 사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고, 특별히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음에도 생명의 안위가 위험한 지역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빠가 평양에 도착하기 2주 전에 있었던 전쟁에서 사망한 수천 명의 중국인 시신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성벽 밖까지 널려 있었다. … 이 시신들은 매장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었고, 그나마 잘 처리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몇 인치 두께의 흙을 뿌려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악취는 끔찍했다.

테이트(L, B, Tate) 목사가 보급품을 가지고 일주일 전에 도착했고, 모두들 마펫 목사가 더 위독해지기 전에, 그리고 주위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집으로 출발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서울로 가는 말을 구할 수 없었다. 증기선을 탈 희망도 희박했을 뿐 아니라 증기선이 있다 하더라도 나루터까지 횡단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모두들 온종일 걸려서 강 나루터에 내려가 형편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일본인 병사 600명을 이동시키는 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병과 이질을 앓고 있는 병사들을 태운 배였다.

평양에서는 죽은 중국인 병사들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아빠, 마펫 목사, 테이트 목사는 11월 14일 수요일에 제물포에 도착하는 이 배의 선실을 잡았다. 사랑하는 아빠는 이 여행 동안 배멀미를 하지 않았고 상태도 조금 좋아졌다. 하지만 배가 땅에 닿자마자 구토, 고열과 오한으로 다시 앓기 시작했다.

아빠가 탄 배가 도착하기 전에 서울로 가는 강 증기선이 막 떠났기 때문에 모두를 하루를 기다렸다가 다음 배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토요일 저녁이 될 때까지 서울로 가는 증기선이 없었다. 아빠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지만 모두들 아빠가 육로 여행은 견딜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므로 증기선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 주 내내 매일 밤낮으로 아빠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화요일 평양에서 육로로 온 이(Ni) 씨가 아빠의 손편지를 가지고 왔는데, 아빠가 그 편지에 자신이 그 편지보다 먼저 서울에 도착할지도 모른다고 적으셨기 때문이다. 또 수요일 밤에는 다른 그룹과 함께 평양에서 온 오 씨가 금요일에는 분명히 도착할 거라는 아빠의 손편지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아빠는 이 편지에서 미열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집에 돌아와 와버그 팅크제를 복용하면 곧 회복될 거라고 하셨다.

금요일 아침 우리는 마펫 목사가 보낸 전갈을 받았다. 금요일 오후 아빠를 위해 강으로 가마를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고맙게도 노블 목사가 가마를 준비해서 강으로 나갔다. 그러나 늦도록 기다려도 증기선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토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존스 목사가 일본 영사관을 통해 보낸 전보를 받았다. ‘마펫, 테이트, 홀씨가 4시에 용산을 향해 떠남. 홀 박사가 위독하니 오늘 밤 용산으로 의사와 가마를 보내고 기다리시오.’ 노블 목사와 버스티드 박사가 긴 의자, 침구, 음식 등을 가지고 내려가서 자정이 넘도록 기다렸다.

존스 목사가 제물포에서 서울로 보낸 전보
수신: 서울 날짜: 1894. 11. 17. 17:00
발신: 제물포 날짜 : 1894. 11. 17.

미국 선교사 스크랜턴에게 전송함: “마펫, 테이트, 홀 씨가 4시에 용산을 향해 떠남. 홀 박사가 위독하니 오늘 밤 용산으로 의사와 가마를 보내고 기다리시오.” 존스.

하지만 여전히 증기선은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노블 목사가 다시 가 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오후에는 친절하게도 빈튼 박사가 가겠다고 나섰다. 여전히 증기선은 오지 않았고, 증기선에 관한 소식도 없었다. 빈튼 박사는 가마를 나루터에 두고 돌아왔다. 아침이 되기 전에 도착하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둔 것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무척 초조했다. 하지만 모두들 증기선이 아직 출발하지 않았거나 모래톱에 걸렸다가 곧 빠져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월요일 아침 식사를 마치자 어떤 판서의 딸을 왕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아기 셔우드도 엄마와 같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가 약을 준비해서 막 떠나려 할 때 아빠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왔다. 어리 셔우를 팔에 안고 엄마는 복도를 달려 나가다. 가마꾼들이 막 복도로 간 의자를 들여왔고, 그 위에는 사랑하는 아빠가 누워 있었다. 테이트 목사가 아빠를 일이긴 후 팔을 부축하여 보모가 재빨리 준비해 둔 침대로 옮겼다. 아빠는 엄마와 셔우드에게 키스했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으므로 기쁘고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아빠가 이렇게 심각하게 아픈지 몰랐다. 토요일 저녁에 출발한 증기선은 출항한 지 세 시간 만에 바위에 걸려 침몰했다고 한다. 아빠는 안전하게 구출되었지만 아빠의 약 상자, 책, 옷가지 등은 모두 떠내려갔다고 한다. 밤새 시끄럽고 지저분한 여관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아빠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밤 중 내내 위독했다고 한다. 아침에 그분들은 보트를 구해서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썰물 때라 물살을 거슬러 야했으므로 다시 하루 낮과 밤을 강 위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침 강가에서 마펫 목사가 말씀을 읽고 아빠와 함께 기도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빠는 다시 힘을 냈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 지요’라고 말한 후 잠드셨다고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푹 주무셨다고 한다.

여선은 토요일 하루 종일 아빠를 위해 맛있는 닭백숙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에 다시 닭을 고아서 그릇에 담아 가지고 왔다. 아무것도 들지 못하던 아빠가 이번에는 무우 반찬과 함께 국을 조금 드셨다.

아빠는 엄마에게 ‘건강할 때 아내와 집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구려. 아플 때 아내와 집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말이오.’ 라고 말했다.

엄마가 아빠의 열을 재어 보니 105도였다. 모두들 아빠의 병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버스티드 박사를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가 뉴욕에서 아빠의 고열을 치료하여 낫게 한 적도 있고 누구보다 엄마를 더 신뢰한다고 했지만 우리 모두는 될 수 있는 한 여러 의사 선생들의 조언을 받아 보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고 아빠도 이에 동의했다. 그래서 버스티드 박사가 왔고, 스크랜턴(W. B. Scranton) 박사도 오셨다.

의사 선생들은 이 병을 이곳 풍토병으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고열이 반복되는 회귀열(임병)'로 본 것 같다. 루이스 양과 알렌 박사가 심하게 앓았던 것과 같은 병처럼 말이다. 버스티드 박사는 그 병을 냉수욕과 피하 스트리크닌 주사로 적절히 처방해서 고친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아빠는 위가 너무 예민해져서 아무 음식도 못 드셨기에 와버그 팅크제를 전혀 삼키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냉수욕 치료를 하면서 가능한 한 영양을 섭취시키기로 결론을 지었다.

첫 번째 냉수욕을 마친 후 아빠는 훨씬 좋아졌다며 다시 냉수욕을 시켜 달라고 했다. 하지만 열은 내리지 않았고 두 번째 냉수욕 후에는 기운이 너무 빠졌을 뿐 아니라 몸의 온도 차가 너무 심해서 충격이 컸으므로 아빠는 다시 냉수욕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빠의 체온은 105도 였고 물의 온도는 54도였다. (104도였고 점차 열이 내렸다.) 그래서 버스티드 박사는 냉수욕이 아닌 전신욕만 한 번 더 하게 하셨다. 전신욕 후에는 스펀지 목욕만 했고, 이로써 한결 수월하게 잘 견딜 수 있었다.

엄마는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 동안 밤낮을 지새면서 아빠를 돌보았다. 그 뒤로는 노블 목사께서 도와주셨다. 월요일 밤에는 아빠 혼자서도 옆 의자 위에 있는 물을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화요일 밤부터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고, 어린 아이처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수요일 아침이 되자 엄마는 아주 지쳐버렸다. 그때 노블 목사가 오셔서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아빠는 엄마에게 더 이상 일어나지 말라고 하시면서 노블 목사께 엄마 침대 주위에 병풍을 쳐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는 좀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좀 쉬려 했지만 어쩐지 엄마 눈앞에 한강 둑에 있는 작은 매장지가환상으로 나타났고, 사랑하는 아빠가 그곳에 곧 묻히게 될 거라는 생각이 몰려와 엄마의 가슴은 슬픔으로 찢어지는 듯 했다. 엄마는 소리 내어 흐느껴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하면 아빠가 마음 아파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블 목사가 엄마의 침대 주위에 병풍을 치자마자 아빠는 노블 목사께 연필과 종이를 가져다 달라고 하여 재정부장 아펜젤러(H. G. Appenzeller)목사께 보낼 마지막 여행 경비 지출 내역을 적어 주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회계장부는 아빠의 책들 사이에 있다고 알려 주셨다. 이 일을 마친 후에는 ‘이제 나는 살거나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Now I am ready to live or to die)라고 말씀하셨다.

노블 목사가 ‘오, 우리는 당신과 오래 살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이라고 하자 아빠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면 저는 이곳에 머물면서 일을 조금 더 오래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는 어린 양의 피로 씻겨 진 천국 문을 거침없이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몇 분간의 침묵이 흐른 뒤 아빠는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라고 덧붙이셨다.

불쌍한 엄마, 엄마는 소리 내어 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엄마의 베개는 눈물로 젖었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하나님께 사랑하는 아빠를 남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다. 그리고 나서 이 상황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아빠는 오늘 아침 눈에 띄게 위중해졌으며, 한 마디 말을 하기도 힘들어 하셨고, 하는 말을 알아듣기도 이미 어려워졌다. 버스티드 박사가 도착하자 엄마는 곧 에비슨 (0, R. Avision) 박사와 빈튼 박사 그리고 버스티드 박사가 견해를 묻고 싶은 모든 분들을 불러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상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엄마와 버스티드 박사는 아빠의 몸과 팔에 난 작은 붉은 반점을 발견했고, 심한 탈진 등 다른 증세들을 종합해 볼 때 발진티푸스일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리고 여러 의사 선생들의 진찰 후 아빠의 병명이 발진티푸스로 확인되었다. 신선한 공기가 발진티푸스에 가장 좋은 소독제였고 강장제였기 때문에 침대 위에 따뜻한 이불들을 덮고 문들과 창문들을 모두 열어놓기로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빠가 마실 신선한 우유를 구해 보기로 했다. 우유를 마시고 있던 선교사들이 모두 친절하게 우유 배달부를 우리에게 보내 자신들의 몫을 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매일 2쿼트의 우유를 얻을 수 있었다. 아빠는 우유를 정말 맛있게 드셨다. 아빠는 그것을 '생명의 묘약'이라고 불렀다.{그 당시 우리는 발진티푸스의 원인을 몰랐고, 아빠가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는 전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줄 알았다)

아빠는 우유가 아빠의 위에 닿자마자 소화가 된다고 확신했다. 엄마는 약간의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열이 가장 심하게 나리라고 예상되는 10일째나 12일째까지 버터 주신다면 아빠는 좋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빠의 열은 밤낮 평균 105° 정도로 지속 되었다. 십 분의 몇 도 정도만 오르락내리락 할 뿐, 별 차도가 없었다. 아빠가 하는 말들은 점점 더 알아듣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엄마는 더 이상 아빠에게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말을 거는 것이 아빠를 피곤하게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빠는 가끔 엄마에게 아빠가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은 것으로 상심하지 말라고 일러주셨다.

한번은 아빠의 볼턴 외할아버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할아버지의 둔부가 골절되었다고 들었다면서, ‘지금 할아버지가 천국에 계시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아빠는 누이동생 릴리가 시험을 통과했는지 물었다. 엄마가 아빠 가까이 갈 때면 종종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아빠의 사랑은 영원할 거라는 말을 해주려고 애를 썼다. 뱃속에 있는 아기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엄마가 ‘아기는 아주 건강한 것 같아요. 셔우드보다 훨씬 많이 움직여요.’라고 대답하면 미소를 짓곤 했다.

오후 늦게 아빠가 엄마를 불렀는데 한동안 엄마는 아빠가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샤워 뭐”라고 하시는 것 같았는데 엄마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아빠는 한 글자 한 글자 철자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엄마는 아빠가 ‘셔우드'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보모가 셔우드를 데리고 들어왔다. 우리는 아빠의 병이 전염성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될 수 있는 한 셔우드를 방에 들여놓지 않았었다. 아빠는 어린 셔우드를 간절하게 바라보셨다. 하지만 그 아이를 더 가까이 부르지는 않았다. 그 위험성을 아는 듯했다. 그렇게 한참을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본 후에는 셔우드를 데리고 나가라는 몸짓을 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가, 아빠가 너를 바라보았던 그 사랑이 담긴 간절한 눈빛에 대해 네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애처로운지 모르겠다.

그날 밤 얼마 동안 버스티드 박사가 아빠와 함께 계셨고, 노블 목사는 저녁 시간에 아빠를 지켜 주셨다. 엄마는 엄마 침대와 셔우드 침대를 식당으로 옮겼다. 엄마는 아빠가 안 계시는 동안 식당과 부엌을 고치느라 고생했지만, 아빠가 집에 돌아오셔서 부엌을 보면 정말 기뻐하시리라 생각했기에 열심히 고쳤다. 엄마와 아빠는 사실 가족끼리 지내는 즐거움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빠는 평양으로 가셨고, 아빠가 돌아오기 전에 노블 목사 부부가 들어오셨다. 그리고 노블 목사 가족은 지난 봄 엄마, 아빠가 평양에 갈 때까지 우리와 지냈다. 우리 가족이 평양에서 돌아온 후에는 노블 목사 가족이 일본으로 갈 때까지 다시 함께 지냈고, 그 댁이 떠난 후에야 엄마, 아빠는 그때 단 몇 주 동안 가족끼리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는 것이 정말 좋아서 엄마, 아빠는 창고를 고쳐 부엌으로 사용하기로 했고, 침실을 수리해서 아빠의 서재와 식당으로 사용하면서 우리 집을 가져보기로 했다. 평양으로 떠나실 무렵 아빠는 집 일부분만 고쳐놓고 가셨으며, 그동안 엄마는 집수리를 마무리 했는데, 이렇게 아빠는 새로 단장된 집을 보지도 못하고, 단란한 살림'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아파서 누워 계신다.

목요일 아침 아빠는 연필과 종이를 달라고 하고 무언가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어린 셔우드가 글씨를 쓰는 것 같았고, 아빠는 글쓰기를 포기했다. 그날은 우유를 잘 들지도 못했다. 결국 마비가 와서 아빠는 점점 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인두근육에도 영향을 끼쳐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게 되었다. 아빠는 우유를 자주 토했다. 토한 우유는 아빠의 턱수염을 더럽혔고, 버스티드 박사는 수염을 깎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아빠에게 턱수염을 깎아도 되겠냐고 물어보았다. 아빠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괜찮아 - 요’ 라고 대답했다. 노블 목사가 턱 윗부분까지 수염을 말끔히 잘라 주섰다. 그러자 아빠의 모습은 퀸스대학교에서 찍은 학창시절 사진과 비슷해졌다. 아빠는 거울을 가져다 달라고 하셨고, 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고열이 지속되었지만, 아빠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오늘은 리(G. Love) 목사가 오셔서 침대 뒤에 있는 책장을 보면서 책장에 다리를 달아 공기를 쉴 수 있도록 밖으로 옮기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빠의 침대를 생각하고 그러신 게 분명하다. 말을 할 수 있으면 모든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했다. 오후에 엄마는 아빠에게 우리가 주문한 것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착했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제 - 제 - 제 - 물 - 포 - 에?’ 라고 물었다. ‘아니, 여기에, 집에 왔어요.’라고 엄마가 대답했다. 그러자 아빠는 보모가 쓸 방이 준비되었냐고 물었다. 아빠는 엄마가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보모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이날은 아빠가 말씀을 하신 마지막 날이었다. 한번은 엄마가 아빠 가까이 있을 때 아주 슬프고도 사랑에 찬 표정과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면서 떠듬떠듬 ‘사랑해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요. 알고 있어요. 여보, 말할 필요 없어요. 말하면 기운이 빠질 거예요.’라고 엄마가 말해드렸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빠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 아빠는 엄마에게 평양 방문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고 애를 쓰셨다. 엄마는 아빠의 이야기를 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빠가 그곳에 갔던 것에 대해 엄마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빠가 아주 분명하게 ‘나는 그 일을 예수님을 위해 했다오. 그리고 주님은 나에게 상을 주실 거예요.’라고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이 말은 사랑하는 아빠가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되었다.

 

{1893년 8월 20일 - 아빠는 아침 식사 전에 이곳 아펜젤러 댁 서재에 있는 책상에 앉아서 시를 쓰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래 두 절의 시를 지었다. 시 쓰기를 마친 후에는 언젠가 더 좋게 고쳐야겠다고 하셨다.

‘나의 세월은 마치 동화 같았습니다. 
값진 황금 같은 순간들이었습니다. 
나의 이생의 날은 거의 다 지나가고 
본향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오, 생각만 해도 더없이 행복한, 
영원히 함께 거한다는 생각, 
저 편에서 기다리고 계신 주님과 
먼저 가신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 W. J. 홀}

목요일 밤에는 스크랜턴 박사가 아빠와 함께 계셨다. 금요일 아침이 되자 아빠는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셨다. 버스티드 박사가 위관으로 영양을 공급하려고 했으나 아빠는 견디지 못하셨고, 위장에 튜브 넣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장을 통해 음식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날은 잘 유지하셨다.

금요일 밤에는 빈튼 박사가 아빠와 함께 계셨다. 열이 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엄마는 그날 자러 가면서 위기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빈튼 박사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가 빈튼 박사의 어린 아기를 위해 작은 관을 만들고 박사 부부와 함께 기도하면서 그분들을 위로하려고 애썼던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빈튼 박사가 아빠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리라고 어찌 생각이나 하셨을까.

토요일 아침 7시쯤 의사 선생들은 엄마를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모두들 아빠가 죽음을 맞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날 하루를 버티셨다.

아빠는 엄마가 가까이서 손을 잡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정오까지 계속 눈을 감고 계셨는데 엄마가 몸을 숙이고 아빠 귀에 대고 ‘닥터’하고 부르자 대답으로 엄마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 오후에는 눈을 크게 뜨고 엄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힘들게 숨을 쉬셨고, 심장은 점점 약해졌다. 하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저녁이 되자 엄마가 두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아빠의 눈은 아주 밝아 보였다.

그리고 11월 24일 토요일 해질 무렵, 아빠는 마지막 숨을 쉬셨다. 아빠의 두 손은 엄마의 두 손을 잡고 있었고, 아빠의 눈은 엄마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부드럽게 사랑스러운 두 눈을 감겨 드렸다. 그러고 나서 아빠의 눈이 엄마의 눈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아빠의 눈을 한 번 더 뜨게 했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볼 수 있도록. 아빠의 눈은 여전히 밝고 맑아서 아빠의 사랑스러운 영혼이 그 몸을 떠나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그날 사랑하는 아빠의 이마에 맺히는 '죽음의 이슬' (death-dew)을 닦아줄 때 엄마의 마음속에 찬송가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My Jesus I Love Thee)의 다음 구절이 계속 떠올랐고, 엄마는 이 노래를 몇 번 큰 소리로 반복해서 불렀다.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게 숨 쉴 수 있도록 허락하실 때까지 당신을 찬양합니다.
내 이마에 차가운 죽음의 이슬이 맺힐 때 말하겠어요.
나의 주님, 지금 이 순간 당신을 가장 사랑합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아빠의 눈을 감겨드리고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안고 와서 하나님께 아들을 위해 자신이 더 용감하고 강해질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아직 복중에 있는 어린 아기를 위해 기도했다. 그때 엄마의 심장 아래 있던 그 아이의 작은 심장도 요동쳤다. 하나님은 엄마의 기도에 확실히 응답해 주셨다.

그리고 단시간에 엄마는 아빠의 입관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아빠의 결혼식 양복, 속옷, 목회자용 컬러(collar), 커프스, 넥타이 등을 꺼내 입히면서. 하지만 그날 밤 엄마는 자정 12시에 잠에서 깨었고,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 몰려와서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셔우드를 돌보기 위해 와 있던 금영이가 엄마에게 와서 엄마를 위로해 주려고 애쓰면서 ‘대인께서는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예수님과 함께 계십니다. 슬퍼하시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다음 날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요일이었다. 아빠는 예수님과 함께 이날을 보내고 계실 것이다. 셔우드는 금영이에게 안긴 채 엄마와 신선한 공기를 쐬러 나갔다. 우리에게 병이 들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빠가 평양에 가시기 전 셔우드를 안고 마지막으로 산책하던 그 담길을 따라 걸었다. …

장지로 떠나기로 약속된 시간은 2시였다. 떠나기 바로 몇 분 전에 관이 완성되었다. 아빠는 이곳에 오신 뒤로 사망한 모든 외국인을 위해 예쁜 관들을 만들어 주셨었다. 아빠는 소년 시절 가구공이었고, 관 만드는 것을 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아빠를 위해 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어떤 중국인이 최선을 다해 관을 만들어 주었다. 관은 흰색 한국 비단으로 테두리가 쳐져 있고, 검은 천으로 싸여 있었다. 엄마는 무릎에 셔우드를 앉히고 네 명이 드는 가마를 타고 갔다. 천진한 아이는 가마 타고 시골길을 가는 것을 참 즐거워했다. 특히 커다란 나무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한강에 닿기 전에 셔우드는 잠들었고, 묘지에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잤다. 그래서 셔우드는 사랑하는 아빠의 관 위에 흙이 떨어질 때 '쿵' 하고 났던 그 차디찬 소리를 듣지 못했다. 노블 목사님은 ‘흙은 흙으로, 티끌은 티끌로’라고 말씀하셨다.

장례식 후 엄마와 셔우드는 집을 소독하는 동안 커틀러 박사 댁으로갔고, 사흘간 루이스 양의 방에서 지냈다.

화요일 오후, 예배당에서 아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추도 예배가 드려졌다. 엄마가 찬송가와 아빠가 좋아하던 말씀을 골랐다. 그리고 예배 순서를 맡아주실 분들을 제안했고, 친절하게도 노블 목사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셨다. 후에 엄마는 노블 목사께 짧은 감사의 말을 써서 보냈는데, 그분은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홀 박사를 사랑합니다. 제가 해 드렸던 일과 앞으로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봉사는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라고 답하셨다.“

홀의 장례예배는 11월 27일 배재학당에서 거행되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장례예배  
 닥터 윌리엄 제임스 홀 목사

배재 예배당                                                                       1894년 11월 27일

찬송 ~ 감리교 찬송가집 979장 - 예수 안에 잠들다>(Asleep in Jesus)
성경 말씀 - 이사야 43:1-15                        W. B. 스크랜턴 박사
기도                                                                W. B. 스크랜턴 박사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의 찬송
조사 - 약력 W. A.                                         노블 목사
조사 - 의료 선교사로서의 홀 박사          빈튼 박사
조사 - S. A. 마펫 목사
찬송 - 복음성가 234장 〈헌신>(Consecration)
조사 - 버스티드 박사
조사 - 그래함 리 목사
찬송 - 복음성가 314장 <내 주를 참 사랑하고> 조사 - 홀 박사의 선교 사역: 시작과 끝    H. G. 아펜젤러 목사 
독창 - 〈천국문을 지나>(Sweeping through the Gates) [회중은 후렴을 합창] 
축도 - 그래함 리 목사

로제타 홀은 에스더를 동반하고 일단 미국으로 귀국했다. 거기서 아버지를 여읜 그녀는 1897년 11월 다시 한국으로 왔는데, 그해 1월 홀의 유업을 기리는 홀기념병원(또는 紀忽病院)이 건립되었으며, 평양연합기독병원으로 발전했다.

로제타는 1898년 5월 평양으로 파송 받아 여성병원인 광혜여원(廣惠女院)을 설립하고 부녀자와 아동을 위한 의료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서 낳아 기른 딸 마가렛(Edith Margaret)이 감기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마가렛의 주검은 김창식 목사의 등에 업혀서 평양서 양화진까지 길어와 양화진에 묻혔다.

그녀는 가혹한 세상의 고난을 깊은 신앙과 보편적인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며 평생을 서울과 평양에서 의료선교에 헌신했다. 또한 한국 최초로 맹인학교를 설립하여 맹인교육에 힘썼으며. 서울에서 여자의학교를 설립하여 여성의학교육에 힘썼다. 아들 셔우드 홀은 의료선교사로 1926년 내한하여 해주 구세병원장으로 일했으며,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며 결핵퇴치운동을 벌였다.

1917년 서울로 파송 받아 보구여관의 후신인 동대문부인병원(이대부속병원) 의사 겸 약제사로 활동했다. 1920년경부터 여자의학반을 조직하여 한국인 여자의사 양성교육을 실시했으며, 1928년 경성여자의 학교로 인가를 받아 정규 의학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고, 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모체가 되었다. 1933년 해주 구세요양원에 로제타기념예배당이 건립되었다. 1935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였으며, 1943년 은퇴하고 뉴저지에 있는 안식관에서 지내다가 1951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유해는 화장되어 남편이 묻혀 있는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함께 묻혔다.

끝으로 윌리엄 홀 박사가 선교지로 떠날 때 패니 크로스비가 지어 준 시를 읽으며 홀 의사 내한 130년을 기념하여 준비한 이 부족한 추모와 존경의 글을 마치려고 한다.

                누가 가겠느냐?

           어둠의 왕자가 군림하는 
           저 험하고 도도한 바다 건너, 
           수많은 희생자를 
           무자비한 쇠사슬로 잡아 가두는 바다 건너. 
           저 비통한 분노의 곡성, 
           저 깊은 절망의 울음소리. 
           우리에게 빛을 주소서. 아니면 멸망이오니, 
           속히 보내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이 불쌍하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누가 생명의 떡을 가져다주려나? 
           주님의 인자와 긍휼의 보좌 앞에서 
           누가 이들과 함께 기도하려나? 
           누가 이 길을 가려나?

           거센 풍랑을 지나 
           부모와 친구와 고향을 
           소리 없이 모두 남겨두고?

           충성스런 선교단에서 
           굳세고 용감한 답이 왔네, 
           축복의 주님이 
           손에 붙들고 있는 사람이.
           굳세고 용감한 답이 왔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자비로운 주님, 당신께서 부르셨으니 
           당신 뜻을 따르옵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이 가는군요,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는 곳으로, 
           열심히 일한 열매가 
           오랫동안 맺히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변하는 모습에 수고하고 
           불볕과 혹한을 견디려 하네. 
           한 알의 씨도 잊히지 않으리, 
           한 톨 열매도 빠짐없이 거두리.

           하나님이 물결 위에 함께하시기를, 
           항상 보호해 주시기를, 
           부드러운 사랑과 자애로 
           당신을 우리에게로 돌아오게 해주시기를.
           하지만 그게 뜻이 아니시라면,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밝고 영원한 천국에서 
           할렐루야 찬양하며 다시 만나세.

논찬

성백걸,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의 신앙과 사랑의 길”에 대한 논찬

홍승표(한국기독교역사학회 연구이사)

성백걸의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의 신앙과 사랑의 길”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 선교사의 내한 130주년을 기념하여 두 사람의 초기 내한선교의 헌신적 삶을 “기리기”(기념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홀 선교사 부부에 대한 특정한 주제의 비평적 학술 연구의 성격은 가급적 지양하고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의 선교활동과 그 유산을 유기적으로 한 관점에서 접근하여 파악”하고, “그들이 수행한 의료선교의 원동력으로서 신앙과 보편적인 인류애의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사랑의 역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본 논문은 그러한 취지와 목적에 입각하여 홀 선교사 부부에 대한 여러 선행연구와 새롭게 간행된 사료들을 분석, 동원하여 두 사람의 성장배경과 과정, 결혼과 내한선교활동, 평양지역의 의료선교와 기독교 핍박, 청일전쟁 과정에서의 헌신과 순직의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서술했다.

논찬자는 본 논문의 전체적인 내용 전개와 관점에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하면서, 글의 내용과 관련해 몇 가지 의견과 제언을 드리는 것으로 논찬을 대신하고자 한다.

1. 본 논문의 제목이 “홀(부부)의 신앙과 사랑의 길”이기에 제임스와 로제타의 신앙적, 역사적 성장과정과 배경을 보다 정밀하게 소개하고 그들이 내한선교 전후로 형성했던 신앙정체성과 선교사상, 내면세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관념적인 “신앙”, “사랑”이라는 가치와 차원을 학술적으로 논증하기 위해선 향후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의 관련 사료들을 추가 수집 및 심층 분석해 그들이 내한선교 전후에 어떠한 정체성의 변화와 신앙적 성숙, 사랑과 헌신의 태도를 내면화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했는지를 규명해 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제임스 홀이 장로교적 배경과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종교적으로 아주 강하게 장로교회에 기초”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그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감리회 뉴욕 메디슨가 의료선교의 책임자로 일하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의 감리교 사회선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변화, 한층 새롭고 성숙해진 신앙관의 형성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러한 홀 선교사의 신앙 정체성의 변화는 단순히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교파를 옮기는 차원을 넘어선 19세기 말 20세기 초 세계 선교현장에서 형성되었던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즘의 역동성이 그에게서도 작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홀이 내한한 이후에도 평양지역을 선교 거점으로 삼고 사무엘 마펫이나 그레이엄 리와 같은 미북장로회 선교사들과도 깊은 친분과 선교협력을 할 수 있었던 것에서 그가 내한선교 현장에서 체득했던 에큐메니컬 정신과 선교신학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를 시작으로 향후 그가 내한선교에서 보여주었던 한국사회에 대한 인류애적 박애사상과 실천, 사회의 현실적 모순과 문제를 정면으로 응대해 복음과 기독교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에큐메니컬 선교사상과 실천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고 규명하게 되면 좋겠다.

2. 1894년 평양 기독교인 박해사건은 당시 외국인의 개항장 이외 지역 부동산 소유가 조약상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장로교의 마펫과 리, 감리교의 홀이 선교기지 용도로 집을 구입하게 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아울러 홀이 아내 로제타와 아들 셔우드 홀을 평양에 데리고 주민들에게 구경시킨 일도 선교사와 기독교에 대한 배척 움직임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

아울러 선교사 보다는 한국인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이루어지며, 관리들 사이에서 고종이 기독교인들을 참형에 처하라 했다는 거짓 소문이 돌았으며, 홀의 집에는 주민들의 투석행위가 발생해 집 한쪽 담이 무너져 내리고, 식수 배달도 중지되는 위기가 이어졌다.

당시 홀은 영국 영사 가드너, 미국 영사 실 등과 전문을 주고 받으며 한국인 신자들의 상황에 대해 타전했으며, 외교관들은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수교조약의 “외국인 보호조항”을 근거로 책임 소재를 물을 것임을 엄중히 전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평양감사에게 수감자들의 즉시석방을 강력히 명령했고, 그들의 석방 사실을 영국과 미국공사관에 통보했다. 영·미 공사는 사건의 해결 후에도 이 사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해, 결국 500달러의 배상금과 관련된 관리들의 처벌 약속을 얻어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1894년의 평양 기독교인 박해사건은 단순히 종교적 박해의 차원을 넘어선 정치, 외교, 경제,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건이다. 따라서 향후 홀 선교사가 이 사건에 대해 지녔던 인식과 외교관들의 대응, 당시 정부 관변자료와 외교문서 등을 분석해 본 사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이러한 한국정부와 관리, 지역민들의 태도에 대해 홀 선교사의 내면세계는 어떠한 복합적 입장이 있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3. “가여운 한국, 이러한 충돌로 나라가 소멸될까 걱정된다.”

로제타 홀이 청일전쟁 당시 강대국의 전장으로 전락한 한반도의 현실에 대해 연민과 우려를 표현한 대목이다. 청일전쟁은 국토를 유린하고 수많은 난민을 양산했으며, 민중의 전쟁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 했다. 평양전투가 일본군의 승리로 끝나고 15일 후 마펫과 홀이 평양으로 복귀하자 수많은 사람들은 선교사들에게 의지해 안전을 보장받고자 했다.

청일전쟁은 당시 서북지역민들의 선교사와 기독교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쟁이 끝난 후 지역민들은 그 전보다 더 개방적인 태도로 선교사들에게 접근했다. 전에 기독교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었던 사람들 조차도 마음을 바꿔 선교사들에게 친근감을 표현했다.

사람들의 이러한 방문을 통해 나타난 환영의 마음에 선교사들은 놀랐다. 전에 선교사들을 반대했던 사람들조차도 이제 친근한 마음으로 보여주었다.

청일전쟁 당시 이러한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완고한 서북지역민들이 청일전쟁을 겪고 난 이후 선교사들에 대한 우호적 태도로의 전환한 사실에 대해 일반역사학계에서는 “선교사들의 정치적 힘에 대한 선(先)인식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러한 선인식은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나타난 선교사들의 정치적 힘의 과시를 통해 형성”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물론 19세기말 내한선교사들의 외교적 배경과 치외법권적 안전망은 격변기에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보존하고자 하는 민중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논찬자는 한국인들이 기독교와 선교사에 대해 지녔던 경계와 편견을 불식하고 긍정적 태도로 전환케 한 결정적인 이유에는 제임스 홀과 같은 선교사의 희생적 실천과 헌신, 숭고한 죽음이 한국인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한 것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생각한다.

향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홀 부부가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보여주었던 진정성 어린 애정과 인류애적 박애의 정신을 엿 볼 수 있는 다양한 구체적 사료들이 더 발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위 두 기고문에서 원문의 주석은 생략되어 있음을 밝힙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