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김명섭 목사의 말씀학교
“모든 대적을 멸하시는 승리의 날” 스가랴14장12절~21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1년 11월 22일 (월) 11:06:47 [조회수 : 82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모든 대적을 멸하시는 승리의 날” 스가랴14장12절~21절

 

 

1. 의의 최후 승리

 

① (12절)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 여호와의 날과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관점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스가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통치를 대적하는 세력과의 큰 영적전쟁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이 전쟁은 시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언제나 존재한다.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을 통칭한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더 진해지듯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때 사단, 곧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강력한 훼방이 함께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스가랴는 마침내 하나님을 대적하던 모든 대적을 멸하시고 의의 최후 승리를 이루어내실 것을 예언한다.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눈은 관점이나 안목 같은 ‘가치관(무엇이 소중한가)’과 ‘세계관(무엇이 다스리는가)’이다. “그 혀가 입속에서 썩을 것이요” 혀는 말을 가리키는 은유다. 적그리스도는 말로 대적하고 훼방한다. 여호와의 날에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가치관과 세계관의 비극적인 종말을 예고한다.

▶ (창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가 말씀대로 준행하여 방주를 지을 때 멸시하고 조롱하던 것과 같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눈으로 멸시하고 말로 조롱하던 입술에 재앙을 내리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네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6~28)” 주님의 일 할 때 내 견해를 내려놓고 말조심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본 대로 행하고 말한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 무엇보다 여호와의 날에 말한 대로 심판하신다.

 

② (13절~14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로 크게 요란케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싸우리니 이때에 사면에 있는 열국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아 모여질 것이요”

▶ ‘그 날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동시에 사단도 역사한다. 적그리스도는 합종연횡을 시도하며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지만 결국 자중지란으로 자멸하게 될 것이다. 창세기의 바벨탑사건이 그 실 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11:3~4)” 바벨탑은 연대와 연합으로 인간적인 힘과 기술력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오만의 상징이다. 교만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혼란케 하시고 흩어버리심으로 인간의 오만을 무참하게 무너뜨리셨다. 세속적인 이해관계로 모인 연합이나 연대는 결국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해 스스로 분열하고 만다. 이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벗어난 교회 공동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회 공동체는 이해관계로 모인 동아리나 동호회 같은 인간적인 연합을 위한 친목단체가 아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긍휼과 희생에 목적을 두는 사랑의 공동체다.

 

③ (15절) “또 말과 노새와 약대와 나귀와 그 진에 있는 모든 육축에게 미칠 재앙도 그 재앙과 같으리라”

▶ 아담의 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은 불순종이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죄악은 그 땅의 소산물에까지 저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해 온 세상에 구원이 임하듯 하나님을 경외하고 준행하면 땅의 소산물까지 축복이 임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축복도 이와 같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22장12~18)” 성경이 시종일관 전하는 심플한 삶의 원리다. 멸시하면 불순종으로 저주에 이르게 되고, 경외하면 준행으로 축복에 이르게 된다. 신명기는 이를 더 분명하게 강조 한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네게 명하신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르고 네게 미쳐서 필경 너를 멸하리니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적과 감계가 되리라(신28:45~46)” 순종하면 축복의 본보기가 되지만 거역하면 저주의 본보기가 된다.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섬기는가에 따라 축복과 저주의 서로 다른 운명에 놓이게 된다.

 

 

2. 초막절, 은혜를 기억하는 삶

 

① (16절)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 스가랴는 그 날에 펼쳐질 최후승리의 영광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던 적들도 하나님 앞에서 승복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초막절은 광야 사십년 동안 지키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날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종말의 날이다. 개인의 삶에서는 죽음의 순간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진실을 그 날에 가서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 하루라도 빨리 은혜를 깨닫고 사는 것이 지혜다. 그래야 헛된 세상에서 감사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가랴의 예언이 전하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② (17절~19절) “천하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 스가랴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창일하게 흐르는 강물도 자연현상에 따른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이라고 증언한다. 삶에서 누리는 일상이나 건강, 물질이나 재능도 마찬가지다. 초막절의 정신은 광야를 통한 체험학습에서 터득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솔한 감사의 고백이다. 그 날에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살던 죄악을 심판하신다. “만군의 여호와를 경배하지 않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않고,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자신의 공로와 공덕을 내세우며 사는 오만한 삶은 불평과 원망으로 귀결된다. 몰라주면 서운하고 알아주면 자만해서 만족이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실상은 은혜를 모르는 교만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

 

③ (20절~21절) “그 날에는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말방울은 생활용품이고 솥은 주방도구인데 사소하고 반복되는 일상생활을 가리키는 은유다. 그 날에 일상생활에서 누리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될 것을 증거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공짜는 없다!’ 반복되는 일상과 사소하게 누리는 작은 일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다. 아무 사고 없이 보낸 하루, 먹고 마시고 숨 쉬는 것, 잠자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선물)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부요와 재물을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전6:2).”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진실을 누구나 명료하게 깨닫게 되는 그 날이 온다. 우리의 일상과 모든 삶(생명, 건강, 물질, 자녀)과 작별하는 날이다. 세상에 의지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죽음의 순간이다. ‘그 날에’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한 도구로 쓰임 받게 된다. 생명을 잃어버린 후에 하나님이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깨닫거나, 건강을 잃어버린 후에 하나님이 건강의 주관자이심을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 물질을 잃어버린 후에야 하나님이 물질의 주관자이심을 깨닫거나, 일상을 잃어버린 후에 하나님이 일상의 주관자이심을 깨달으면 너무 늦는다. 모든 것이 은혜임을 하루라도 빨리 깨닫고 사는 게 지혜다. 이것이 스가랴가 여호와의 날을 통해서 전하는 최종 메시지다.

김명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