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등불을 예비하는 시간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1년 11월 20일 (토) 23:57:00 [조회수 : 258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하나님의 달력은 ‘영원한 주일’로 1년을 마무리한다. 그리스도교 역사관에 따르면 교회력은 해마다 한 바퀴씩 순환하며, 나선형으로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한 해 동안 대림절 첫째 주일부터 시작해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그리고 왕국절(또는 창조절)을 지키며 오늘에 이르렀다.

 
  교회는 절기를 시작할 때마다 강단색을 바꾸고, 성찬식을 베풀며, 새로운 날들을 축하하고 역사적인 날들을 기념한다. 교회력 마지막 주일은 ‘왕 되신 그리스도의 주일’이라고도 불린다. 교회력의 완성인 셈이다. ‘영원한 주일’부터 ‘대림절 첫째 주일’ 사이는 한해의 끝과 시작이 물려있는 ‘끄트머리 주간’이다. 장엄한 끝이면서 엄숙한 시작이다. 

  영원한 주일이 있는 한 주간은 무엇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기간이다. 오랜 교회 전통에 따르면 이 주간에는 올해 먼저 소천하신 분들을 추모한다. 칼 라너는 “세상을 떠난 이들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 앞서 간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종말과 아주 가까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인생을 성찰하면서 나 자신이 죽음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로 유명해진 라틴어 격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러시아정교회의 이중십자 모양인 나사로십자가는 맨 아래에 아담의 해골이 있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는 십자가 위에 삼위일체를 그린 마사초의 벽화가 있는데, 그 아래 길게 누워있는 해골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나도 당신과 같은 모습이었고, 당신 또한 나처럼 이렇게 될 것이다.”

  영원한 주일을 맞아 평소 사용하던 양초 대신 강단에 등불을 켠다. 등불은 빛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 발광체가 생겨나기 전, 그보다 먼저 빛이 존재한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고 하시고,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길에서 등불을 의지하게 마련이다. 모든 인생 가운데 길을 잃어도 무방한 그저 그런 무의미한 삶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등불은 영혼의 창이고, 지혜의 불꽃이며, 역사의 빛이다. 

  그리고 등불 아래에 조개껍데기를 둔다. ‘등불과 조개껍데기’는 모두 인생의 길을 밝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의 상징은 바로 조개껍데기와 지팡이다. 조개껍데기는 인생의 순례를 상징한다. 인생은 한마디로 순례와 같다. 평생 정지된 삶을 사는 붙박이 인생은 없으며 누구든 끊임없이 움직이고, 순간순간 선택하고, 나날이 변화하고, 자의든 타의든 동행하며 살아간다. 

  ‘영원한 주일’은 이제 자신의 무상함을 깨닫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살라고 일깨워 준다. 흔히 말하듯 “돌아갈 곳이 있으면 인생은 여행이고, 돌아갈 곳이 없으면 그의 인생은 방황”이란 격언은 영원히 살 듯 오만한 인생에게 주는 따끔한 일침이다. 이렇듯 겸손히 내 인생의 목적지를 확인하는 때가 바로 영원한 주일인 것이다.

  무엇보다 ‘영원한 주일’은 내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친밀함을 느끼는 기회이다. 어두운 내 발 앞에 등불을 두며, 내 길을 비추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다. 인생은 누구도 예외없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주를 의지하고, 희망을 두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당장 살아있음을 축하하며, ‘지금 여기’ 내 마음 깊은 곳에 등불이 켜져 있음을 감사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교회력은 새 사이클을 시작한다. 마지막이란 낱말은 ‘맏이맏’에서 왔다. ‘맏’은 ‘제일 큰’ 또는 ‘첫 번째’라는 뜻이니, 마지막은 다시 출발하는 커다란 시작이란 의미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력과 내 스케줄을 일치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달력 속에 내가 포함되려는 사람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내 삶의 시계와 인생의 나침반을 확인하는 일은 얼마나 긴요한가? 다가올 대림절 첫째 주일을 맞으며 ‘기다림 초’를 준비하는 마음은 일상의 시간과 일생의 세월을 밝히는 등불을 예비하는 일이다.   

송병구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4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