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인간>, 권수영 지음, EBS BOOKS, 2020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읽는 키워드 중에 하나가 힐링, 곧 치유라는 단어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이 단어가 오르내리는 이유는 그만큼 내적, 외적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자, 그만큼 우리가 사는 오늘이 인간의 삶에 생채기를 내는 시대라고도 읽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힐링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다루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 보니, 바로 상담가들일 것이다. 상담가들의 주된 임무는 내담자들을 만나 그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치유하거나 혹은 치유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상담가에게 있어 경험만큼 중요한 일은 없으며 다양한 경험이 훌륭한 상담가를 양성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는 경험 많은 훌륭한 치유자들이 많겠지만, 오늘 소개하는 책, <치유하는 인간>의 저자, 권수영 박사는 매우 신뢰할 만한 전문가이다. 그는 자신을 오늘날 제 주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단어, ‘힐링’의 의미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내담자의 인생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상담가로 소개한다.

그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상담학 교수이자 학자의 길을 걸으며 수많은 내담자들을 만나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및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한 여러 국책 과제들을 수행하며 쌓은 경험들을 기반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의 고통을 나눠준 수많은 내담자들과 가습기 피해자 가족들에게 헌정한다.

그는 공신력뿐만 아니라 신뢰할 만한 전문가이지만 자만하지 않는다. 그는 겸손한 자세로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인간에 관한 통찰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데, 바로 <치유하는 인간>이다. 그는 ‘생각하는’, ‘놀이하는’, ‘도구를 사용하는’, 혹은 ‘사회적인’과 같은 수식어가 붙은 인간의 정의에 ‘치유하는’이란 수식어를 더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주장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인간은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지닌 존재이며 이는 태생적이라는 것이다. 흔히들 인간은 스스로 치유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오랜 경험을 통해 인간이 자신에 대한 가혹한 판단을 내려놓으면 내면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치유 과정의 핵심은 자신의 고통을 직시하고 대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고통스럽지만 고통을 직시하고 대면하면 태생적으로 주어진 자연적 소생력이 발동하고, 그가 책의 각 장에서 밝혀 놓은 holding – empathy – epoche – acceptance – lamentation – intimacy – network – growth의 과정을 거쳐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치유 과정이 생각보다 넓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강조다. 우리는 치유를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생각보다 폭넓게 연결되어 있으며, 치유 또한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 저자의 주목할 만한 주장 중에 하나다.

관계 속에 살아가며 때로는 내담자이자 혹은 상담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폭넓은 경험과 그로부터 솟아 나오는 지혜와 통찰력을 기반으로 삼는 일은 든든하고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또한 치유가 필요한 세상으로 나아갈 때 더없이 든든한 무기가 되리라 확신하며 일독을 권한다.

신태하 목사 (보문제일교회)